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천후, 황실로 가다(1)
181화.
"지금 가면 세가에는 언제 또 찾아 올지 모른다."
"백부님, 반드시 찾아 오십시요."
가주에게 확답은 주지 않고 일단 남창으로 이동했다. 남창에서 서북쪽으로 이동하면 무림맹이 나오고 북동쪽으로 이동하면 황제가 있는 북경으로 갈수 있다. 북경으로 가는 길은 모르는 상태였지만 무조건 북동쪽으로 사이킥 텔레포트했다. 누구의 안내를 받으며 갈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체되는 탓으로 공간 이동으로 가는게 훨씬 빠르다.
'음, 여기가 황궁인가?'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 쌓인 전각들이 수백채는 되어 보였다. 아래쪽에는 관복을 입은 자들이 바쁘게 돌아 다니고 있었다. 황궁이 틀림없어 보였지만 이렇게 많은 전각들중에 황제가 어느 전각에 있는지 전혀 알수 없었다. 누군가를 납치해 알아 보는 수 밖에 없을것 같았지만 아무나 납치할순 없어 전각들중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적은 곳을 찾았다.
관복을 입은 자들은 제외다. 환관을 납치하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궁녀들은 황제의 시중을 들지 않는다. 환관이 황제의 시중을 들기 때문에 환관을 찾아야 했다. 실제로 환관을 본적이 없어 어떤 자가 환관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수염이 없는 자를 찾아 보았다. 현대의 TV를 보면 수염이 없는 자들이 환관으로 등장한다.
'저 놈으로 하자.'
중년인으로 보이는 자는 수염이 없는 맨얼굴이었다. 저 자가 환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잡아 물어 보면 알것이다. 혼자서 어딜 가는지 총총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주변에 지켜 보는 눈이 없는지 사이킥 서치로 훑으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천후는 사이킥 사일런스를 시전한후 사이킥 홀드로 놈을 구속한후 뒤에 내려섰다.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게 된 놈은 당황한듯 불안에 떨고 있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황제는 어디에 있는거냐?"
"누, 누구냐?"
즉시 중년인의 혈을 꾹꾹 눌러 분근착골(分筋錯骨)을 시전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근육과 뼈가 뒤틀리고 있었다.
뚜둑.
"크아아아!!!"
비명 한번에 즉시 분근착골을 멈추고 다시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는 놈에게 다시 시전했다. 이번엔 한참동안이나 그냥 놔두었다.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황제는 어디냐?"
"거, 건청궁에 있습니다."
제대로 답한 놈에게 사이킥 리커버리를 시전해 주고 안내를 하라고 했다. 몸이 움직이게 된 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천후의 모습은 찾을수가 없을 것이다. 중년인은 내공도 없는 자였다. 내공이 있다고 해도 무리일것이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놈에게 사이킥 클린을 시전해 주자 순식간에 땀은 물론 흠뻑 젖어 있었던 옷도 보송보송하게 변해 버렸다. 갑자기 달라진 몸과 옷을 알아 차린것인지 앞으로 걸어 가면서 옷과 얼굴을 매만지는 놈에게 질문을 했다.
"넌 환관이냐?"
"그,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를 만날려는 이유가 뭔지요?"
"해를 끼칠려고 만날려는게 아니다. 할말이 있어 찾아 온거다."
"무, 무림인이십니까?"
환관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더라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무림인밖에 없었다.
- 허튼 짓을 하면 곧바로 죽여 버리겠다.
앞쪽에서 젊은 청년 한명이 걸어 오고 있었다. 앞서 가는 환관이 무슨 신호를 보낼지 몰라 미리 경고를 해 두었다. 청년은 조금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걸어오며 환관이 깊숙이 머릴 숙이자 아무런 말도 없이 제갈길을 가고 있었다.
"방금 지나간 자는 누구냐?"
"황제 폐하의 장남인 주상락 전하십니다."
"화가 난듯 한데?"
"당연한 일입니다. 황태자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황제 폐하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명나라 13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 신종(神宗) 주익균은 장남인 주상락이 아니라 삼남인 주상순을 황태자로 삼고 싶어 했다. 조종에서 동림당과 비동림당간에 당쟁이 벌어져 힘이 없는 황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국정을 내팽겨치고 칩거하자 동림당이 모든 권력을 잡고 휘둘러 나라가 개판이었다.
보다못한 주상락의 할머니인 자성황태후(慈聖皇太後)의 지지로 겨우 황태자 자리에 책봉된 주상락이었지만 황제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황태자를 암살할려는 시도까지 있었다는 말에 저렇게 혼자 돌아 다녀도 되는지 의문이었다.
"저 건물이 황제 폐하의 침소입니다. 전 더이상 갈수 없습니다."
"네가 안내해 주었다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테니 걱정말고 가 보거라."
