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캐논, 화를 내다(2)
127화.
저벅저벅.
백작에게 할말을 하고 문쪽으로 걸어갔다. 더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 양계장을 다른 영지로 이주시켜야 한다. 백작이 아무리 이전대로 세금을 매긴다고 해도 백작이 죽고 소영주가 백작 자리에 오르면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될것이 눈에 선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게."
"백작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미 이곳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다. 워프!"
번쩍.
"헉!"
캐논이 마법으로 사라지자 백작은 물론 소영주와 집사장까지 멍한 표정이었다.
"으음...네가 큰일을 벌였구나. 방금 그 분이 누군줄 아느냐?"
"......"
"후우...마도사시다. 그 마도사가 만든 양계장을 네가 삼킬려고 한거다. 마도사의 태도로 볼때 무슨 일이 벌어 질거다. 정보를 모으고 병사들 훈련을 철저히 하거라."
"마, 마도사라고요?"
고개만 끄덕이는 백작의 한숨 소리가 집무실에 오랫동안 퍼지고 있었다.
***
"이곳 백작령과 원한이 있는 영지가 어디지? 굳이 원한이 아니더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 영지라도 상관없다."
이곳은 백작령 외성안에 있는 정보 길드다. 소영주를 파멸시키기 위해 양계장을 원한이 있는 영지로 옮기든지 아니면 양계장을 그대로 두고 다른 영지를 부추켜 백작령을 집어 삼키게끔 도와 줄 생각이다. 양계장을 이전하든말든 영지전은 벌어 지게 될것이다. 원한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영지전이 발생하게 유도할 생각이다.
"원한이 있는 영지라면 북쪽에 위치하는 엘튼 자작령입니다. 몇십년전 영지전으로 자작령이 패해 영지를 많이 빼았긴 상태니까요."
정보료로 1골드를 던져 주었다. 이런 정보라면 지나가는 사람 누구를 잡아 물어 봐도 알수 있는 흔한 정보였다. 캐논이 방을 나서자 응대한 중년인이 즉시 천장을 보며 지시했다.
"방금 나간 자가 누군지 알아 봐라."
천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중년인은 그런것엔 아랑곳없이 책상 서랍에서 두터운 책자를 꺼내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
"이렇게 된거다. 그래서 너희들이 판단해야 한다."
"정말 영지전이 벌어지는건가요?"
"그럴꺼다."
"그럼 엘튼 자작이 이기면 이곳도 엘튼 자작령이 되겠네요. 이전을 해도 변하는건 없을것 같아요. 이전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요."
마레의 손녀인 시리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영지전이 끝날때까지 달걀은 내가 모두 구입하겠다. 창고에 쌓아 두면 가져 갈테니까 보관해 둬. 그리고 이건 클린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아티택트다."
다음날 아침 양계장으로 돌아 와 설명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할때 마레가 닭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밤새도록 작업을 한것인지 통닭 수백마리가 창고에 쌓여 있었다.
"고생했다. 이걸 받아."
10골드를 건네 주자 마레가 펄쩍 뛰며 받지 못한다고 했다.
"고생한 사람들에게 알아서 나누어 주고 식량값이 오르게 될테니까 미리 사 두는게 좋을꺼야."
양계장에서 북쪽에 있는 엘튼 자작령으로 향했다. 사이킥 텔레포트로 계속 이동해 눈에 보이는 마을에 들러 엘튼 자작령인지 물어 보길 몇번만에 드디어 자작령에 도착했다. 영주성까지의 길을 물어 보고 다시 이동했다.
엘튼 자작성은 헤이젠 백작성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영지민들의 생활상도 어렵게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이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내성으로 몸을 숨긴채 곧장 날아 갔다.
엘튼 자작을 찾기 위해 내성 건물을 살피며 돌아 다니고 있을때 집무실로 보이는 곳을 찾았다. 노인 한명이 서류같은걸 살펴 보고 있었다. 집무실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드러 낼려고 할때 노크소리와 들려 오며 젊은 청년 한명이 들어 왔다.
"할아버지, 투레 마을쪽에 또다시 둑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또냐? 후우, 올해 농사도 망쳤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갈라시온 평원만 빼았기지 않았다면..."
"그만! 지난 일을 후회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단다. 네가 노력해 다시 되찾아야 해."
엘튼 자작과 손자로 보이는 둘의 대화에 끼어들 건덕지를 찾아내고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그 평원 내가 찾아 주겠다."
"헉! 누구신가?"
"으~앗! 누, 누구냐?"
