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캐논, 영지전을 획책하다(1)
128화.
워프 마법으로 집무실로 돌아 오자 자작은 자리에 없었다. 컨스턴에게 마법 통신구를 주며 영지전이 시작되면 연락하라고 한뒤 자작성을 나서 마물산으로 이동했다. 마물산의 게이트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산 밖에서 마나 연공을 하며 소모한 마나를 보충하며 통신을 기다리거나 백작성의 양계장으로 가서 달걀을 아공간에 보관하는 한편 다른 영지를 돌아 다니며 식량을 구입했다. 영지전이 시작된다고 통신이 들어 온건 한달이나 지난 후였다.
***
"아버님, 이번에야 말로 자작령을 완전히 복속시켜야 합니다. 전번처럼 땅만 조금 빼았고 소영주를 죽이는 선에서 처리하면 절대 않됩니다."
뿌드득.
"걱정말거라. 이번엔 모조리 죽여 주마."
이빨을 뿌드득 간 헤이젠 백작은 엘튼 자작령과의 영지전에서 자비를 베풀었음에도 다시 칼을 들이미는 자작을 이번엔 용서할수 없었다. 전번에는 자작령의 땅 조금과 소영주를 처단하는 선에서 영지전을 끝냈다. 선대의 인연으로 자비를 베푼것은 한번으로 족했다.
"백작성을 방어할 병력만 놔두고 모두 참전한다. 그리고 지시한 일은 준비되었겠지?"
"물론입니다."
헤이젠 백작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달려갈순 없는 노릇이다. 모든면에서 열세인 엘튼 자작이 영지전을 걸어 올 정도라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것이 틀림없었다. 그에 대비해 특별한 것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었다. 백작령 병력 8천이 엘튼 자작령 경계로 향했다. 그럴즈음 엘튼 자작령 병력도 백작령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단장, 자작령이 이길수 있을까?"
"음, 무리일꺼다. 자작이 아들을 잃어 복수심이 골수에까지 미쳐 끝장을 볼 심산인것 같다."
"쳇, 질게 뻔한 전투에 꼭 참가하야 합니까? 다른 용병단은 모두 백작령으로 달려 갔습니다."
"어쩔수가 없잖느냐. 자작에게 큰은혜를 입은 이상 우리 용병단은 자작군에 합류할수 밖에 없어. 애들에게 말해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해라."
캐논은 트롤 용병단의 대화를 몰래 들으며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자작이 용병들을 모집했지만 달려온 용병들은 고작 10여명도 되지 않는 작은 용병단 하나 뿐이었다.
자작군 병력 총2천명이 행군하면서 사기는 바닥을 헤메고 있었다. 어쩔수없이 명령에 따르고 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곧바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거나 도주할 병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걸 알면서도 자작이나 소영주만은 환한 얼굴이었다.
"자작님,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너무 저조합니다."
"기사 단장, 걱정말게. 이번 영지전은 지고 싶어도 질수 없다네."
"....."
엘튼 자작령 기사 단장인 체크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뻔한 전력으로 어떻게 백작군을 상대할지 머리만 아파왔다. 소문처럼 자작님이 아드님 복수에 미쳤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주군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지만 마치 웃으며 목을 내밀러 가는 자작님이 원망스러울지경이다.
"단장님,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쪽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저희쪽 병력은 한명도 다치지도 않을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영주, 비장의 무기가 대체 뭔가?"
"그건 바로 날 가르키는거다."
"누구냐?"
천막에는 자작님과 소영주 밖에 없었는데도 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어디에서도 찾을수도 없었다.
"단장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찾아 봐도 못 찾아."
"누, 누구십니까?"
"자작군의 비밀 무기다."
"자작님, 누구입니까?"
자작은 말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가로 저었다. 소영주도 마찮가지였다.
"단장, 알고 싶어도 참게나."
"음, 설마 어쌔신을 고용한 것입니까?"
"아니라네. 그런 비겁한 수단은 사용하지 않는다네."
"그럼 누구인지요?"
궁금해 하는 기사 단장에게 언질을 해 주어야 하지만 캐논 마법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는것은 이미 알고 있다.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병사들이 할일은 포로들을 잡는 일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캐논 마법사가 해결해 주기로 했다.
"자작, 단장을 안심시켜 주어야겠다."
천막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를 입은 모습을 확인한 단장은 마법사라고 알아 볼것이다.
"마법사십니까?"
"그렇다."
"실례지만 몇서클이신지 알수 있겠습니까?"
"실례되는건 묻지마. 대신 이런건 보여 줄수 있지. 아공간 오픈!"
천막안에 시커먼 아공간을 소환했다. 아공간안에서 지구의 사탕 봉지를 꺼내 아공간을 닫았다. 아공간을 처음 보는 자작과 기사 단장은 기함을 했다. 컨스턴은 이미 한번 본적이 있어 그렇게 놀라진 않았다.
