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혈투(2)
4화.
하지만 털복숭이 놈들은 뒤로 도주하듯 물러 서며 상대하지 않았다. 점점 둔해지는 몸에 초조함과 당황감이 교차하며 움직일수록 둔해져 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등쪽에 맞은 무언가가 원인이라고 짐작되었다. 캐논은 몬스터에 대해 잘 모른다. 지금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은 코볼트라는 키가 작은 몬스터들로 온몸이 털로 뒤덮혀 있으며 마비침을 사용해 주로 사냥을 한다. 캐논의 등에는 마비침이 박혀 있는 상태다. 움직이지 않는 캐논을 향해 두놈이 달려 들었다. 몸이 굳어 더이상 움직이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면에서 달려 드는 놈이 나무창을 가슴에 박을려고 찔러왔다. 그런 놈을 향해 이를 악물고 천천히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 나무창이 가슴에 도착했을즈음 롱소드가 먼저 놈의 가슴에 박혀 버렸다.
"끼악!"
놈이 괴성을 지르자 뒤쪽에서 달려들든 놈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롱소드가 가슴에 박힌채 축 늘어져 있는 놈 때문에 롱소드를 들고 있는 손까지 마비되기 시작하자 롱소드를 놓쳐 버렸다. 이젠 거의 움직일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몸속의 마나를 움직여 마비된 몸을 움직여 볼려고 했지만 소드 익스퍼트도 아닌 이상 마나는 움직일수 없었다.
'이대로 죽어야 하나...'
그럴순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드라이브 백작가를 재건한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된다. 뒤쪽의 놈은 앞쪽으로 이동하며 달려들지 못하고 지켜 보고 있었다. 완전히 움직이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달려 들것이다. 놈이 주춤거라고 있을때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였다. 꿈속에서 보았던 마족이라는 노인이 말한 사이킥이라는 힘이 생각났다. 사이킥은 정신적인 힘이라고 들었다. 노인은 무려 마왕과도 대등하게 싸웠다고 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할수 있는 일이라곤 사이킥이라는 힘을 발휘하는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움직여! 움직여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잘려 나간 나무창을 보며 움직이라며 강한 정신력을 보냈지만 나무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번에 성공할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휘릭!
딱.
계속 지켜 보던 놈이 들고 있던 나무창을 던졌다. 나무창은 이마에 맞았지만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전신이 마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움직일수 없다는걸 확신했는지 놈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 들었다.
'움직여! 제발 움직여라!'
꽈직.
눈앞에서 펄쩍 뛰어 오른 놈은 어깨를 깨물었다. 그러자 힘에 밀린 탓으로 뻣뻣하게 굳은 상태 그대로 뒤로 넘어질수 밖에 없었다.
쿵.
'커억!'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뒷통수의 충격으로 고통은 없었지만 따뜻한 느낌에 머리가 깨진것 같았다. 놈은 어깨를 물어 뜯고는 득이양양한 표정으로 상의를 찢어 발기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닥쳐 오자 머리가 화끈해지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가 몰려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에서 피가 흘러 나오자 마비된 어깨가 풀린듯한 느낌이었다.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끼야아~!!"
촘촘하게 박혀 있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캐논의 목을 물어 뜯을려고 펄쩍 뛰어 달려 드는 놈이었다. 목을 물어 뜯긴다면 최소한 사망이다.
'움직여!!'
꽈직.
"끼오아아~!!"
달려들던 놈의 눈에 손가락이 박혔다.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뿌리친 놈은 눈을 감싸쥐고는 뒤도 돌아 보지도 않고 숲속으로 도주해 버렸다. 겨우 손을 들어 올린 캐논은 달려 드는 놈의 눈에 정확히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목숨은 없다고 고도로 집중했던것이다. 다행히 물린 어깨쪽에 피가 돌기시작하자 겨우 오른손을 들어 올릴수 있었다.
"헉헉헉! 으으..."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비된 몸이 움직일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야 했다. 피가 흘러 나오면 마비가 풀린다는 사실에 주변을 더듬어 나무창을 거머 쥐었다. 도주한 놈이 지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꽈직.
"컥!"
주저없이 왼쪽 어깨에 나무창을 박았다. 그리고 양쪽 허벅지에도 피가 나올 정도로 박아 넣었다. 예상했던대로 피가 흘러 나오자 서서히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다. 상반신을 일으켜 포션을 꺼내 상처 치료를 하고는 나머지는 마셨다. 남은 포션 2병을 모두 사용해 버린 탓으로 이제 남은 포션은 한병도 없는 상황이다.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답이 없다.
비틀.
