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캐논, 뿌리를 찾다(1)
124화.
30년동안 마탑주 자리에 있으면서 물려 받은 통신구에 처음으로 연락이 들어왔다. 그동안 한번도 연락이 없어 어딜 가더라도 반드시 이 통신구를 가지고 다니라는 말도 무시한채 방치해 놓은 통신구였다. 자신의 이름을 카산이라고 한 자는 초대 마탑주와 같은 이름이다.
어떻게 통신구 좌표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초대 마탑주와 연관이 있는 자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쉐마라 왕국과 원수지간인 마로이 왕국이란게 문제였다. 이것이 함정으로 자신을 끌여 들이기 위한 공작이라는 점도 배제할수 없었다. 일방적인 통신으로 다시 통신을 시도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쉐마라 왕국 정보원인 테라는 코아 마탑주와 통신구로 연락하는 광경을 지켜 보면서 기겁할 정도로 놀랐다. 설마 코아 마탑과 연락할수 있는 통신구를 가지고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으로 캐논 드라이브라는 마도사는 코아 마탑과 연관있는 자라고 파악되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카산이라고 했다. 그럼 캐논이라는 이름은 대체 무엇인지 머리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모두 들었지? 만약 전쟁이 발생한다면 쉐마라 왕국의 코아 마탑이 참가하지 못하게끔 해 주겠다. 그런데 마탑없이 쉐마라 왕국이 전쟁을 할려고 하겠나?"
"아, 아마 무리일겁니다. 코아 마탑의 전투 마법사들이 참가하지 않는다면 저희쪽 왕국 전투 마법사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전쟁은 저희 왕국이 유리하게 될것입니다. 그런걸 뻔히 아는 쉐마라 왕국에서는 전쟁을 할려고는 하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정말 코아 마탑을 제어할수 있는지요?"
"문제없어. 마탑주를 만나면 바로 해결될꺼다. 코아 마탑주가 무사히 리피 공작령으로 들어 오게끔 안내를 해줘. 괜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끔 너희 정보국이 나서야 할꺼야."
테라와 긴 이야기를 하고 야영지로 따로 떨어져 돌아 왔다. 시간이 많이 걸린 탓으로 상단주가 걱정하고 있었지만 변비로 고생했다는 말로 얼무버렸다. 리피 공작성은 거대했다. 일개 왕성을 보는듯했다. 마로이 왕국 넘버 2인 리피 공작인만큼 성도 거대할수 밖에 없었다. 공작성까지 의뢰를 수행한 테라 용병단은 리슈먼 상단주와 의뢰 계약을 끝내고 한동안 공작령에서 쉰다고 했다.
"캐논님, 저희 상단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냐, 난 따로 볼일이 있어 가 봐야 한다."
상단주는 아쉬워했지만 코아 마탑주를 만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이 적당했다. 테라에게 물어 내성의 가장 큰 여관으로 향했다. 마로이 왕국 정보원들이 마탑주를 안내해 올것이다. 쉐마라 왕국과는 거리가 먼만큼 몇달은 걸릴것으로 예상되었다. 다음날 저녁 무렵 테라가 조용히 찾아왔다.
"저어...캐논님, 제 상관이신 버디프 백작님을 만나 주실수 있는지요?"
"무슨 일로?"
"백작님이 믿기지 않아해서..."
"음, 그럼 다음날 저녁때 오라고 해."
백작은 왕성에 있지 않고 공작령에 있는게 이상했다. 테라가 연락을 해 둔것같았다. 하루종일 리피 공작령을 돌아 다니며 과일이나 맥주를 구입했다. 지구에 없는 물건 위주로 구입하며 돌아 다녔다. 아공간을 자유자재로 열수 있는 만큼 물건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었다. 저녁 무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속대로 버디프 백작이 찾아 온것이다.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거냐?"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콧수염이 멋진 버디프 백작은 마로이 왕국 정보국 수장이다. 테라에게 어떤 일로 만나 볼려는건지 말은 들었지만 백작에게 직접 확인하는게 순서다.
"정말 마도사십니까?"
"아공간 오픈!"
"허억! 아, 아공간!"
7서클이상 마법사라면 아공간을 생성시킬수 있다. 그것으로 자신이 7서클 이상의 마도사라고 알려 주었다. 다른 마법을 사용해도 되지만 방안인 탓으로 곤란했다.
"이제 확인이 되었으면 무슨 일로 보자고 한건지 말해."
"코아 마탑과는 잘 아는 사이십니까?"
"예전에 인연이 있었을 뿐이야. 근데 심문을 받는듯한 느낌이군."
