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추산, 마계로 가다(2)
117화.
겨우 숲을 빠져 나왔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사이킥 텔레포트를 남발했다. 이곳은 숲은 아니지만 초원이었다. 검은 풀이 2~30센티정도 자라고 있는 풀밭이었다.
스스스.
무슨 소리가 들려 왔다. 아주 작은 소리지만 추산의 귀에는 천둥 소리처럼 들려 오고 있었다. 풀 사이로 뭔가 기어 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아 어떤 놈인지는 모른다.
- 실라이온, 어떤 놈인지 알아 봐.
- 마스터, 블랙 스네이크라는 몬스터로 12마리가 접근하고 있어요.
블랙 스네이크는 특이하게도 집단으로 사냥하는 놈들이다. 놈들은 독을 쏘아 보내 사냥물을 마비시킨후 뜯어 먹는 놈들이다. 보통 뱀들은 잡은 사냥감은 통채로 집어 삼키는 반면 이놈들은 집단으로 행동해 잡은 사냥감을 모두가 달려 들어 뜯어 먹는 식이다.
놈들을 죽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피하기로 했다. 일단 초원을 벗어나야 한다. 사이킥 텔레포트는 자제를 해야 한다. 더이상 머리가 아프면 무슨 일이 발생했을때 곤경에 처할것이다. 이번엔 마법으로 이동했다.
블링크 마법으로 이동했지만 초원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몽골의 초원보다 더 넓은 초원같았다. 더이상 블링크 마법으로 이동하는것도 한계가 있었다. 조금 높은 언덕으로 이동한 추산은 언덕위의 풀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고 알람 마법을 설치한후 자리에 앉아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마기로 충만한 대기는 호흡을 할때마다 마기가 엄청나게 빨려 들어왔다. 이 마기를 그대로 빨아 들인다면 보유하고 있는 마나와 충돌해 폭주해 버릴것이다. 마나를 정제할 필요가 있었다.
엔다이론에게 부탁해 들어 오는 마기를 정제해 달라고 했다. 엔다이론에게 보내주는 마나로 인해 정제한 마나는 예상보다 별로 없어 실망감에 젖어 들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될수 있는한 마나 사용은 자제해야 할것 같았다. 캐논 드라이브 백작이었던 시절엔 마기는 가슴속에 있던 구슬안으로 빨려 들어 갔지만 지금은 구슬도 없는 상태다.
중원의 무림 단체인 마교의 심법을 알고 있다면 엄청난 마기를 모을수 있었을것이다. 중원에 있을때 이럴때를 대비해 마교에서 사용하는 심법을 알아 두었어야 했다. 지난 일을 후회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하루종일 마나 연공을 하자 어지럽던 머리도 완전히 회복되었다.
다시 사이킥으로 이동해도 될것 같았다. 더이상 바위산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마족을 찾아 블랙 게이트가 있는 곳을 알아 볼겸 마족들이 있을만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적당히 사이킥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며칠을 이동했는지는 모른다. 이동에 지치면 쉬기를 반복하고 피곤하면 잠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초원은 이미 벗어난 상태로 황량한 사막 지대로 들어선 상태다. 운이 없는지 아직까지 마족은 찾지도 못했다. 방향을 잘못 잡은게 아닌가했지만 일직선으로 이동하고 있는 이상 마족을 찾을때까지 계속 일직선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검은 돌들과 작은 덤불들이 점재하는 사막을 지나자 숲이 나타났다. 공중으로 날아 올라 이번엔 얼마나 큰 숲인지 살펴 보았다. 이 숲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응?'
찾은것 같았다. 주변을 빙 둘러 보고 있을때 저멀리 숲 외곽에 거대한 목책이 보였다. 인공적으로 만든 목책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마족들이 사는 마을일것이다. 마을로 찾아 갈순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마족들의 머리카락은 검은 자들이 많아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얼굴이 황색인 탓으로 이상하게 생각할것이다. 밖으로 나오는 놈을 잡아 이곳이 어딘지 물어 보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사이킥을 얼마든지 사용할수 있게끔 명상을 하며 정신을 안정시켰다.
'빨리 나와라.'
목책안으로 숨어 들어가 한놈을 납치해 올수도 있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목책안에 자신보다 강한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법 서클로 치면 지금 자신은 7서클에 해당된다. 혹시라도 상급 마족이 있다면 숨어든 자신이 발각될지도 모른다.
