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청송, 강시를 만나다(1)
57화.
팅팅팅.
쏟아지는 암기를 막기 위해 다시 회선풍(廻旋風)을 시전하며 점점 속도를 높여 어느 순간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쐐에엑.
경공을 펼쳐 쏜쌀같이 달아 나는 독문의 중년인을 보며 모두가 의아해 하면서도 납득했다. 당소량은 그런 중년인을 추적할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청송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청송은 놈이 도주하는 방향을 바라 보았다. 놈을 살려 두어선 않된다, 자신의 소문이 퍼질게 분명했다.
"놈을 제압할께요. 텔레포트!"
번쩍.
모두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진 청송을 찾을려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을때였다.
"어, 언니! 저기요."
당봉이 가르킨 방향은 중년인이 도주한 쪽이었다. 하늘에 잠깐 모습을 드러낸 청송이 또다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중년인의 경공은 엄청났다. 독문 출신이라기에 독에만 조예가 깊은 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빛살처럼 쏘아져 가는 중년인의 경공은 태상 할아버지의 경공에 비할 정도였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달려 가는 놈은 하늘위에서 청송이 추격하고 있는 줄은 모를 것이다. 놈이 달려 가는 앞쪽에 내려 설려고 해도 중년인은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 가며 도주하고 있는 탓으로 텔레포트 마법으로는 놈을 따라 갈순없었다.
어쩔수없이 땅으로 내려와 경혼 신법을 펼치며 따라 갔다. 이미 당소량 소가주 일행과는 먼거리까지 도주했음에도 중년인은 쉴새없이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무엇이 저렇게 중년인은 채찍질하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이미 중년인과의 거리를 한참이나 떨어진 상태다. 바람이 중년인이 달려 가고 있는 곳을 알려 주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놓쳤을것이다. 산봉우리를 두개나 넘자 중년인이 겨우 멈추어섰다. 멈추어 선 방향을 향해 텔레포트 마법을 펼쳤다. 공중에 둥둥 뜬채로 중년인을 내려 보자 중년인은 주변을 빙 둘러 보며 절벽 한쪽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겉보기에는 거무튀튀한 절벽이다. 깜짝 놀란 청송은 즉시 아래로 내려 갔다. 역시 절벽으로 보일뿐이었지만 이상하게 마나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기문진(奇門陣)이 설치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온갖 조화를 부린다는 기문진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고 싶었다. 중년인이 들어간 절벽안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쑤욱.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팔뚝까지 쑥 들어 갔다. 그런 절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기문진안은 어두컴컴했다. 이곳이 기문진인지 동굴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저벅저벅.
일단 안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마나 서치를 시전해 봐도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중년인인 안쪽 깊숙히 들어간것 같았다.
휘이잉.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언가 튀어나올것 같은 어스스한 분위기였다.
철컹철컹.
"응?"
쇳조각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등장했다.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기사였다. 중원에 기사가 등장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기문진의 조화라고 생각되었다. 등장한 기사는 얼굴을 투구로 완전히 가리고 있었지만 누군지는 바로 알수 있었다. 큰덩치와 대검으로 볼때 자신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어 죽였던 코린경이 틀림없었다.
'기문진은 환상 마법과 비슷하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식으로 기문진을 설치하는지는 모르지만 환상 마법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기문진이 신기했다. 코린경은 대검을 치켜 들고 목을 베어왔다. 환상이라고 이미 인식하고 있는 만큼 코린경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무시했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목을 통과한 대검이었지만 청송의 목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저벅저벅.
완전히 코린경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 가자 코린경은 마치 유령처럼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환상 마법은 마음속의 고뇌나 불안한 점을 파고든다. 스스로가 옭아맨 올가미에 걸리지 않을려면 굳건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송아! 누나야."
이번엔 남궁희 누님이 나타났다. 얇은 천으로 몸을 가린 상태지만 풍만한 몸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신기했지만 누님을 따 먹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망가진 청송은 아니었다. 개무시를 하며 걸어 가자 누님 역시 흩어져 버렸다.
저벅저벅.
갑자기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느껴졌을뿐 이것도 환상이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었을때 항상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져 버리는 그곳이었다. 다른 영혼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죽었다면 다른 영혼들도 저 안으로 빨려 들고 있었을 것이다.
저게 왜 등장했는지는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저곳을 의식하고 있었을것이다. 환상 마법도 무의식속에 숨어 있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현실로 발현시킨다. 이 기문진도 환상 마법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것이다.
