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인정사정 없는 천후(2)
157화.
노인의 정체는 전혀 모르며 첩 행세를 하고 있는 이 여인의 정체도 모른다. 방금전은 침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 의원을 말을 들은 남창 분타주는 즉시 밖으로 나가 통나무처럼 뻗뻗하게 굳어 있는 노인을 끌고 왔다. 마치 현대의 마네킹을 보는듯 했지만 눈동자만은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 상황을 살펴 보고 있었다.
"분타주님, 일단 이 자도 단전을 박살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혈을 짚어 움직이지 못하지만 언제 마혈을 풀어낼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하게."
실제로는 내공이 움직이지 못하게끔 마법으로 봉인해 놓았지만 무림인들이 내공을 금제를 해 놓는 방법과 달라 마법이 언제까지 통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럴바에야 단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면 무공은 더 이상 사용할수 없게 된다.
내공이 없는 무공은 오로지 힘에 의존해야 하지만 그런 자는 무인축에 들지도 못한다. 한번 파괴된 단전은 어떤 방법은 있겠지만 복구를 할수 없다는게 무림 정설이다.
퍽!
"컥!"
울컥.
조금의 주저도 없이 정말 단전을 파괴하자 노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당황하며 역류하는 피를 뿜어냈다. 무공을 배운 강 의원은 일단 단전을 금제만 해 놓는다며 분타주가 직접 손을 썼다. 이들의 심문은 남창 분타주에게 맡겼다. 남창에서 벌어진 일로 개방에 맡겨 두는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지하의 강시도 개방이 알아서 처리할것이다.
"걱정이군."
"뭐가요?"
"지하에 강시 말이다. 강시 제조에 필요한 재료로 인간의 심장이 사용되었다. 중원 도처에서 실종되거나 심장이 사라진 사람들이 발견되지 않았냐? 그들 심장이 어디로 갔겠냐?"
무이촌 분타주의 말에 그럴 가능성이 다분했다. 중원 각지에서 이곳처럼 강시를 제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여인은 노인의 제자라고 했다. 남창 분타주는 심문으로 알아낸 내용을 무이촌 분타주에게 알려 준다고 했다. 남창에서 무이촌 분타주와는 헤어져야 한다. 서로가 가는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중에 만나면 노인이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수 있을꺼다."
아마 일을 마치고 세가로 돌아 가면 무이촌 분타주가 찾아와 남창 분타주에게 들은 내용을 전해 줄것이다. 자신은 동쪽으로 분타주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남궁 세가까지는 하루종일 경공을 펼치면 5일만에 도착할수 있다.
'공간 이동으로 갈까?'
남궁 세가의 좌표는 물론 장원 구조까지 모두 알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순식간에 이동할수 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다. 빨리 간다면 아직 남궁 세가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황보 세가는 물론 당문에서도 약속 시간대에 맞춰 남궁 세가를 방문해 있을지도 모르기에 천천히 가기로 했다. 넓은 도로를 도보로 터벅터벅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걸어 갔다. 간간히 무인들로 보이는 자들이나 상인, 일반인들이 지나갔다.
중간계처럼 산속에서 언제 몬스터가 뛰쳐 나올지 모르는곳이 아닌탓으로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던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이 장관이었다. 근처에는 마을이 보이지 않아 오늘은 노숙을 해야 한다.
적당한 공터를 찾아 근처에 사이킥 알람을 펼치며 나뭇가지를 주워와 모닥불을 피웠다. 아공간을 열어 모포 두장과 빵과 고기를 꺼내 구워 빵 사이에 넣고 저녁을 해결했다. 차 한잔을 마시고 있을때 자신이 온 길쪽에서 이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접근하는 무인들 네명이 눈에 들어 왔다. 여자 한명이 끼어 있는 일행으로 모두 이십대로 짐작되었다.
"그냥 지나가라."
조용히 중얼거렸다. 괜히 이것저것 물으면 귀찮기만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듯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해 모닥불 앞에 혼자있는 천후의 모습을 보고 한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소협! 혼자십니까?"
"그렇습니다."
"근처에서 야영을 해도 되는지요?"
"내 땅도 아닌데 알아서 하십시요."
중간계와 마찮가지로 무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선 함부로 야영을 하지 않는다. 야영을 할땐 먼저 있는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은 똑같았다. 보통 야영을 할땐 근처에 물이 있는 곳에 자리 잡는다. 자신이야 물이 있던 없던 상관없지만 이들은 자신이 야영하는걸 보고 근처에 물이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제길 귀찮아지겠군.'
