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새로운 환생의 시작
60화.
이젠 어쩔수 없었다. 청송이라는 의원이 저렇게까지 장담을 한다면 마시지 않을수가 없었다.
"...좋네. 즉시 치료해 주게."
꿀꺽.
그릇을 잡은 국주는 딱 한모금만 마셨다. 그러자 뱃속에서 즉시 반응이 나타났다. 목이 타들어가거니 바로 숨이 꽉 막히는 독은 아니었다.
"...윽!"
"큐어!"
국주가 배를 움켜 쥐고 신음을 내뱉는것과 동시에 해독 마법을 펼쳐 주었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꺼에요."
"...정말이군."
믿기지가 않았다. 청송이라는 어린 의원이 손만 뻗고 있는데도 순식간에 부글거리든 배가 안정되었다. 허공답보까지 펼치는 화경의 절대 고수면서 의원이다. 어떤식으로 치료를 한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탐나는 인재였다. 만약 청송을 표국으로 끌어 들일수 있다면 금성 표국은 중원 전체에서 최고의 표국으로 부상할것이 틀림없었다. 그전에 한가지 해결해야 할것이 있었다.
"대위는 이 차를 매일 마셨다네. 그런데 왜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겐가?"
"아드님은 매일 이 두개의 차를 마신겁니까?"
"......."
국주는 금대위 전속 시녀를 불렀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것이다.
"대위는 매일 녹서차와 해설차를 같이 마셨는가?"
"아니요. 하루는 녹서차를 다음날은 해설차를 마셨습니다."
시녀의 대답에 어떻게 된것인지 알수 있었다. 하루 걸러 번갈아 마셨다면 마신 차는 거의 모두 배설이 되었을것이다. 배설되지 못하고 몸속에 남아있던 차가 조금씩 축적되어 몇년후에 증상이 나타난것이라고 예상할수 있었다. 그런 말을 국주에게 해 주었다.
"...그럴수도 있겠군."
"녹서차와 해설차는 누가 들여 온겁니까?"
벌떡.
"...이이익...후우..."
화가 난듯한 국주는 두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차를 가져 온것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에 청송은 자신이 끼어 들어 해결하지 않아도 될것같았다. 하지만 국주의 한숨 소리에 국주도 맘대로 건드릴수 없는 자 같았다. 그렇다고 청송은 끼어 들 생각이 없었다. 괜히 끼어 들어 일이 복잡하게 변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주님! 그럼 편히 쉬십시요."
"정말 고맙네. 내일 다시 보세."
넓은 방 침대에서 하루밤을 푹 쉰 청송은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난리 법썩을 떠는 국주의 말에 금대위가 자리를 털고 일어 났다는걸 알수 있었다. 아직 거동은 불편한것 같지만 며칠만 지나면 완전히 회복될것이다. 국주와 함께 금대위를 보러 갔다. 은인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금대위의 상태를 보러 간것이다.
"은인! 감사합니다."
"치료를 했을뿐이야. 독은 완전히 해독이 된 상태로 며칠만 더 푹 쉬면 문제없이 거동을 할수 있을꺼야."
"감사합니다."
몇번이나 감사 인사를 받고 방으로 돌아온 청송에게 국주가 갈곳이 없다면 표국에 머무는것이 어떤지 넌지시 떠 보았지만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할일이 있어서 머물수는 없다는 말에 국주는 표국문은 활짝 열려 있다며 언제인지 찾아 오라고 했다.
저벅저벅.
"이 부근을 들런땐 찾아 오고 싶지만 공산경 아저씨 때문에 찾아 오기가 겁나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
표국 정문까지 따라온 국주에게 처음 표국을 들렀을때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국주의 표정이 바뀌었다. 뒷끝이 있는 청송이었다. 이 일로 인해 공산경은 금성 표국을 짤렸다는 후문이다.
표국을 나선 청송은 자신에게 금성 표국에 환자가 있다고 알려준 식천관에서 일하는 왕청을 찾아 갔다. 국주에게 받은 묵직한 주머니는 품속에 고히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주머니안을 확인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북한 은자와 전표 한장이 들어 있었다. 전표는 무려 금 백냥짜리 전표였다. 소문에는 치료비로 표국 재산 절반을 준다고 했지만 소문은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왕청이 일한다는 식천관엔 왕청은 없었다.
손님을 데려 오기 위해 밖으로 돌아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점심 시간은 되지 않은 탓으로 가게에 손님이라곤 탁자 한개에 낮술을 마시는 두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빈탁자 한개를 잡아 만두와 소채 한접시를 시켜 먹으며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을때 왕청이 돌아왔다.