갑자기 등장한 탓으로 화들짝 놀라는 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 미안. 놀래킬 생각은 없었어. 난 캐논 드라이브라고 하는 마법사로 자작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 온거다."
"허허, 마법사라면 정식으로 방문하면 만날수 있을텐데 왜 이런식으로 들어 온겐가?"
"남들이 들으면 않되는 말을 할려고 몰래 들어 온거야. 일단 앉아."
캐논이 빈 소파에 먼저 앉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엘튼 자작과 청년이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앞으로 캐논이 엘튼 자작에게 해 줄일에 비하면 그 정도쯤 대우를 받아도 된다.
"무슨 일로 찾아 왔는지 이제 말해 보게."
"자작, 헤이젠 백작성을 차지할 생각은 없어?"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차지할 생각은 있다는 말이지? 좋아. 그럼 나하고 거래를 하자."
질질 이야기를 끌 필요는 없었다. 이런 일은 여러가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거래라니? 자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덥석 거래부터 하자고?"
"그럼 나에 대한 정보부터 조금 말해 주지. 난 마도사다."
"마도사? 대륙에 단 두명만이 있다는 마도사중의 한명이란 말인가?"
누구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이가 마도사라고 말하면 믿는 놈이 멍청이다. 당연히 증거를 보여 줘야 한다.
"아니, 그 자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헬파이어!"
"으아악!"
"허억! 자, 자네..."
캐논의 오른손위에 작은 불덩어리가 생성되었다. 이렇게 작은 불덩어리라고 해도 아무나 시전할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무려 8서클 마법인 헬파이어다.
"이 마법이 뭔지 아나?"
"설마 그게 8서클 마법인 헬파이어란 말인가?"
"맞아. 일부러 작게 시전한거다. 한번 실험해 보겠나?"
"아, 아니네. 그만 해제하게."
엄청난 열기를 동반하는 헬파이어 탓으로 엘튼 자작과 청년의 이마에는 땀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헬파이어를 던져 버리면 응축된 마나가 모두 소모되기 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꺼지지 않는다.
"아직도 믿지 못하겠나?"
"...헬파이어 마법을 시전해도 알아 보는 사람은 없을걸세."
"그럼 자작이 알고 있는 고서클 마법을 말해봐."
"일단 자네가 굉장한 마법사라는걸 알았네. 그보다 무슨 거래를 하자는겐가?"
자작에게 헤이젠 백작령과 영지전을 해서 백작령을 차지하자고 설명해 주었다. 병력은 적어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용병으로 참전해 도와 주겠다고 설득했다. 대신 백작령을 차지한 후엔 외성밖의 양계장은 백작에게 냈었던 세금 그대로 내는 조건이다. 백작령의 소영주가 어떤 횡포를 부렸는지 설명해 주자 엘튼 자작은 입을 쩍 벌리며 믿기지 않아했다.
"자네 말은 잘 들었지만 영지전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네.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죽을지 생각해 봤나?"
"큰일에는 희생이 따르지만 병사들이 걱정된다면 한사람도 죽지 않도록 해 줄께."
"어떻게 말인가?"
"간단해. 내가 쓸어 버리면 돼. 그리고 자작군에게는 실드 마법을 걸어 주면 죽고 싶어도 죽지 않아. 어쩌다가 부상을 당하면 모두 치료도 해 줄께. 자작이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난 다른 영지로 가서 지금과 똑같은 거래를 제안할꺼야."
자작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청년은 무슨 말을 하고 싶는지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자작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정말 자네 조건이 양계장을 보호할려는것 뿐인가?"
"그래. 믿기지 않겠다면 마나의 맹세라도 할께."
"음, 좋네. 하지만 영지전을 할려면 명분이 필요하네."
그렇다. 영지전은 함부로 할수 있는게 아니다. 정당한 명분이 없는한 영지전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명분은 얼마든지 조작해 만들수 있다. 어떤 트집이든 상관없다. 백작령의 영지민이 자작령으로 들어와 물건을 훔쳐 간다든지 자작령 경계를 넘어 동물을 사냥한다든지 하는 사소한 핑계만으로도 영지전의 명분거리다.
"그런건 얼마든지 만들수 있잖아. 알아서 해. 되도록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 이름이 뭐냐?"
"컨스턴 엘튼입니다."
"나하고 같이 둑이 무너진 곳으로 가자. 앞으로는 홍수가 나지 않게끔 둑을 세워 줄께."
이건 서비스다. 자작의 손자라는 컨스턴을 데리고 무너진 둑을 세워 준다면 컨스턴은 자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것이다. 할아버지인 자작에게도 영지전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바람을 불어 넣을게 틀림없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할아버지?"
