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죽음, 또다른 시작(2)
140화.
마왕에게 죽은 마음의 상처도 이미 사라진 상태다. 어쩌다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정신 수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걸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밤중이 되었을때였다.
퍼펑.
캉캉캉캉!!!
인간들이 있는 곳에서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 오고 있었다.
펑펑!
카강캉캉!!
"윽!"
"죽어라!!"
이곳은 중간계가 틀림없었다. 대륙 공용어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어떤 무리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두 무리가 점점 자신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는게 문제였다. 가지라도 한개 잘려 버리거나 꺾여 버린다면 자신의 팔이 부러진것처럼 엄청나게 아프다. 진물을 뚝뚝 흘리며 한동안 고생해야 한다.
'저리 가서 싸워. 제발 오지 마라!'
자신의 바램과는 달리 한놈이 자신의 몸통에 몸을 기대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몸에게서 흘러 나온 따듯한 피가 끈적거리며 몸통을 타고 아래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화이트 마탑이 왜 우릴 공격하는거냐?!"
"큭큭큭, 대륙 최고 마탑은 단한개만 존재해야 한다. 죽어라!! 파이어 볼!!"
"시, 실드!"
퍼펑.
쩌정.
"크아아아~!!!"
'이 XX 새끼야~!!! 으아악!!!'
자신에게 기대어 있던 마법사가 실드를 펼쳐 파이어 볼을 막았지만 바로 깨져 나가는것과 동시에 마법사와 자신의 몸통에 불이 붙었다. 몸이 산채로 타 들어 가는 고통에 파이어 볼을 날린 놈에게 욕설을 퍼 부으며 발악했지만 나무인 자신의 외침이 들릴리가 없었다.
엄청난 고통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악하는 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평범한 불과는 달리 마법으로 생성된 불이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불은 꺼졌지만 이미 몸통은 시커멓게 타 죽은 상태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을 아는가. 누가 도와 줄수도 없으며 스스로 생존할수도 없었다. 뿌리는 아직 살아 있는 상태지만 나무는 뿌리만으로는 생존할수 없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힘겨운 삶이 이어졌다. 뿌리는 점점 메말라 갔다.
***
환생을 거듭하며 여러 종류의 식물이나 동물로 살았지만 좀처럼 인간으로는 환생하지 않았다. 기약없는 환생이 거듭되고 있을때 드디어 인간으로 환생하게 되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번엔 어느곳에 환생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응? 또 중국이야?'
중국은 중국이지만 현대의 중국이 아니다. 어느 시대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옛날이다. 현대와 옛날에는 중국어가 조금 다르다. 각지역마다 모두 다른 중국어지만 중원과 현대 중국 양쪽에서 생활한 덕으로 큰 차이를 알고 있었다.
"후우, 또 말투가 이상해지겠군."
자신이 여러 세계에 환생을 할때마다 언어가 뒤죽박죽이다. 중간계나 지구의 현대, 그리고 중원 무림에서 사용하는 언어나 표현이 모두 다르다. 가끔씩 현대의 표현이 튀어 나오기도 하며 중간계의 표현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보는 시선에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특히 중원 무림이 가장 골치 아팠다. 옛날 표현이 많아 청송일때의 기억을 더듬어야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은 내공을 모을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내공을 모으면 어머니의 몸이 약해진다. 원천지기를 빨아 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태어나서 내공을 모으기로 했다. 이곳에는 마왕이 등장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세계지만 사이킥을 시전하면 사술이라고 난리를 칠것이다.
자신이 태어 난곳은 은천(珢玔) 세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은천 세가는 은(珢)씨 성을 사용하며 천(玔)자 돌림으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원래는 은(珢) 세가라고 불리워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은천(珢玔) 세가로 불리우게 되었다. 아버지로 짐작되는 자의 한탄 소리에 망하기 직전인것 같았다.
보통 제대로 된 세가라면 가주 아들이 태어 나면 유모가 돌보아 준다. 유모도 고용할수 없을 정도로 가세가 기울어진것으로 예상되었다. 자신의 이름은 은천후(珢玔詡)였다. 천후(玔詡)는 중원에 크게 자랑할만한 인물이 되라고 지은 것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애기인 자신이 알아 들을리가 없다고 생각해 말했지만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걸 알면 기절초풍할것이다.
