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천후, 화를 내다(2)
199화.
"머, 멈춰라!"
처음 자신에게 대든 기사가 소리쳤다. 밟고 있는 다리 힘을 살짝 줄이며 무슨 일로 마을을 찾아 온것인지 말하라고 했다.
"가르보아 왕국은 패티엄 왕국에 병합되었다. 이곳 델칸 백작령은 아메리붐 백작령이 되어 소영주님이 영지 시찰을 나온것이다."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가르보아 왕국이 패전해 멸망한 상태지만 어느쪽이 이기고 지든 상관없었다. 전쟁이 끝났어도 징집되어간 마을 사람들은 한사람도 돌아 오지 않았다. 아마 모두 다 죽었거나 살아 있다고 해도 포로가 되어 다른 먼 왕국으로 노예로 팔려 나갔을것이다.
전쟁 포로를 온전하게 영지로 돌려 보내 주는 왕국은 어디에도 없다. 돌려 보내 주면 반감을 가진 이들이 결속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주가 부임해 온 이상 영지 시찰은 당연한 일이다.
"소영주님에게서 발을 떼라."
"이런 놈이 소영주라고? 영지를 말아 먹기 딱 좋은 놈이다."
퍽!
"악!"
발을 떼며 소영주의 얼굴을 걷어 차 버렸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축 늘어진 놈에게 기사 두명이 소영주님이라고 외치며 달려가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치료하기 시작했다.
"넌 누구냐? 소영주님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것 같냐?"
"당연히 무사하다. 놈을 끌고 마을에서 나가라. 이 마을엔 두번다시 찾아 오지 마라."
"놈! 각오하는게 좋을꺼다."
소영주를 부축해 마차에 태운 놈들은 마을을 급히 빠져 나갔다.
"캐, 캐논님!"
"걱정마라. 이 마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준다."
걱정하는 번리와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일을 보라고 했다. 자신이 로브를 입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것이다. 소영주 일행도 조심스럽게 행동했을것이다. 소영주는 이대로는 물러 가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올것이다. 신임 백작이 다른 왕국의 영지를 원활히 통치하기 위해선 처음엔 공포 정치나 유화 정치를 펼칠것이다. 제각기 장단점은 있지만 아메리붐 백작은 어떤식으로 나올지 두고 볼일이다.
***
"뭣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아버님, 놈을 그냥 둬선 않됩니다. 그놈에게로 가르보아 왕국 잔당들이 결집한다면 이 영지 지배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것입니다. 왕성에서도 그 점을 문제 삼을수도 있습니다."
아들인 소영주 말에 아메리붐 백작은 전적으로 동감했다. 겨우 영지를 가진 영주가 될수 있었다. 신임 영주로써 처음으로 영지를 운영함에 있어 왕성에 꼬투리 잡힐 일은 절대로 발생해선 않된다.
"네시즈경, 놈의 경지가 적어도 익스퍼트 상급이상이라고?"
"그렇습니다."
"음, 최상급 기사를 어디서 구할수 있을지 난감하군."
"저, 백작님, 마탑에 도움을 청하는건 어떤지요?"
***
차탈린 마을은 평온을 되찾았다. 평소와 다를바 없이 밭에서 농사를 짓고 가끔씩 뿌루뿌를 잡기도 했다. 소영주 놈이 물러간지 6개월후 조용한 마을에 마차 한대를 호위하는 기사 10명과 병사 300명이 들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로브로 갈아 입은 천후는 마을 어귀로 나갔다. 이번엔 마을안으로 병력들을 들여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만약 싸움이 벌어진다면 마을 사람들이 다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쟈르, 마을 사람들에게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만약 마을에 피해를 줄려고 온 놈들이라면 더이상 참지 않는다. 마을로 들어 오는 길목을 막아서 기다리자 전마를 탄 기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앞선 기사는 안면이 있는 놈이다. 소영주를 호위하던 놈으로 롱소드를 부러 뜨린 자였다. 아메리붐 백작이 드디어 행동에 나선것이다.
대화를 할려고 온것이라면 저렇게 많은 병력을 끌고 오진 않을것이다. 하지만 마차를 끌고 온것으로 볼때 백작이 직접 찾아 온것인지도 모른다. 저 병력들도 백작을 호위하는 병력일수도 있었다. 30미터 전방에 멈춘 기사들 사이로 마차 문이 열리며 로브를 입은 중년인 한명이 등장했다. 저 자가 아메리붐 백작인지 누군지는 모른다.
'호오, 6서클 마법사네.'
