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라시덴 상단(3)
12화.
"마, 마법사셨습니까?"
"그 보다 놈의 피를 받고 가죽을 벗겨."
"아, 알겠습니다."
상단주는 즉시 지시했다.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이 달려 들어 피를 받고 가죽을 벗겼다. 벌거벗은 트롤의 몸에서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앞쪽의 큰상단들은 트롤이 죽자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서둘러 앞으로 달려 가고 있었다. 그럴때 중년인 한명이 다가와 트롤을 잡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앞으로 달려 갔다.
"상단주!"
"예. 백작님!"
"트롤 가죽은 선물이다."
"예엣? 너무 과합니다."
깜짝 놀라는 상단주는 어쩔줄을 몰라했다. 설마 엄청난 가격인 트롤 가죽을 공짜로 받을줄은 생각지도 못했을것이다.
"그냥 받아."
"가, 감사합니다."
다른 중소 상단 상단주들이 부러운 눈으로 나라시덴 상단주를 바라 보고 있었으며 용병들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앞쪽의 큰상단에선 곳곳에 큰모닥불이 피워 오르며 뒷정리에 부산을 떨었다. 트롤 피는 큰물주머니 4개에 들어 있었다. 트롤 피를 들고 따라온 용병들에게 고생했다며 실버 한개씩을 던져 주고 트롤 피로 포션을 만들수 있을지 실험을 해 볼 생각이다. 포션은 마법사나 신관이 트롤 피의 독성을 제거하고 피가 굳지 않게끔 마나를 불어 넣어 제조한다. 독성이란 마기일것으로 생각되었다. 몬스터들은 모두 마기를 보유하고 있다.
먼옛날 마족들이 천족들과의 전투에서 활용하기 위해 일반 동물들에게 마기를 주입해 개조시킨 동물이 몬스터다. 마기는 인간에게는 천적이나 마찮가지다. 흑마법사가 아닌 이상 마기가 인간의 몸속에 침투하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린다. 마나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라면 마기는 그 반대인 음산하고 광폭한 느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당장 트롤 피로 실험을 해 볼수는 없었다. 한번도 포션 제조를 해 보지 않은 캐논으로써는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트롤 피는 일단 굳어지기 전에 마법 주머니안에 보관했다. 덕분에 마법 주머니안에 들어 있던 야영 도구와 식량을 꺼내야 했다. 밤새도록 앞쪽의 상단쪽에서 부산을 떠는 바람에 뒤쪽의 중소 상단들은 한숨도 자지 못한채 밤을 지새웠다. 언제 또 몬스터가 습격할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었던 점도 없진 않았다.
"너희들 독성이 있는 풀이나 나무를 발견하면 가져 와라."
모닥불 근처에 앉아 있는 용병들에게 지시했다. 캐논이 갑자기 말을 걸자 깜짝 놀란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이상 캐논을 몰락 귀족이라고 무시하는 눈빛은 찾아 볼수도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일행쪽으로 앞쪽 상단에서 상인 한명이 찾아와 캐논에게 아침 식사 초대를 했다.
"나라시덴 상단주와 함께 가겠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상단주와 함께 앞쪽의 상단쪽으로 걸어 갔다. 부서진 수레들이 곳곳에 늘려 있었으며 짐들이 한쪽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부상당한 용병들도 제법 많았다. 어제밤에 트롤에게 당한 것이다.
"어서 오십시요. 아크티브 상단 부상단주인 아크릴입니다."
"캐논 드라이브 백작이다."
"나라시덴 상단 상단주인 나라시덴입니다."
아크릴 부상단주는 어제밤에 고맙다며 인사를 했었던 그 중년인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은 부상단주가 맘에 들었다.
"백작님이셨군요."
은근히 놀라는 아크릴 부상단주였다. 아침 식사는 화려했다. 간만에 귀족다운 식사를 할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후 차를 한잔 마시고 있을때 부상단주가 불룩한 주머니 한개를 꺼냈다.
"이건 어제 트롤을 잡아 준 보답입니다."
"받을수 없다. 그걸로 죽은 용병이나 다친 용병들에게 나눠줘."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짐들은 어쩔 생각이냐?"
수북히 쌓여 있는 짐들을 실을 수레가 부족해 보였다. 저대로 버려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다.
"후우, 그게 문제입니다."
부상단주의 힘없는 대답에 무슨 조치를 취해 줘야 할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것이다.
"상단주, 저 짐들을 수레에 실은순 없어?"
"음, 무리입니다. 지금도 수레에는 한계까지 실은 상태니까요."
