103화. 추산, 나서다(1)
103화.
추현이가 펼치는 태극권은 다른 자들과 전혀 달랐다. 공기를 찢어 발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지켜 보는 모든 자들이 놀란 표정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절도있는 부드러움과 힘이 있었다. 장내가 숨을 죽이며 추현이의 시전을 지켜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포권을 하고 무당 태극권 형(形) 시연을 끝내자 장내에서 요란스러운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가 메아리쳤다.
추현이는 생각대로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본선 결승은 다음날이다. 무기형법 예선은 여러가지 무기가 등장했다. 검, 도, 창, 봉등을 휘둘러 무술을 시연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추현이만 목검을 들고 나왔지만 천풍신법을 펼치며 시전하는 대연검법의 빠르기에 장내는 또다시 숨을 죽여야 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제대로 쫒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자들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저런식으로 펼쳐 보이면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점수를 매길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예선 통과자 명단이 발표되자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걸 알수 있었다.
무기형법도 압도적인 1위로 예선을 통과한 것이다. 권각형법과 무기형법 예선전이 끝나자 추현이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지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이 밀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이번엔 당장 집으로 끌고 갈 생각이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권각과 무기형법 예선전을 통과했습니다. 어느 문파 소속이신지요?"
"사부님의 엄명으로 그건 말할수 없습니다."
"그럼 무당 태극권이란건 태극권의 한종류라는건 알겠지만 대연검법은 어떤 검법인지 설명해 주실수 있는지요?"
"죄송하지만 그것도 사부님의 명으로 말할수 없습니다."
추현이는 모든 질문은 사부 핑계로 일관했다. 제대로 대답한 것이다. 우승을 한뒤에도 그런식으로 답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굉장했어요. 사부님이 대단하신 분 같아요."
초련의 칭찬에 추현이는 추산을 슬쩍 바라 보았다. 내일은 권각, 무기형법 결승과 참가자가 적은 비무는 결승전만 펼쳐진다. 결승전에서도 추현이는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권각과 무기형법에서 우승했다. 비무 대회는 권장각법만 허용되었다. 무기를 들고 싸울수는 없는 규정이었다.
"살살해. 상대방이 크게 다치면 곤란하다."
"걱정마. 우승하고 올께."
단한방으로 차례차례로 승리를 이어가 결승전에서도 한방으로 상대를 눕혀 버리는 기염을 토하며 비무 대회도 우승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추현이에게 모든 이목이 쏠렸다.
"축하드립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명실상부 전통 중국 무술 일인자에 당당히 올라 섰습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일인자요? 하하하하. 형아가 출전하지 않아서 제가 우승할수 있었어요. 출전하지 말라고 말렸거든요."
"그럼 형이 더 강하다는 말입니까?"
"그럼요. 전 형아 발밑도 따라 갈수 없을 정도에요. 대련에서 형아를 한번도 이긴적이 없거든요."
저 녀석이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저대로 놔두면 큰일 날것 같았다. 마법 메세지를 날려 녀석에게 경고를 할려는 순간 사회자가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지금 몇살이시죠?"
"고등학교 1학년으로 16살입니다."
웅성웅성.
고 1이라는 말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런 장내는 고요하게 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수련했는지 말해 줄수 있으십니까?"
"형아에게 맞으면서 수련했어요."
"하하하하."
추현의 재치있는 대답에 장내에 웃음보가 터졌다.
"대체 형이라는 분은 얼마나 강한겁니까?"
"몰라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달려 들어도 이기지 못할꺼에요. 그 정도로 강해요."
"형이라는 분도 여기에 계신겁니까?"
"예. 저기요."
추현이 손가락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가르키자 얼른 고개를 숙여 카메라를 피했다. 쓸데없는 짓을 한것이다. 얼굴이 팔리면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영혼 일부가 토니일때 이미 경험한 일이다. 마음대로 외출할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런 일을 또다시 당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추현이의 손가락을 따라 모든 사람들이 추산쪽을 바라 보고 있었지만 관중들 틈에 있는 추현이 형이 누군지 알리가 없었다.
"다음해 대회에도 출전하실겁니까?"
"형아가 허락하면 출전할겁니다. 하지만 아마 출전하지 않을거에요. 형아하고 대련하는게 더 재미있거든요."
"대련요? 혹시 며칠전 공원에서 검과 목검으로 대련한 본인이십니까?"
"예."
