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천후, 현대에 깨어나다(2)
184화.
머리카락이 예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치렁처렁한 머리카락은 꽁지머리로 묶어 놓은 상태로 남자치고는 너무 길어 특이한 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얼굴도 햇볕에 전혀 노출되지 않아 새하얀 상태로 무슨 병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머리카락은 당장이라도 자를수 있지만 그냥 두었다. 황산역으로 가서 복건성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돈이라면 아공간에 있는 위안이 넘치도록 보관되어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함부로 사용할순 없었다. 지폐의 일련번호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지폐와 똑같은 번호가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발각된다고 해도 어느쪽이 위조된 지폐인지 분간은 할수 없겠지만 의심을 받을수 있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당장 돈을 써야 할 처지라면 어쩔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으로 돈을 구할 생각이다. 황산역에서 복건성 무이산역에 도착했다. 몇백년이 지났지만 무이산은 예전 그대로였다. 무이산 근처에 외할아버지 장원이 있었지만 지금도 있는지는 모른다. 있다고 해도 찾아 갈수도 없었다. 버스역을 물어 물어 찾아가 하문행 버스에 올랐다.
조그만했던 하문은 엄청나게 발전되어 있었다. 청추산으로 환생했을때도 복건성으로 온적은 없어 지금 시대의 하문이 어떻게 변해있는지는 모른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하문의 너무 많이 변해 버린 모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은천세가가 나오는지 방향조차 알수 없었다. 도로가 예전과는 백팔도로 변해 있었다. 일광암이 있는 곳을 먼저 찾아야 한다. 40미터 크기의 거대한 바위인 일광암 아래쪽에 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층 빌딩군을 빠져 나가자 멀리 일광암이 눈에 들어왔다. 일광암쪽으로 잔걸음으로 이동했다.
"뭐냐?"
뚝탁닥.
부르릉.
무슨 공사를 하는지 세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로 트럭과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도면같은걸 살펴 보고 있던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말좀 묻겠습니다. 이곳은 은씨 집안이 아닙니까?"
"자넨 누군데 그런걸 묻는건가?"
"아, 먼친척입니다."
"그런가? 이곳은 은천강 회장님이 새로 사들인 집이라네."
중년인은 자신의 위아래를 힐끔거리며 답해 주었다. 은천강이라는 이름을 듣고 회장이라는 자는 은천세가 후손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어, 회장님은 어디로 가면 만나 볼수 있는 겁니까?"
"회장님? 아서라. 자네가 찾아 간다고 만나 줄 분이 아니라네."
"만나줄지 아닐지는 아저씨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죠. 어디에 있는 겁니까?"
"크흠, 랭엄 플라이스 샤먼 호텔로 가 보게."
중년인은 조금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중년인이 말해준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물어 물어 찾아 가야했다.
"대체 몇층이야?"
엄청난 층수로 보이는 거대한 호텔이 눈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 호텔에 있다는 은천강 회장을 어떻게 하면 만날수 있는지 생각해야 했다. 호텔에 투숙할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 지금은 아무런 신분증도 없는 상태로 호텔에 투숙할수도 없었다. 회장을 찾기 위해 일일이 호텔방을 찾아 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회장의 얼굴이라도 알고 있다면 실라이온에게 부탁하면 쉽게 찾을수 있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상태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동굴안에서 입었었던 옷으로 갈아 입고 호텔 입구로 걸어 가자 도어맨이 신기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지금 천후의 모습은 검 한자루만 차면 무협 영화에 등장하는 무인으로 보일것이다. 로비로 들어서 프런트로 걸어 가자 프런트에 있는 직원들도 신기한 동물을 보는듯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예약을 하신겁니까?"
"아니, 이 호텔에 은천강 회장이라는 분이 있나?"
"회장님이시라면 계십니다."
"회장에게 연락해 먼친척인 은천후가 찾아 왔다고 전하라."
이런식으로 말하면 퇴짜를 맞을게 뻔하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천절하게도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에 회장에게 연락을 하는것 같았다. 프런트 직원이 수화기를 막으며 어디의 누구인지 물었다.
"은천세가의 은천후다."
천후의 말을 들은 직원은 다시 통화를 하고는 잠시후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안내를 자청했다. 의외로 회장은 자신을 만나볼 생각인것 같았다. 프런트 직원이 안내한 곳은 최상층의 어느 방이었다. 노크를 하고는 들어 오라는 말에 문을 열어 준 직원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앞이 비서실인듯 네명의 직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앉아 일을 하고 있었지만 천후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표정들이었다.
"은천후라는 분이십니까?"