캐논이 불만을 토로하자 버디프 백작은 조심스러워질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탑주를 만나신다면 코아 마탑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설득하실수 있는지요?"
"물론이다. 그렇다고 마로이 왕국이 쉐마라 왕국으로 쳐 들어 가는 일은 없도록 해. 코아 마탑은 어디까지나 원정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뿐 자국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는 참가할지도 몰라."
"그, 그렇군요."
코아 마탑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로이 왕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으로 이참에 골치 아픈 쉐마라 왕국을 병합시킬수도 있었다. 버디프 백작은 아쉬움을 삼키며 코아 마탑주와 만나는 자리에 동석할순 없는지 물어 보았지만 씨알도 먹혀 들지 않았다.
"백작은 옆방에서 대기하면 마탑주와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난 후에 부를께."
"감사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코아 마탑의 마탑주를 만나 확답을 받아 놓아야 한다.
"성수는 어느 정도로 원하시는지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대신관이 만든 최상급 성수가 있으면 더욱 좋고."
"음, 부탁해 보겠습니다."
버디프 백작은 3일후에 다시 찾아 왔다. 아레아 교단의 대신관이 직접 만나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직접 만난후 성수를 만들어 줄지 판단을 하겠다는 말에 만날수 밖에 없었다. 백작의 말을 듣고 아레아 교단을 찾아 갔다. 이미 연락을 받은 것인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신관이 어디로 안내해 주었다.
"섭리를 벗어난 자여. 환영하네."
"...어, 어떻게 안거냐?"
하얀 로프를 입고 있는 나이조차 짐작할수 없는 늙은 대신관의 의미심장한 말에 일순 굳어 버렸다. 대신관은 이미 자신이 환생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된다네. 역시 자네였군."
대신관은 자신의 반응에 확신하고 있었다. 환생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
"날 보자고 한게 그 말을 할려고 한거야?"
"신탁을 받은것을 말해 줄려고 부른것이라네."
"신탁?"
신탁은 왠만해선 내려 주지 않는다. 대륙에 큰변고가 발생하지 않는한 아무리 신일지라도 방관만 한다. 신탁은 자신과 연관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푸른 대지가 다섯개의 어둠으로 물드니 사자(死者)가 눈을 뜨니라. 생자(生者)의 비명이 하늘끝에 다다를때 섭리에서 벗어난 자가 등장하니라.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니라."
"그게 신탁 내용인가?"
"그렇다네."
"그럼 대륙에 큰변고가 일어날 조짐이 있다는 말이냐?"
캐논의 물음에 대신관은 캐논 얼굴을 물끄르미 바라 보며 입을 닫고 있었다. 애매한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다. 신탁을 받은것과 동시에 대신관은 신탁 내용을 해석해 보았을것이다.
"자세하게 설명해 봐."
"설명할건 없다네. 신탁은 섭리에서 벗어난 자네에게 내려진것을 대신 말해 주는 것 뿐이라네."
"......."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처음부터 섭리에서 벗어난 상태지. 굳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중간계에서 죽은 이상 당신의 영혼은 영원한 안식에 접어 들순 없다네."
대신관의 말에 '뜨악'해졌다. 자신이 시전한 영혼 전이 마법이라는 것은 헛짓거리에 불과했던것이다. 중간계의 영혼이 아닌 한국인 영혼인 자신은 중간계에서 죽으면 갈곳없는 영혼이 되어 버린다. 어느 소속도 아닌 영혼은 중간계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계속 튕겨져 나간것이다.
지구에서 환생해 죽어도 마찮가지다. 지구에서 중간계로 이동되어 지구의 영혼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다. 대신관의 말대로 영혼 전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은 모든 기억을 가진채 환생하게 되어 있었다. 원래는 다른 자의 영혼이 들어갈 생물에 자신의 영혼이 튕겨져 들어 간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영원히 환생을 거듭하게 될것이다.
"그럼 내가 중간계로 오게 된 이유는 뭐지?"
"신탁을 내려 주기 위한 아레아님의 뜻이었다네."
대지의 여신인 아레아에게 선택받은 것이다. 신탁때문이라면 대신관이 말한 신탁 내용을 해석해야 한다. 먼저 다섯개의 어둠이 뭔지 알아내야 했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신관은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쿵.
"이걸 가져 가게."
생각에 잠겨 있을때 큰상자를 테이블위에 올려 놓은 대신관이었다.
"뭐지?"
"열어 보게."
상자안에는 작은 병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한개를 들어 살펴 보았다. 모두 성수로 짐작되었다. 이렇게 많은 성수를 덥석 안겨 주는 대신관을 바라 보자 품속에서 다시 한개의 병을 꺼내 건네 주며 입을 열었다.