추현이의 말에 그때의 대련에 관한 소문이 이미 널리 퍼진것 같았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자도 있었다. 이미 자신의 얼굴은 만천하에 퍼진 상태라고 생각되었다. 또다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인정한 추현이를 용서할수 없었다.
"형을 불러 이곳에서 대련을 해 보시는건 어떻습니까?"
사회자의 질문에 즉시 추현이에게 양손을 엑스자로 그려 반대를 표해 주었다. 마법 메세지를 보내면 당황한 추현이가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형아가 않된다고 하네요."
아쉬운 표정의 사회자는 우승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말하곤 인터뷰를 마쳤다. 숙소로는 추현이하고는 같이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추현이는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
"어때 보이나?"
"서적에 쓰여있는 대연검법 설명과 비슷한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드디어 찾은것 같군. 저 자가 누군지 철저히 조사해 보게."
"명!"
***
"너어, 왜 또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거냐?"
숙소로 돌아 오자마자 추현이에게 화를 냈다. 왜 화를 내는지 모르는듯 당황해 하는 추현이에게 얼굴이 팔리면 얼마나 귀찮아지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미 늦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몰려 오기 전에 당장 여량시로 이동했다. 찰거머리처럼 쫄래쫄래 따라 오는 초련이 있었지만 천왕삼권을 보여 주고 중간에 떨구어 버릴 생각으로 지금은 동행하고 있었다.
"천왕삼권은 언제 보여 주실거에요?"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면 보여 줄께요. 근데 천왕삼권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 가야했다. 혹시나 해서였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초련이가 황보세가 출신일수도 있었다.
"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 무공이에요."
"비전 무공요? 설마 황보세가는 아니겠지요?"
"어? 어떻게 저희 세가를 알고 있는거에요? 지금은 세가는 아니지만 먼옛날엔 세가라고 불렸다는데요?"
놀랐다. 정말 놀랐다. 중국에 환생해 처음으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비록 영혼의 일부인 청송과의 인연이지만 황보 세가 인물을 우연히 만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 그럼 본명이 황보초련이란 말입니까?"
"맞아요."
"그럼 왜 천왕삼권을 그런식으로 펼치는 겁니까?"
"그런식이라니요? 대대로 내려 오는 비전 무공이에요. 내공 심법을 잃어 버려 제위력을 발휘할수 없지만요."
황보초련의 설명에 놀라우면서도 기가 막혔다. 내공심법은 왜 잃어 버렸는지는 알수 없지만 빵빵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황보초련이 펼친 천왕삼권은 짝퉁도 아닌 짜집기 무공으로 형편없는 위력이다. 오히려 내공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중간중간에 딱딱 끊겨 버려 자칫 잘못하면 내공이 역류해 주화입마에 걸려 버릴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추산 당신이 황보세가 가전 무공인 천왕삼권을 알고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음."
곤란했다. 환생을 거듭했다고 솔직히 말해도 절대로 믿지 않을것이다. 어쩔수 없이 꿈 핑계를 대야 했다. 꿈속에서 옛조상이라고 등장한 할아버지가 알려 준것이라고 말하자 믿기지 않아했다. 당연히 믿지 않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그대로 밀어 붙였다.
"그런데 왜 내공심법을 잃어 버렸는데요?"
"후우~! 모든 세가가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공에 소질이 있는 인재가 태어나지 않아 쇠퇴하기 시작했어요. 인재를 찾아 양자로 삼아 세가로 들이기도 하면서 근근히 세가를 유지시켜 왔지만 문화 혁명때 모든것이 끝장났어요. 홍위병들이 들이 닥쳐 모든 무공 서적을 불태우고 재산을 압수해 버린것이죠. 그리고 무공을 익히고 있는 세가 사람들도 모조리 죽여 버렸어요. 아이와 여인들만 남았지만 세가에서 쫒겨나 거지 신세가 되어 버린 탓으로 무공도 더이상 익힐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아버지의 어릴적 기억으로 세가 무공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에요."
황보세가도 문화 혁명 피해자였다. 서위촌으로 종종 왕진을 오는 한의사 할아버지 집안과 똑같았다. 한의사 할아버지 집안은 신관향에 많은 전답을 보유한 대지주였지만 문화 혁명때 모든것을 빼았기고 홍위병에게 끌려와 비판 대회에서 소작농들에게 몰매를 맞아 한쪽눈이 실명하고 팔이 부러져 더이상 한의사를 할수 없어 황하에 몸을 던졌다.
