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사자의 삶(3)
32화.
식구 전체가 20마리가 넘어 서자 매일 사냥을 하지 않으면 모두 배 불리 먹을수 없게 되었다. 사냥에 성공해도 한입이라도 더 먹을려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이미 5일간 강물로만 허기를 면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날이 며칠만 더 계속되고 성인이 된 숫사자 놈들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아버지에게 곧바로 쫒겨 날것이다.
한개라도 입을 더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요즈음 '나무' 녀석이 여동생들을 바라 보는 눈이 끈적거리고 있었다. 슬슬 발정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쫒겨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사냥을 가기로 했다. 임팔라나 누(Gnu)같은 작은 놈들을 무시했다. 얼룩말이나 물소같은 큰놈을 잡아야 했다.
모두들 배가 고픈 지금은 코끼리라도 잡아 먹을 기세였다. 사냥감을 찾으러 다닐때 기린을 발견했다. 꺾다리라고 부르는 기린 두마리는 사자들이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 유유히 가시잎을 긴혓바닥으로 감아 뜯어 먹고 있었다.
엄마는 기린을 사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모한 도전같이 보였지만 실제로 사자는 배를 주리면 기린도 위험을 무릎쓰고 사냥을 한다. 기린은 뒷발을 조심해야 한다. 제대로 차이면 즉사다. 키가 큰 기린을 쓰러 뜨릴려면 뒤에서 엉덩이쪽으로 뛰어 올라 타 힘으로 쓰러 뜨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너무 위험했다. 엉덩이에 제대로 발톱을 박아 넣지 못한채 지상으로 떨어 질때 뒷발 차기에 당한다면 피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엄마들이 사냥하는 방식을 지켜 보았다. 역시 기린의 뒤에서 어떻게든 엉덩이 쪽으로 올라 탈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러저리 피하며 뒷발 차기를 하면서 위협하는 기린을 쓰러 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두마리중 이미 한마리는 멀리 달아난 상태다. 달아 나도록 그렇게 유도한 것으로 남은 한마리를 포위한 상태지만 너무 키가 큰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퍽.
"끄으..."
"엄마!"
급히 기린에게 차여 나뒹굴어진 엄마에게로 달려 갔다. 절뚝거리며 일어나는 엄마는 다행히 큰부상은 입지 않은것 같았다.
"끄르릉(엄마는 쉬어!) 끄릉(저 놈은 내가 쓰러뜨릴께.)"
"꾸릉(위험해.)"
"끄끄릉(걱정마! 방법이 있어.)"
엄마를 뒤로 하고 기린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가며 외쳤다. 드디어 그동안 숨겨 놓았던 실력을 발휘할때가 되었다.
"끄와앙(모두들 뒤에서 위협만 하십시요.)"
"끄응(돌! 물러서. 위험해.)"
"끄릉(걱정마세요.)"
기린의 앞으로 달려가자 까마득한 높이의 기린의 얼굴이 보였다. 한참이나 올려다 보아야 할 정도였다. 기린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어선 안된다. 뒤에선 이미 식구들이 알짱거리고 있었다. 기린도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 이러저리 움직이며 엉덩이로 올라 타지 못하게끔 뒷쪽만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기린을 향해 달려 갔다. 생각하고 있는게 성공할지 어떨지는 모른다.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전속력으로 질주해 기린의 앞다리를 향해 펄쩍 뛰어 올라 앞발로 관절을 옆에서 후려쳤다.
퍽.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는지 기린이 비틀거렸다. 재빨리 옆으로 빠져 나오며 기린쪽으로 빙글 돌아 다시 달려 갔다. 이제야 기린이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다리가 불편한지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앞에서의 공격은 속수무책이었다. 긴목을 땅쪽을 향해 휘두를려면 앞다리를 크게 벌린 상태여야 한다. 그럴 여유가 없는 기린의 다리 관절을 다시 한번 후려 갈기자 다리가 꺾여지며 서서히 넘어지고 있었다.
꽈당.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바닥으로 쓰러진 기린은 이제 죽음을 맞이할것이다. 그런 기린에게 식구들이 일제히 달려 들어 물어 뜯었다.
"크르릉(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쓰러 뜨릴수 있었던거니?)"
"끄릉(머리를 쓰면 되요.)"
엄마의 질문에 답해 주자 이해를 못하는것 같았다. 큰 기린 한마리만으로도 가족들 모두가 포식할수 있을 정도다. 모두가 달려 들어 기린 고기를 뜯었다. 정신없이 고기를 뜯고 있을때 어느새 아버지도 도착해 고기를 먹고 있었다. 평소라면 서로 많이 먹을려고 싸우고 난리가 났겠지만 워낙 큰기린인 탓으로 모두가 달려 붙어도 빈공간이 남을 정도여서 굳이 자리 다툼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갑자기 아버지가 으르릉거리며 나무 녀석에게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무 녀석이 암사자를 건드린것이다. 싫다고 하는 또래의 사촌 동생을 졸졸 따라 다니며 자신의 씨를 뿌리기 위해 뒷쪽에서 올라 탈려고 하는 모습을 아버지가 본것이다.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있음에도 나무 녀석은 무시하듯 계속 암사자를 졸졸 따라 다니자 아버지의 화가 폭발해 버렸다.