9서클에 해당되는 마법을 사이킥으로 사용할수 있지만 상급 마족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마왕에게 당한게 아직도 머리 깊숙히 남아 있는 탓이다. 먼곳에서 목책을 주시하며 3일이나 흘러갔다. 슬슬 목책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그럴때 목책문이 열리며 30여명의 마족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숲으로 들어 가는게 사냥을 하러 나온것 같았다. 그들 뒤를 몰래 따라가며 사이킥 서치로 살펴본 결과 모두 하급 마족들이었다. 며칠동안 숲안에서 사냥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한놈을 납치할 생각이다.
마족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하루종일 이동해도 마물들은 찾아 볼수도 없었다. 서서히 어둠이 몰려 오고 있었다. 마족들이 야영 준비를 하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공기가 엄청나게 무거워진듯한 느낌이었다. 즉시 사이킥 서치로 주변을 살펴 보았다. 마기가 마족들이 야영하는 장소에서 20여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몰려 들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갑자기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점점 몰려 들기 시작한 마기에 마족들도 놀란듯 급히 돌아온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마족들을 따라 갈지 아니면 이곳에서 저 현상이 무엇인지 알아 볼지 판단을 해야했다.
'지켜 보자.'
마족들보다 지금 현상이 더 궁금했다. 마법사인 자신은 탐구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사라면 당연히 저 기이한 현상을 연구하고 싶어 한다. 점점 몰려 들기 시작한 마기는 점차 검은 색을 띄며 더욱 진한 상태로 변해갔다. 칠흑처럼 검어진 마기는 회오리를 치며 순식간에 하늘 높이 치솓아 올랐다.
'저 현상은...'
이제야 저게 무슨 현상인지 알수 있었다. 캐논 드라이브 백작일때 자신의 시종을 자청하던 마리뉴가 말해준 것이 기억났다. 중간계와의 통로가 열리는 징조로 검은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고 했다. 바로 그 현상이 눈앞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기둥은 일주일에서 한달 정도 유지된다.
이 기둥이 알려지면 목책안에 있는 마족들이 몰려 올지도 모른다. 중간계로 통하는 게이트는 마족들은 이미 흥미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이곳 마족들은 모르는 일이다. 마족들이 몰려 오기 전에 중간계로 내려 가기로 했다. 마계에서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찾을려면 얼마든지 찾을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것이다.
지구와의 게이트가 열린지 얼마되지 않는 상태다. 마계 전체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것이 알려 질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동서남북에 위치하는 공작령으로 이동하면 어디에 게이트가 열렸는지 알수 있겠지만 자칫하면 마족들과의 전투는 피할수 없게 된다. 그럴바에야 중간계로 내려가 마나를 모아 다시 마계로 돌아와 지구로 이동하면 된다.
'가자.'
오늘 바로 이동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게이트가 안정될려면 하루나 이틀은 걸린다. 게이트가 생성된 곳으로 마물들은 접근하지 않았다. 점점 밤이 깊어지자 이름 모를 마물의 울음 소리가 간간히 들려 왔지만 근처로는 다가 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아직 하루는 지나지 않았지만 게이트로 들어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때 먼곳에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실라이온에게 알아 본 결과 마족들이었다. 마족들은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곳에 게이트가 생성된걸 마을로 돌아가 알린것 같았다. 게이트 주변을 봉쇄하기 전에 들어 가기로 했다.
훌쩍.
안으로 뛰어 들자 한치 앞도 볼수 없을 정도의 암흑으로 물든 공간이었다. 잠깐동안 아늑해진 느낌이 들며 비틀거렸지만 곧바로 암흑이 사라지고 밝은 빛이 시야에 들어 왔다. 무사히 이동한것 같았다. 이곳이 중간계의 마물산이기를 바랬다.
마물산은 한번도 가 본적이 없었다. 주변에는 어떤 몬스터나 마족들도 없는 계곡으로 둘러 쌓인 곳이었다. 나무나 풀들을 살펴 보고 마물산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들은 말로는 마물산의 나무나 풀들은 특이하다. 나뭇잎의 잎맥은 검은색을 띄고 있으며 잎몸은 검은색이 가미된 녹색으로 변해 버렸다고 했다.
오랜시간 마기에 노출된 나무들이 새로운 진화를 한것으로 추정되었다. 마물산은 마족들이 마물산을 벗어나지 못하게끔 드래곤이 결계를 쳐 놓은 곳이다. 마기를 가진 존재는 결코 결계를 뚫을수 없어 중간계가 안전하지만 수시로 인간들이 마물산으로 들어와 몬스터들을 토벌한다.