일단 이곳은 중원이 틀림없다는걸 확인하고 임독맥이 막히지 않게끔 토납법을 시전했다. 애기일때 대연심법이나 라인 피니슈 마나 연공법이나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법을 운용한다면 연약한 몸의 혈맥이 찢겨져 나갈것이다.
어릴땐 안정적인 심법부터 시작해 혈맥을 튼튼하게 하는게 중요하다.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하인 부부 5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 내가 태어난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상을 입은채 누워 지내고 있었다.
아직 눈도 뜨지도 못했을때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내상이 심한지 입을 여는것도 힘들어했다. 세가 사정은 어려운것 같았지만 자신은 무럭무럭 성장해 5살이 되었으며 남동생과 여동생도 태어났다.
모든 혈맥이 뻥 뚫린 상태로 토납법 만으로도 어느 정도 내공을 보유하게 되었다. 미니 아공간을 열수 있게된 덕으로 마나 포션을 마시며 내공이 점점 단전에 들어 차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내상은 점점 회복세에 접어 들고 있었다.
할일이 없는 자신이 할아버지 방을 찾아가 사이킥으로 내상을 조금씩 치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에 치료를 할순 없었지만 할아버지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자신이 찾아오면 몸이 가벼워지고 고통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는 것을 눈치챈것이다.
그렇다고 확실히는 모르고 있었다. 손자를 보고 마음이 편해진 덕으로 몸도 절로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7살이 되자 아버지가 심법을 가르켜 주었다. 심법이랄것도 없이 간단한 토납법이었다. 아버지의 무공 경지는 일류다.
할아버지가 내상을 입어 누워 있는 관계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에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은천 세가는 집안에서만 불리우고 있다는 것을 안것은 10살이 되었을때였다.
바깥에서는 은천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절정 경지인 할아버지가 건재할땐 세가라고 불리울 정도로 큰위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세가의 기둥인 할아버지가 몸져 누워 버리자 더이상 세가라고 불리우진 않았다. 크게 성했던 세가도 할아버지의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퍼 부은 약값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해 세가 무인들을 유지할 자금도 바닥나 모두 내 보낼수 밖에 없었다.
그전에 이미 세가 사정이 파다하게 소문이 나버려 경쟁 문파였던 양선장(梁嬋莊)에서 야금야금 세가가 관리하고 있던 점포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해 세가는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어 버린것이다. 지금은 내보낸 세가 무인들이 조금씩 도와 주는 관계로 근근히 먹고 살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은천 세가가 위치하는 복건성엔 다른 큰문파는 없다. 대신 크고 작은 중소 문파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문파간의 대립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이미 망해 버렸다고 소문이 자자한 은천 세가의 구역은 이미 양선장이 차지한지 오래다.
"어서 서둘러라."
외할아버지가 환갑을 맞이하며 외가집 방문에 출발하는 날이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같이 가기 위해 마차에 올랐다. 마부는 세가 하인인 양소 아저씨다. 외할아버지 집은 같은 지역인 복건성에 위치하는 문파로 은천 세가에서 마차로 7일거리에 있는 장가장(長家莊)이라는 곳이다.
무이산 근처에 있는 장가장은 무이암차를 재배 판매하는 상단으로 제법 유명하다고 했다. 그런 장가장의 막내 딸이 아머니로 아버지와는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장가장 외할아버지와 약조한 태중 혼약으로 태어 나기도 전에 이미 맺어질 운명이었다. 7일동안의 마차 이동은 고역이었다. 덜컹거리는 마차안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도착했다. 내리거라."
지루한 마차 여행이 드디어 끝났다. 외할아버지 가문인 장가장은 은천 세가보다 규모가 더 커 보였다. 상인 가문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장원 규모로 볼때 큰상단을 꾸리고 있는것 같았다.
"어서 오너라."
흰수염이 가슴 어림까지 내려 오는 처음보는 외할아버지는 자상한 눈빛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지만 외할아버지 옆에 있는 중년인의 눈빛이 탐탁치 않은듯 비웃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외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쉬라며 작은 정원이 딸린 장원으로 안내를 받아 갔다.
어머니는 오라버니들에게 인사를 한다며 나가고 아버지는 배정된 방에 틀어 박혔다. 마차 여행으로 피곤한지 동생들은 방으로 들어 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낮잠에 빠져 들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된 천후(玔詡)는 그동안 하지 못한 내공 심법을 연마하며 쌓인 노독을 풀었다.