지끈거리는 머리와 아직 완전히 마비가 풀린게 아닌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현기증이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움직여 롱소드를 주어 들고는 이곳을 벗어 나기 위해 움직였다. 20미터정도 움직였을때였다.
타타다탁!
숲속에서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오며 눈에 손가락이 박혀 도주했었던 털복숭이 놈이 뛰쳐 나왔다. 무언가에 쫒기는듯 뒤를 돌아 보며 달려오는 놈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이었다. 놈이 뛰쳐 나온 수풀이 흔들리며 작은 몬스터 10여마리가 곧바로 바짝 뒤를 쫒고 있었다. 툭 튀어 나온 입, 머리의 절반 정도는 될법한 둥근 귀, 체구는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놈들이었지만 날카로운 이빨이 입안 전체에 나열되어 있었다.
"커하앙!"
엄청나게 빠른 놈들이었다. 털복숭이 놈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고는 등에 올라 타자 바닥을 뒹군 털복숭이에게로 다른 놈들이 일제히 달려 들어 물어 뜯고 있었다. 축 늘어진 털복숭이는 죽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꺄르릉."
놈들이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는 캐논을 보고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거리고 있었다. 놈들을 자극하지 않게끔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캐논은 제발 자신에게 달려 들지 않기를 바랬다. 캐논보다 놈들은 주변에 늘려져 있는 털복숭이 사체들에게 관심이 더 많은것 같았다. 놈들과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자 놈들은 털복숭이 사체에게 달려 들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즉시 아래쪽 강가로 이동해 강물에 너덜너덜해진 옷과 몸을 씻었다. 피가 묻어 있는 상태로는 이동할수 없기 때문이다.
팡팡.
젖은 옷을 털어 내고 입고 강가를 따라 이동할때 털복숭이 사체에게 달려 들어 뜯어 먹든 몬스터놈들이 강가로 어슬렁거리며 접근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캐논은 경계를 하며 천천히 숲속으로 들어 갈려고 했다. 놈들은 캐논을 슬쩍 바라 보기만 할뿐 쫒아 오진 않았다. 목이 마른것인지 강물을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놈들이 언제 추적해 올지 몰라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학학학."
숲이 가빠왔지만 될수 있는한 먼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빠르게 이동한 탓으로 목이 말라왔다. 강가로 이동해 마른 목을 축이고 근처 나무 아래에 앉아 마법 주머니에 있던 고기를 꺼내 씹어 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배를 채우자 다시 목이 말라왔다. 마법 주머니에 물은 넣을순 없다. 고체 덩어리는 넣을수 있지만 액체는 넣을수 없는 것이다. 물 주머니가 필요했다. 먹다 남은 고기 가죽이 생각났다. 급히 놈의 사체를 꺼냈다.
토막난 상태로 들어있는 놈의 사체는 아직 가죽을 벗기지 않은 것이 있었다. 길쭉한 몸통의 가죽을 벗겼다. 가죽은 말려야 물주머니로 사용할수 있다. 오늘은 더이상은 이동하지 않고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무더운 날씨탓인지 저녁 무렵이 되자 가죽은 바짝 말랐다. 준비해 둔 덩쿨로 한쪽 끝을 묶고 아래쪽의 삐져 나온 부분을 위쪽으로 접어 다시 묶었다. 이중으로 묶어 놓아 물이 새어 나갈 염려는 없었다. 강에서 물을 가득 채우고 밤을 지낼 나무위로 올라갔다. 나무위에서 잠을 자는건 불안했다. 전번처럼 습격을 당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이킥이란걸 연습하자.'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나뭇잎을 따서 손바닥위에 올려 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움직여.'
나뭇잎을 움직이는 연습이다. 처음부터 성공할리는 없었다.
꾸벅.
'헛!'
화들짝 놀라 깨어 났다. 사이킥을 연습하다가 어느새 잠이 든것이었다. 물주머니의 물로 얼굴을 씻었다.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다시 나뭇잎을 상대로 사이킥 연습을 했다. 자다 깨길 반복한 밤이었다. 설잠을 잔탓으로 몸이 찌뿌둥했다. 나무 아래로 내려가 마나 연공을 하고 다시 나무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아침에는 잠을 자고 이동은 오후에만 하고 밤에는 사이킥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하루에 이동할수 있는 거리는 짧아 지겠지만 생존이 최우선이었다.
"저건..."
이동중에 노란 열매를 발견했다. 엄청난 크기의 나무위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작은 열매는 녹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노란색 열매를 주워 들어 냄새를 맡아 보고 조금 먹어 보았다.
'달다.'