"그래. 다녀 오거라."
"다른 사람 눈에 띄이는건 좋지 않아. 모습을 숨긴채 이동할꺼다. 내 손을 잡거라."
손을 내밀자 컨스턴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자작, 다녀 올께. 컨스턴, 놀라지 말거라. 투명 마법으로 몸을 숨긴채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할꺼다. 방향이 어디지?"
"서, 서쪽입니다."
"인비저빌리티! 블링크!"
먼저 자작 집무실에서 창문쪽 하늘로 이동하는것과 동시에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다.
"으헉!"
"걱정마라. 절대 추락하진 않아. 서쪽은....저곳이군. 텔레포트!!"
두세번의 텔레포트로 흙탕물이 바다를 이루는 곳에 도착했다. 목책으로 둘러 쌓인 마을은 목책이 무너져 마을이 물에 잠긴채였다. 어디로 가지도 못한채 지붕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비는 그친 상태로 더이상의 피해는 없어 보였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강뚝 한곳이 허물어진 상태다.
- 노에스, 무너진 둑을 쌓아줘.
- 알겠어요.
대지의 정령인 노에스라면 간단하게 둑을 보수할수 있다. 노에스가 작업을 시작했는지 무너진 둑이 점점 땅에서 솓아 오르고 있었다.
"어어...둑이..."
"조용히 해. 정신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컨스턴의 입을 막고 노에스가 작업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광범위하게 무너진 둑이 아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둑은 처음보다 두배나 더 높게 쌓아졌다.
- 노에스, 고생했다.
노에스를 돌려 보내고 이번엔 엔다이론을 불러 마을로 들어간 물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했다. 엔다이론의 유도로 흙탕물이 엄청난 속도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이제 땅으로 내려간다."
목책안의 마을은 물론 바깥쪽의 밭들도 모두 진흙으로 뒤덮혀 있었다.
"이래서는 농사도 짓지 못하겠군요."
"걱정마. 전보다 더 큰 밭으로 만들어 줄께."
흙탕물이 완전히 사라지자 다시 노에스를 불러 진흙을 치우고 밭을 크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어, 어떻게 하시는겁니까?"
"비밀이다. 그냥 지켜만 보거라."
컨스턴은 캐논이 정령을 소환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바라 보기만 하는데도 절로 둑이 쌓아지고 밭들이 반듯하게 정리되자 컨스턴의 의문은 점점 심해져 갔다.
- 노에스, 마을의 진흙들도 모두 치워줘.
비록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홍수로 입은 피해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홍수에 떠 밀려간 마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어쩔수 없었다. 아마 죽었을것이다.
"소영주님, 이게 어떻게 된것입니까?"
"마법사님을 초빙해 왔다."
"감사합니다요."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해제하고 아래쪽으로 내려 가자 마을 주민들이 지붕에서 내려와 소영주에게로 달려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캐논은 마을 사람들이 알아 볼수 없게끔 로브의 후드를 깊숙히 눌러 쓴 상태다.
"이제 저희들은 어떻게 합니까?"
마을 사람들 모두는 침울한 표정들이었다. 홍수 피해는 복구되었지만 먹고 살 일이 막막한 것이다. 식량은 물론 종자까지 모두 물에 젖어 쓸모없게 되었다.
"창고로 안내해라."
"들었지? 촌장, 창고로 가자."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창고로 안내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식량을 건네 줄 생각이다."
마을 사람들은 200명정도다. 작은 마을이어서 아공간에 있는 식량을 조금만 풀어도 다음해 수확때까지는 문제없을것이다.
"이곳입니다."
소영주와 단둘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아공간을 열어 밀가루와 종자로 쓰일 탈곡하지 않은 밀을 꺼내 꽉 채웠다. 아공간을 본 컨스턴은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밀가루만 먹고 살수가 없을것 같아 달걀도 엄청나게 꺼내 놓았다.
"그, 그게 아공간입니까?"
"그렇다. 자아, 이 정도면 충분할꺼다. 문을 열어라."
창고문을 열자 창고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어벙벙하며 잠시후 환호성을 질러 대었다. 엄청난 식량이 눈에 들어 온것이다.
"촌장에게 설명해줘."
컨스턴이 촌장을 불러 창고안의 식량을 설명하며 공평하게 나누라고 지시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소영주을 칭송하며 굽신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지민에게 이런식으로 엄청난 식량을 나누어 주는 영지는 거의 찾아 볼수 없을 것이다.
"이제 돌아 가자."
"캐논님, 감사합니다."
"곧바로 자작 집무실로 이동한다. 손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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