불어난 몬스터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포화상태가 된 몬스터들로 인해 결계에 어떤 영향을 줄수도 있다고 했다. 드래곤이 인간들에게 그런식으로 말해 정기적으로 토벌을 하지만 토벌 도중에 마기에 오염된 병사들은 결계를 빠져 나갈수 없어 이곳에 남을수 밖에 없다.
이 마물산 어딘가에 인간 마을이 있을것이다. 그들 인간들은 이곳에서 모두 죽는다. 마기에 점점 오염되어 가는 상태로 급기야 폭주하게 되는 것이다. 폭주할 징조를 보이는 자는 마을 사람들이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 실라이온, 인간 마을 찾아 봐.
엄청나게 큰산은 아니다. 실라이온이 모두 돌아 다닐수 있을 정도로 인간 마을이 있다면 한번만에 찾을수 있을 것이다.
- 마스터, 저 계곡 너머에 있어요. 그런데 지금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중이에요.
사이킥 텔레포트로 계곡위로 올라가자 반대편 계곡 아래쪽에 큰목책이 보였다. 목책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몰려와 목책을 부수거나 올라 갈려고 달려 들고 있는 상황으로 인간들은 목책위에서 긴창으로 찌르거나 후려치고 있었다. 대형 몬스터도 없으며 숫자도 많지 않아 어렵지 않게 방어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할때까지 구경을 하며 기다렸다. 목책위의 인간들을 사이킥 아이로 살펴본 결과 모두 153명이었다. 그들외에 목책 아래에 있는 사람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어갔다. 끊임없이 달려 들든 몬스터들은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퇴각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안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목책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더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로 들어 가야했다. 먼저 아공간을 열어 중간계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지금 옷은 지구에서 입고 있던 옷으로 이 상태로 마을로 접근한다면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로브로 갈아 입은 추산은 마법 지팡이까지 꺼냈다. 대마법사였을때 사용했었던 지팡이는 아니었다. 그 지팡이 끝에는 최상급 마나석이 박혀 있어 젊은 자신이 가지고 다니기엔 너무 화려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지팡이를 꺼내 들고 마을 근처까지 이동해 걸어 갔다. 지쳐 주저 앉아 있던 목책위의 사람들이 추산을 발견했는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 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십니까?"
"캐논이다."
추산이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대륙 공용어로 추산을 발음하면 쭈산이 될것이다. 그래서 캐논 드라이버라는 이름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마, 마법사십니까?"
"이렇게 세워 둘건가?"
동문서답이었지만 당연한 것이다. 일반 병사들이 마법사를 세워 놓고 이런 질문을 하는것 자체가 저들에게는 모험이나 마찮가지다. 괴팍한 마법사라면 저들은 이미 목이 달아 났을것이다. 그 정도로 마법사는 두려운 존재며 경외의 대상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목책문이 열렸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 갈수 있을 정도의 작은 문이었다. 이곳에는 마차도 필요없는 산속이다. 일부러 문을 좁게 만든것으로 생각되었다. 캐논이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저들의 얼굴은 모두 퀭한 몰골로 눈 주변이 검게 물들어 있었으며 눈이 충혈되어 있는 자들도 있었다. 사이킥 서치로 살펴본 결과 모두의 몸속엔 마기가 퍼져 있었다. 먹을게 충분하지 않는지 비쩍 마른 몸매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것 같아 보였다.
"이곳 촌장은 누구냐?"
"촌장은 없습니다."
그럴만도 했다. 촌장이 있어봐야 언제 폭주해 죽을지 모른다. 이곳은 마물산이었다. 마물산안에 갇혀 사는 병사들 마을로 이 마을을 벗어 날순 없다고 했다. 마을 밖에는 몬스터들이 들끓어 함부로 나갈수 없으며 결계밖에서 몬스터 토벌때 가져 오는 식량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었다.
이들은 목책안에 갇혀 사는 인간 동물에 불과했다. 이런 상태에서 며칠에 한두명은 자살한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저어, 마법사님, 외부에서 들어 온겁니까?"
"그렇다. 이제 나갈려고 한다."
나간다는 말에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저어, 밖으로 나가시면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 주실수 있는지요?"
조심스럽게 묻는 젊은 병사는 간절한 표정이었다. 이 자의 부탁을 들어 준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부탁을 할것이다. 잠시 고민하고 있을때였다.
"모두 이쪽으로 와. 폴튼이 이상해. 폭주 같아."
폭주라는 말에 모두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 가고 있었다.
"끄아아아~!!"
갑자기 괴성이 들려 오며 빨리 죽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 작가의말
찾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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