"응?"
다른 영혼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단한개의 영혼만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절반 정도가 안으로 빨려 들어 가는 순간 급격하게 튕겨져 나와 20세기 한국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군대를 제대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상황이다. 이제 곧 노을이 지고 있는 횡단 보도에서 대형 트럭에 치여 죽을 것이다. 저 상황이 왜 나타났는지는 모른다. 저곳에서부터 자신의 무한 환생이 시작되었다.
끼이이익.
퍽!
역시 트럭에 치여 죽는 광경이 재현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의식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꺼집어 낸것이라면 자신의 무의식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 내야만 무한 반복되는 환생의 고리를 끊어 낼수 있을것이다.
"사라져라."
더이상 생각은 금물이다. 이곳에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문진에 갇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될것이다.
"윈드!"
이곳은 동굴안이다. 동굴안에 기문진이 설치되어 있다면 안쪽으로 들어 갈수 있는 입구가 있을것이다. 바람을 사방으로 내보내 바람이 알려주는 감각을 읽었다. 벽에 부딪히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부분이 이 기문진을 나갈수 있는 방향일것이다. 트럭에 치여 죽자 또다시 거대한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소용돌이를 무시하고 직접 앞으로 걸어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 갔다.
어차피 환상으로 만든 소용돌이다. 그렇게 강하게 인식하며 통과하자 소용돌이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바람이 통과하는 곳으로 계속 걸어 갔지만 이상하게도 기문진에서 빠져 나갈수 없었다.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 생문(生門)을 모르는 이상 막강한 힘으로 기문진을 파괴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헬파이어를 시전할수도 없었다. 동굴이 통채로 무너져 버릴것이다.
"디그! 디그! 디그!"
일단 동굴 바닥은 물론 벽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파 보았다. 환상 마법은 마나로만 시전되지만 기문진은 기(氣)가 아닌 다른 매개체로 설치가 될것이다. 그런 매개체를 박살내 버리면 기문진은 무너질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디그 마법으로도 기문진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아마 실제로 땅이 파여지지도 않았을것이다. 대체 어떤 기문진인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젠 강제로 파괴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마나 서치를 펼쳐 기(氣)가 몰려 있는 부분을 세밀하게 감지해 그 부분에 마법을 시전했다.
"기가썬더!"
파칙!
쩌저정.
기문진이 출렁거리며 한쪽 부분이 흐려진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다른 부분을 기가썬더가 강타했다.
쩌저정.
파삭!
무언가가 깨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칠흑같은 암흑이 도래했다.
"마나 서치!"
여전히 근처에서 인기척은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라이트!"
역시 동굴안이었다. 얼마나 안쪽으로 들어 온것인지 입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안쪽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기문진안에 갇혀 있었던것 같았다. 이제부터 조심해야 한다. 입구에 기문진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이번엔 기관 장치가 막아 설지도 모른다.
"실드! 플라이!"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더라도 설마 현대의 지구처럼 센서가 감지해 기관이 작동하진 않을것이다. 바닥의 어떤곳을 밟거나 벽을 건드리면 작동하는 구조일것이다. 그래서 아예 공중으로 날아갈 생각이었다. 바닥을 밟지 않고 날아 가고 있는 덕인지 기관은 작동되지 않았다.
얼마나 안으로 들어 갔는지는 모른다. 천연적인 동굴처럼 보이는 이곳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나 더 들어가자 붉그스럼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이트 마법을 해제하고 빛을 따라 이동했다. 천장에 박혀 있는 여러개의 구슬에서 붉그스럼한 빛이 쏟아지는 이곳은 울퉁불퉁한 동굴과는 달리 평평한 광장처럼 보였다. 그런 광장의 한쪽 구석에 2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 보고 있는게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았다.
"켈켈켈...환영하노라."
중앙에 지팡이를 짚은 머리에는 몇올밖에 남지 않은 머리카락과 이빨 또한 거의 없는 노파가 입을 열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노파라고 예상했다. 겉모습만으로는 노인인지 노파인지 알아 볼수가 없었다. 노파를 중심으로 늘어선 자들이 표정이 이상했다. 모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안색이 모두 창백했으며 머리카락 또한 헝클어진 상태로 입고 있는 옷들도 군데군데 찢어지고 거무튀튀한게 노파의 부하들같았다. 자신이 추적해 온 독문의 중년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르르릉.