"아버지! 손님 데리고 왔어요."
왕청은 중년인 한명을 데리고 온 상태였다. 그때 청송을 발견했는지 눈이 동그래진 왕청이 청송이 앉아 있는 탁자쪽으로 다가왔다.
"어, 형! 이제 왔어요. 안 올줄 알았는데..."
"찾아 온다고 약속했잖아. 자아, 받아라."
왕청에게 은자 한개를 꺼내 주었다.
"치료는 끝난건가요?"
"그래. 완치되었다."
"와아~! 역시 대단해요."
호들갑을 떠는 왕청에게 인연이 있으면 다시 보자고 하고 가게를 나선 청송은 육포와 과일을 한아름 사서 걸머지고는 무당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무당산이 있는 곳은 크고 작은 산이 37개나 자리한다. 그런 산들중 한개를 골라 자신의 잠재 의식속에 숨어 있는게 무엇인지 알아 볼 생각이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일이다.
이곳이 어느 산인지는 모른다. 삐죽삐죽 솓아나 있는 기암절벽 사이에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은 그렇게 넓진 않아 겨우 한사람이 게 걸음으로 들어갈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동굴안쪽으로 들어가 동굴을 마법으로 넓히는 작업을 한후 짐을 풀었다. 간단하게 육포와 과일로 배를 채운후 정좌를 하고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 갔다.
'저건 뭐지?'
내면 깊숙한 곳에 굳건하게 빗장이 걸린 문이 있었다. 저런게 왜 자신의 내면안에 있는지는 모른다. 20센티정도 굵기의 빗장을 들어 올려 빗장을 풀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사자의 힘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요지부동인 빗장을 향해 마법과 사이킥을 시전해 들어 올리거나 파괴를 할려고 했지만 전혀 통하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먹고 자는 일외엔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먹고 자는 일도 점점 줄어 들었다. 독문 장로 할머니에게 약속한 네개의 문파가 동굴쪽으로 오도록 개방에게 정보를 흘리는것도 잊은채였다.
내면속의 빗장을 푸는 일은 실패로 끝났다. 갖은 방법을 모두 동원했지만 끝내 풀지도 못한채 모든 생을 소모해 버린것이다. 자신이 몇살에 죽었는지도 모른다. 세월까지 잊을 정도로 몰두해 있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과 하얀 수염이 바닥에 끌릴 정도였지만 정리할 생각도 없었다. 빗장을 풀지 못했지만 마나는 엄청나게 모아졌다. 하지만 그런 마나를 아무리 모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죽기전에 무림에 나간다면 아마 천하 제일인으로 군림할수도 있었을것이다.
자신의 몸이 산산히 흩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며 또다시 하얀 빛이 되어 거대한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튕겨져 나갈것이다. 역시 소용돌이에 접촉하자 어김없이 튕겨져 나가며 정신을 잃어 갔다.
'젠장할. 이게 대체 몇번째야~~~!!!'
***
이번엔 또 무엇으로 환생한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수 있었다. 두꺼운 껍질을 깨고 위로 조금씩 올라갔다. 앞은 전혀 보이지도 않는 상태로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게 식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느 정도 성장해 바람이 알려주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점점 빛이라는 감각이 전해져왔다. 성장해 흙을 뚫고 위로 올라 온것이다. 하지만 빛은 감지가 되었지만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하루에 한번씩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두서너번씩 바람 소용돌이가 조금 전해져 왔을 뿐이었다. 대체 어떤곳이길래 바람이 거의 없는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무언가가 움직이면 얕은 바람이 불어 오고 비가 내린다. 움직이고 있는게 아직 뭔지는 모른다. 말소리나 울음 소리도 전혀 내지 않는 탓으로 움직이는게 사람인지 동물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번 일정한 시간에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비라고 생각한건 아마 인간이 물조리같은걸로 물을 뿌리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자신은 인간에게 재배되는 식물이었다. 어떤 식물인지는 모르지만 뿌리가 있는 몸통부터 1센티도 자라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동을 하고 있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바람이 불어 오는 감각으로 이동되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토마토일때 이미 한번 경험해 봤다. 어딘가에 도착하자 인간의 말소리가 드디어 들려왔다. 영어처럼 들렸다. 짧은 대화가 끝난후 다시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어딘가로 이동해 땅이라고 짐작되는 곳에 내려졌다. 그런후 인간이 무슨 작업을 하는것같았다.