황궁에 누가 침입했다는걸 알리지 말라는 것을 빙 둘러 말해 주었다. 자신의 목이 달아 나지 않을려면 입을 닫고 있어야 할것이다. 황제의 침소라는 건물 입구에는 금의위(錦衣衛) 두명이 경비하고 있었다. 그들 둘은 고수였지만 천후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 가는걸 감지하지도 못했다.
담장 너머 안쪽 곳곳에도 금의위가 숨어 암중으로 황제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알아 차리지 못했다. 황제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방문앞에도 금의위가 양옆에 서 있었으며 환관으로 보이는 자도 두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황제라고 짐작되는 노인은 거대한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것인지 사이킥 스캔으로 조사를 해 보았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속이 많이 상한 상태지만 무엇보다도 노환이 가장 큰원인이었다. 이런 황제가 무림맹을 해체할려고 나대진 않을것이다. 무림맹 해체를 주장하는 놈은 다른 자인것 같았다. 자신을 안내한 환관은 동림당이라는 단체가 조정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나 황태자가 주범인것 같았다. 황제를 내버려 두고 황태자를 찾아 갔다. 환관하고 스쳐 지나갔을때의 복도로 이동한후 실라이온을 소환해 황태자를 찾으라고 했다. 실라이온이 알려준 곳으로 이동하자 거대한 전각에 대낮부터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황태자였다. 황태자를 호위하는 금의위 두명이 문앞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사이킥 블링크로 안으로 이동해 사이킥 사일런스를 시전한후 황태자에게 말을 걸며 모습을 드러냈다.
"혼자 마시는건 적적하지 않나?"
"누, 누구냐?"
기겁한 황태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크게 외쳤다. 문밖에 있는 금의위가 소리를 듣고 들어 올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지만 이곳은 이미 무슨 소리를 지르더라도 절대로 밖으로는 새어 나가지 않게끔 소리를 차단해 두었다.
"그냥 앉아. 아무리 소리쳐도 밖에서는 들리지 않아."
"무, 무림인? 천박한 무림인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숨어 들어온게냐?"
"닥쳐! 뭐? 천박한 무림인이라고? 당장 네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줄까? 그러면 황제의 의도대로 삼남인 주상순이 황태자 자리에 오르겠지? 그렇게 해 줄까?"
"이익! 감히...감히..."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는지 황태자는 붉어진 얼굴로 '감히'라는 말만 내뱉으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황태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빈의자에 먼저 앉아 탁자위에 있는 술병을 집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끄으윽! 좋은 술이네. 황태자도 한잔 받아. 술은 대작 상대가 있어야 마실 맛이 나지 않겠어."
아직도 화가 가라 앉지 않았는지 울그락붉그락한 얼굴로 천후를 뚫어지게 바라 보기만 했다. 황태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수도 없다는걸 알고 있어서였다.
"무슨 일로 찾아 온거냐?"
"무림에 관한 일이다.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였다. 그런데 요즈음 황실에서 무림맹을 해체하라고 압박하고 있더군. 누가 그런 지시를 한거냐? 골골대는 황제는 아닌것 같은데 너냐?"
"감히 천자이신 황제 폐하께 무슨 망말이냐? 죽고 싶은게냐?"
"하하하, 넌 황제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총애는 커녕 미운 털이 박혀 황제를 원망하고 있는건 이미 다 알고 있어. 걱정마. 황제는 길어도 한달을 버티지 못해."
정곡을 찌른것인지 황태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런 황태자에게 재차 누구 지시로 무림맹을 해체하라고 압력을 불어 넣고 있는지 말하라고 했다.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아마 동창 놈들 짓일꺼다."
"동창? 동림당이 아니라 환관들 집단인 동창짓이라고?"
"그럴것이다."
처음 이곳에서 환관은 동림당이 모든 권력을 잡고 있다도 했다. 당연히 권력을 잡고 있는 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환관이 거짓말을 한것 같았다.
"동창이 왜 그런 짓을 하는거냐?"
"그건 모른다."
동창놈을 족쳐야 할것같았다. 황제가 칩거한 이상 권력을 휘두르는건 동림당이 아니라 동창이란걸 알게 되었다. 환관놈이 황제의 눈을 가리고 마음대로 설치고 있는것이다.
'응?'
누군가 급히 다가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이 가벼운게 무공을 익힌 자다. 급히 사이킥 사일런스를 해제하며 천장으로 숨어 들었다. 황태자가 과연 자신에 대해 말하는지는 알수 없지만 일단 천마은형술(天魔隱形術)을 사용해 숨기로 했다.
천후가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황태자는 곧바로 밖에서 위 태감이 찾아 왔다는 말에 어떻게 된것인지 알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굉장한 고수가 틀림없었다. 위 태감은 동창의 화경 고수다. 황실에는 동창에 두명의 화경 고수와 초절정 고수, 그리고 금의위에 두명의 초절정 고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화경 고수들로 인해 동창의 입김에 가장 강한 현실이다.
