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청송의 삶(2)
48화.
하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녀와의 대화로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걸 알수 있었다. 이곳을 벗어 날수만 있다면 스스로 찾아 볼 생각이다. 아직 나이가 어린탓으로 세가를 몰래 벗어 난다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돈이라곤 한푼도 없는 상태다. 마법으로 사냥하고 집을 짓고 산속에 살면 되지만 무인들이 활개하는 이곳에서 아이 혼자서 그런 생활을 하면 누구나 의심하게 될것이다. 적어도 15살정도는 넘어야 혼자서 생활해도 무방할것이다.
남궁희 아가씨는 몇시간이나 후에 방을 나왔다. 매일 이런식이라고 했다. 청송을 완전히 무시한채 하녀를 데리고 안가를 나가 버렸다. 저녁 무렵이 되자 이번엔 또다른 하녀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큰쟁반을 들고 왔다.
저녁 식사로 보였다. 쟁반에서 작은 소쿠리 한개를 꺼내 놓고는 태상 가주 방으로 들어 갔다 나온 아줌마는 소쿠리를 내밀며 저녁 식사라고 했다. 소쿠리안에는 밥과 나물 반찬 한가지뿐이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비운 청송은 더 먹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달랠수 밖에 없었다.
"내일 부터는 더 많이 가져 오마."
"감사합니다."
반시진이나 떠들든 아줌마는 태상 가주의 헛기침 소리에 안으로 들어가 쟁반을 다시 들고 나왔다. 아줌마가 사라진후 해가 질 무렵 태상 가주가 방을 나왔다. 하녀의 말대로 오른발을 심하게 절고 있었다. 안가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 태상 가주 뒤를 쫄래쫄래 따라 갔다.
"글은 아느냐?
"아니요."
"배워 볼 생각은 없느냐?"
"가르켜 주신다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태상 가주에게 한시진씩 글을 배웠다. 한시진은 두시간이다. 무엇 때문에 글을 가르켜 주는지는 모른다. 목적이 있을것 같았지만 나중에 알려 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태상 가주에게 천장에 누군가 숨어 있다고 말해 줄 필요도 없었다.
어제밤이었다. 자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할려고 했을때 천장에 숨어 있던 괴한이 스르르 움직여 자신의 방 천장으로 이동해 왔다. 되도록 긴장을 하지 않게끔 마음을 달래며 잠을 청하는 척 했다. 그러자 잠시후 스르륵 원래의 자리로 이동하는 괴한이었다. 그것으로 저 괴한은 태상 가주를 호위하는 자라고 판단할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건 어쩔수 없었다. 누운 자세로 마나 연공을 할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음... 천재로구나."
태상 가주가 가르켜 주는대로 속속 글자를 외워 버리자 태상 가주는 어지간히도 놀란듯했다.
"저어, 태상 가주님! 이 책을 가져가 볼수는 없을까요?"
"책을? 가져 가거라."
"감사합니다."
하인 주제에 하늘같은 태상가주에게 부탁을 하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태상가주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하인이라고 해도 무시하는 거만한 태상가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밤에는 방에서 책을 보며 호위가 접근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후 메모리 마법으로 통채로 외워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모든 글자를 외우는데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태상 가주에게는 한달만에 모두 외운것처럼 보여 주었다. 석달이 지났을때였다. 세가 전체의 기운이 이상했다. 뭔가 터질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에 물들어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밤에 사건이 터졌다.
채재챙.
꽈꽈꽝.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굉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불안안 표정으로 세가 쪽을 주시하고 있을때 태상 가주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 터진것 같구나."
태상 가주도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세가 깊숙한 심처에 있는 이곳까지 적들이 몰려 들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가는 끝장난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타타다닥!
그때에 안가로 달려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 오며 점심마다 찾아 오는 남궁희 아가씨가 허리에 칼을 차고는 급히 달려 들어 왔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 발생한거냐?"
"숙부님이 반기를 들었어요."
"뭐라고? 모(糢) 녀석이 감히!"
태상 가주는 화가 나는지 양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가주가 요청하지 않는한 집안 일로 태상 가주는 나설수 없었다. 가주가 알아서 할일이다. 만약 다른 세력을 끌어 들인 상태라면 언제라도 개입할수 있다.
"어떻게 될것 같으냐?"
"식객들이 대부분 숙부님 편으로 돌아선 상태로 천풍대도 숙부님 세력이에요. 창궁무애대는 중립을 선언한 상태고요."
"...음."
남궁 세가는 천풍대(天風隊), 창천대(蒼天隊), 창궁무애대(蒼穹無涯隊)라는 병력이 존재한다. 창궁무애대는 장로들만으로 이루어진 절정 이상의 경지에 접어 들어야만 들어 갈수 있는 최강 조직으로 창궁무애대가 남궁 세가나 마찮가지였다.
