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청송의 삶(1)
47화.
조용히 마나 연공에 집중했다. 그러자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탓으로 많은 마나는 아니었지만 순도면에서는 거의 100%에 가까운 마나였다. 그런 마나를 모아 조심스럽게 소주천, 대주천을 차례대로 하며 이마에 끌어 모았다.
마나 연공을 하며 3개월이 흐르자 밖으로 나가라고 본능이 자극했다. 부모는 중국인으로 생각되었다. 매일 중국말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밖으로 나갈려고 버둥거렸다. 머리가 꽉 끼어 좀처럼 나갈수 없었지만 발버둥을 치며 어떻게든 밖으로 무사히 나갈수 있었다.
철썩!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고 있었다. 이때는 울어 주어야 한다. 괜히 버티고 있으면 벙어리가 태어 났다고 난리를 칠것이다.
"으아~앙!"
일부러 힘껏 우는 시늉을 했다. 울음 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눈이 떠지지 않아 부모들의 얼굴은 모르지만 말소리는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른다. 역시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 젖을 먹고 자는척했다.
시끄러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가 없어 너무 답답했다. 이제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내 나이 10살이 되었다. 난 하인 아들이다. 부모들은 남궁 세가의 하인들이었다.
'왜 하필 하인이냐고?'
재수가 없는것 같았지만 인간으로 환생한것만으로도 더이상 바랄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날 낳고 부터 몸이 약해졌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뱃속에 있을때 빨아 들인 마나라고 생각한 것이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의 진원지기(眞元之氣)였던 것이다. 그탓으로 몸이 약해진 어머니는 자주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인으로 해야 할일 때문에 주방에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흐느적거리며 돌아온 어머니에게 매일 안마를 해 준다는 핑계로 힐링 마법을 펼쳐 주고 마나를 주입시켜 몸을 치료해 주지만 진원지기가 많이 빠져 나간 탓으로 치료하는 순간만큼은 화색이 돌았지만 아침이면 피곤해 했다. 아침에 다시 안마를 해주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굿간지기다. 가끔씩 마부 역활로 집을 비우기도 한다. 하인 전용 숙소에는 많은 하인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다. 내 나이 또래 하인 자식은 여아가 한명 있을뿐 다른 사람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외동 아들인 청송은 12살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마굿간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매일 매일 꾸준히 마나 연공을 한 덕으로 지금은 마법사일때보다 더 많은 마나를 모을수 있었다. 이곳은 전번의 마법사로 살때보다 마나가 희박한 세상이지만 어머니의 진원진기와 뻥 뚫린 혈맥으로 인해 몸속으로 들어 오는 마나량은 마법사 시절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12살이 될때까진 마당을 쓸고 잡초를 뽑는 일외엔 잔심부름을 하는것 정도다. 시간이 날때마다 마나 연공으로 시간을 떼웠다.
"청송(靑松)아! 네 아버지가 다쳤다."
"예엣?"
같은 하인인 개똥이 아저씨가 저녁 무렵 집으로 달려 와 알려 주었다. 아버지는 지금 남궁세가 의원 숙소에 있다는 말에 개똥이 아저씨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다. 개똥이 아저씨도 마굿간지기다. 남궁세가의 마굿간지기는 모두 3명으로 아버지와 개똥이 아저씨, 그리고 곰보 할아버지다.
"이쪽이다."
넓은 대청 바깥쪽 담장을 빙 돌아 작은 건물로 안내하는 아저씨를 따라 갔다. 대청쪽엔 본가의 인물이나 중요한 손님들만이 사용할수 있다고 했다.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프더라도 차별을 받는 것이다. 그럭저럭 건물은 깨끗했지만 좁은 방안에 덕지덕지 달라 붙은 나무 침대에 아버지는 물론 다른 사람들 3명도 같이 누워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상체를 천으로 둘둘 감고 있었지만 피가 흥근히 베어 나온 상태로 잠이 들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급히 뛰어가 상태를 살펴 보는척하며 1서클 치료 마법인 힐 마법을 펼쳤다.
3서클인 힐링 마법을 펼치면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지만 너무 티가 난다. 지금은 힐 마법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힐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덜미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가져가 맥이 뛰고 있는지 확인했다.