자신의 몸도 또다시 조금 뜬후 내려지자 물이 뿌리진후 인간이 타고 있던 차는 사라져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고 있었다. 야외가 틀림없었다. 인간의 말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지만 새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 오고 있었다.
바람이 전해온 감각으로는 이곳은 나무들도 많으며 자신과 같은 종류의 식물도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 일단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뿌리를 확실히 내려야 한다. 어차피 죽으면 또다시 환생하지만 주어진 삶에 충실하기로 했다. 혹시 그런 삶을 살면 내면속에 굳건히 잠겨진 빗장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없진 않았다.
하루 이틀...사흘이 흐르자 점점 땅속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었다. 바람이 알려준 대로라면 이곳은 넓은 평지다. 자신과 동종의 식물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곳이다. 그럴때에 자동차 한대가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졌다.
'윽! 대체 뭐야?'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찍어 눌렀다. 몸통이 부러지진 않았지만 심하게 짖눌러져 버렸다. 자동차의 타이어에 밟혀 버린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게 아니라는건 며칠후에 알게 되었다.
위이이잉.
이번엔 굉음을 동반한 무언가가 접근해 왔다. 땅의 진동으로 인해 자동차로 짐작되었지만 소리가 심했다. 점점 접근하는 굉음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컥!'
역시였다. 불안감은 적중했다. 무언가 자신의 몸통을 베고 지나가며 꽉 눌러 버렸다. 지상으로 불과 3센티도 자라지도 못했는데 깎여 버린것이다. 이곳이 어디이길래 인간놈이 이런 짓을 하는지 알수가 없었지만 다음날이 되자 바로 알수 있었다.
"포~오(fore)~!!"
몇사람이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부~우웅 부~우웅'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때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를 동반한후 여자 목소리로 '포~오'라고 들려왔다. 처음에 저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수가 없었지만 인간들이 떠드는 말중에 OB, 벙커, 페어웨이, 그린등의 말이 들려와 자신은 골프장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도 잔디로 환생한것이었으며 티샷을 치는 장소에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윽! 밟지마. 새꺄~!'
인간놈이 자신을 밟고 지나갔다.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전날은 몸통이 깎여져 나가고 오늘은 짖밟혀 버리는 수난을 당했다. 골프장에 있는 이상 이런 수난은 자신의 생이 다 할때까지 몇십번, 몇백번이나 반복될것이다. 어떤 홀의 티샷 장소인지는 모른다. 그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 파5 홀이라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되지만 파3 홀이라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파5 홀이라면 티를 박고 그위에 골프공을 올려 놓고 치기 때문에 잔디가 훼손될 염려는 적어지지만 파3 홀이라면 티를 박지 않고 잔디위에 올려 놓은 공을 그대로 치기 때문에 잔디가 푹 파여져 떨어져 나갈것이다. 불안감은 언제나 적중되기 마련이다. 다음날이었다. 무언가가 자신을 가볍게 짖누르고 있었다. 골프공이란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부우웅.
부우웅.
"퍽!"
두세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오며 잠시후 자신의 몸이 뿡 뜨는 느낌이 들며 동료들과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칠쳤다.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것이었다.
'야~! 제자리로 돌려 놔~!!'
이대로라면 말라 죽을지도 모른다. 양심이 있는 놈이라면 땅이 패여진 원래있던 장소로 자신로 옮겨 놓을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저들끼리 떠들며 사라져 갔다. 강한 햇빛에 의해 점점 목이 말라왔다. 골프장 잔디를 관리하는 놈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제 자신의 운명은 관리인에게 달렸다. 자신이 맘대로 움직일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미칠 지경이었다.
'후우~! 받아 들이자.'
한두번 이런 일을 당한것도 아니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스스로 납득했다. 화를 내봐야 어떻게도 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웅성웅성.
"퍽!"
그럴때에 인간들이 또 티샷을 치고 있었다. 몇번의 티샷을 치는 소리가 들려 오며 움직이고 있었다.
'컥! 빌어먹을!'
걸어 가는 인간 놈이 자신의 몸을 밟아 버렸다. 동료들과 옹기종기 몰려 있는 것을 밟자 흙이 부서지며 동료들과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햇빛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번엔 온몸으로 햇빛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이 말라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죽진 않았다. 마치 고문을 당하는것 처럼 서서히 말라 죽고 있던 것이었다.
- 작가의말
이번엔 잔디로 환생했습니다^^
즐거운 저녁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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