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천후, 싸움에 끼어들다(1)
146화.
깜짝 놀라는 중년인이었다. 더이상 놀려선 않될것 같았다.
"은천 세가의 큰외손주가 찾아 왔다고 전해 주실래요?"
"따, 따라 오게나."
장가장안은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 다니고 있었다. 상단인 만큼 수레를 끌고 있는 자는 물론 짐을 지고 걸어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큰건물을 가로 질러 안쪽으로 중년인을 따라 가자 다른 건물앞에 멈춘후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어서 오너라. 많이 컸구나."
"안녕하세요. 무이산에 볼일을 보고 들렀어요."
외할아버지 환갑연에서 6년만에 만나는 외할아버지는 정정해 보였다. 무이산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자 놀란 외할아버지는 다친 곳이 없냐며 묻곤 요즈음 실종 사건이 자주 벌어져 민심이 흉흉해졌다며 걱정하던차에 범인을 찾은게 다행이라고 했다.
"예전에 준 영약 말이다. 그걸 더 구할수 없겠느냐?"
"외할아버님이 드실려고요?"
"아니다. 연이가 시집을 가서 애를 낳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영약을 구해 줄려고 한단다."
장연 누님이 시집을 갔다는건 처음 들었다. 보통 여자는 16~7세정도에 결혼을 하지만 무공을 배운 누님은 20살때 화가장이라는 강서성에 있는 장원으로 시집을 가서 며칠전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비연검 할머니가 은천 세가로 오지 않았다면 누님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침 잘 되었네요. 무이산에서 귀한 약초를 구했거든요."
가져 온 보따리를 풀었다. 장가장에 들러기 직전에 아공간에 있는 고구마같은 약초를 꺼내 보따리에 싸서 들고 온것이다. 이끼는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마나양으로 볼때 이끼는 영약같았기 때문이다.
"오오! 그건 하수오구나."
"하수오요?"
"그래. 적어도 수백년은 묵은듯 싶구나."
고구마같은 둥그스럼한게 하수오일줄은 몰랐다. 외할아버지에게는 세 덩어리를 건네 주었다.
"선물이에요."
"고맙구나. 모두들 평안하시냐?"
"예. 할아버지도 건강하시고 모두 잘 계세요."
"장인 어른이 쾌차해서 무엇보다고 다행이다. 며칠 쉬어 가거라."
그날 저녁 외할아버지가 불러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큰외백부도 함께였다.
"천후야, 네가 가져온 하수오는 알고 보니 천년 하수오였단다. 그런 귀한 물건을 선물해도 되는 것이냐?"
"천년 하수오요? 다행이네요. 그동안 세가를 많이 도와 주셨잖아요. 장연 누님께 한개 주고 외할아버지와 외백부가 드세요."
천년 하수오보다 더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천후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외가에서 이틀을 쉬고 세가로 돌아 갈려고 할때 외할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주라며 무이암차를 안겨 주었다. 장가장을 나서 무이촌 시내를 걸어갈때 건물 담벼락 아래에 깨진 그릇을 놓고 구걸하는 거지가 눈에 들어왔다.
"뭐하세요?"
"보면 모르냐? 이를 잡...응? 네가 여긴 왠일이냐? 아직 세가로 돌아 가지 않은거냐?"
이 한마리를 잡은 분타주는 입안으로 냉큼 집어 넣은후 오물거리며 천후를 올려다 보고는 놀라고 있었다.
"장가장이 제 외가잖아요. 그래서 들런거에요."
"그렇구나. 아, 근데 너 배 고프지 않냐?"
"하하하, 알았어요. 같이 가요."
깨진 그릇을 잽싸게 품속으로 집어 넣은 분타주는 벌떡 일어나 천후를 뒤따랐다.
"우욱! 이 냄새는 뭐야?"
식당으로 들어 가자 분타주의 몸냄새에 손님들이 코를 부여 잡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꺼져! 이곳이 어디라고 거지 새끼가 들어 오는거야?"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분타주를 내쫒을려고 했다. 개방 거지들은 평소에는 개방 제자를 표시하는 매듭을 감추고 지낸다. 식당 주인도 분타주가 개방 소속이란걸 모르는듯했다.
"에헴, 오늘은 손님으로 온거다."
"맞아요. 얼른 자리나 하나 마련해 주세요."
천후의 말에 주인장은 오만인상을 쓰며 천후등에 걸려 있는 검을 보고는 어쩔수 없다는듯 구석진 자리를 내 주었다. 삶은 닭 두마리와 죽엽청을 시켜 마시고 있을때 식당안으로 먼지를 듬뿍 뒤집어 쓴 중년인과 청년 두명이 들어 섰다. 검을 소지하고 있는게 무림인으로 보였다. 중년인이 게걸스럽게 닭을 뜯고 있는 분타주를 힐끗 본후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이제 다 온거죠?"