"그렇다."
"들어 가시면 됩니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 가자 50대로 보이는 중년인이 의자에 앉아 안으로 들어서는 천후를 뚫어져라 바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은천세가를 들먹인 자인가?"
"그보다 먼저 회장은 은천세가와 어떤 관계냐?"
회장의 눈매가 일그러지며 화가 난듯 잠시 노려 보고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세가는 아니지만 예전엔 세가로 불렸던 적이 있었다네. 난 먼 방계라네."
"음, 그럼 직계 후손은 어디에 있는지 아나?"
"그보다 자넨 누군데 그런걸 묻는건가?"
"난 은천세가 출신으로 옛날에는 직계였지만 지금은 방계라고 할수 있지."
자신이 가문을 이었다면 직계였을것이지만 동생에게 물려준 탓으로 지금은 방계가 된 상태다. 랭엄 플라이스 샤먼 호텔 회장인 은천강은 은천세가를 들먹이는 자가 찾아 왔다는 말에 호기심에 만나 보고 싶었다. 은천세가를 알고 있는 자는 은씨 가문 출신이 아니라면 지금은 잊혀진 세가였다.
안으로 들어온 자는 햇볕이라곤 전혀 노출되지도 않은것 처럼 하얀 얼굴의 젊은 청년이었다. 찰랑거리는 긴머리카락과 옛날 복장인 한푸(汉服)를 입은 자였다. 겉모습만으로는 코스프레 오타쿠처럼 보였지만 진지한 눈매와 거칠것없는 말투로 볼때 오타쿠는 아닌것 같았다. 직계였다가 방계였다는 말과 은씨 성을 사용하는걸로 볼때 은씨 가문 출신이라고 생각되었다.
"직계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
"대만에 살고 있네."
"대만? 연락이 되나?"
"물론이네. 일년에 한번씩 선산(先山)에 참배를 하러 온다네."
회장에게 연락을 해서 바꾸어 달라고 했다. 회장은 군소리없이 테이블쪽으로 걸어가 스마트 폰을 집어 들어 통화를 했다. 회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을때 천후는 아공간을 열어 차 도구를 꺼내 테이블위에 놀려 놓았다. 차 도구라고 해도 작은 도자기 주전자 한개와 찻잔 두개뿐이었다. 주전자안에 사이킥으로 생성시킨 물을 넣었을때 회장이 스마트 폰을 들고는 다가오며 눈이 커지고 있었다.
"자네, 어디서 차 도구를 꺼낸겐가?"
"그건 말해 줄수 없어. 연락은 했어?"
"...음."
회장은 뭐가 어떻게 된것인지도 모른채 전화를 걸고는 무슨 말을 몇마디하고는 폰을 넘겨 주었다.
"은천세가 직계냐?"
- 그,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그건 날 만나 보면 안다. 가보로 내려 오는 초상화는 가지고 있는거냐?"
- 그,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스마트 폰 너머에는 당황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까지 가보로 초상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여긴 은천세가가 있는 하문의 랭엄 플라이스 샤먼 호텔로 은천강 회장 집무실이다. 당장 초상화를 가지고 이곳으로 오너라. 만약 올수 없다면 내가 직접 찾아 갈테니까 그곳이 어딘지 말해 봐라."
- 음, 선산도 살펴 볼겸 직접 가겠습니다.
"좋아. 그럼 선산에서 기다리겠다."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폰을 테이블위에 내려 놓자 회장이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 보고는 눈이 점점 커지며 입을 쩍 벌리며 더듬거렸다.
"저, 저어...호, 혹시...검, 검귀 선조님이십니까?"
"응? 날 아나?"
"허억! 저, 정말 검귀 선조님이 틀림없으신겁니까?"
"나 외에 누가 또 검귀라는 별호를 사용한단 말이냐? 그런데 어떻게 검귀라는 별호를 알고 있는거냐?"
지금은 원래있던 중원보다 4백년 가까이 난 상태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별호를 알고 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상화! 통화중에 초상화라는 말을 듣고 기억났습니다. 종가에서 일년에 한번씩 선산을 방문할땐 항상 초상화 한점을 가져와 모든 친족에게 혹시나 검귀 선조님이 찾아 올지도 모른다며 기억해 두라고 매년 보여 줍니다."
"그 초상화가 이 초상화냐?"
공중에 한손을 뻗어 두루마기 한개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두루마기를 꺼내자 은천강 회장은 눈이 동그래지며 멍한 표정이었다.
촤르륵.
