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죽음, 환생과 환생(2)
45화.
사라락.
바람이 불자 몸통이 흔들렸다. 잡초때는 아무것도 모른채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끔 굳게 버티었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이번엔 바람이 불면 바람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엔 잡초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잡초였다면 또다시 독약에 당해 죽을것을 생각하면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무럭무럭 성장하면서 자신이 나무라는 것을 파악하고 정신적인 충격에 빠져 들어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나무는 종류와 환경에 따라 몇천년이나 생존하는 나무도 있다. 인간의 정신력으로 그런 몇천년을 버틸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일단 어디에서 자라나는 나무인지 파악을 해야 했다. 가끔씩 새 울음 소리가 들리며 곤충이 가지위로 기어 다니는 느낌이 전해졌다.
인간의 말소리나 자동차 소리, 몬스터의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볼때 높지 않는 산속에 있는 나무로 태어난것 같았다.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는 아직 모른다. 며칠이 지나자 정신적인 충격은 거의 사라졌다. 지금 현재를 살아 가기로 했다. 하는 일이라곤 생각하는것 밖에 없었다. 기회라면 기회였다.
마법과 사이킥,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법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맘껏 연구할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각만으로 행해야 하는 일이지만 정신적인 성장을 이룰수 있어 그게 더 좋았다.
마법을 분석하고 룬어를 한글자씩 분해해 다른 글자와 융합하는 연구와 최상급 마나 연공법인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법을 마법사가 사용할수 있는지 연구를 하며 사이킥도 더욱 연구했다. 자신이 사용하던 마나 연공은 중급에 불과했다. 최상급 마나 연공법으로 끌어 모은 마나를 단전에 모아 대주천으로 이마로 보낸후 남은 마나를 기사들처럼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은 몸전체로 마나를 퍼뜨려 놓는 마나 연공이다. 그것을 단전쪽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제논이었을때의 마법은 서클 마법으로 치면 6서클에 해당되었었다. 점, 직선, 곡선, 면, 형, 원으로 분류되는 서클 마법은 7서클은 아마 공간이라고 생각되었다. 7서클이 되면 텔레포트 마법이나 아공간을 생성시킬수 있다. 그래서 7서클은 공간을 이해하지 않으면 올라 갈수 없을 것이다. 8서클과 9서클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8서클에는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헬파이어 마법이 있다. 9서클은 타임 스톱은 물론 메테오 마법을 펼칠수 있다. 다음에 인간으로 환생하면 적어도 8서클까지는 사용할수 있도록 언령 마법과 사이킥을 연구할 생각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갔다.
시간을 헤아리는건 예전에 그만 두었다. 얼마나 긴시간을 생존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나무는 30미터는 넘게 자랐으며 일직선으로 하늘을 찌를듯 우뚝 선 상태였다. 어느날 처음으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퍽.
'컥!'
갑자기 인간 한명이 자신에게로 다가온 후 몸통에 큰충격이 전해 오는 것과 동시에 살점이 뭉턱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 기겁했다.
퍽!
퍽!
'커어억!! 그, 그만해~!!'
엄청난 고통이었다. 나무 살점이 퍽퍽 깎여져 나가고 있었다. 아마 도끼로 나무를 찍어 넘어 뜨릴려고 하는것 같았다. 이대로는 당한다. 하지만 나무 신세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생살이 강제로 뜯겨져 나가는 고통은 불에 타 죽거나 독약에 당해 고통스럽게 죽거나 햇볕에 말려 죽는 고통과는 또다른 고통이었다. 고문도 이런 고문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몸속의 피가 모조리 빠져 나가 이미 죽어도 몇번은 죽었을것이지만 나무는 아니었다.
우지끈.
꽈지지지직.
쿵.
'빌어먹을!'
몸이 기우뚱하며 다른 나무들에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직 숨이 멎은건 아니었다. 올챙이 시절처럼 한동안 괴로워하며 숨이 멎을것이다. 그 고통을 생각하니 절로 열불이 치솟아 올랐지만 어쩔수도 없는 일이다. 몇십년이나 나무로 있으면서 정신적인 수양이 부족한것 같았다.
타탁!
'컥! 윽!'
손발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쓰러진 나무의 잔가지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후 위쪽 부분도 뭉턱 잘려 나갔다. 생기가 서서히 빠져 나가고 있었다. 며칠동안은 나무안에 있는 수분으로 어떻게든 버틸수 있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한발한발 다가 오고 있었다. 생살이 뜯긴 다음에는 메말라 죽는다는 공포와 함께 다음생은 무엇으로 환생할지 걱정하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이번에도 빛의 소용돌이에서 튕겨져 나갔다. 언제가 되면 저 안으로 빨려 들어 갈수 있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
'후우, 이번엔 또 뭐로 환생할까?'