"위 태감이 왠일인가?"
"황실 내부에 불순한 자가 침입해 왔다는걸 알려 드릴려고 온것입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방안을 살펴본 위 태감은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듯 경비를 튼튼히 하라고 하며 방을 나갔다. 제 맘대로 들어와 허락도 없이 나가는건 무례한 행동이지만 동창의 위세를 생각하면 어쩔수가 없었다. 화가 나더라도 속으로 꾹 눌러 삭일수 밖에 없었다. 동창에 잘못 보이면 황태자 자리도 위험하다.
"완전 개판이네. 고자 놈이 황태자 보기를 물 보듯 하는데도 화도 나지 않나?"
"...후우...지금 황실은 동창놈들 세상이네. 그런데 자네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어디에 숨어 있었길래 화경인 위 태감에게 들키지도 않았는지 궁금하네."
"방금 놈이 화경이라고?"
뭔가 이상했다. 화경치고는 내공이 너무 적었다. 소림사의 무초 대사나 자신의 동생인 천추에 비하면 내공이 너무 적어 화경이라기 보다는 초절정이라고 해야 한다.
"동창에서 화경 고수라고 했네만."
"초절정일꺼다."
"그런것까지 알수 있는건가?"
"쉬운 일이야. 나하고 거래를 하지 않겠나?"
이제 곧 죽을 황제를 대신해 황태자를 자신 편으로 끌어 들이면 황제 자리에 오른 황태자는 자신과의 거래를 이행할수 있을것이다.
"거래? 어떤 거래를 말하는건가?"
"동창놈들 때문에 황제나 황태자는 허수아비 신세지? 나하고 거래를 한다면 죽여 달라는 동창 놈들을 모조리 죽여 줄께."
"어떤 거래인가? 무림맹을 핍박하지 않는다는 거래인가?"
"그렇다. 황실에서 무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거다. 아, 그리고 괜찮은 도자기나 서화 몇점도 덤으로 받는 조건이다."
황태자는 손해 볼것이 전혀 없는 거래다. 자신이 황제 자리에 오르더라도 동창 놈들이 설치는한 지금 상황이 계속 될것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동창 대가리 놈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황제는 권력을 잡을수 없는 허수아비 신세다.
"음, 동창을 처리하면 그 다음엔 동림당이 설칠것이네."
"그럼 동림당 놈들도 처리해 주지."
"자네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보여 주게."
"좋아, 그럼 가장 먼저 죽이고 싶어 하는 놈이 누군지 말해."
황태자는 즉시 방금 방안으로 들어온 위 태감이라고 했다. 위 태감을 처리하는걸 보고 거래를 할지 판단한다는 말에 실라이온에게 위 태감을 찾으라고 지시하고는 방을 나갔다. 위 태감이라는 놈은 자신을 찾고 있는지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며 황제가 있는 궁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없이 심검을 시전했다.
"컥!"
놈이 쓰러지자 노에스를 시켜 놈의 시체를 땅속으로 끌어 들여 숨기라고 했다. 이제 위 태감은 실종된 상태다. 위 태감을 죽였다는 증거로 노에스에게 말해 호패를 가져 오라고 지시해 품속에 집어 넣고 황태자를 찾아 갔다. 위 태감은 혼자 걸어 가고 있어 지켜 보는 눈도 없어 쉽게 처리할수 있었다.
"응? 왜 다시 온건가?"
"받아. 위 태감 호패다."
"뭐라고? 벌써 처리했다고?"
호패를 꼼꼼히 살핀 황태자는 믿기지 않아했다. 위 태감을 죽이지 않았다면 호패를 가져 올수도 없었을것이지만 너무 빨리 돌아온 탓으로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놈은 땅속에 흔적도 없이 묻어 놓았다. 이제 거래를 할꺼냐?"
"자, 잠깐만. 정말 위 태감이 죽었는지 확인해도 되겠나?"
"물론이다. 당장 가서 확인시켜 주마."
천후는 황태자 뒤를 따라 가며 전음으로 방향을 알려 준다고 하며 황태자를 앞세워 놈이 묻혀 있는 곳으로 갔다. 황태자 호위인 금의위는 대동하지 않은채였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후 위 태감의 시체를 땅위로 끌어 올려 황태자에게 직접 보여 주었다.
"정말이군. 검이 있으면 주게."
황태자가 무슨 일로 검을 찾는지 모르지만 아공간에서 검 한자루를 꺼내 주자 황태자는 검을 뽑아 들고는 죽은 위 태감의 목을 몇번이나 처 버려 잘랐다. 놈에게 맺힌 한이 많았던것 같았다.
"헉헉헉!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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