"그래. 간단하게 목을 축이고 이동한다."
중년인들은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식당을 나섰다.
"좀전의 중년인이 누군지 아느냐?"
"처음 보는 자인데요?"
"귀검시랑(鬼劍翅狼) 갈천후다."
강서성(江西省)에서 유명한 귀검시랑은 귀신같은 검 재주와 흉폭한 늑대가 공중을 도약해 목덜미를 물어 뜯듯이 목을 취하는게 특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온걸까요?"
"음, 태극문과 티격대는 갈천문을 도우기 위해 온것 같구나. 갈천 문주가 귀검시랑과 의형제다."
"태극문과요? 자세히 말해 주세요."
큰이모가 시집간 곳이 태극문으로 태극 문주는 무당파의 속가 제자다. 자신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었다.
"크흠, 술이 떨어졌구나."
죽엽청을 한병 더 시켜주자 입이 함박만큼 벌어진 분타주가 내막을 설명했다. 태극문이 관리하는 업소에 갈천문의 소문주가 친구들과 방문해 깽판을 쳤다. 집기가 부서지고 주인까지 다쳐 태극문에 호소했다.
태극문에서 갈천문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갈천문에선 소문주를 무시한 주인의 사과와 함께 갈천문쪽이 오히려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큰소리를 친 탓으로 대립이 악화되어 갔다. 대립은 점점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국지전이 벌어져 두 문파 모두 사상자가 발생해 전면전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태극문에서도 무당파에 원군을 요청한 상태지만 호북성과 인접한 강서성에서 활동하는 귀검시랑이 먼저 도착한것이다. 먼곳에 있는 무당파에서 원군이 도착할 즈음엔 이미 두 문파간의 싸움은 끝날것이라고 했다.
"귀검시랑은 절정입니까?"
"세간에는 고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절정에 거의 근접해 있을꺼다. 한두번의 강기는 시전할수 있다고 본다."
"태극문으로 가 봐야 할것같아요."
"귀검시랑을 상대할수 있겠느냐? 아서라. 귀검시랑과 같이 온 일행들도 만만찮아 보였는데 네가 가서 뭘 어쩌겠다는게냐?"
분타주가 말렸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가 본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갈려다가 되돌아 왔다.
"태극문이 어딧는지 안내해 주세요."
"뭐? 내가 왜?"
"하는 일도 없잖아요. 이 참에 싸움 구경도 할겸 같이 가시죠."
분타주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않된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태극문이나 갈천문 두 문파는 정파다. 정파간의 대립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개방은 어느쪽에도 끼어 들순 없다고 했다. 행여 자신을 태극문으로 안내하는걸 갈천문에서 안다면 개방에 항의를 해 온다며 거절했다.
"칫, 그냥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서 안내해 줬다고 하면 되잖아요. 좋은걸 줄려고 했는데 그만 둬야겠어요."
"응? 좋은것? 그게 뭔데?"
영약이라고 생각되는 이끼를 손톱만큼 보여 주었다. 이끼를 자세히 살펴 보며 냄새까지 맡아 보던 분타주는 눈이 커지며 경악하고 있었다.
"너어, 너어, 이, 이건 어디서 구한게냐?"
"무이산에서요. 안내해 주지 않을꺼면 이리 주세요."
이끼를 빼았을려고 하자 기겁한 분타주는 이끼를 뒤로 감추며 벌떡 일어나 안내를 자청했다. 대체 어떤 영약이길래 분타주의 태도가 돌변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 보진 않았다.
"어서 가자."
식당을 나서 길을 재촉할때 분타주가 입맛을 다시며 이끼에 대해서 물었다.
"근데 이것 밖에 없었냐?"
"분타주님이 하시는걸 봐서 더 줄수도 있어요."
"오오! 뭐든 할께. 만년석균은 대체 얼마나 가지고 있는거냐?"
이끼가 만년석균(萬年石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영약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내공 정진에 큰도움이 될것이다. 영약은 함부로 복용해선 않된다. 다른 약재와 조합해 영약의 효과를 극대화한후 복용해야 제대로 흡수할수 있으며 부작용도 사라진다.
경공으로 반나절거리에 있는 태극문에 도착했다. 분타주와는 태극문이 있는 미천촌(美泉村) 입구에서 헤어졌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걱정되어 같이 들어 갈수 없었다.
"무슨 정보를 알게 되면 알려 주세요."
"그러마."
제법 큰 미천촌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분타주에게 들은 말로는 태극문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때 갈천문은 급성세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태극문에 비하면 조그만했던 문파가 크게 성장한 원동력은 귀검시랑이었다. 귀검시랑이 명성을 떨칠수록 갈천문도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냐?"