"크와아앙(이 새끼가 감히! 모두 나가!)"
"끄릉(어딜 나가라는 말인데요?)"
"크아와앙(무리에서 나가란 말이다.)"
대꾸를 하는 나무 녀석에게 달려든 아버지의 위용에 나무 녀석은 꼬리를 엉덩이 아래로 숨기고는 쩔쩔 매고 있었다.
"크와와앙(수컷 놈들은 모두 무리에서 나가라. 더이상 무리에 머무는건 용납할수 없어.)"
그렇게 우리들은 쫒겨났다. 언젠가는 쫒겨 날줄 알았지만 시간이 너무 빨랐다. 제대로 사냥을 해 본건 기린 사냥이 처음이었다. 형제 녀석들의 사냥 실력은 뻔했다.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더이상 아버지의 영역에는 머물수 없는 노릇이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진짜로 죽일것이다. 그것이 사자들의 생리다.
퍽!
"크왕(언놈이냐?)"
"끄릉(내가 때렸다.)"
아버지 영역을 나가며 나무 놈의 뒷통수를 후려 갈겼다. 화풀이를 한것이다. 모두 함께 제대로 된 연계 플레이로 사냥을 한후에 나가도 나가야 했다.
"끄르응(또라이 새끼! 너 때문에 쫒겨 난거잖아. 앞으로 넌 또라이야.)"
나무 녀석에게 화를 내며 또라이라고 부르자 녀석이 노려 보고 덤빌 기세였다. 그런 놈에게 일침을 가해 주었다.
"크크르~응(죽고 싶다면 언제든지 덤벼!)"
마주 노려 보며 으르릉거리자 나무 녀석이 박력에 억눌렸는지 바닥에 납짝 엎드리며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살인을 해본 자와 해 보지 않은 자의 차이였다. 거대한 기린을 쓰러 뜨린건 누가 보더라도 자신이란걸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기린에게 이 녀석들은 달려들 엄두도 내지 못할것이다. 세마리의 형제들은 모두 날 리더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고행의 길이다. 완전한 성인으로 성장해 암컷 무리를 탈취할수 있을때까지 초원을 방랑하는 부랑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형제들끼리 이제 사냥을 해야한다.
"쿠르릉(너희들 뼈다귀 점박이 놈을 발견하면 알려줘.)"
뼈다귀 점박이는 치타를 말한다. 날렵한 몸매가 사자들 입장에서는 뼈다귀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끄릉(그건 왜?)"
"크르릉(뼈다귀 점박이 놈이 잡은 먹이를 가로채야지.)"
사자들과 달리 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사자의 두배에 달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리고 다른 육식 동물도 발견하면 알려 달라고 했다. 모두가 같이 행동하고 있어서 모두가 알아 차릴것이지만 혹시나해서였다. 아버지 영역에 있는 강 하류쪽으로 내려 갔다.
생존에 필수인 물 근처에서 되도록 멀어질 생각은 없었다. 사냥한 먹이의 피로 목을 축여도 되지만 텁텁한 피와는 차원이 다른 강물에서 멀어지기 싫었던 것이다. 또한 물을 마시러 오는 초식 동물들을 발견하기도 쉽고 강물 근처에는 나무는 물론 키가 큰 풀들도 많아 매복하기에도 적당했다. 또한 식사를 한후에는 물로 목을 축여야 한다.
다만 하류쪽에 다른 무리가 버티고 있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아버지 영역은 다른 무리와는 겹치는 영역이 없지만 일부 지역에선 겹치는 곳도 있을것이다. 그런 겹치는 곳에 들어가면 안전하다. 양쪽 무리에서 서로가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겹치는 영역에서 완전한 영역쪽으로 침범하지 않은한 내버려 둘것이다.
아직 배는 고프지 않았다. 어제 배 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사자들은 한번 사냥에 성공해 배를 채우면 3~4일동안은 바닥을 뒹굴며 빈둥거린다. 체력 소모를 적게하기 위해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다. 체력이 소모되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강물을 따라 하류로 이동하며 간간히 초식 동물들을 발견했지만 눈도 주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은 이상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을 알고 있는지 초식 동물들도 최상의 경계는 하지 않고 있었다.
"끼이익! 끼이이익!"