보나마나 물 때문에 귀찮게 할것이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7장인 20미터 정도 떨어진 부근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이들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오고 땅을 대충 고르는듯 야영 준비에 바빴다.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차를 모두 마신 천후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시작했다. 가부좌를 튼 상태라면 저들이 말을 걸어 올수 없을것이다. 밤새도록 명상을 한것 같았다. 서서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옆에서 야영하는 자들도 이미 일어나 차례대로 내공 심법을 하고 있었다. 모닥불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모포를 둘둘 말고 먼저 길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저들이 보이지 않은 곳까지 이동해 아공간을 열고 모포를 넣고는 사과 한개를 꺼내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아공간에는 지구에서 넣어둔 식량으로 밀가루나 고기, 과일, 채소등이 엄청나게 많다. 어느 길로 접어 들었는지 앞쪽에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떤 산인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말좀 묻겠습니다. 저 산 이름은 뭡니까?"
등에는 큰짐을 지고 산을 오를려는 중년 남자를 발견했다.
"여산입니다."
천후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보고는 살짝 겁을 먹었는지 중년인이 재빨리 대답하곤 서둘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왕래가 잦은지 단단하게 굳은채 풀도 자라지 않아 산속에서 헤매진 않을 것이다.
어떤 산인지 구경하기 위해 중년인의 뒤를 멀리서 따라 갔다. 앞서가는 중년인은 한번도 쉬지도 않고 올라 가고 있었다. 산으로 올라 갈수록 점점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길이 아닌 탓으로 산을 타는건 어렵지 않았다. 산을 올라 갈수록 오른쪽 아래쪽에 호수가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산으로 둘러 싸인 이런곳에 호수가 있는게 신기했다.
"응? 저기에도 호수가 있네."
호수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큰호수가 보였다. 엄청난 크기의 호수였다. 중년인 뒤를 따라 산 정상으로 올라 가자 뾰족한 산이 아니라 기복이 조금 있는 넓은 곳에 50여가구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런 산정상에 마을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지만 이들도 아마 전쟁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 들어 정착한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을안으로 들어서자 어귀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별거부감도 없이 천후를 바라 보자 아이들에게 마을에 묵을 곳이 있는지 물어 보자 한곳을 가르켰다. 간판도 없는 곳이지만 객잔으로 보였다.
끼이익.
문을 열자 거친 소음이 귀에 거슬렸지만 안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야영할때 근처에서 야영을 하던 네명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자신을 알아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이 그들 뒤를 미행했다는 오해를 살수도 있었다. 객잔안은 그들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큰객잔은 아닌 탓으로 탁자는 네개밖에 없었다.
"어서 옵쇼. 뭘 드릴깝쇼."
"간단하게 요기거리를 주고 이곳에서 가장 좋은 술 한병을 내 오거라."
현대라면 대낮부터 술은 마시지 않지만 이곳에선 요리가 대부분 향이 진하다. 그런 탓으로 술과 함께 요리를 먹는다.
"이곳 명물인 향채(香菜)와 사특주(四特酒)대령이오."
점소이의 말에 나무접시에 담긴 향채를 한점 집어 먹었다. 역시 진한 향이 입안에 진동했다. 사특주라는 술로 입안에 감도는 진한 향을 지웠다.
'음, 독하군.'
중원에는 독한 술이 많지만 이 사특주도 만만치 않았다. 한잔을 마셨을때 옆탁자에서 말을 걸어왔다.
"소협은 여산 구경을 온겁니까?"
"그렇습니다."
옆탁자에선 자신이 이들을 따라온 이유를 찾고 있는것 같았다. 괜한 의심을 사기전에 향채를 절반만 먹고 점소이에게 여산에서 볼만한 곳을 물었다.
"여산 폭포가 장관입죠. 아래쪽에 보이는 여금호(如琴湖)나 동림사(東林寺) 뒤쪽의 선인동(仙人洞)엔 꼭 가 보십쇼."
선인동이란곳은 8대 신선중 한명인 여동빈이 수련했다는 동굴이라고 점소이가 입가에 침을 튀겨가며 역설했으며 동림사라는 절은 소림사의 유명한 고승이 세운 절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제각기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묻곤 남은 사특주를 손에 들고 식당을 나섰다.
여금호는 산 정상에서 봐도 충분했다. 툭 튀어 나온 절벽 끝자리에 앉아 사특주를 마시며 절경을 구경했다. 크고 낮은 산들과 절벽이 장관이었다. 독한 사특주를 마신 탓으로 은근히 취기가 돌았지만 사이킥 큐어로 날려 버리곤 동림사로 향했다.