그렇다. 각각의 수레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는 상태다. 많이 가져 가면 갈수록 많이 벌기 때문에 한계까지 실어 놓은 상태로 다른 짐을 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해. 짐꾼이나 용병들에게 짐을 짊어 메라고 해. 물론 짐을 진 자에게는 프론티아 왕국에 도착하면 대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말하면 짐을 옮길수 있을꺼야."
대안을 말해 주었지만 판단은 부상단주가 해야 한다. 자신이라면 그런식으로 짐을 옮길것이다. 뒤쪽으로 이동했을때 용병 한명이 나뭇가지 한개를 가지고 왔다.
"저어, 백작님, 어제 말한 독성이 있는 나무입니다. 이 진물을 만지면 붉은 반점이 생기며 엄청 가려워집니다."
"수고했다."
아침 일찍 어제 말한대로 독성이 있는 나무를 찾아 본것 같았다. 실버 한개를 던져 주자 눈이 커진 용병은 얼굴이 활짝 피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에 다른 용병들의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들도 독성이 있는 풀이나 나무를 찾기 위해 슬글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뒤지고 있었다. 나뭇 가지 한개를 받아든 캐논은 진물이 뚝뚝 흐르고 있는 나뭇 가지 끝의 진물을 한곳에 모았다.
"사라져라."
정신을 집중하고 나무 접시에 모은 진물을 향해 독성을 제거해 보았다. 사이킥의 힘이 작용했는지 부글부글 끓듯이 포말이 발생하며 잠시후 사라졌다. 제대로 독성이 사라졌는지 직접 실험해 봐야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진물을 찍고는 팔뚝에 살짝 발라 봤다. 아무런 반응도 없으면 독성이 제거된것이다. 하지만 잠시후 팔뚝이 가려오며 붉그스럼한 반점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독성은 제거되지 않았다. 즉시 팔뚝에 독성을 제거하는 사이킥을 시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가려움증도 사라지고 붉은 반점도 사라졌다. 나무 접시에 담겨있는 진물과 자신의 팔뚝에 바른 진물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나무 접시에 있는 진물의 독성은 그대로지만 그 진물을 바른 팔뚝으로 스며든 진물은 독성이 제거된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수 없었다. 지식이 풍부한 마법사가 있다면 물어 볼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수도 없었다. 혼자서 고민해야했다. 앞쪽의 아크티브 상단은 부서진 수레를 수리하고 완파된 수레는 계곡 밑으로 버리고 짐을 다시 꾸리고 있었다. 적어도 하루 이틀은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밤새도록 고민한 끝에 한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나무 접시에 담겨 있는 진물은 진물 전체가 독으로 뭉쳐져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물과 몇가지 독등이 아우러져 있는 상태로 추정되었다. 어떤 독인지는 모르는 상태지만 팔뚝에 묻힌 진물은 몸속으로 들어온 이물질이다. 그런 이물질 전체를 독으로 취급해 몰아 낸것이다. 나무 접시에 있는 진물속에 어떤 독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 독을 제거할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캐논은 트롤 피에 녹아 있는 마기만 제거하면 포션으로 만들어 진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즉시 실험을 해 봤다. 나무 접시에 트롤 피를 조금 따라 마기를 강하게 생각하며 사이킥을 시전했다.
"마기는 사라져라."
접시의 피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물일때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실패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마셔 보지 않고서는 알수 없었다. 조금만 마셔 보았다.
"욱!"
진한 피냄새와 함께 속이 부글부글 들끓기 시작했다. 즉시 사이킥으로 몸속으로 들어온 피를 꺼집어 냈다. 빠져 나오라고 강하게 말하지 붉그름한 연기가 피어 오르며 속이 진정되었다.
'그렇구나.'
이제야 알수 있었다. 마기도 세상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운이다. 그런 기운을 사라지게 할순 없었다. 중화를 시키거나 꺼집어 내야 한다. 나무 접시의 트롤 피를 향해 다시 사이킥을 시전했다.
"나와라."
나무 접시에서 검은 연기가 뭉개뭉개 피어 올랐다. 절로 두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성공이었다. 마기가 사라지자 붉은 피는 조금 옅어 진것 같았다.
꿀꺽.