은천 세가가 보유하고 있는 심법은 은천 심법이라는 것으로 중급 정도에 해당되는 내공 심법이다. 이런 내공 심법으로 할아버지가 절정 경지에 올라 선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공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할아버지같았다.
아버지가 알려준 이런 은천 심법은 자신은 연마하지 않고 무량(無量) 신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한번도 연마한적이 없는 심법이지만 식물로 환생을 하면서 할일이 없었던 탓으로 남궁 세가의 서고에서 기억해둔 여러 무공과 심법을 되새기며 새롭게 조합한 심법이다.
무량은 한계가 없다. 즉, 내공의 한계를 초월한 심법이다. 단전에 먼저 내단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내단이라도 상관없다. 내공을 뭉쳐 내단을 만들기만 하면 정좌를 한채 내공 연마를 할 필요도 없이 전신 피부 호흡으로 자동적으로 내단에 내공이 쌓이는 심법이다.
이 심법을 만든 이유는 특별했다. 중원에서 엄청난 내공을 모아 내단에 쌓아 둔후 자신이 죽을때 내단을 꺼내 아공간에 보관해 두면 다시 환생했을때 내단을 복용해 내공을 쌓으면 엄청난 내공이 쌓여 마왕을 상대할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으로는 마왕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 사이킥도 이미 이브라엘 종사가 마왕에게 패한 상태다. 다음에 마왕을 만났을땐 사이킥과 무공으로 상대할 생각이다.
'후우, 마나 집적진이 없으니 얼마 모이지도 않는군.'
하문 지역의 세가에 있는 자신 방에 있는 마나 집적진이 그리웠다. 아직 내단은 생성하지 못한 상태다. 무량 신공을 운공한지 아직 5년도 지나지 않아서다. 하지만 단전에는 많은 내공이 쌓여 있는 상태다.
동생들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채였다. 많이 피곤했던것 같았다. 정원으로 나갔다. 작은 정원이지만 운치가 있었다. 작은 연못에는 잉어도 노닐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장가장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손님 입장으로 아무리 외가라고 해도 함부로 돌아 다닐순 없는 노릇이다.
"노장주님 셋째딸이 돌아 왔다며?"
"그래. 애들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더라. 뭘 얻어 먹을게 있다고 뻔뻔스럽게 찾아 온건지 모르겠어. 이미 소문이 파다해. 쫄딱 망해 버린 장원에 얼마나 퍼 주었는지 소장주님이 노장주님과 크게 다투었대."
"그래서 지금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거야?"
"그래도 도와 준답시고 주방에 들어 왔지만 우리들만 고생하잖아. 노장주님이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던 막내 아가씨가 주방에 들어와 설쳐 봐라. 우리들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더이상 들려 오지 않았다. 걸어 가면서 대화하는 소리를 들은 천후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란걸 알수 있었다. 외할아버지 딸인 어머니가 이곳에서 왜 주방에 들어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문을 나서 어머니를 찾아 갔다. 길을 몰라 담장 너머로 들려온 하녀들이 이동한 곳으로 따라 걸어 갔다.
"아저씨, 주방이 어디에요?"
"응? 넌 누군데 주방을 찾는게냐?"
어디를 가는지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던 중년인이 눈에 들어와 잡고 물었다.
"오늘 이곳에 도착해 저곳에 묵고 있는데 어머니가 주방에 있다고 해서요."
"저곳에서 사용하는 주방이라면 저 건물일께다."
휑하니 사라지는 중년인은 바쁜 모양이었다. 지붕위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는 곳이 주방이 있는 곳이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큰주방은 8명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응, 넌 누구니?"
뒤쪽에서 누가 다가 오는지도 모르고 어머니를 보고 있던 천후는 뒤돌아 보았다. 10대후반의 여자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볼때 가주 가족 일원인것으로 추정되었다.
"어머니를 찾아 왔어요."
"어머니가 주방에 있는거니?"
"예."
"같이 가자."
주방이 볼일이 있는지 같이 가자고 하는 누나에게 거절할려고 했지만 자신의 손을 덥석 잡고는 걸음을 옮기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같이 갈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장면을 자식에게 보여 주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 애 엄마가 누구에요?"
주방 입구에서 소리친 누나의 말에 일제히 입구를 돌아 보는 여인들이었다.
"천후야. 네가 이곳엔 어떻게 온거니?"
어머니가 입구쪽으로 달려 왔다.
"어머니가 왜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 그건...바쁜것 같아서 도와 주는거란다."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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