몇번의 환생을 거듭하자 불안감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매번 인간으로 환생하는건 아니다. 어떤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젠장 이번엔 왜 하필 토끼냐고?'
먹이 사슬의 최하층에 속하는 토끼는 겁이 많다고 한다. 사실이다. 공기의 상태로 볼때 이곳은 지구가 틀림없었다. 대륙과는 달리 공기가 무척 가벼웠다. 겁이 많은 토끼는 항상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토끼는 흔히 산이나 숲속에 산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곳은 바닷가 근처로 황량한 들판이다. 나무라곤 낮은 나무들밖에 없었지만 토끼 입장에서는 높은 나무로 보였다. 그렇다고 줄기가 굵은 나무는 한그루도 없었다.
갈색털로 뒤덮힌 몸과 머리위로 삐죽 솓아 오른 큼직한 귀로 주변의 소리를 감지해 여우와 족제비의 발걸음 소리가 감지되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생활이다. 어릴때 엄마가 가르켜 준것으로 형제들과는 뿔뿔히 흩어져 그들이 생존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다행이 성인 토끼가 될때까지 무사히 성장한 상태다.
휘이잉.
겨울로 접어 드는지 요즈음은 나날이 찬바람이 몰아 치고 있었다. 바닷가 근처인 탓으로 더욱 세찬 바람으로 인해 낮은 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바람이 멎길 기다릴뿐이다. 갈색으로 뒤덮였었던 털은 털갈이를 하는 중이다. 갈색털 사이로 흰색털이 돋아 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첫눈이 내렸다. 털갈이가 완전히 끝나 흰색털로 뒤덮힌 몸통이다.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줄을 몰랐다.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온통 새하얀 눈바다였다. 가장 곤란한건 먹이를 찾는 일이다. 수북한 눈을 헤치고 마른 풀을 먹어야 하지만 엄마는 키가 낮은 나뭇 가지 마디를 먹으라고 했었다.
아삭아삭.
나뭇 가지를 갉아 먹고 있을때 눈을 밟고 무언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로 볼때 여우 놈이 틀림없었다. 엄마는 입이 뾰족한 놈이라고 했었지만 여우를 처음 봤을땐 얼마나 놀랐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다리가 떨려 온다. 또다시 산채로 잡아 먹혀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덜 떨리는 다리로 정신없이 도주했었다.
타다다다닥!!
발걸음 소리가 감지된 반대편으로 무작정 달렸다. 한참을 달린후 엄마에게 배운대로 눈위에 찍혀 있는 발자욱을 따라 되돌아 온후 옆쪽으로 달려 갔다. 토끼의 발바닥은 넓어 눈속에 푹 파 묻힌진 않는다. 얼마간 달려가 되돌아 온후 다시 옆쪽으로 달리면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생각같아선 눈을 파고 깊숙히 숨고 싶었지만 여우는 코가 밝다. 자칫하면 숨어 있는 눈을 파헤친다면 꼼짝없이 당할것이다. 도주한 발자국을 따라 여우 놈이 따라 올지도 모른다. 여우를 기만하기 위해 온길을 되돌아 와 다른 쪽으로 달린후 다시 되돌아 다른 쪽으로 달려 가는 것이다.
여우는 발자국을 따라 오다가 결국은 포기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토끼는 보통 땅굴을 파고 산다고 하지만 이곳 들판에 살고 있는 토끼는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지만 땅굴을 파진 않는다. 잠을 잘땐 낮은 나뭇 가지들이 덤불처럼 자라나 있는 아래쪽에 숨어 잠을 잔다. 여우가 한번 온곳으로는 두번 다시 접근도 하지 않는다.
수북한 흰색 털로 뒤덮힌 몸은 찬바람이 쌩쌩 불어도 전혀 춥지 않았다. 바람이 심한 날엔 여우나 족제비도 움직이지 않는다. 족제비 놈은 땅속에 산다. 날렵한 몸매의 족제비는 여우보다 두려운 존재지만 토끼의 달리는 속도는 따라 오지 못한다. 하지만 놈들은 어느 땅속에 숨어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는 놈들은 땅의 진동을 감지하고 접근하면 살며시 땅속에서 올라 와 목을 물어 뜯는다. 다른 토끼가 그런식으로 당하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털색깔도 하얀 놈들인 탓으로 이런 눈덮힌 곳에선 더욱 발견하기가 어렵다.
