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토니, 한국으로 가다(2)
88화.
"아는 경찰에게 부탁해 알아 봤어. 경찰 서버에는 전에 알려준 이름이 다야. 그리고 개명한 사람을 찾았어."
"어디냐?"
급한 마음에 상철이를 재촉했다.
"삼척하고 대구야. 주소는..."
"고생했다. 그럼 난 삼척에 들러 대구로 내려 갈께."
"이번엔 꼭 찾아라."
"고맙다."
늦은 저녁 시간대였지만 바로 삼척으로 이동해 알려준 주소를 찾아 갔다.
- 다른 사람이에요.
실라이온의 말에 이제 남은 사람은 대구에 있는 한명뿐이다.
"토니!"
"아니, 네가 여긴 왠일이냐?"
"너 혼자 고생하는것 같아서 도와 줄려고 왔다."
"고맙다."
대구로 내려가 상철이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 좁은 비탈길을 올라 가고 있을때 비탈길위에서 상철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집이냐?"
"그래."
대뜸 집안으로 들어 갈순 없었다. 인기척으로 볼때 여자 한명이 있었지만 젊은 여자였다. 실라이온에게 부탁해 알아 보라고 했다. 잠시후 알려온 실라이온의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찾은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수 없어 깊게 심호흡을 하며 상철이를 데리고 일단 비탈길을 내려갔다.
"그냥 갈려고?"
"상철아...찾은것 같다."
"정말이야?"
눈이 커지며 깜짝 놀라는 상철이었다.
"그래. 틀림없어."
"축하한다."
"모두 네 덕분이다. 고맙다. 어머니가 누구하고 뭘 하고 사는지 알아 봐야겠다."
"내게 맡겨둬. 그건 내 전문이야."
근처에는 호텔이 없어 여관을 잡았다. 상철이는 바로 알아 본다며 여관을 나갔다.
- 실라이온! 그 집에 있는 여자애 몸이 어디가 불편한지 자세히 알아 봐.
어머니 집에 있던 여자는 여고생 정도의 나이로 몸이 불편한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 사진을 찾느라 실라이온도 자세히 살펴 보지 않았다고 했었다.
- 소아마비에요. 한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 음...치료할수 있지?
- 마나가 많이 들어 갈꺼에요. 그리고 포션도 필요하고요.
어머니의 딸이 틀림없었다. 그 방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찾은 것이었다. 일단은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 그 후에 치료를 해도 늦진 않는다. 조금이라도 마나를 모으기 위해 마나 연공을 하고 있을때 상철이가 여관방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알아봤냐?"
"그래. 서문 시장에서 일하고 있어."
"지금도 일하냐?"
"그래."
당장 상철이를 따라 서문 시장으로 향했다. 서문 시장은 규모가 대단했다. 이렇게 큰 시장일줄은 몰랐다. 시장을 두리번 거리며 상철이 뒤를 따라 갔다. 도로 중앙에 갖가지 분식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쟁반위에 수북히 쌓인 음식이 유혹했지만 드디어 어머니를 만날수 있다는 흥분으로 절로 발걸음이 빨라 졌다.
"토니, 저곳이다. 머리에 흰천을 두른 분이 고인영이라는 분이야."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다. 바쁘게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 주고 있었다. 두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무척 바쁘게 보였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거냐?"
"아니, 고용된 상태야."
가까이 다가 가기가 두려워 멀리서 지켜 보기만했다. 수백년의 삶을 살면서 이렇게 긴장되긴 처음이었다.
"상철아, 너 먼저 돌아가라."
"알았다."
토니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상철이는 군말없이 등을 돌려 사라져 갔다. 멀리서 하념없이 지켜만 보던 토니는 사람들이 서서히 시장을 빠져 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어머니쪽으로 걸어 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는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가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직 영업하십니까?"
"이걸 어쩌나.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음식도 떨어졌는데."
"남은 음식...아무거나...한그릇 주세요."
목이 메어와 제대로 말도 못하며 눈물이 쏟아 질려고 했다. 모자를 쓰고 있는 덕으로 들키지는 않았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어쩔수 없었다.
"총각,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 아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거 먹고 힘내세요. 남은 음식이라 음식값은 받지 않을께요. 대신 빨리 먹어야 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내 준 음식은 비빔밥이었다. 남은 야채를 듬뿍 넣었는지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맛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채 구겨 넣었다.
"잘 먹었습니다."
비빔밥을 다 먹었을때 어머니도 정리가 거의 끝난 상태였다. 토니가 내준 빈그릇을 씻으며 아직도 의자에 앉아 있는 토니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갈곳이 없어요?"