테이블 위에 천후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두루마기를 펼치자 회장은 초상화와 천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이 본 초상화와 똑 같았다. 이 초상화는 방금 그린것처럼 생생했지만 종가에서 가져오는 초상화는 색이 많이 바랬지만 이 초상화와 똑 같았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청년은 검귀 선조님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처음 들어 왔을때 은천세가의 은천후라고 소개했다. 검귀 은천후님이 언젠가는 찾아 온다며 초상화의 얼굴을 보여 주던 종가 어르신의 말이 이제야 생각났다. 은천후라는 이름보단 검귀라는 이름이 특이해 귀에 익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이라고 짐작했었건만 그게 초상화속의 얼굴이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종가 어르신의 말에 친척들 모두가 흘러 들었다. 인간이 어떻게 몇백년후에 찾아 올수 있는지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종가 어르신은 항상 진지한 표정으로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먼옛날 선조가 떡 하니 등장한것이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몇백년이나 지났음에도 전혀 늙지도 않는 얼굴로 나타 날수 있는지 사기꾼이 아닌가 일순 의심을 했지만 공중에서 초상화를 꺼낸 장면과 검귀가 별호라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볼때 사기꾼이 아니라 검귀 선조님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호, 혹시 검귀 은천후 선조님을 증명하는 뭔가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초상화가 있지 않나? 이럴줄 알고 초상화 두점을 그려 준거다. 아, 잠깐만 기다려라."
다시 공중으로 손을 올려 아공간을 열고는 자신의 호패를 꺼내 건네 주었다. 호패는 신분에 따라 재질이 다르다. 일반 평민은 나무로 만든 호패지만 관리나 명망 높은 무림인들은 상아나 뿔, 옥등으로 만든 호패를 사용한다. 자신의 호패는 옥으로 만든 것이다.
천후가 건네준 호패를 조심스럽게 받아든 은천강 회장은 조금 놀랐다. 호패에는 은천후라는 이름과 복건성 하문 은천세가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호패를 사용하는 자는 먼옛날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확실히 검귀 선조님이라고 단정할순 없지만 거의 99%는 선조님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아직까지 믿지 못하겠나? 내 이럴줄 알고 초상화에 직인을 찍어 두었다. 본가에서 이것과 똑같은 초상화를 가져와 나란히 펼쳐 놓으면 직인이 딱 맞아 떨어 질꺼다. 내가 네 선조이든 아니든 그건 본가에서 초상화를 가져 오면 알수 있을꺼다. 자아, 이제 그만 하고 차나 한잔 하자."
"아, 죄송합니다. 당장 차를 시키겠습니다. "
"아니다. 직접 끓여 주마."
테이블위의 차 주전자에 무이암차를 넣고는 양손으로 가볍게 잡아 내공을 불어 넣어 끓였다. 그러자 김이 모락모락 주전자 주둥이로 새어 나오는 장면에 회장이 어떻게 된것이냐고 물어왔다.
"내공으로 물을 끓인거다."
"헉! 내, 내공이라니요?"
"세가의 심법을 모르는거냐?"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무림은 사라진 상태로 내공을 사용할줄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예전 남궁세가 인물들을 만났을때도 내공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은천세가도 심법을 잃어 버렸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난 지금부터 4백년전 인물이다. 그때는 내공을 사용하는 무인들은 흔한 세상이었다."
"어,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해 계시는 겁니까?"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다."
쪼르르.
"자아, 이야기는 그만하고 마셔 보거라. 무이암차다."
"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마셔 보는 무이암차 향기에 흠뻑 빠져 들었을때 회장이 또다시 말을 걸어 왔다.
"혹시 이 차도 4백년전의 차인겁니까?"
"당연하다."
회장은 먼옛날 차인것을 알고는 조심스럽게 음미하고 있었다.
"이, 이런 차를 얼마나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왜? 주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시 손을 들어 올려 아공간에서 주머니 한개를 꺼내 회장에게 건네 주었다. 무이암차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주전자나 찻잔도 4백년전의 물건입니까?"
"그렇다."
눈을 번쩍이며 갖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주지 않았다. 차 도구는 자신도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차를 음미한후 꺼내 놓은 물건들을 아공간에 차례대로 집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자 깜짝 놀라는 회장은 어딜 가느냐고 물어 왔다.
"선산으로 간다. 선조들을 만나 보며 그곳에서 기다릴런다."
"이곳으로 종가 어르신을 부르겠습니다."
"아니다. 선산으로 가 보고 싶어 가는거다. 아, 그런데 은천세가 본가에서 공사를 하던데 뭔가 알고 있는거냐?"
"세가 터를 제가 사 들여 집을 짓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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