창궁무애대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한 어느쪽이 이길지는 예상조차 할수 없었다. 모(糢)의 세력인 식객 몇명과 천풍대를 상대로 가주편인 창천대만으로 제압할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제압을 하더라도 남궁 세가는 소중한 무인들이 많이 희생될것이다.
장남인 목(睦)에게 가주직을 물려 줄때 차남인 모(糢)가 불만이 많았었다. 무공 경지로는 모(糢)가 목(睦)보다 뛰어난 상태였다. 세가를 운영하는건 쉽지 않는 일이다. 경지가 높다고 해서 잘 운영할순 없는 일이다. 세가를 반목없이 잘 이끄는 인망(人望)이 있는 인물이 가주에 합당하다. 그런 인물이 인협(仁俠)이라는 별호를 가진 남궁목이었다. 둘째인 모(糢)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무공 경지는 높더라도 무슨 일이 발생했을땐 다급한 성격으로 인해 냉정한 판단을 내릴수 없을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도와 주세요."
남궁희는 발을 동동 굴리며 애원했지만 태상 가주는 은거한 상태라며 함부로 나설수 없다고 했다.
꽈릉.
여전히 폭발음이 들려 오고 있었다. 벌써 두시진째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싸움 소리는 세시진째 접어 들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느쪽이 승리한것인지 아직은 알수 없었다.
타다다닥!
안가로 뛰어 온 자는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젊은 청년이었지만 복장으로 봐선 세가의 중심 인물처럼 보였다.
"오라버니! 어떻게 됐어?"
"헉헉헉! 겨우 이겼지만 숙부님은 물론 주동자들은 모두 도주한 상태입니다."
남궁희의 오라버니인 소가주 남궁성휘(南宮聖輝)였다. 할아버지인 태상 가주에게 보고를 하러 온것이다.
"꺄악! 오, 오라버니! 다쳤어?"
"아니야. 다른 사람들 피다."
이제야 남궁성휘에게 묻어 있는 피를 본 남궁희는 뾰족한 비명을 내지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세가 식솔들이 많이 상했느냐?"
"그렇습니다. 죽은 자들보다 부상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걱정이로구나."
세가의 힘은 무인의 힘이 전부라고 할수 있다. 창궁무애대는 중립을 선언해 무사하다지만 천풍대와 창천대 무인들이 많이 상해 버린다면 외부에서의 활동이 위축되게 마련이다. 그러면 다른 세력이 세가 권역을 넘볼지도 모른다.
- 태상 가주님! 수상한 자들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태상가주인 남궁천목(南宮千目)은 호위인 그림자 영(影)의 말에 급히 밖을 주시하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서 있거라."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는거에요?"
"수상한 자들이 접근하고 있단다."
화들짝 놀란 남궁희와 남궁성휘는 할아버지의 방해가 되지 않게끔 멀찌감치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곳에는 청송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꾸벅.
자신을 바라 보는 처음 보는 소가주에게 가볍게 머릴 숙여 인사를 한 청송은 일부러 고개를 숙인채 들지 않았다. 소가주의 성격을 모르는 탓으로 괜한 트집을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모두가 흥분된 상태다. 언제 어떤 불똥이 자신에게로 튈지도 모르는 상태다.
이 안가쪽으로 5명이 빛살처럼 쏘아져 오고 있는 감각이 느껴졌다. 엄청난 빠르기였다. 헤이스트 마법을 능가하는 속도였다. 무인들이 사용하는 경신법(輕身法)이 저런 효과를 낸다는건 처음 알았다. 신법(身法)이나 경공술(輕功術)이라고도 불리우는 경신법은 세가나 문파에 따라 모두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경신법은 곤륜파의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 있다. 마치 구름속을 노니는 용처럼 자유자재로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움직이는 무림 사상 최고의 불가사의한 경신법이다.
궁신탄영(弓身彈影)이나 천마비행(天魔飛行), 육지비행술(陸地飛行術)에 비하면 장거리를 이동하는데는 불리하지만 무엇보다도 공중에서 몸을 움직일수 있다는 무림 유일무이한 경신법이며 보법이라고 개똥이 아저씨가 침을 튀기며 말했었다. 접근하고 있는 무리는 일직선으로 쏘아 오고 있었다. 어떤 경신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불과 차 한잔 마실 시간인 반각만에 안가에 도착해 담장을 훌쩍 넘어섰다.
"네놈들은 누구냐?"
5명은 모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복장도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마치 어쌔신들같았다.
"태상 가주 남궁천목! 네 목을 가지러 왔다."
스르릉.