"아, 아닙니다."
계산을 할려고 했지만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한번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한뒤 어머니에게서 멀어져 갔다. 멀리 숨어 어머니를 몰래 따라 갔다. 비탈길을 올라 소아 마비가 있는 여자애가 있는 집안으로 들어 가는 어머니였다. 대화 소리로 볼때 어머니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결혼한 상태인것 같았다. 모두가 잠든 밤. 어머니의 방으로 숨어 들어 갔다.
"슬립!"
소아 마비인 어머니의 딸을 치료하기 위해 엔다이론을 불렀다. 최상급 포션을 강제로 먹이고 엔다이론의 치료가 끝나자 어머니에게 마나 샤워를 펼쳐 주고는 집을 나갔다. 상철이는 여관에서 이미 잠에 빠져 든 상태였다.
"만나 봤냐?"
"그래. 딸과 둘이 살고 있는것 같은데 집안 사정을 알아봐 줘."
아침에 일어난 상철이에게 부탁했다. 오늘도 시장으로 가서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살펴 보고 집으로 이동해 이복 동생의 상태를 실라이온에게 부탁해 지켜 봤다. 이복 동생은 다리를 매만지며 움직이고 있었다.
치료를 하긴 했지만 앙상하게 말라 버린 다리로는 일어 서지도 못할것이다. 한동안 움직인후에 방안에 쌓여 있는 인형을 꺼내 눈알을 붙이는 직업을 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밤 다시 방안으로 숨어 들어가 슬립 마법으로 깊은 잠에 빠져 들게 하고는 이복 동생에게 메세지 마법을 시전했다.
- 11, 12, 13, 14, 15, 42.
여섯개의 번호를 몇번이나 말해 주었다. 로또 번호였다. 메세지 마법의 영향으로 꿈속에서 들려온 소리로 짐작할것이다.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며칠에 걸쳐 계속 반복하자 어느날 아침 어머니에게 이복 동생인 아름이가 드디어 번호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려."
"이상한 소리라니?"
"숫자야. 11, 12, 13, 14, 15, 42이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
"그게 무슨 숫자니?"
고개를 갸웃하는 어머니는 머리는 아프지 않느냐는등 걱정하기 시작했다.
"몰라. 머리속에 계속 맴돌아 미칠 지경이야."
"두통약을 먹을래?"
"아니, 머리는 아프지 않아. 그냥 숫자만 계속 떠 올라."
무슨 숫자인지 둘다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로또 번호라고 알려 주어야 하는데 직접 말할순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그날 밤 어머니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름이가 다리가 움직인다고 털어 놓았다. 깜짝 놀라는 어머니는 아름이 다리를 만져 보며 움직여 보라고 하자 움직이는 다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자 아름이도 따라 울며 눈물 바다가 되어 버렸다.
다음날 병원으로 가서 진단한 결과 기적이라며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제 꾸준한 재활 훈련을 하면 일반인과 다를바없이 걸을수 있다는 의사에 말에 몇번이나 고맙다며 머릴 숙이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였다. 아름이의 재활 훈련이 시작되었다. 재활 훈련중에 아름이가 머리속에 여섯개의 숫자가 자꾸 떠 오른다고 말하자 재활 치료사가 장난조로 로또 숫자가 아니냐고 말하자 아름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날 밤 아름이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아름이가 속는 셈치고 한번 사 보라고 했다. 로또는 어떻게 구입하는지도 모른다고 하며서도 사 본다고 했다. 아름이가 불러 주는 번호를 종이에 적은 어머니는 다음날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점원의 도움을 받으며 로또 한장을 구입했다.
어머니가 작성한 로또 번호는 아름이가 알려준 그대로였다. 로또 추첨은 매주 토요일 밤 8시 30분경이다. 토요일 아침에 서울로 올라가 SBS 방송국을 찾아 갔다. 방송국 근처에서 실라이온을 불러 로또 추첨 기계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라고 했다.
확인이 끝나자 방송국 근처의 백화점에 들러 시간을 때운후 생방송 시간보다 조금 빨리 방송국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실라이온을 불러 로또 추첨 스튜디오를 찾으라고 하며 실라이온이 말해준 곳으로 이동했다. 인비저빌리티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덕으로 어느 누구도 토니가 방송국안에 숨어 들어와 있다는 것은 모른다.
- 실라이온! 저길 잘 살펴 보고 실제로 할수 있는지 시험해 봐.
- 호호호, 재미겠네요.