로브를 입은 중년인은 무려 6서클 마법사였다. 대륙에 7서클 마법사는 많아 봐야 서너명일것이다. 6서클 마법사는 그보다는 더 많겠지만 아메리붐 백작령에 6서클 마법사가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응?'
앞으로 걸어 나오는 마법사의 왼쪽 가슴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한편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잘 아는 문양이었기 때문이다. 저 놈이 아메리붐 백작인지 아는지는 모른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탓으로 확인이 필요했다.
걸어 오는 마법사도 자신이 로브를 입고 있는 모습에 놀란 모양이었다. 기사 옆에 선 마법사 놈이 해 봐야 소용없겠지만 디텍트 마나를 펼쳐 자신의 서클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때 전번에 온 기사 한명이 앞으로 나섰다.
"항복하라. 항복하면 마을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겠다."
"항복? 항복은 내가 아니라 네놈들이 해야 하는게 아니냐? 어이? 마법사, 네가 아메리붐 백작이냐?"
"음, 난 백작이 아니라네. 그런데 자넨 기사인가?"
"그럼 넌 코아 마탑 소속이겠군. 코아 마탑 소속 마법사가 왜 기사들을 따라 온거냐? 마탑이 백작의 개가 된것이냐?"
중년 마법사가 백작이 아니라는 말에 더욱 화가 났지만 어떻게 된것인지 알기 위해 일부러 자극했다. 그러자 중년 마법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놈! 마탑을 무시하지 마라."
발끈한 마법사가 즉시 마법을 시전할려고 했다. 마나 봉인으로 놈의 서클을 봉할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떤 마법을 시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메모리 마법으로 이미 준비를 해 두었는지 놈이 마법명을 외치며 마법을 시전했다. 붉은 화염이 넘실거리며 순식간에 다가왔다. 5서클 마법인 플레어라는 마법이다.
저 화염에 닿는 것은 모두 녹아 버린다. 8서클인 헬파이어 마법의 소형 버전이라고 생각되면 된다. 급속도로 접근하는 플레어를 향해 오른손을 빙글 돌렸다. 무공의 회선풍(廻旋風) 수법으로 접근하는 플레어를 둘둘 뭉쳐 역으로 놈들에게 날려 보냈다.
"어헉! 피, 피하라!!"
마법사의 급한 외침에 놈들이 메뚜기떼처럼 사방으로 흩어 졌다.
"히히히잉!!"
꽈꽝!!
마차에 직격한 화염구는 마차를 박살냈다. 불똥이 마차를 끄는 말에 튕겨 애꿎은 말만 죽어 버렸다.
"고, 공격하라!!"
기사들이 롱소드를 빼들고 달려왔다. 그런 기사들에게 헤이스트 마법을 걸어 주는 마법사의 눈동자는 요동치고 있었다.
쿵.
"컥!"
"윽!"
달려 오는 기사 열명을 향해 오른발을 한발 내딛었다. 그러자 달려오든 기세가 순식간에 줄어 들며 신음을 흘리며 주춤거릴때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내딛었다.
쿵쿵.
"컥! 울컥!"
"크악!!"
기사들이 일제히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움직이지 못하며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천마군림보에 당한 것이다. 중간계에 처음으로 천마의 무공이 시전되었다. 기사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뒤쪽의 병사들은 어쭐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아니었다. 윈드 블레이드 마법이 날아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킥 블레이드!"
퍼펑!!
마법사가 시전한 똑같은 마법이 날아가 서로 충돌하자 큰폭발을 일으키며 서로 소멸되었다. 기사들의 중간 지점에서 폭발한 탓으로 애꿎은 기사들만 피해를 입었다.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덕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업친데 덮친 격으로 후폭풍에 휘말려 바닥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윈드 블레이드 마법이 상쇄되자 중년의 마법사는 눈이 커지며 즉시 다른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만! 다시 한번 마법을 시전하면 넌 죽는다."
살기를 마법사 놈에게 집중시켜 경고했다. 아무리 6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농염한 천후의 살기를 감당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서클 고리가 외부 마나와 공명할려고 할때 집중적으로 살기를 받은 마법사는 내상을 입었는지 울컥하며 피를 한모금 뿜어내고는 가슴을 부여 잡고 있었다. 서클에 큰충격을 받은 것이다. 300명의 병사들은 당황한채 창을 앞으로 내민채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지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코아 마탑 탑주가 누구냐?"