"이건 특별한 성수라네. 잘 생각해서 사용하게. 궁금한 점이 많겠지만 모두 아레아님의 뜻이라네. 난 여신님께로 가 봐야 하니 그만 나가 보게."
대신관의 축객령에 상자를 들고 방을 나섰다. 미리 대기하고 있는 신관의 안내로 교단을 나선 캐논은 여관으로 돌아 왔다. 대신관에게 직접 받은 성수는 아마 최상급 성수일것이다. 상자는 아공간에 보관하고 최상급 성수는 품속에 보관했다. 그날부터 신탁 해석에 매달려 일체 방을 나서지 않았다.
***
벌떡.
"젠장할!"
이러고 있을수는 없었다. 일주일만에 신탁 내용은 어느 정도 알수 있었다. 대신관의 태도로 신탁은 중간계에 내려진게 아니라 자신 본인에게 내려졌다. 자신에게 신탁을 내리기 위해 중간계로 불러 들인것도 아레아 여신이다. 중간계와 연관이 있다면 지구에서 굳이 자신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지구와 연관된 내용의 신탁이라고 밖에 생각할수 없었다. 그러자 신탁의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다섯개의 어둠은 블랙 게이트다. 지구에 5개의 게이트가 마계에서 내려 온다. 검은색 기둥 5개는 어둠으로 물들어 있다. 블랙 게이트로 인해 지구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죽은 자가 눈을 뜬다는 것은 좀비나 구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건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라는 내용이다.
'설마 지구의 모든것이 파괴되어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인가?'
그런 내용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중간계에 있을수는 없었다. 빨리 지구로 돌아 가야 한다. 지구에 특별한 일이 발생할것이다. 아레아 여신이 굳이 지구에 관한 신탁을 내려서 무슨 이득이 있는지 알순 없지만 지구와 중간계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것 같았다. 코아 마탑의 탑주를 빨리 만나야 했다. 테라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버디프 백작도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 실라이온! 이 여관을 감시하고 있는 자가 있는지 살펴 봐.
마로이 왕국 정보국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 자를 찾으면 테라와 연락이 될것이다.
- 마스터, 한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가 있어요. 비렁뱅이같은 차림이지만 마나를 보유하고 있는게 수상하고요.
실라이온이 말한 자는 창문을 열면 찾을수 있었다. 그 자에게 메세지 마법을 보냈다.
- 너, 정보국 소속이면 당장 테라나 버디프 백작을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메세지 마법을 보내며 놈의 행동을 지켜 보자 움찔한 놈은 자신의 방 창문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역시 정보국 소속이 틀림없었다. 그렇지않다면 머리속에 들려 오는 메세지 마법을 보낸 자의 위치를 알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 급한 일이다. 빨리 움직여.
캐논의 호통에 벌떡 일어난 놈이 어디론가 달려 가고 있었다.
치지직.
- 마탑주네. 지금 리피 공작령으로 가고 있는 중이네.
"일단 이동을 멈추고 그곳 좌표를 불러."
- 서, 설마...
"그래. 공간 이동으로 그곳으로 갈꺼다."
놀라는 마탑주는 잠시후 좌표를 알려 왔다. 마탑주와 통신이 끝난후 자신을 찾아 오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라고 주인장에게 말해 준뒤 상점으로 이동해 닥치는대로 물건을 구입했다. 아공간에는 이미 수많은 물자가 구비되어 있지만 좀비나 구울이 등장하면 지구의 생산력은 사라질것이다. 식량 위주로 상점에 있는 물건을 통채로 구입한뒤 여관으로 돌아 오자 버디프 백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신지요?"
다급한 표정의 버디프 백작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급한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코아 마탑주를 당장 만나러 간다. 혼자 가도 되지만 백작과 약속한 일이 있어 같이 가자고 부른거다."
"지, 지금 당장 간다고요?"
"그래. 공간 이동 마법으로 이동할꺼다."
"허억!"
마도사라면 충분히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할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곧바로 이동한다는 것은 텔레포트 마법보다 상위 마법인 워프 마법을 시전해서 이동한다는 뜻이다. 워프 마법은 무려 8서클에 해당되는 마법이다. 대륙에는 8서클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도사 두명은 모두 7서클로 알려져 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자신이 이동한다는 것을 부하에게 언질이라고 해 주어야 합니다."
백작을 데리고 이동한다면 백작이 유괴되었다고 난리가 날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캐논은 빨리 말해 주고 오라며 재촉했다.
"그럼 이동한다. 가까이 와!"
버디프 백작을 데리고 워프 마법을 시전했다. 눈부신 빛이 몸을 감싸자 백작은 움찔하며 놀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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