스튜디오에서는 방청객들로 둘러 쌓여 로또 추첨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는지 면밀히 검사하며 실험해 보고 있었다. 그런 실험을 실라이온이 기계안으로 들어가 번호가 쓰여져 있는 구슬을 조종해 보는 것이다.
누구도 실라이온이 추첨 기계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것이다. 드디어 로또 추첨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생방송이 시작되고 실제 추첨까지 왠 사설이 그렇게 긴것인지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겨우 추첨을 시작한다는 말에 실라이온을 기계안으로 들여 보내 아름이에게 알려준 번호대로 구슬을 내 보내라고 지시했다.
로또 당첨 1등 번호와 보너스 번호 1개는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상급 정령인 실라이온은 역시 대단했다. 아름이에게 알려준 번호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번호는 일부러 다른 사람들이 예상치못하는 숫자를 조합해 아름이에게 알려 준것이다.
11, 12, 13, 14, 15, 42라는 1등 당첨 번호를 누구도 예상할수 없었을것이다. 예상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두명이 고작일것이다. 보너스 45까지 모두 튀어 나온 구슬을 재삼 확인하고 방송국을 빠져 나와 대구로 이동했다. 마침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어, 엄마! 크, 큰일났어."
아름이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름아! 무슨 일인데 그러니?"
"됐어! 당첨되었단 말이야."
"뭐가?"
어리둥절하는 어머니는 아름이의 다음 말에 몸을 가누지도 못한채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로또! 엄마에게 알려준 번호가 1등에 당첨됐어."
"저, 정말이니? 정말 당첨되었단 말이니?"
"확실해. 엄마!"
털썩.
"아, 아름아! 흐흐흑...모두 네 덕분이다...으흐흑...."
"어, 엄마...으아앙..."
주저 앉은 어머니는 아름이를 끌어 앉고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었다. 몰래 지켜 보고 있는 토니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한 로또 1등 당첨 인원은 단한명뿐이었다. 무려 180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세금 30%를 제하고도 엄청난 금액이다. 이제 부족함없이 살아 갈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집을 매일 살펴 보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것인지 아름이 아버지는 단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아버지에 대한 대화도 없었다. 아름이 아버지는 이미 돌아 가셨는지 아니면 이혼을 했는지 상철이가 돌아 오면 알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아름이는 로또 당첨금을 곧바로 수령하러 가진 않았다. 아름이가 재활 훈련을 마치고 완전히 걸어 다닐수 있게 되면 같이 갈 생각이다. 로또 당첨금은 1년안에 수령하면 된다. 상철이가 돌아온건 이주일 후였다.
"네 어머님 남편은 집을 나간 상태다. 자식을 버리고 간거야. 지금은 대전에서 다른 여자하고 같이 살고 있어."
아름이가 소아 마비에 걸려 완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생각같아선 대전으로 찾아 가서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후우, 상철아! 다시 한번 부탁하자. 이혼 서류를 가지고 대전으로 가서 도장을 받아 와라. 할수 있지?"
"간단한 일이야."
"그리고 내가 불러 주는 번호대로 로또를 한장 사. 3, 13, 28, 29, 44, 45. 이 번호로 한장 사라. 이번주에 당첨될 번호야."
"뭐? 당첨 번호라고? 그게 말이 되냐?"
상철이의 말도 않된다며 찡그리고 있는 얼굴을 보자 절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꺼다."
"젠장...정말 당첨 번호냐? 넌 그걸 어떻게 아는데?"
"비밀이다. 군말말고 사라면 사. 내 부탁을 들어주는 수고비야. 그리고 나도 한장 살꺼니까 당첨되면 같이 받으러 가자."
"좋아. 믿어 볼께."
이번주 토요일에 또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대전으로 간 상철이는 다음날 저녁에 전화를 걸어 와 이혼 서류에 도장을 받았다고 했다.
"다시 수고좀 해줘. 아버지 변호사로 위장해 어머니께 이혼 서류 도장을 받아 이혼 수속까지 해줘."
"그것까지 해야 돼?"
"로또 1등!"
"제기랄...한다. 해. 그놈이 로또가 뭔지..."
로도 1등때문에 상철이는 부지런히 움직여 이혼 수속까지 끝내 버렸다. 이제 어머니와 아름이 아버지는 남남이다.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토요일 오후에 서울로 올라갔다. 상철이는 로또 추첨 생방송을 지켜 보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실라이온이 어김없이 알려준 번호 대로 구슬을 꺼냈다. 방송국을 나오자마자 상철이에게서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