소름이 끼치는듯한 으스스한 목소리에 청송은 닭살이 오돌오돌 돋아나며 절로 긴장되었다. 중원이라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무인들의 전투 장면을 보게 될것이다.
덜컹.
슈욱.
척.
태상 가주인 남궁천목은 그런 복면인의 말에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방문이 저절로 열리며 칼 한자루가 튀어 나와 태상 가주의 손에 착 달라 붙듯 손에 잡혔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말로만 듣던 허공섭물(虛空攝物)의 묘기였다.
사사삭.
복면인 네명이 일제히 태상 가주를 포위하며 한명은 소가주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 영(影)! 소가주를 보호하라.
- 명!
검을 쥔 복면인 한명이 빠르게 이쪽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소가주가 놈을 처리할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럴때에 안가 지붕 아래에 숨어 있던 태상 가주의 호위라고 짐작되는 자가 소가주 앞으로 훌쩍 뛰어 내렸다.
- 소가주님! 영(影)이라고 합니다. 뒤로 물러 서십시요.
남궁성휘는 동생인 남궁희를 데리고 뒤로 더욱 물러났다. 청송도 소가주를 따라 물러 날수 밖에 없었다.
"오, 오라버니! 누, 누구야?"
"할아버지 호위야. 호위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직접 보는건 처음이다."
쩌엉!
소가주가 뒤로 물러 나는것과 동시에 복면인이 쇄도해 태상가주의 호위와 일검을 나누었다.
주르르.
굉음이 들려오며 호리호리한 체격의 호위라는 자가 뒤쪽으로 주르르 밀려 났다. 복면인이나 호위 두명 모두 검은 복장의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체격이 큰 자가 습격한 놈으로 호위는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챙챙챙챙!
눈으로 쫒아 갈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휘두르는 두사람의 전투를 보며 청송은 놀라움을 금할수 밖에 없었다. 이계의 기사들과는 움직임이 전혀 달랐다. 기묘하게 움직이는 보법(步法)이 무엇보다도 눈길을 끌었다.
검법은 너무 빨라 알아 볼수도 없었다. 습격한 복면인은 힐끗힐끗 소가주쪽을 주시하며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호위는 뒤로 물러 날수도 없고 피할수도 없어 점점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위가 피한다면 복면인은 즉시 소가주에게 달려 들것이다.
카가캉!
태상 가주쪽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복면인 4명이 전후좌우로 포위한채 한꺼번에 달려 드는 척하며 한명만이 공격하기도 여러명이 공격하기도 하면서 차륜전을 펼치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저들이 불리할것이다. 싸움 소리를 듣고 본가쪽에서 원군이 달려 올것이기 때문이다.
쩡! 쩌저저쩡!
태상 가주는 절뚝거리는 오른발을 축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공격하는 복면인들을 방어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태상 가주가 불리해 보였다. 태상 가주는 발이 불편해 복면인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할수 없는 상황으로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카캉!
복면인이 호위를 좀처럼 제압하지 못하자 태상 가주를 공격하고 있던 놈들중 한명이 합류하자 호위는 급속도로 밀리기 시작했다.
"컥!"
허리쪽에 칼침을 맞았는지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움직임이 조금 둔해진것 같았다.
쩌저정.
휘이익.
둘이 합공해 호위를 공격하는 척하며 한명은 그대로 호위와 칼을 맞대었지만 다른 한명은 소가주에게로 방향을 선회해 돌진해 오자 소가주가 앞으로 나섰다.
"대연일식(大衍一式)!"
캉!
"컥!"
소가주는 무공명을 외치며 복면인이 휘두르는 칼에 용감하게 맞대응해 갔지만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동시에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꺄악~! 오, 오라버니!"
챙!
부들부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가주를 본 남궁희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칼을 뽑아 들었지만 칼을 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실전 경험은 한번도 해 보지 않은듯했다.
"...크윽."
비틀.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버둥거리는 소가주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단 일격에 내상을 입은것이 틀림없었다.
팟.
소가주에게로 복면인이 짖쳐 들어 왔다. 저 상태라면 복면인을 당해 내지 못할것이다.
"오, 오라버니!"
휘이익.
눈을 꼭 감고 복면인을 향해 칼을 휘두른 남궁희의 복부를 복면인은 가볍게 툭 쳤다.
"꺅!"
털썩.
그러자 남궁희는 힘없이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복면인이 왜 죽이지 않았는지는 알수 없다.
"희야~!!"
탓.
그런 광경에 어디서 힘이 솓아 났는지 소가주는 복면인을 향해 돌진하며 검법명을 외쳤다.
"대연구식(大衍九識)!"
쩡!
"크악!"
- 작가의말
좋은 저녁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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