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은천세가 소가주 천후(2)
144화.
변방에 해당되는 작은 지역인 하문은 거의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가끔씩 세가를 찾아 오던 황탕 포두가 사건을 맡은것 같았다. 은천 세가에 있는 할아버지는 태상 가주로 물러나고 아버지가 가주직에 올라서자 장남인 자신이 소가주가 되었다. 태상 가주로 물러났다고 해도 거의 할아버지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
"뭔가 알아 낸게 있어요?"
"범인은 한두명이 아니라는걸 알아낸 상태고 무림인이라고 짐작될뿐이죠."
"음, 둘러 봐도 되죠?"
"안내하겠습니다."
황탕 포두는 안내를 하면서 이곳에 죽은 사람이 있었다며 손짓으로 가르켰지만 사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체를 보고 싶은데요."
"그건 너무 흉물스러워 화장을 한 상태입니다."
중요한 단서가 되는 사체가 사라졌다. 사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설명을 들어야 했지만 묻지 않았다. 알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십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집들은 모두 불에 타 무너진 상태로 도로에는 피 한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저 혼자 둘러 봐도 될까요?"
"뭔가 알아 내시면 알려 주십시요."
황탕 포두가 멀어지자 즉시 노에스를 불러 범인들을 알아 보라고 했다. 이미 정령들을 소환하기엔 충분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체가 있었다는 곳으로 가서 사이킥 기억을 시전해 사체가 어떤 상태였는지 조사했다.
'...음.'
미이라를 보는듯했다. 몸이 쪼그라들어 앙상한 뼈가죽만 남아 있었다. 거미가 먹이감을 포획해 안쪽의 내용물을 쪽 빨아 들인듯한 모습과 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에스가 흔적을 따라 추적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포두님, 전 그만 가 보겠습니다. 모든것이 불 타 버려 아무것도 찾지 못했거든요. 이걸로 고생하는 분들과 목이나 축이세요."
황탕 포두에게 은전 한개를 건네 주자 입이 찢어지는 포두를 뒤로 하고 마을을 벗어나 노에스가 추적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범인들은 무인들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이동한 흔적으로 볼때 경공을 발휘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범인은 모두 세명이다. 천후도 경공을 시전해 빠르게 노에스를 따라 갔다. 범인들은 인적이 없는 산을 타고 이동했다. 얼마나 추적해야 할지 몰라 노에스에게 잠시 추적을 중단하라고 하고 세가로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만나 마을 상황을 설명해 주며 범인들을 추적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심해야 한다."
"걱정마세요. 며칠이 걸릴지도 몰라요."
추적을 중단한 곳으로 이동한 천후는 다시 노에스를 소환해 추적을 이어갔다.
'후우, 대체 어디까지 가는거야?'
벌써 3일동안이나 추적했다. 계속 북쭉으로 산을 타고 이동하는 놈들은 추적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긴 무이산인데.'
어느새 외할아버지 장원이 있는 무이산 근처까지 도달했다. 중국 10대 명산인 무이산은 36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99개의 거대 암석이 우뚝 솓아 있는 험한 지형으로 구곡계라는 큰강이 계곡 사이로 흐른다. 이런 지형 깊은 곳에 숨어 있다면 쉽사리 찾을수가 없을 것이다.
캉캉캉.
범인의 흔적을 쫒아 400미터 높이의 암석으로 되어 있는 가파른 천유봉으로 오르고 있을때 천유봉 정상쪽에서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빠르게 경공을 펼쳐 정상으로 올라가자 개방 방도들로 보이는 걸개들이 전신을 검은 복장으로 가린 두남자를 포위한채 공격하고 있었지만 암석으로 되어 있는 천유봉 정상은 평평하지 않은 탓으로 합공이 먹혀 들지 않고 있었다.
개방 방도들은 모두 6명이었지만 허리춤에 매달린 매듭으로 볼때 사결 제자가 가장 높은 지위로 보였으며 다른 거지들은 삼결이 한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이결 제자들이었다.
카캉.
타구봉을 검으로 막은 검은 복면의 두명은 서로 등을 맞대고 개방 걸개들의 공격을 막으며 간간히 반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 경지로 볼때 일류 상급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일류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경지는 아니다.
중간계에서 소드 익스퍼트가 하,중.상.최상등급으로 나눈다. 중원에서는 그런식으로는 나누지 않지만 엄연히 심한 차이가 난다. 개방 사결 제자는 고수로 보이지만 좀처럼 복면인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에 천후가 갑자기 등장하자 잠시 소강 상태가 되었다.
"자네는 누군가?"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사결 제자인 중년 걸개가 경계를 하며 물어 왔다.
"하문의 은천 세가 소가주인 은천후입니다. 세가쪽 마을에 사건이 벌어져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 중에 이곳까지 온것입니다. 앗! 도주합니다."