'빌어먹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미 생기는 빠져 나갔는지 몸에서 온기도 감지되지 않았다. 너무 늦게 도착한것이다.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몸을 흔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죽은 자를 살려 낼 재주는 없었다.
"개똥이 아저씨! 아버지가 죽었어요."
"뭐라고?"
아저씨가 급히 다가와 아버지를 살펴 보고 있을때 다른 병상에 누워 있는 아저씨 한명이 버럭 화를 냈다.
"조용히 해 임마!"
아저씨의 외침에 자고 있던 다른 2명도 깨어나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소중한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버럭 화를 내는 아저씨를 노려 보았지만 그 아저씨는 눈을 감은채였다.
"아저씨!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된거죠?"
"습격을 당한거다."
일주일전에 아버지는 마부로 마차를 몰고 나갔다, 누구를 태우고 나갔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 주세요."
이틀전이었다. 세가로 돌아 오는 길에 산등성이에서 복면인들에게 갑자기 습격을 당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아버지는 마부석에 앉은채 당했다. 세가의 상단일로 남궁상기(南宮湘技)님을 모시고 다녀 오는 길이었다. 복면인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세가에서 이미 추격조가 놈들을 쫒고 있는 상태였다. 부상을 입은채 침상에 누운 상태인 아저씨의 말에 정보가 부족함을 느꼈다.
복면인들이 사용하는 검법이나 경지등은 하나도 알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는 빠르게 치루어졌다. 이미 십여명이나 죽은 상태로 연일 장례식이 치루어지고 있었지만 하인인 아버지는 장례는 조용히 치룰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몸져 누워 버렸다. 마법도 통하지 않고 마나를 불어 넣어 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것이다. 안그래도 약한 몸인데 엎친데 덥친격이었다. 그런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으며 일주일 뒤에 아버지를 따라 갔다. 청송은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어 버렸다. 개똥이 아저씨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어 주었다.
하인의 자식은 평생 하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특히 이런 무림 세가의 하인들은 통제가 철저하다. 하인들이 보고 들은 정보를 외부에 발설할수 없게끔 밖으로는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통솔한다.
청송은 아버지와 어머니장례식때 처음으로 세가 밖으로 나갈수 있었다. 세가 근처의 산에 묘자리를 쓴것이다. 인적이 없는 산으로 산위에서 본 먼거리에는 제법 큰마을이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세가에서도 집 근처를 벗어 난건 세가안의 의원으로 갔을때와 장례식때가 처음이었다. 완전히 우울안 개구리 신세였지만 그 덕분에 마법 성취는 일취월장할수 있었다.
"네가 청송이라는 애냐?"
"그, 그렇습니다."
"앞으로 넌 태상 가주님의 수발을 든다. 따라와라."
하인들을 관리하는 남궁가의 먼 방계인 남궁수길(南宮秀吉)이 아침 일찍 찾아와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얼떨결에 따라가는 청송은 세가 구경하기에 바빴다. 처음으로 내성으로 들어온것이다. 남궁세가는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성에는 세가 직계 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아무나 들어 올수 없는 곳이다.
"총관님! 태상 가주님을 보필할 하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고생했네. 이름이 뭐냐?"
"처, 청송이라고 합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 보는 총관의 눈매는 매서웠다. 총관을 따라 내성안 깊숙한 모처로 이동했다.
똑똑.
"태상 가주님! 총관인 장태(將泰)입니다."
"들어 오게."
"따라 오너라."
총관에게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잔소리아닌 훈육을 들었다. 태상 가주님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을 꿇고 아무런 말도 해선 않되며 지시하는 대로 따르라고 했다. 총관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간 청송는 곧바로 방문옆에 무릎을 꿇고는 머릴 숙였다. 태상 가주의 얼굴은 보지도 않았다.
"시중들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필요없다고 했지 않았는가?"
"필요 없더라도 옆에 두십시요. 고아가 된 아이입니다. 세가를 위하다 변을 당한 자식을 내팽겨칠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음...나가 보거라."
퉁명하게 내뱉은 태상 가주의 말에 총관은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며 머릴 숙이고 있는 청송을 힐끗 바라 보고는 문을 닫았다.