전에 먹은 열매와는 달리 엄청나게 달았다. 녹색 열매는 엄청나게 떫었다. 노란색 열매를 주워 마법 주머니에 담고 나무위로 올라가 긴 나눗 가지로 열매를 후려쳐 떨어 뜨렸다. 노랗게 익은 열매를 될수 있는 한 많이 마법 주머니에 채워 넣고 열매를 씹어 먹으며 이동했다.
꾸루룩.
'윽!'
갑자기 배가 엄청나게 아파왔다. 바지를 끌어 내리고 땅바닥에 앉자마자 '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냄새를 동반한 액체가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설사였다.
"제기랄."
귀족답지 않게 거친 말이 튀어 나왔다. 다시 이동할려고 몇걸음을 옮기자 또다시 배가 아파왔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콕콕 찌르는듯한 아픔에 다시 바닥에 주저 앉아 설사를 했다. 배가 너무 아파 제대로 이동할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냄새나는 이곳에 계속 있을수도 없었다. 설사를 반복하며 이동했다. 뒷구멍이 헐어 버린 탓으로 엉거주춤 걷는 모양새가 귀족답지 않았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 하루밤을 지낼 나무위로 올라 가기도 힘들었다. 설사는 겨우 멈추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으로 뱃가죽이 달라 붙을 지경이었다. 다시 설사가 시작될까봐 아무것도 먹을수 없었다. 뒤바뀐 낮과 밤은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다. 밤에는 더이상 꾸벅꾸벅 졸지 않았다.
'움직여! 제발 움직여라!!'
요즈음은 사이킥 연습을 할때면 항상 가벼운 두통이 몰려왔다. 나무위에서 아래로 추락하지 않게끔 묶었던 덩쿨도 사용하지 않았다. 잠을 자면 추락한다고 스스로 위기감을 조성해 정신을 집중한것이었다.
흔들.
'어? 움직였다.'
달빛 사이로 드러난 손바닥위에 있는 나뭇잎이 흔들거린것을 분명히 보았다. 바람이 조금 불고 있었지만 바람의 영향은 아니었다.
'됐다.'
흥분되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엔 좀전보다 더 많은 두통이 밀려오며 나뭇잎이 흔들거렸다.
벌떡벌떡.
나뭇잎이 흔들거리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공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른다. 이 감각을 잊어 버리기 전에 밤새도록 연습을 했다. 두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지만 두통이 심해질수록 나뭇잎도 더 많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집중력을 흩뜨리면 머리속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며 무언가가 머리속으로 들어 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느낌이 녹인 구슬에서 흘러 들어 오는 힘이 아닐까!?'
확실히 알순 없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자신의 몸속으로 구슬이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과연 구슬이 몸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날이 밝자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 몸을 움직이며 마나 연공을 했지만 엉덩이가 아픈 탓으로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꼬르륵.
어제부터 먹은게 전혀 없어 뱃속에서 천둥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물로 조금 배를 채우고 노란색 열매 한개를 깨물며 이동했다. 설사를 한탓으로 너무 많이 먹을순 없었다.
'윽!'
또다시 배를 쥐어 짜는듯한 고통에 바닥에 주저 앉아 설사를 했다. 노란색 열매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외에 달리 먹은건 없었다. 왜 이제야 알아 차렸는지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마법 주머니안에 있는 노란색 열매는 모두 버렸다. 더이상 설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어쩐지 열매를 딸때 동물들이나 몬스터가 한마리도 나무위에 없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몇번이나 설사를 하며 냄새나는 곳을 멀리 벗어 났다. 오늘도 뒤뚱거리며 이동해야 했다. 배는 등가죽에 달라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때였다.
부스럭.
이동해온 수풀쪽에서 풀이 흔들리며 무언가가 접근해 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롱소드를 뽑으며 나무뒤로 숨었다.
'헉! 저건 뭐야?'
자신보다 머리통 한개는 더 큰 키에 번들거리는 녹색눈, 움푹 패여진 콧구멍 두개가 뻥 뚫려 있었으며 송곳니 두개가 삐죽 튀어 나와 있는 몬스터였다. 우락부락한 몸통은 모두 근육질로 뭉쳐져 있는게 엄청난 힘을 자랑할것 같았다. 자신을 찾고 있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쫒아 온것 같았다.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설사를 한탓으로 냄새가 이어졌다는 생각에 또다시 후회를 했다. 설사한것을 땅에 묻어 냄새를 없애야 했다. 킁킁거리던 놈이 고개를 들고 숨어있는 나무쪽을 바라 보았다. 눈이 마주친 놈은 번들거리는 눈이 살짝 커지며 나무 몽둥이를 들고 기괴한 소리를 내뱉으며 달려 들었다.
"취이이익!"
- 작가의말
오타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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