캉!
"큭!"
사결 제자인 중년인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틈을 이용해 복면인들이 다른 개방 방도를 공격하고 천유봉아래로 도주하고 있었다. 무공 실력은 그다지 높지 않는것 같았지만 경공은 대단했다. 절벽인 천유봉 아래로 달려 조금 떨어진 천유봉보다 더 큰 뾰족한 바위가 마주보고 있는 계곡 아래로 도주하는 놈들을 개방 방도들이 즉시 추격해 갔다.
개방 방도들의 뒤를 따라 가는 천후는 자신이 놈들을 앞질러 가서 잡을수도 있었지만 개방 방도들에게 맡겨 두었다. 도주하는 놈들 뒤에는 노에스가 따라 붙어 어딜 가더라도 알수 있다.
좁은 절벽의 양쪽 바위를 번갈아 차며 경공을 펼치는 개방 방도들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놈들은 어디로 도주했는지 눈에 들어 오지도 않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다. 빠른 속도로 추적하던 개방 방도들이 놈들의 흔적을 찾기위해 주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제기랄! 빨리 찾아라."
"분타주님, 이쪽입니다."
흔적을 발견했다는 말에 앞으로 몸을 날리는 사결 제자는 분타주였다.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흔적을 찾아 추격했지만 바위로 둘러 쌓인 곳에서 흔적을 놓쳤다.
캉.
화가 난듯 분타주가 애꿎은 바위를 타구봉으로 치고는 씩씩거렸다.
"빌어먹을! 주변을 샅샅이 뒤져."
개방 방도들이 흩어질려는 순간 천후가 입을 열었다.
"놈들은 저쪽으로 들어 갔어요."
바위를 손으로 가르켰다. 겉모습은 바위지만 틀림없이 저 안으로 들어 갔다.
"뭐라고? 어떻게 바위안으로 들어 간단...그렇군. 진법이군."
분타주는 난처해했다. 진법은 전혀 모르는듯했다. 천후도 진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노에스가 이미 놈들이 들어간 곳에 들어가 실시간으로 알려 주고 있었다. 놈들은 지금 동굴안에 있으며 동굴 깊숙한 곳엔 구울이 있다고 알려 왔지만 중원에선 강시라고 부른다고 노에스에게 알려 주었다.
"자넨 진법을 아는가?"
"모르지만 파괴하면 되지 않을까요?"
"파괴? 그게 쉬울것 같나?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진법에 따라 파괴가 되지 않는 진법도 존재하네. 어떤 진법인지도 모른채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이 놈들이 나올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네."
진법을 만들려면 중심과 그것을 서로 연결하는 보조가 필요하다. 보통 구궁과 팔괘를 조합해 자연적인 물건을 쌓아 올려 공간을 왜곡시켜 환상을 보여 주는 것으로 진법에는 생문과 사문이 존재하지만 진법의 축이 되는 곳을 파괴하면 진법은 무너진다.
당연히 축이 되는 곳은 어느 방향에 얼마나 먼곳에 있는지 겉으로는 전혀 알수없다. 진법의 축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충분히 파괴할수 있지만 어떤 진법은 공격을 튕겨 내거나 흡수해 버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놈들과는 왜 싸우고 있는 겁니까?"
"요즈음 복건성에 실종 사건이 끊이질 않았네. 조사를 하던중에 무이산 기슭에 수상한 자들을 발견했다는 보고에 무이산을 뒤지고 있을때 놈들을 발견한거네. 복면을 뒤집어 쓰고 있는게 캥기는 것이 많은 놈들이 틀림없네. 은천 세가쪽에도 실종 사건이 벌어진건가?"
"아니요. 작은 마을 사람들이 미이라가 되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해 범인들을 추적하고 있는 중입니다. 흔적이 무이산쪽으로 이어져 있었거든요."
"음, 미이라라니..."
뭔가를 생각하는 분타주에게 진법을 파괴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안으로 들어가 본다고 했다. 분타주는 함부로 들어 가면 생사를 장담할수 없다며 말렸지만 바위안으로 뛰어 들었다. 진법안은 자욱한 안개가 낀것처럼 한치앞도 분간할수 없을 정도였다. 기(氣)의 흐름을 읽어 보았지만 전혀 알수 없었다. 왜곡되어 있는 탓이다.
- 노에스, 돌기둥이나 나무 기둥같은게 쌓여 있는곳을 파괴시켜줘.
잠시후 진(陳)이 출렁거리며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출렁거리자 순식간에 안개가 사라지고 진법이 깨지며 동굴 입구가 드러났다. 분타주와는 불과 다섯 걸음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자, 자네...어떻게 한건가?"
진법이 사라지고 천후가 서 있는 모습에 놀란듯한 분타주였다.