노파와는 반대편 광장에 내려 서자 자신이 들어온 입구가 저절로 닫혀 버렸다. 무슨 기관 장치가 되어 있는것 같았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켈켈켈...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구나. 보답으로 곱게 죽여주마."
딸랑딸랑딸랑.
죽인다는 말과 동시에 노파가 지팡이를 흔들자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쩍.
그러자 놀랍게도 노파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창백한 인상의 사람들이 눈을 번쩍 뜨고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청송에게로 달려 들었다. 경공을 펼치는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반인의 빠른 걸음보다는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노파 옆에서는 한명만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다른 자들은 모두 청송에게 달려 들고 있는 것이다.
딸랑딸랑.
또다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일직선으로 달려 오던 사람들이 일제히 넓게 흩어지며 포위할려는 포진인듯했다. 노파의 지팡이에 달린 방울로 이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마치 정신 조종 마법을 사용하는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사일런스!"
일단 노파의 지팡이에 달려 있는 방울소리를 차단시켰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달려 들고 있었다.
"그레이트 홀드!"
달려 오는 자들에게 구속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모두 달려오는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듯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딸랑딸랑딸랑따랑.
노파가 심하게 지팡이를 흔들어 대었지만 방울소리는 저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아가들아~!! 움직여라."
그런걸 모르는 노파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요란스럽게 지팡이를 흔들고 있었다.
- 할머니! 이들의 심령(心靈)을 풀어 주세요.
메세지 마법을 노파에게 보냈다.
"이이익...가랏."
딸랑따라랑.
화가 난듯한 노파가 특이한 방울 소리를 내자 노파 옆에 있던 자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홀드 마법에 묶여 있는 자들과는 비교 할수 없을 정도였다.
스르륵.
사일런스 마법안에 갇혀있는 자들 옆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듯 이동해 달려 오는 자를 유도했다. 그러자 이 자는 방울 소리도 울리지도 않는데도 청송이 이동한 곳으로 방향 전환을 해 달려 들고 있었다.
"홀드!"
쩌엉.
달려오는 기세 탓으로 홀드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스!"
꽈당.
벌떡.
비틀거리며 넘어진 자는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이번엔 넘어지지 않게끔 바닥을 푹푹 찍으며 다시 달려 들었다. 이 자도 심령을 제압당한것 같았지만 이성도 가지고 있는듯했다.
"매직 미사일!"
퍼퍼퍽.
세발의 매직 미사일을 날려 보냈지만 방어를 할 생각도 하지 않은채 매직 미사일이 몸에 박히든 말든 계속 달려 오고 있었다. 매직 미사일이 박힌곳은 이마, 가슴, 배였지만 아무런 상처도 없어 보였다.
"파이어 볼!"
퍼펑.
후하악.
"...음. 플라이!"
굉장한 놈이었다. 파이어 볼이 직격했음에도 온몸에 화염을 두른채 여전히 돌진하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공중으로 피하자 화염이 사라진 놈의 모습은 멀쩡하기만했다. 옷은 모조리 타 버린 상태지만 머리카락은 물론 몸에 화상도 전혀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럴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저럴수는 없는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금강불괴지신인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금강불괴라고 해도 머리카락은 타 버려야 한다. 그 점이 너무 이상했다.
"할머니! 이들은 인간이 아니죠?"
"켈켈켈...이제야 알았느냐?"
"그럼 누구죠?"
"내 새끼들인 독강시(毒僵尸)다!"
강시라면 죽은 자들이다. 더우기 독으로 제조된 독강시였다. 이계에서 흑마법사들이 조종하는 구울이나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그럼 저 특이한 자는요?"
"생강시(生僵尸)다."
처음 듣는 말이지만 살아 있는 강시라는 것이다. 데스 나이트와 마찮가지라고 생각되었다. 생강시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청송을 올려다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왜 저런 강시들을 만든거죠?"
"네놈에게 말해 줄 이유는 없느리라."
딸랑따라라라랑.
푹.
꽈직.
휘이익.
"실드!"
텅.
노파의 방울 소리에 생강시가 바닥에 손을 푹 찌르고는 움켜 쥐며 들어 올려 청송에게 집어 던졌다. 바위로 이루어진 바닥이 마치 진흙을 만지는듯 푹푹 파였다.
- 작가의말
즐거운 저녁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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