부욱.
사탕 봉지를 찢어 개별 포장되어 있는 과일맛 사탕을 한개씩 던져 주었다.
"이렇게 찢어서 이걸 입안에 넣어 살살 굴려봐."
사탕을 입안에 쏙 넣었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주책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이곳 대륙에서는 달콤한 맛을 내는 물건은 굉장히 귀하다. 귀족들이라고 해도 자연산 꿀 정도가 전부다.
"이게 뭔지요? 이건 고대 글자입니까?"
봉지에 씌여져 있는 영어를 고대 문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작이었다. 컨스턴이나 단장은 손에 쥔 사탕 봉지를 뚫어져라 바라 보며 뭔지 신기해했다. 비닐이 없는 이곳에서 처음 만져보는 촉감일것이다.
"사탕이라는 달콤한 먹거리다. 얼른 봉지를 까고 입안에 넣어봐."
시키는대로 한 세사람은 잠시후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워했다.
"깨물지 말고 혀로 살살 녹여 침만 삼켜. 자아, 이건 모두 자작에게 줄께. 대신 그 작은 봉지는 모두 회수해서 날 줘야해."
대륙에 비닐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지구에서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환경 오염이 전혀없는 대륙에 지구의 물건은 회수해 놓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큰봉지에 들어 있는 사탕을 테이블위에 쏟아 부었다. 자작이 알아서 손자인 소영주와 기사 단장에게 나누어 줄것이다.
"그럼 수고해. 난 정찰이나 할테니까."
캐논이 스르륵 사라지자 사탕을 오물거리던 단장은 멍해했다.
"자작님, 방금것이 아공간이 맞습니까?"
"아공간이에요. 전번에 한번 본적이 있거든요."
"소영주, 그럼 7서클이상의 마도사시란 말인가?"
"틀림없어요. 마도사가 도와주는 이상 이번 영지전은 절대로 질수가 없는거죠."
환한 얼굴의 소영주를 보며 이제야 왜 주군과 소영주의 얼굴이 그렇게 밝았는지 이해가 되는 기사 단장이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작님, 그 사탕이란걸 혼자서 다 드시는 겁니까?"
사탕에 욕심을 부리는 기사 단장에게 자작은 공평하게 세등분해 나누어 주며 캐논 마법사에게 사탕을 더 달라고 부탁해 볼 생각이다. 늙으면 단것을 찾는다. 처음 맛보는 신기한 맛으로 아껴 먹어야 할것 같았다.
여전히 사기는 바닥을 치며 자작군은 헤이젠 백작령 경계 지점까지 무사히 이동했다.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분위기에 묵직한 공기가 찍어 누르는듯 병사들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반대쪽 백작 진영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자작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영지전은 다음날부터 시작될것이다.
멀리 떨어진 양진영에서는 횃불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백작 진영 상공에 모습을 감춘채 정지한 캐논은 백작 진영 전체를 스캔하며 기사들의 경지를 가늠하고 있을때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헤이젠 백작령엔 마법사가 없었음에도 이곳에 있다는건 초빙해 온것같았다. 마법사는 4서클이다. 큰천막에 홀로 있는 마법사 천막으로 숨어 들어갔다. 9서클 마법사가 숨어 드는걸 4서클 마법사가 감지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의자에 앉아 테이블위에 펼쳐 놓은 마법 서적을 읽고 있는 마법사 등뒤에서 어떤 마법서인지 살펴 보았다. 5서클인 안티 매직 필드(Anti-Magic feld)에 관한 내용을 읽고 있었다.
"이해가 되냐?"
"헉!"
탁!
"시, 실드! 누, 누구냐?"
등뒤에서 말을 걸자 기겁한 마법사 놈은 급히 책을 덮고는 실드를 펼쳐 몸을 보호하면서 뒤를 돌았다. 하지만 인비저빌리티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캐논을 발견할수는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천막안 구석구석 살펴 본 놈은 고개를 갸웃하며 귀를 후비고는 다시 의자에 앉을려고 했다.
"어느 마탑 소속이냐?"
"헉! 누, 누구냐?"
"죽고 싶지 않다면 묻는 말에 답해."
"코, 코아 마탑 소속입니다."
두려운듯 떨리는 눈으로 천막안을 다시 두리번거리는 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아 마탑 소속이 아니라면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것이다.
"헉!"
4서클 마법사 첸버린은 눈앞에 등장한 마법사는 무려 6서클인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걸 바로 알아 차렸다. 자신이 기습하지 않는한 절대 승산이 없는 고서클 마법사지만 자신을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을것이다.
"마탑주 모리나리도 이 일을 알고 있는거냐?"
"예엣?"