태극문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작은 쪽문 너머로 중년인의 얼굴이 보였다. 갈천문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 서 있는지 험악한 인상으로 대뜸 짜증을 냈다. 천후의 얼굴이 아직 앳되 보인 탓도 있었다.
"태극문 문주님은 제 큰이모부님 되십니다. 은천 세가의 은천후가 찾아 왔다고 전해 주십시요."
"그, 그러신가. 잠시만 기다려 주시게."
급격히 태도를 바꾼 중년인은 반공대를 하며 기다려 달라며 후다닥 뛰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헉헉! 드, 들어 오시지요."
헐레벌떡 보고를 하고 달려 온것인지 숨이 턱밑까지 찬 중년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태극문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언제 갈천문과의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태극문주인 큰이모부는 고수 경지다.
귀검시랑과 비슷한 경지라고 생각되지만 분타주의 말이 맘에 걸렸다. 귀검시랑은 강기를 한두번 사용할수 있다고 했다. 큰이모부도 과연 강기를 사용할수 있는지에 따라 문파간의 싸움이 어느쪽으로 기울어질지 판가름이 날것이다.
"자네가 왠일인가?"
"외할아버지에게 들렀다가 이곳 상황을 우연히 듣고 도움이 될까해서 찾아 온겁니다."
"고맙다. 쉬어라."
큰이모부는 자신에게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듯했다. 갓성인이 된 자신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작은 방으로 안내되어 간 천후는 시녀가 내 온 차를 한모금 머금었을때 외사촌 형님이 방문했다. 큰이모부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찾아와 줘서 고맙다."
"친척끼리 도우는건 당연한겁니다."
"그래. 근데 혼자 온거냐?"
"예. 저 혼자서도 충분히 도울수 있어요."
혼자 왔다는 말에 표정이 조금 굳어진 외사촌 형님은 실망하는듯했다.
"그럼 피곤할텐데 편히 쉬거라."
자신이 혼자 왔는지 세가 무인들을 이끌고 왔는지 확인하러 온것 같았다. 볼일을 마친 외사촌 형님이 방을 나갈려고 할때 한마디했다.
"귀검시랑이 갈천문으로 갔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요?"
"벌써 도착했다고?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냐?"
"무이촌에서 봤거든요. 저보다 빨리 출발했으니까 이미 도착해 있을겁니다."
"...음, 알려줘서 고맙다."
급히 방을 나가는 달려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이모부에게 알려 줄려는것 같았다. 찾아 오는 사람도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을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문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발생한것 같았다.
검을 차고 방을 나서자 연무장쪽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경공을 펼쳐 급히 달려갔다. 연무장에는 갈천문 무인들로 보이는 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무이촌에서 본 귀검시랑과 얼굴이 비슷한 자가 가장 앞에 서 있었으며 귀검시랑은 한발 뒤에 서 있었다. 태극문에선 자신에겐 아무런 통보도 없이 태극문도 만으로 싸울려는듯했다.
"소문주를 핍박한 태극문은 정중히 사과하라."
"흥,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갈천문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소문주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거짓말로 점칠된 행동은 무인으로써의 자격이 없다. 당장 내공을 폐하고 사지근맥을 잘라라."
대화는 평행선이었다. 서로를 헐뜯기만 할뿐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문파간의 싸움으로 해결할수 밖에 없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대문파가 중재를 했겠지만 복건성엔 대문파가 존재하지 않아 힘으로 해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태극문은 정중히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해라."
"갈 문주, 계속 그렇게 진실을 왜곡할 생각이오?"
"흥,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군."
갈천문 문주가 뒤로 물러나자 귀검시랑이 앞으로 나와 검을 뽑아 들었다.
"누구든 나서라."
귀검시랑을 상대할수 있는 자는 태극문에선 문주밖에 없어 보였다. 사이킥 서치로 서로의 내공을 살펴 본 결과 귀검시랑이 월등히 많았다. 내공이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지만 변수가 없는한 비슷한 실력으론 내공이 많은 자가 승리한다.
"귀검시랑인가?"
"그렇다."
"검을 나누어 보세."
태극 문주가 걸어 나가며 검을 뽑을려고 할때였다. 천후가 태극문 무인들 위를 훌쩍 날아가 문주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네가 여긴 왠일이냐? 당장 물러나라.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문주님, 갈천문 문주가 직접 나오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쪽에서 문주님이 나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상대할테니까 문주님은 갈천문 문주가 나서면 상대하십시요."
일부러 큰이모부라고는 부르지 않고 문주님이라고 불렀다. 큰이모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급히 검을 뽑아 들고 귀검시랑에게 달려 들었다. 큰이모부가 제지할 시간도 없이 경혼 신법 펼쳐 빠르게 달려간 천후의 검에는 검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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