큰나무위에서 히히놈이 사자가 접근한다며 큰소리로 시끄럽게 경계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놈들은 밤새도록 저렇게 울어 댈것이다. 숫사자의 영역 표시 흔적이 없는지 냄새를 확인하며 계속 이동했다. 아버지의 영역 표시 흔적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 이젠 다른 숫사자를 만나면 서로 싸우거나 도주를 선택해야 한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형제들끼리 한마쯤은 어떻게든 처리할수 있을것이겠지만 몇마리로 뭉친 무리라면 도주를 해야 한다. 또한 한마리가 이끄는 무리를 차지하더라도 다른 몇마리로 뭉친 놈들이 습격해 온다면 무리를 내평겨치고 도주할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자식들은 모두 살해 당할것이다. 그럴바에야 지금은 많이 먹고 튼튼하게 성장해 영역을 확보했을때 다른 숫사자들에게 빼았기지 않게끔 몸집을 키우는게 최우선 과제다.
"끄릉(오늘은 이곳에서 쉬자.)"
다른 숫사자의 마킹 냄새도 없었다. 영역과 영역 사이의 완충 지대인것 같았다. 이런곳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다른 부랑자 숫사자들이 돌아 다니는 위험지역이다. 부랑자 숫사자들은 서로 만나면 싸움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미래의 적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모든 방랑 사자들이 그렇진 않는다. 간혹 전혀 모르는 방랑 숫사자들끼리 뭉치기도 한다. 한마리보다는 두마리가 서로 의지하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피곤했는지 녀석들은 길게 하품을 한후 금새 잠에 빠져 들었지만 낫선 곳이어서 그런지 좀처럼 잠에 빠져 들지 못한채 설잠을 잔 탓으로 몸이 찌뿌둥했다. 일찍 잠에서 깬 녀석들이 목덜미에 얼굴을 부벼왔다. 애정 표현이었다. 오늘은 이 지역을 자세하게 탐문해 봐야 한다. 정말로 완충 지대인지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루종일 돌아 다닌 결과 사방 1킬로 정도가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다는걸 파악했다.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오늘밤은 사냥을 하기로 했다. 하루종일 빨빨거리며 돌아 다닌탓으로 모두들 뱃가죽이 달라 붙을 지경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먹잇감이 되는 초식 동물을 찾아야 한다. 바람 한점없는 적막한 밤이다. 대낮에 시끄럽게 경고음을 토했던 히히놈도 지금은 조용했다.
이렇게 바람이 없는 날은 먹잇감을 찾기 어렵다. 냄새가 먼곳까지 날아 오지 않는 탓으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야한다. 나무 사이를 누비며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을때 코쟁이 무리를 발견했다. 코쟁이는 코끼리를 말한다. 배가 엄청나게 고팠다면 코쟁이 새끼놈을 따로 떨어뜨려 사냥을 했을 것이지만 위험을 무릎쓰고 지금은 코쟁이 새끼를 사냥할 필요는 없었다.
코쟁이 무리를 지나 앞으로 나아 갔을때 검둥이라고 부르는 물소 무리가 수풀안에 뭉쳐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모두들 배가 고픈지 입맛을 다시며 눈을 번쩍거리고 있었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상의를 해야 한다. 무리에서 목표로 정한 놈을 떨어 뜨리는 역활과 뒤에서 달려 들고 앞에서 목을 물고 쓰러 뜨리는 역활, 그리고 다른 놈들이 구출하러 오지 않게끔 무리들을 멀리 쫓아 버리는 역활을 정해야 한다.
다른 사자들은 목표를 정해 무리에서 떨어 뜨리면 모두가 달려 들어 쓰러 뜨리지만 가끔씩 동료를 구하기 위해 검둥이 놈들이 달려드는 일도 있다. 그러면 놈들을 피해 달아 날수 밖에 없다.
형제들에게는 어릴적부터 무리를 쫒아 내는 훈련을 시켰다. 모두가 달려 들어 목표물을 무리에서 떨어 뜨리고 덩치가 큰 또라이 놈과 내가 떨어 뜨린 놈을 쓰러 뜨리는 역활을 맡았다. 풀과 바람은 무리를 멀리 쫒아 버린후 돌아와 합류하기로 했다. 둘만으로는 큰 검둥이 놈을 쓰러 뜨리기엔 무리다. 그래서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어중간한 놈을 잡기로 했다. 한밤중엔 한꺼번에 달려 드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우리 무리들은 아니다.
무리 외곽에 있는 놈을 목표로 정하고 살금살금 접근했다. 가장 먼저 달려 드는 역활은 내가 자청했다. 검둥이 놈들과 달리 사자들은 밤에도 어렵지 않게 물체를 분간할수 있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모두 그렇듯 밤에 사냥은 대낮의 사냥과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로 높은 성공율을 자랑한다. 그렇더라도 30%정도지만 그정도면 충분하다.
다다닥!
목표물로 정한 놈의 앞쪽을 향해 달려 들었다. 그와 동시에 형제 녀석들도 일제히 달려 들어 당황한채 어쩔줄 몰라하는 검둥이 놈들의 목표로 정한 놈 앞에 있는 놈 엉덩이를 할켜 버렸다. 그러자 놈은 자신이 공격 대상인줄 알고 기겁한채 앞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즐거운 저녁되십시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