"으으...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코아 마탑 소속 린즈 마법사는 탑주의 명령으로 아메리붐 백작령으로 왔다. 백작령에 상급 기사로 짐작되는 잔당이 숨어 있다며 기사를 제압하라고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난 자는 기사라면서 로브를 입고 있었다. 디텍트 마나로 마법사인지 살펴 보았지만 서클 고리가 감지되지 않았다.
설마 저렇게 젊은 자가 6서클인 자신보다 서클이 높다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자신이 코아 마탑 소속인것을 파악한 놈은 도발했다. 험악한 표정으로 볼때 코아 마탑과 무슨 원한이 있는것 같았다. 즉시 5서클 마법을 시전했지만 놈이 손을 빙글 회전시키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무려 시전한 마법이 되돌아 온것이다.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에 대한 지식과 마나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이 없는한 절대로 무리였다. 공격하는 기사들에게 보조 마법인 헤이스트를 시전해 주었지만 놈이 발을 구르자 기사들이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4서클인 윈드 블레이드 마법을 시전하자 놈도 똑같은 마법을 시전했다.
서클 고리를 감지할수 없었는데도 마법을 시전한것이라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즉시 다른 마법을 시전할려고 할때 엄청난 살기가 감지되었다. 이빨이 덜덜 떨릴 정도의 살기에 시전할려든 마법이 강제로 해제되었다. 소드 마스터라도 해도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의심스러웠다.
'설마 드래곤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탑주를 들먹였다. 탑주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지만 서클에 충격을 받아 지금은 마나를 사용해선 않되었다.
"으으...그, 그게 통신구는 있지만 마나를..으으으..."
마법사 놈은 내상이 심한지 마나를 사용할수가 없다고 말할려는것 같았다.
"죽이지 않은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만약 네놈이 코아 마탑 소속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꺼다."
놈에게 한마디 해 주고는 품속에서 마법 통신구를 꺼내 사이킥 사일런스를 시전해 다른 자들이 듣지 못하게끔 조치를 취한후 통신구에 마나를 불어 넣어 코아 마탑주에게 연락을 했다.
치지직.
코아 마탑의 탑주가 자신이 준 통신구를 대대로 이어 받았다면 항상 가지고 다닐것이다. 잠시후 통신구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치지직.
- 누군데 이 통신 좌표를 알고 있는 건가?
"네놈 탑주 자격이 있는 놈이냐? 그 통신 좌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것이냐?"
버럭 짜증을 냈다. 통신을 받았다면 누구에게서 연락이 오는 것인지 탑주라면 알고 있어야 했다. 특별한 통신구로 자신외에는 탑주가 가지고 있는 좌표를 알고 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 서, 설마 코아 마탑 초대 마스터이신 카산 대마법사십니까?
"이제야 알았냐? 통신 좌표대로 당장 이쪽으로 달려와라."
- 아,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고 병사들에게 무기를 모두 버리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병사들은 기사의 명령을 기다리는것 같았다. 기사들은 아직도 바닥에 쓰러진채 허덕이고 있었다. 기사들은 이미 큰내상으로 인해 움직일수도 없는 지경이다.
"병사들에게 무기를 모두 버리라고 해. 버리지 않는다면 손을 쓰겠다."
"크으윽...버, 버려라."
기사의 명령에 병사들의 창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쟈르와 잭크, 번리를 불러 기사들의 무기와 병사들의 무기를 모조리 회수하라고 했다. 반항은 전혀 없었다. 10명의 기사들과 마법사가 제대로 힘도 써 보지도 못한채 당해 버린 탓이었다. 기사들의 풀 플레이트 메일도 모조리 벗겨 버렸다.
"네놈들은 모두 내 포로다. 네놈들을 감시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주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코아 마탑의 탑주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 탑주가 온 후에 네놈들을 어떻게 할지 판단하겠다."
코아 마탑주가 온다는 말에 6서클 마법사인 린즈는 깜짝 놀랐다. 통신구로 누구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보았지만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아 누구와 통신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설마 마탑주에게 연락을 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가르보아 왕국이었던 이곳에 탑주를 알고 있는 자가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불안했다.
통신구를 사용할줄 안다는 것은 저 자는 마법사다. 자신이 서클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고서클 마법사로 마도사가 틀림없었다. 저 마법사는 이미 자신의 서클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야 모든것이 이해가 되었다. 플레어 마법을 마음대로 조종해 되돌려 보내는 한편 기사들을 중력 마법으로 찍어 눌러 버리고 윈드 블레이드를 시전해 부딪혀 폭발시킨것이다.
'설마 탑주보다 고서클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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