팔락.
태상 가주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간간히 책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 올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다리가 점점 저려왔지만 마나를 움직여 저려 오는 다리로 보낼수도 없었다. 태상 가주인만큼 마나 유동을 감지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삼류, 이류, 일류, 고수, 절정, 화경, 현경으로 구분되는게 무인(武人)들의 경지다. 개똥이 아저씨가 집으로 놀러 왔을때 남궁 세가의 무인들에 대해서 말해 주었었다. 남궁 세가에는 절정의 경지에 있는 무인들이 즐비하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말한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절정이라면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나 최상급 경지로 예상되었다. 태상 가주인 만큼 적어도 절정이상일것이다.
"참을성이 있는 아이로구나. 얼굴을 들어라."
드디어 말을 걸어 왔다. 이미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다. 천천히 얼굴을 들어 태상 가주를 바라 보았다. 눈이 내린것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에 붉은빛을 띄는 얼굴이었다. 주름이라곤 전혀 보이지도 않아 중년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정정해 보이는데도 가주직을 물려 주고 태상 가주로 은거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감히 물어 볼수는 없었다.
"이름이 뭐냐?"
"처, 청송입니다."
"좋은 이름이구나.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앉은채로 빙글 돌아 문을 열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무릎을 끌어 당기듯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발이 저려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일어 설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방을 나간 청송은 다리를 뻗고 주물러 피를 돌게 했다. 아직 마나를 사용할순 없었다.
앞으로는 태상 가주 방문앞에서 대기해야한다. 어린 아이 혼자서 조용히 대기하는건 가혹한 일이다. 문 옆에 주저 앉아 명상을 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것보단 명상을 하며 시간을 떼울 요령이다.
'어?'
명상에 잠겨 있을때 이상한 감각이 전해졌다. 누군가 천장위에 숨어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어떻게 할수도 없었다. 태상 가주에게 침입자가 있다고 말해 줄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추궁할게 뻔했다. 그러면 자신이 마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다. 세가의 심법을 훔쳐 배운 것이라고 목을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 모르는 척 할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명상에 잠겨 있을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오는 정문쪽을 바라 보았다. 잠시후 화려한 복장의 십대 소녀 한명과 하녀로 보이는 여자애가 들어 서고 있었다. 하녀는 소녀와 같은 나이 또래로 보였으며 손에는 쟁반이 들린채 천으로 뒤덮혀 있었다.
꾸벅.
"넌 누구니?"
"오늘부터 태상 가주님을 모시게 된 청송이라고 합니다."
"그래?"
퉁명스럽게 대답한 소녀는 태상 가주 방문을 두드리며 희(禧)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들어 오너라."
남궁희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가자 하녀는 청송을 힐끗 바라 보고는 안으로 따라 들어 갔다가 곧바로 다시 나왔다.
"넌 몇살이니?"
"10살요."
"부모님은?"
"며칠전에 돌아 가셨어요."
침울한 표정으로 답해주자 하녀는 어쩔줄을 몰라했다. 설마 며칠전에 죽은 사람들중에 자신의 부모가 포함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것이다. 세가 상단이 습격당했다면 세가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탓이다.
"미안해."
"아니에요."
"그런데 좀전의 아가씨는 누구에요?"
"가주님의 따님이신 남궁희 아가씨야."
하녀에 말에 의하면 점심을 매일 가지고 온다고 했다. 이곳의 점심은 간식 타임이다. 간단한 요리를 몇점 먹을뿐이었다. 하루에 두끼가 고작인 하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하녀는 이것저것 남궁 세가에 대해 말해 주었다.
태상 가주님은 다리를 다쳐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가주직을 물려 주지 않았을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무인으로써의 삶이 끝장난 것으로 정정함에도 아들에게 가주직을 물려 주고 은거를 할수 밖에 없다는걸 알수 있었다.
"얼마전에 상단이 습격을 당했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어.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찾지 못한 상태야. 세가안이 뒤숭숭한게 꼭 뭔가 벌어질것만 같아. 네 부모님도 그 사건에 휘말린거니?"
"예. 아버지가 마부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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