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천후, 귀찮아지다(1)
158화.
"내가 아는 애에게 부탁할런다."
이렇게 말하면 애들이 물러난다. 이곳도 마찮가지였다. 하나둘씩 실망한 표정으로 떨어져 나가는 애들을 가로 질러 구석에 앉아 있는 애 앞에 서자 겁이 나는듯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 보고는 즉시 아래쪽으로 눈을 까는 애에게 말을 걸었다.
"안내를 하거라."
"옛?"
"객잔으로 안내를 하라니까."
"아! 이, 이쪽이에요."
환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안내하는 십세 남짓한 남자애를 따라 가며 호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았다.
"실종되는 사람이 많아 저런거에요."
중원 도처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 지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는것 같았다. 이미 강시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대충 알고 있는 천후는 이곳 근처에도 강시를 만들고 있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애를 따라가며 노에스를 소환해 지하를 중심으로 강시가 있는지 찾아 보라고 했다.
"여기에요."
객잔은 제법 큰 삼층 건물이었다. 안내한 애에게 은전 한개를 건네 주자 눈이 동그래진 애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집이냐?"
"아니요."
"그럼 같이 밥이나 먹자."
어차피 이 애도 안으로 들어 가야 한다. 자신을 안내한 대가를 주인에게 받을 것이다. 애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뒤를 따라 천후도 들어갔다. 일층은 객잔이다. 빈자리를 찾아 쪼르르 달려간 애가 자리를 잡아 주고 주인에게로 가서 무슨 말을 하자 주인이 뭔가를 건네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뭘 드릴까요?"
"저 애하고 같이 먹을꺼다. 이곳에서 가장 잘 하는 음식으로 내오고 너도 먹고 싶은걸 시켜라."
점소이에게 주문을 말할때 애가 돌아 오자 뭐든 시키라고 했다. 조금 주저하는듯한 애에게 자신이 시킨것과 똑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네 다리는 왜 저는거냐?"
"다쳤어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도 허름해 보이는게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보였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다리를 절고 있는것으로 짐작되었다.
"내가 치료해 줄까?"
"예엣? 의, 의원이세요?"
"의술을 조금 안다. 식사를 하고 살펴 보마."
"저어...치료비가..."
기어가는 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며 치료비를 들먹였다.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후 방을 잡고 애를 데리고 들어갔다. 다리 치료는 어렵지 않았다. 부러진 다리를 다시 부러 뜨려 이어 붙이면 되는 것이다. 다리를 마비시켜 놓은 상태로 고통도 느끼지 않을것이다.
"자아, 일어나 보거라."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난 애는 방안을 걸어 보고는 더이상 다리를 절지 않자 놀란 눈으로 뒤돌아 서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자아. 이제 그만 가 보거라."
"감사합니다."
애가 나가자 노에스가 이곳에선 강시를 찾지 못했다고 알려왔다. 호구(湖口)내에서 제조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제조를 하고 있을것이다. 자신이 굳이 호구밖까지 조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로 전날 이곳으로 안내한 애와 이십대 후반의 여자 한명이 찾아왔다.
"아산(峩傘) 다리를 치료해 주셔서 인사를 드릴려고 찾아 온겁니다."
"심술이 도져 치료를 해준것뿐입니다. 어디 가서 소문은 내지 마십시요."
"저어, 염치없지만 한사람을 더 치료해 주실수 있는지요?"
남편이 몸져 누워 있는 상태라며 치료를 부탁해 왔다.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다는 말에 아산을 남겨 두고 아산 어머니는 숙소를 나갔다. 같이 식사를 하자는 말에 집에서 기다리는 애가 있다며 사양한것이다.
"집이 어디냐?"
"저쪽에 있어요."
먼곳을 가르키는 아산에게 집안 사정을 물었다. 어제와 마찮가지로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는 아산의 집안 형편이 대충 예상되었다. 아산의 집으로 가기전에 곡식을 판매하는 가게에 들러 쌀과 잡곡을 사서 지게에 한아름 짐을 진 가게 하인과 함께 아산 뒤를 따라 갔다. 호구 읍성 외곽에 허름한 집이 아산집이었다. 집 마당에는 아침에 본 아산 어머니와 아산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작은 애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곡식을 조금 사 왔습니다. 어디에 내려 놓을지 안내하세요."
곡식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듯 황급히 부엌으로 안내하는 아산 어머니는 잠시후 상기된 표정으로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방안은 퀘퀘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이킥 클린으로 즉시 방안을 청소하자 달라진 방안 공기를 감지했는지 아산 어머니가 어리둥절했다.