아삭아삭.
나뭇 가지 사이로 조금 돋아나 있는 새순을 갉아 먹었다. 겨울철이 서서히 끝나 가고 있었다. 몇몇 토끼들이 한곳에 뭉쳐 있는 모습도 보였다.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배가 부르자 덤불 아래에 앉아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지만 눈을 밟고 뛰어 가는 여러 발걸음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여우 놈이 접근하고 있었다. 지금 달아 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하얀 털로 뒤덮혀 있어 덤불 아래에 숨어 있으면 눈과 동화되어 아무리 여우라고 해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우 놈도 겨울철엔 먹이 찾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여우나 자신이나 생존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직접 싸운다면 일방적으로 당하겠지만 여우 놈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 간다면 자신의 승리다. 다행히 자신이 숨어 있는 이곳에서 조금 먼 곳을 이동하는 여우였다. 다른 토끼의 발자국을 따라 가고 있는 중이었다.
여우가 완전히 멀리 사라질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서 이사를 해야 한다. 여우에게 이곳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이 들켜 버린 이상 이곳에서 머물순 없는 노릇이다. 천천히 다른 곳을 향해 이동할때였다. 자신의 머리통 굵기 정도의 나무 아래를 지나갈때 갑자기 나무 줄기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왔다.
타다다다다닥!!!!
즉시 다리에 힘을 주며 도주했다. 족제비 놈이었다. 하지만 놈과의 처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가속을 붙이기도 전에 목줄기가 뜨끔해지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 앞다리와 뒷다리로 목에 달라 붙은 놈을 떨쳐 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놈의 몸에 다리가 전혀 닿지 않았다. 점점 힘이 빠져 나갔다. 약육강식의 세계라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진 않았다.
'제기랄...'
토끼 몸에서 혼이 떠나 공중으로 떠 오르자 족제비 놈은 자신의 몸통을 덤불 아래쪽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
'음...이번엔 뭐지?'
올챙이때와 마찮가지로 투명한 막속에 들어 있었다. 옆쪽의 작은 막속에 들어 있는 물체가 눈에 들어 왔다. 물고기같았다. 다른 녀석들이 막을 뚫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자신도 힘으로 뚫고 나갔다. 물속이지만 전혀 숨이 막히지 않았다. 형제들의 몸크기는 거의 모두가 3센티정도였다. 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몸이지만 어떤 종류인지는 모른다. 적들로 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형제들끼리 몰려 다녔다. 얕은 바다인것 같았다. 바닥은 모래였고 바위들도 보였다. 바위쪽에는 작은 울퉁불퉁한 나무들로 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산호초?'
나무처럼 보이는 것들은 산호초로 짐작되었다. 알록달록한 여러 종류의 큰물고기들도 돌아 다니고 있었다. 저놈들이 모두 적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형제들은 적들로 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산호초 아래쪽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불과 3센티정도에 불과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크게 성장할지는 모른다. 움직일수 없는 나무에서 토끼, 이번엔 물고기로의 환생이었다. 물속에서는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큰 포식자들을 주의하며 형제들과 함께 주변을 맘껏 유영했다. 그럴때에 바위 아래쪽의 모래 바로 위를 유영하고 있을때였다.
'컥!'
갑자기 배를 관통하는 고통이 엄습하며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며 좁은 공간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뭐가 어떻게 된것인지도 모른채 서서히 숨이 멎어 갔다.
'제기랄! 대체 뭐냐?'
영혼이 빠져 나오자 모래속에 숨어 있는 괴생명체가 보였다. 어떤 물고기인지는 모르지만 저놈에게 잡아 먹힌것 같았다. 대부분 물고기들은 성인으로 성장하는건 10%에 불과하다는 말을 정수일때 텔레비를 보고 알고는 있는 사실이 이제야 기억났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안일하게 행동한 것이다.
***
올챙이와 물고기의 삶은 너무 짧았다. 약육강식의 최하층에 속하는 생물로썬 어쩔수 없는 일이다.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또 무엇으로 환생을 한것인지 웅크린 몸으로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지만 어두운 축에 속했다. 본능적으로 이곳을 빠져 나가야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톡톡.
입으로 벽을 톡톡 찍고 있었다. 그런 느낌에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 보았다. 손발은 있었다. 하지만 손 느낌이 이상했다. 손가락이 아니었다. 가는 막대에 부드러운 털이 달려 있는 느낌으로 손가락이 없었다. 급히 입 모양을 확인했다. 눈은 뜨지지 않아 몸통에 부비며 확인했다.
- 작가의말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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