동림사는 큰절이 아니었다. 경내로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이 공양을 하러 온것인지 대웅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림사는 별로 볼것도 없어 뒤쪽에 있다는 선인동으로 향했다.
"어? 여기서 또 보는군요?"
벌써 세번째다. 야영을 할때와 객잔, 그리고 선인동에서 좀전에 만난 네명을 다시 만난 것이다.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가는 곳마다 만나는것 같았다.
"점소이 말을 듣고 찾아 온겁니다."
저들도 점소이가 떠든 말을 듣고 있었다. 사특주만 마시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곳에 먼저 들른후 산을 내려 갔을 것이다. 자주 만나는 탓으로 일행중 유일한 소저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째려보며 의심하고 있는듯했다. 선인동은 깊은 동굴이 아니다.
밖에서도 안이 모두 들여다 보일 정도였다. 절벽 아래쪽이 움푹 파여 들어간 곳에 불과했지만 제법 넓었다. 여동빈이 수련한 동굴이라면서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신선이 되었다는 여동빈을 기리는데 왜 불상을 안치해 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볼것도 없어 동림사를 나갈려고 절쪽으로 가고 있을때 앞쪽에서 나이를 짐작할수 없을 정도로 늙은 노스님 한명이 걸어 오고 있었다.
"아미타불! 선인동은 잘 구경하셨는지요?"
"별로 볼것도 없었는데요?"
"솔직한 시주시군요."
"그렇게 탁 틔인 곳에서 수련을 할리가 없잖아요."
솔직한 감상을 말해 주었다. 아무리 신선이라고 하는 여동빈이지만 그런 곳에서 수련할리가 없었다. 무인들도 수련할때 사람 눈에 띄이지 않는 곳에서 수련한다.
"껄껄껄, 아마 순양자(純陽子)는 잠시 그 동굴에 앉아 비를 피한것이겠지요."
노스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순양자는 여동빈의 별호다. 동굴 바닥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던 모습을 수련하고 있다고 착각해 소문이 와전된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 주지 스님!"
동굴앞에서 만난 일행이 노스님을 보고 달려왔다. 노스님이 동림사의 주지승인것을 알수 있었다. 소림사였다면 방장이라고 불렀겠지만 작은 절인 동림사는 주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동림사에는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있는지 사이킥 서치를 시전했다.
'응? 내상을 입고 있네?'
동림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열다섯명이었다. 이곳에 자신을 포함해 여섯명을 제외하면 아홉명이다. 동림사로 들어 오면서 본 참배객 세명을 제외하면 스님이라고 생각되는 자는 모두 주지 스님을 포함해 일곱명이다. 그런데 주지 스님이 가벼운 내상을 입고 있는 상태다. 왜 내상을 입었는지는 궁금했지만 물어 볼순 없었다. 주지 스님과 저들 네명은 잘 알고 있는 사이같았다.
"그럼 전 실례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살업은 자제하게나."
"....."
포권을 하고 떠날려고 할때 주지 스님이 자신의 뭘 알아 본것인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아무런 대답도 할수 없었다. 뒤돌아 동림사를 빠져 나오며 혹시나 자신의 몸에 피냄새가 베어 있는지 맡아 보았지만 알수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이유없이 살인은 하지 않았다. 죽일 놈만 죽인것이다. 여산을 내려와 다시 남궁 세가가 있는 안휘성 합비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고 싶었다. 야영보다는 역시 편안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 경공을 시전해 빠르게 이동했다. 간만에 경공 연습도 할겸 무량 신법을 펼치며 근 한시진정도는 이동한것 같았다.
제법 큰읍성이 눈앞에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검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문밖에는 수문병들이 성문안으로 들어 갈려는 사람들을 철저히 검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식의 검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때 읍성안에 무슨 일이 벌어진것 같았다. 드디어 자신 차례가 되었다.
"호구(湖口)에는 무슨 일로 온것입니까?"
"안휘성으로 갈려고 들런겁니다."
"호패를 보여 주십시요."
천후의 호패를 꼼꼼히 확인한 수문병이 통과시켜 주었다. 천후 뒤로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볼수 없었다. 호구 읍성 안쪽에는 애들이 바닥에 앉아 성문 입구를 바라 보고 있었다. 저 애들은 삐끼같았다.
자신이 안으로 들어 서자 몇몇 아이들이 달려와 객잔을 찾는다면 서로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이런 애들을 보고 있으려니 중간계가 생각났다. 중간계에서도 큰마을을 가면 이런 애들이 서로 손님을 데려 갈려고 경쟁이 심하다. 이럴땐 항상 구석에 앉아 주눅이 든채 멍하니 입구를 바라 보는 애를 지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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