구석의 침대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누워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랜 병치레로 겉늙어 버려 중년으로 보인것이다. 아산 아버지라는 중년인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내공이 없는 것으로 볼때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음에도 내상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일인지 묻자 무인들의 싸움에 휘말린 탓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으며 치료를 할려면 무인이 치료를 해 주거나 비싼 약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집안이 풍족하다면 이런 가벼운 내상은 바로 치료를 했을것이지만 아산 집안 사정으로는 큰부담이었을것이다.
치료는 순식간에 끝났다. 사이킥 힐링만으로도 완치시킬수 있었다. 심한 내상이었다면 포션을 사용하거나 사이킥 리커버리를 사용해야 했지만 가벼운 내상이어서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은인은 누구신지 알려 주십시요. 지금은 어렵지만 훗날 반드시 보답을 하겠습니다."
"음, 전 복건성 하문의 은천세가 소가주인 은천후입니다."
사실대로 말해 주며 자신이 치료해 주었다는 말은 입밖으로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산 집에서 점심을 얻어 먹고 합비로 이동할려고 성문쪽으로 걸어 가고 있을때였다. 장례를 치루는 큰상여가 천천히 성문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장례를 치루기 위해 상여를 들여 오는 일행이라고 짐작되었다. 상여를 짊어진 사람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룬 상태라면 상여를 다시 들여올 필요는 없었다. 보통 장례식에 사용되는 상여는 마을에서 벗어난 외진 건물에 보관한다.
그런곳에 놔두더라도 불길한 탓으로 어느 누구도 상여같은건 가져 가지 않는다. 그들 옆을 지나칠려고 할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상여를 짊어진 사람들은 중장년인들이다. 상여꾼들에게서는 별다른 점은 없었지만 상여안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것이다. 즉시 사이킥 스캔을 장례 상여에 시전했다.
"여기서 또 보는군요."
"응?"
상여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때 갑자기 들려온 말에 고개를 돌리자 동림사에서 만난 네명을 이곳에서도 만난것이다.
"자주 만나는군요. 잠시만요."
잠시 흩트러진 정신을 다시 집중해 상여안을 살폈다. 자신이 이상한 기운이라고 생각한건 미세한 마기였다. 상여안에서 왜 마기가 감지되는지 몰랐지만 더욱 자세히 안쪽을 살펴 보고 왜 그런지 알수 있었다. 상여안에는 총세개의 관이 들어 있었다.
위쪽에 한개 아래쪽에 두개였다. 한사람의 장례를 치루는데 세개의 관은 필요없었다. 세명을 동시에 장례를 치룰지도 모르지만 저 관 안에는 강시가 한구씩 들어 있었다. 상여로 위장에 호구 읍성으로 강시를 들여 온것이다. 수문병들도 상여는 꼼꼼히 확인하지 않을 것이다. 저 상여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야 했다.
"소협은 어디로 가는데 이렇게 자주 만나는겁니까?"
"합비로 가는 중입니다."
더이상 이들의 오해가 없게끔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합비라면 이들이 이동하는 길과 중첩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합비라면 남궁세가로 가는겁니까?"
"그렇습니다."
"아! 저희들도 남궁세가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들도 설마 남궁 세가로 갈 줄은 몰랐다. 이러다가 같이 동행하자고 말할지도 모른다.
"전 양휘장의 양진호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인 수아이고 이 둘은 건륭장의 소장주인 건륭자응와 자응이 동생인 건륭자민입니다."
"전 은천세가의 은천휘라고 합니다."
서로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남궁세가로는 남궁자청 소가주의 생일에 초대를 받아 간다고 하며 자신도 초대를 받아 가느냐고 물었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있어 간다고만 말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호구를 나가는 겁니까?"
이들은 들어 오는 중이고 자신은 나가는 중에 만난것이다. 원래는 성문을 나갈려고 했지만 강시를 발견한 이상 모른채 나갈수는 없었다. 이들에게 강시에 대해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었지만 말해줘 봐야 이들이 강시를 당해 내지 못할것 같아 입을 다물며 엉뚱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럴려고 했는데 야영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서 가야 겠습니다. 그럼 전 서둘러야 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같이 동행하자는 말이 나오기전에 곧바로 상여를 뒤쫒아갔다. 남창에서는 유명한 등왕각에 강시를 풀어 놓았었다. 이곳 호구(湖口)에서는 어디에 풀어 놓을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상여는 제법 큰장원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장원문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으며 정말로 상을 치루고 있었다.