여전히 피 냄새는 나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는듯한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물주머니 한개를 꺼내 사이킥을 시전해 마기를 몰아냈다. 뭉클뭉클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며 혹시나 해서 한번 더 시전한후 포션이 된 피를 조금 마셔 보았다. 역시 이상이 없는게 포션이 확실했다. 이번엔 팔뚝에 조금 상처를 내고 포션을 떨어 뜨렸다. 그러자 팔뚝의 상처가 부글부글 기포를 발생시키며 순식간에 말끔하게 치료가 되었다. 이제는 포션이 굳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마나를 불어 넣고 병에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마나를 방출시킬수 없는 캐논은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
완성된 포션은 마법 주머니에 보관하고 다른 3개의 물주머니안에 들어 있는 트롤 피도 모두 포션으로 만들었다. 익스퍼트가 되지 못한게 아쉬울뿐이다. 마나를 뿜어 낼수 있는 익스퍼트 경지였다면 포션에 마나를 불어 넣었을 것이다. 이틀후 상단은 출발을 했다. 용병들 모두가 등에 짐을 메고 있었다. 아크티브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 몇명은 들것에 실려 가고 있었으며 절뚝거리며 나무 막대를 짚고 가는 용병들도 많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용병들 때문에 이동이 지체되고 있었다.
저벅저벅.
앞쪽의 상단쪽으로 접근하자 용병들이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길을 열어 주었다. 용병들은 캐논을 마법사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부상단주! 잠시 멈추도록 해."
"무슨 일인지요?"
"이동이 너무 느려. 다친 용병들을 치료할려고 한다."
"아, 감사합니다."
아크릴 부상단주도 용병들이 맘에 걸린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프론티아 왕국까지는 예상보다 두배나 더 걸릴것이다. 그렇다고 부상당한 용병들을 버리고 갈수도 없었다. 마침 백작 마법사가 치료를 해준다는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엎드려 절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상당한 용병들을 한곳에 모아."
즉시 움직인 부상단주는 수레를 멈춘 옆에 부상 당한 용병들을 끌어 모았다.
"백작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든 용병이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용병단의 부하들도 부상입은 자들이 있는것 같았다.
"자아, 이건 포션이다, 이걸로 치료해."
"예엣? 이 귀한걸로 치료를 하란 말입니까?"
"아무리 귀해도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나?'
만약 이동이 느려지지 않았다면 부상당한 천한 용병들이 죽든말든 상관하지 않았을것이다. 마음속의 생각과는 달리 평민들을 위해 주는 귀족처럼 말을 내뱉은 캐논이었다. 고맙다고 몇번이나 고개를 숙이는 용병은 자신이 레시데라고 소개하며 용병단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 간다고 용병단을 부를 일이 있으면 주저없이 불러 달라고 했다. 이동이 늦는 탓으로 선심을 쓴것 뿐인데 이런식으로 보답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영지를 수복하기 위해선 전력이 필요하다. 이번 일로 한가지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보답을 한다는 것이다. 물주머니에 담겨 있는 포션 한개만으로 모두를 치료할순 없었다. 포션이 모자라 보여 한개 더 꺼내 주었다. 부상이 치료된 용병들은 너도나도 인사를 해 왔다. 좀전같아서는 용병이 인사를 하든말든 무시했겠지만 지금은 일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백작님! 마차에 오르시지요."
"절대로 마차는 타지 않는다. 예전에 이 계곡을 통과할때 습격을 받은적이 있었다. 저 아래가 보이지? 저 계곡밑으로 추락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캐논의 말에 아크릴 부상단주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했으면서도 살아 남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마법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대단한 마법사라고 생각되었다. 용병들의 치료가 끝나자 전처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캐논은 나라시덴 상단주 옆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포션을 그렇게 막 퍼 주어도 되는건지요?"
"아까워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잖아."
"그, 그렇군요. 백작님은 여느 귀족과는 다르시군요."
"......"
다르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캐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라시덴 상단주의 아들인 아그렌 부상단주는 캐논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비싼 포션을 베풀어 준것은 물론 트롤 가죽까지 선물로 받았다. 저런식으로 행동하는 귀족은 처음이다. 몰락 귀족이라고 해도 마법사라면 귀족 대우를 받는다. 친분을 쌓아 두면 상단에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백작도 나라시덴 상단을 좋게 보는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앞쪽의 아크티브 상단과 합류했을것이다.
지루한 이동도 두달이나 흘러 갔다. 트롤의 습격 이후로는 한번도 습격은 없었다. 이제야 겨우 산정상을 넘은 상태로 앞쪽에는 구불구불한 내리막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상단이 이동하면 수레 한두대쯤은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때는 모든 행렬이 멈출수 밖에 없었다. 외길인 이곳은 비켜 갈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행렬은 멈춘 상태다. 아크티브 상단쪽 수레바퀴가 부서진 상태로 수리할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일로 몬스터 산맥을 넘어 가는 상행은 석달이나 걸리는 것이다.
"백작님은 마검사십니까?"
부상단주가 허리에 차고 있는 롱소드를 보고 있었다. 거의 말을 걸지도 않았던 부상단주가 롱소드가 신경 쓰이는것 같았다.
"이거? 유품이다."
"그, 그렇군요."
- 작가의말
오타 지적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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