"운이 좋았죠. 마침 공격한 곳이 진법의 중심축이 되는 곳인지 파괴가 되더라고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 보죠."
앞장서 동굴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멍한 분타주가 정신을 차리고 따라 왔다. 동굴안은 어두워지자 개방 방도 한명이 웃옷을 벗고 나뭇가지에 둘둘 말아 불을 댕겼다. 횃불을 만들어 동굴 깊숙한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미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천후는 가장 앞에서 개방 제자들을 이끌었다.
"천천히 가세. 안에 무슨 장치를 해 놓았는지 알수가 없어 조심해야 하네."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횃불이 꺼져 갈 무렵 다른 개방 제자가 옷을 벗어 횃불에 말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조심하십시요."
검을 뽑아든 천후는 빠르게 나아갔다. 분타주가 바짝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점점 동굴이 밝아져 왔다. 조금 넓은 광장이 드러났다. 광장에는 세곳으로 통하는 통로가 뚫려 있었다.
"어느쪽으로 가야 하나?"
"뭔가 접근합니다."
뚫려 있는 중앙 통로쪽에서 강시 세구가 등장했다. 중원에서 강시는 처음 접했다. 드러난 목과 얼굴은 물론 손까지 모두 검었다.
"가, 강시라니...조심하게."
강시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철강시(鐵彊屍), 혈강시(血彊屍), 독강시(毒彊屍), 생강시(生彊屍)등등의 강시가 존재한다. 강시는 원래 전쟁터에서 죽은 자들을 고향을 돌려 보내 장사를 치루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일부 무인들이 강시를 개조해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시 제조는 금기로 정해져 있어 제조한 자는 무림 공적으로 몰려 버린다.
"어떤 강시입니까?"
"모른다네. 강시를 조종하는 놈이 있을걸세. 그놈을 찾아 보게."
오른쪽 통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강시 한구와 그 뒤쪽에 세명이 서 있다. 다른 통로에도 강시가 있지만 사람이 있는 곳은 오른쪽 통로밖에 없었다. 세놈중 두놈은 복면을 한 도주한 놈으로 다른놈이 강시를 조종하고 있는것 같았다. 청송이었을때 강시는 이미 경험해 보았다. 어슬렁거리며 접근하는 강시는 느렸다. 일반인도 충분히 피할수 있을 정도였다.
캉.
개방 방도 한명이 강시를 공격했다. 타구봉으로 머리통을 박살낼 기세로 내려 쳤지만 쇳소리가 들려왔다. 공격받은 강시도 아무렇지도 않는듯 팔을 뻗어 공격한 자를 잡을려고 했지만 느린 움직임으론 무인의 몸을 잡을수가 없었다.
캉캉캉캉!
세놈의 강시를 집중 공격했지만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철강시일까요?"
"음, 그런것 같군."
"한놈은 제가 공격해 볼께요."
이번의 강시는 얼마나 튼튼한 놈인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휘익.
가가가각!
신법을 시전하며 한놈의 목을 베었지만 마치 쇠를 긁는듯한 소리만 들려왔다. 강시의 목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이번엔 내공을 주입해 다시 쇄도해 빠르게 목을 그었다.
가각!
한번만으로는 목을 자를순 없었다. 강기를 사용하면 어떨지 궁금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강기 사용은 자제해야 했다. 개방 무인들 앞에서 강기를 선보인다면 자신에 대한 소문이 중원 전체로 나 버릴것이다.
가악!
강시 목 똑같은 자리에 다시 검기를 담은 검으로 긋자 베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시의 목에도 변화가 있었다. 결국 강시는 5번의 목을 그어 떼어 낼수 있었다.
"똑 같은 자리를 공격해."
분타주가 유심히 지켜 보고 있었는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집중 공격을 받은 강시들은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강시를 박살내기 위해 개방 무인들이 달려 들었다. 그럴때 세곳의 통로쪽에서 새로운 강시들이 등장했다. 새로운 강시들은 모두 붉었다. 얼굴은 물론 입고 있는 옷까지 붉은색이었으며 개방 제자들보다 더한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조심하거라. 혈강시인것 같다."
철강시들이 뻗뻗한 자세로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혈강시들은 마치 살아 있는 인간처럼 움직였다.혈강시라는 말에 개방 제자들이 긴장하며 함부로 달려 들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놈은 자네가 맡게."
세무리로 나누어 한놈씩 상대했다. 천후와 분타주가 한놈씩 맡고 남은 한놈은 개방 방도들이 합공했다. 혈강시는 방탄력이 놀라울 정도였다. 철강시는 쇳소리가 들렸지만 혈강시는 '텅'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봉을 튕겨 버리는게 마치 고무공같은 살가죽이었다.
검기를 머금은 공격에 붉은 선이 그어졌지만 곧바로 재생되는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인에 비하면 움직임이 빠르지 않은게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저녁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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