강시를 어디로 옮기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장례 참배객이나 구경꾼들이 많은 탓으로 대낮에 옮기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으슥한 밤이 되어 보는 눈이 없을때 조용히 옮길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시간을 때울겸 시장으로 가서 식량과 과일등을 구입해 인적이 없는 곳에서 아공간에 보관하고 걸개들을 찾아 다녔다. 거지들중에서도 개방 방도들을 찾아야 한다. 개방이라면 상여가 들어간 장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침 개방 걸개들로 보이는 자들이 걸어 오고 있었다.
"이보시오."
고개를 돌린 걸개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뭡니까?"
재빨리 자신의 행색을 살피며 조금 경계하는 눈빛으로 용건을 물어왔다.
"전 복건성 하문의 은천 세가 소가주인 은천후라고 합니다. 분타주님을 급히 만나고 싶습니다."
"무슨 일로 만나자는 겁니까?"
"강시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전해 주십시요."
"헉, 강시?"
강시라는 말을 듣자 개방 걸개 세명 모두가 놀라며 한명이 급히 어디론가 달려 갔다. 이곳 분타에도 등왕각에 등장한 강시에 대해 알려져 있을것이다.
"강시가 어디에 또 등장한겁니까?"
"분타주님이 오실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한번 설명으로 끝내기 위해 분타주가 올때까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분타주로 짐작되는 걸개 한명이 골목길 안쪽에서 빠르게 접근해 왔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끔 경공을 시전해 달려 온것같았다.
"자네가 검귀인가?"
"그렇습니다."
대뜸 별호를 입에 담은 호구 분타주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것 같았다. 60대정도로 보이는 노걸개는 마음이 급한지 당장 강시에 대해 물었다.
"저 장원이 보이시죠?"
"허 장원을 말하는건가?"
"허 장원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장례를 치루고 있죠. 얼마전에 상여가 들어 갔습니다. 그 상여 안에 강시 세구가 들어 있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분타주는 물론 듣고 있는 다른 걸개들도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런걸로 볼때 허 장원은 명망이 있는 가문같았다.
"사실입니다.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 상여안에 그대로 놔 두겠지만 한밤중이 되면 강시가 들어 있는 관을 어디론가 옮길것으로 예상됩니다. 강시와 연관되어 있는 자들을 일망타진키위해 개방분들이 어디로 옮기는지 감시를 해 주십시요."
"믿기지 않는군. 그런데 상여안에 있는 강시를 어떻게 파악한건가?"
"그건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음, 일단 감시를 하겠네."
분타주는 즉시 듣고 있는 걸개들에게 지시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걸개들은 이곳 호구 걸개들을 모두 모아 허 장원을 철저히 감시할것이다. 당장 허 장원으로 처 들어가 강시를 처리하면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그러면 강시를 제조한 놈이나 부리는 놈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할수가 없다.
늦은 밤 허 장원의 빈소가 마련된 마당 앞에 놓여 있는 상여로 은밀히 움직이는 검은 인영들이 있었다. 상여안에서 관 세개를 꺼낸 이들은 하나씩 짊어맨후 빈소안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이미 저들의 행동은 개방에서 지켜 보고 있을것이다.
빈소안으로 들어간 탓으로 더이상 개방에선 파악할수 없을 것이지만 천후만은 달랐다. 즉시 실라이온을 소환해 저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 보라고 했다. 빈소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빈소안의 병풍뒤에 있는 관을 치우고 바닥의 나무판자를 들어 내자 지하로 내려 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계단 아래로 내려간 이들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저들이 가는 방향으로 지상에서 천천히 따라 갔다. 평범하게 보이는 집 지하에 도착해 지상으로 관을 옮기자 노인 한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관을 열어 강시를 꼼꼼히 확인하곤 닫았다. 허 장원쪽으로 급히 이동한 천후는 분타주를 찾아 강시가 옮겨간곳을 말해 주자 믿기지 않는 얼굴로 즉시 그 집을 찾아 갔다.
- 이곳인가?
- 그렇습니다. 이 집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겁니까?
분타주는 집 주변을 둘러 보고 있었다. 한밤중인 탓으로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게끔 대화는 모두 전음으로 주고 받았다.
- 음, 저 집 앞이 협도(俠刀) 서량 대협의 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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