그런 한의사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유언을 남겼다. 한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라며 대를 이어가며 인명을 구하라는 유언이었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배운 의술을 계승해 지금까지 자기 아버지를 죽인것이나 마찮가지인 신관향의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게중에는 아버지에게 직접 몰매를 가한 자도 있었지만 한의사로써의 사명을 잊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추산이 그런 입장이었다면 모조리 죽여 버렸을것이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진정한 의인이다. 전세계 어디를 찾아 봐도 한의사 할아버지같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 다른 세가들도 마찮가지로 모든 무공을 잃어 버린겁니까?"
"다른 세가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 그럴거에요."
이제야 왜 천왕삼권이 형편없는지 알수 있었다. 무공 서적이 모두 불태워졌다는 말은 믿기지 않았다. 대부분 세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물건이 무공 서적이다. 중요한 비전 무공은 비밀 서고에 꽁꽁 숨겨 놓는게 일반적이다.
아무리 홍위병들이 들이 닥쳐 서적을 태웠다고 해도 비밀 서고까지는 찾아 낼수 없었을것이다. 세가에서는 비밀 서고는 보통 가주와 소가주만이 알고 있다. 황보초련의 할아버지는 세가의 비밀 서고를 알려 주지도 못한채 죽은것 같았다.
"황보세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예전이라면 산동 반도의 태산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태산 근처에 있어요. 세가라기 보다는 조그마한 집에 불과하죠."
"그럼 원래 세가였던 곳은 그대로 남아 있는겁니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만 남아 있어요."
다행이었다. 세가 저택이 남아 있다면 비밀 서고를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당장 산동 반도의 태산으로 가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인 추현이를 데리고 갈수는 없었다.
"혹시 본래 세가에 비밀 서고가 있지 않습니까?"
"확신할순 없어요. 아버지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 집으로 변한 상태여서 찾아 볼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찾아 본다고 해도 찾을수 있을지 확신할수도 없는 상태고요."
"음, 그럼 저하고 같이 태산으로 가시죠. 비밀 서고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차, 찾을수 있으세요?"
믿기지 않는지 큰눈이 더욱 커진 황보초련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추현이 녀석도 같이 간다고 떼를 썼지만 학교나 잘 다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추현이에게는 숙제를 한아름 안겨줄 생각이다. 쓸데없는 말을 한 벌이다. 생각같아선 팔다리 한개쯤은 부러 뜨려야 성이 풀리겠지만 지금은 황보세가의 비밀 서고를 찾으러 가야 한다.
"비밀 서고가 존재한다면 찾을수 있습니다."
"다, 당장 태산으로 가실수 있으세요?"
"추현이를 집까지 바래다 주고요."
"형아, 나도 같이 가고 싶어."
탁.
"아얏!"
"넌 학교 가야 되잖아. 그리고 집에 가면 각오해. 쓸데없는 말을 왜 해?"
"......"
추산은 화는 잘 내지 않지만 한번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는 추현이는 죽을상으로 변해 버려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추현 동생이 거짓말을 한건 아니잖아요."
황보초련이 언제 추현이와 친해졌는지 동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저 녀석이 또 쓸데없는 말을 한건 아니겠지?'
가장 걱정되는게 그 점이다. 황보초련에게 자신에 관한 것을 미주알 고주알 자랑했을지도 모른다. 여량시에 도착해 황보초련에게는 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기다리라고 말해 두었다.
"꼭 와야 해요."
"걱정마. 한번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니까."
황보초련을 집으로 데려 갈순 없었다. 여량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사도 알아 봐야 했지만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로 조사를 해봤지만 단서조차 찾을수 없어 포기한 상태다. 추현이에게는 천뢰제왕신공을 가르켰다. 대주천을 완성한 이상 대연심법보다 상위 심법인 천뢰제왕신공을 가르켜 주며 산동성에서 돌아 올때까지 심법에 익숙해지라는 숙제를 내 주고 대연검법도 대성하라고 일러 두었다.
***
"여기가 산동성입니까?"
"예. 저 멀리 보이는 곳이 태산으로 옛본가는 저쪽에 있어요."
황보초련의 안내로 황보세가쪽으로 갔다. 높은 담장안에 거대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옛 황보세가 본가로 다가 갈수록 황보초련의 얼굴은 수심에 젖어 들었다. 담장을 따라 이동하면서 노에스를 불러 지하에 비밀 서고가 있는지 찾아 보라고 지시했다.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관계로 비밀 서고를 찾을려면 시간이 걸릴것 같았다. 담장을 따라 이동하면서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누가 사는 겁니까?"
"중앙 정치국 위원인 금도명이라는 자가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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