"너, 코아 마탑주 몰라? 코아 마탑 소속이랬잖아?"
"무, 물론 마탑주님은 알지만 이곳에 온것은 모를겁니다."
이놈이 독자적으로 움직인것이다. 전쟁에 참가하지 말라는 행동 강령은 영지전에도 참가하지 말라는 것도 포함된다. 탑주가 아직 마탑 소속 마법사들에게 알리지 않은것 같았다.
"이름이 뭐냐?"
"첸버린이라고 합니다."
"영지전엔 왜 참가한거냐?"
"그, 그게...아무리 수련을 해도 진전이 없어서 방향을 달리 해 볼까 해서 참가한것입니다."
나쁜 방법은 아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시도해 보는것도 수련에 큰도움이 될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자신이 자작군 편을 들고 있는 이때에 참가한 지독히 운도 없는 놈이었다. 이놈을 만나지 않고 영지전이 벌어졌다면 놈은 죽었을것이다.
치지직.
- 조사님, 모리나리입니다.
"잘 지내지?"
- 예. 덕분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첸버린이라는 놈하고 같이 있다. 통신구를 바꾸어 줄테니까 통화를 해 봐라."
첸버린에게 통신구를 건네 주었다. 영문도 모른채 통신구를 받은 첸버린은 너무 놀라 통신구를 바닥에 떨어 뜨릴뻔했다. 무려 탑주와 통신을 할줄은 몰랐던것이다. 탑주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눈앞의 마법사가 코아 마탑을 세운 8서클 대마법사였던 카산 조사님이란걸 듣고 한동안 얼이 빠진듯 머리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조, 조사님을 뵈옵니다."
"일어 나라. 넌 영지전이 벌어지면 곧바로 큰마법을 한번 사용하고 마나 부족을 핑계로 후방으로 후퇴해라. 난 지금 헤이젠 백작에게 열 받아 백작령을 무너 뜨릴려고 자작군쪽에 있다."
"아, 알겠습니다."
헤이젠 백작이 불쌍해 보였다. 8서클 마법사에게 완전히 찍힌 백작은 살아 남을 방법이 없다. 하마터면 자신도 죽을뻔했다는 생각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 통신구는 가져 가라. 다시 연락하겠다."
스르륵.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시전하고 블링크 마법으로 천막을 나온 캐논은 자작군쪽으로 돌아 갔다. 백작군 기사 50명중 가장 강한 자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 기사다. 나머지는 중급에서 초급까지 다양했다. 반면 자작군 기사는 모두 30명에 불과했으며 기사 단장은 중급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초급이다. 20년전 영지전에서 기사 전력이 반토막이 나 지금 겨우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
뿌우우우우우우~~!!!!
든든히 아침을 먹은 양진영이 전열을 정비하자 영지전을 알리는 긴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마에 올라탄 기사들이 전면에 정렬하고 그 뒤에 병사들이 정렬하고 있었다.
"캐논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마."
두두두두두.
선공은 백작 진영에서였다. 기사들이 먼저 달려 왔다. 기사들에게 화살을 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풀 플레이트 메일로 전신을 가린 상태로 일반 병사들의 화살은 모조리 튕겨 나가기 때문이다. 자작 진영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탓으로 병사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때였다. 엄청난 크기의 거대한 파이어 볼이 날아 오기 시작했다. 지시한대로 첸버린이 마법을 날린 것이다.
"으아악! 마, 마법이다."
"동요하지 마라! 전열을 흩뜨리지 마라!!"
당황하는 병사들을 기사들이 호통치며 돌아 다니고 있을때 파이어 볼이 달려 오는 기사들 머리위쪽까지 접근해 왔을때 자작 진영에서 작은 파이어 볼이 빛살같이 날아갔다. 거대한 파이어 볼에 비하면 반딧불에 불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에 마도사가 있다면 저 작은 파이어 볼이 엄청난 마나가 압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쿠꽈꽈꽈꽈꽝!!!!
엄청난 폭발력과 함께 화염이 달려 오는 백작령 기사들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다.
"히히히힝~!!"
쿠당탕탕.
"으아악~!!"
곳곳에서 기사들이 바닥으로 꼬꾸라지고 있었다. 화염에 놀란 전마가 급정지하거나 날뛰자 기사들은 바닥으로 추락한것이다.
"와아아아~~!!!"
지금까지 불안해 하던 자작군 병사들쪽에서 큰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이번엔 자작령에서 거대한 파이어 볼이 백작령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방금전에 날아온 파이어 볼의 두배는 될법한 집채만한 불덩어리에 백작군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꽈꽈꽈꽈꽈꽈!!!
굉음과 함께 백작군 진영에 떨어진 파이어 볼이 사방으로 화염을 발산하며 뻗어져 나가자 백작군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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