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청송, 독을 발견하다
59화.
"제가 의원이에요."
"네가 의원이라고? 지금 날 놀리는겐가?"
"국주님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시네요."
"크흠...자네가 의원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면 내 사과함세."
청송은 어떻게 증거를 보여 줘야 할지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아드님을 고칠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요. 증거는 이걸로 대신할께요. 전 무림인이기도 해요. 플라이!"
두둥실.
선 자세 그대로 공중으로 서서히 떠 올랐다. 일미터정도 떠 올라 몇걸음 발을 뗀후 정지하자 국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치고 있었으며 산초해 아저씨의 입은 쩍 벌어져 있었다.
"허, 허공답보!!"
"이제 제 말을 믿을수 있겠어요?"
"그, 그렇네."
국주의 말에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전 청송이에요.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요. 그리고 반로환동이니 뭐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마세요."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 볼것 같아서 미리 말해 주었다.
"저, 정말 반로환동한게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편하게 말하세요."
"......"
국주의 표정으로 볼때 믿지 않는것 같았다. 무공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한 것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허공답보로 착각할것이다. 국주의 착각을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꼬치꼬치 캐 물을것같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자아, 그럼 아드님을 살펴 볼테니까 안내해 주실래요?"
"아, 알겠네."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듯한 국주는 청송을 힐끗거리며 앞장섰다.
"아저씨는 제가 무림인이란건 비밀이에요. 만약 소문이 퍼진다면 치료를 하지 않을테니까 명심하세요."
"아, 알겠네. 입을 꾹 다물고 있겠네."
국주가 안내한 별채로 짐작되는 방은 화려했다. 비단금침을 깔고 누워있는 십대 소년의 안색은 창백했다. 눈을 감은채 잠을 자고 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병이죠?"
"모른다네. 고명한 의원들을 초빙해 봤지만 누구도 병명은 커녕 치료조차 할수 없었네."
"음...살펴 보도록 하죠. 마나서치!"
국주의 아들인 금대위의 몸안에는 두개의 기운이 충돌하고 있었다. 양기와 독기로 구분되는 두기운은 절묘하게 대치를 하고 있는 중이다. 금대위의 몸안에 어떻게 독기가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독을 주입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이 쌓이진 않았을것이다. 양기 또한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충만했다.
"두개의 기운이 충돌하고 있네요."
"다른 의원들도 그런 말을 했었네. 고칠수 있겠나?"
"있을것 같아요. 그런데 아드님의 몸안에 들어 있는 두개의 기운이 뭔지는 아세요?"
"양기와 음기 아닌가?"
양기는 어릴적부터 먹인 보약이고 음기는 뭔지 모른다고 했다. 초빙한 의원들도 두 기운을 제어할 방법을 찾지 못해 두손 두발 다 들은 상태였다. 의원들은 독기(毒氣)를 음기(陰氣)로 착각하고 있었다. 독기도 음기에 속한다. 무슨 독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음기로 착각할수 밖에 없었다.
"음기는 독이에요."
"뭐라고? 독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확실해요. 의원들도 모르는 독일꺼에요. 그런 탓으로 음기라고 말할수 밖에 없었을꺼에요. 독기와 양기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태로 이 균형이 깨지면 아드님의 몸은 녹아 버리거나 터져 버릴꺼에요. 만약 두기운을 합칠수만 있다면 아드님은 독인(毒人)이 될꺼에요."
믿기지 않는지 국주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독기가 이렇게 많이 쌓일 정도라면 어릴적부터 계속 독을 먹었을꺼에요. 만약 엄청난 양기가 없었다면 아드님은 이미 살아 있지도 않았겠죠."
"어떤 독인지 알수 있나?"
"그건 몰라요. 대신 찾아 보면 되죠."
일단 방안 전체에 마나 서치를 펼쳐 독 기운이 있는지 살펴 보았지만 방안에서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다. 국주에게 부탁해 이 방안을 맘대로 들락거릴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모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국주 일가가 먹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은 따로 있었다.
두명의 중년인이 전속 요리사였다. 주방으로 들어가 곧바로 마나 서치를 펼쳐 보았지만 독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으며 두명의 요리사가 거주하는 방으로 들어가 살펴 봐도 감지되지 않았다. 일단 요리사들은 범인에서 제외되었다.
"사람들을 모아 놓은곳으로 가죠."
주방을 나와 국주를 따라 가자 전속 시녀와 유모라는 두명만이 달랑 모여 있었다. 그들의 품속에 독을 숨기고 있는지 살펴 보았지만 없었다. 물론 거주하는 방안에도 없었다.
"국주님! 아드님의 방안을 맘대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두명밖에 없는 거에요?"
이 두명뿐이라면 어디서 독을 들여와 누가 독을 먹인것인지 찾을수가 없을 것이다.
"음,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 뿐이다."
"그럼 가족분들에게 안내해 주세요."
"가족까지 의심하는겐가? 정말 독이 맞긴 하나?"
국주가 오히려 청송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드님을 살리고 싶다면 안내하세요."
"...음, 따라 오게."
어쩔수 없다는듯 국주가 성킁성큼 앞장 서 걸어 갔다. 국주의 가족은 정실와 첩, 두 살림을 하고 있었다. 금대위는 장남으로 정실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먼저 정실이 기거하는 별채로 향했다. 별채는 금대위가 누워 있는 그곳이었다. 다른 방에는 시녀 두명과 정실 부인, 그리고 어린 딸 한명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의원이 찾아 왔다고 하던데요?"
"그 때문에 찾아 온거라네."
"국주님! 시녀 방을 살펴 보도록 하죠. 이곳은 아니에요."
"벌써 살펴 보았나? 대체 어떤식으로 살펴 보는겐가? 설명해 줄수 있나?"
국주의 의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국주가 보기엔 청송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방안을 빙 둘러 보기만 할뿐이었다. 그런데도 없다고 말만할뿐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믿으세요."
"크흠. 따라 오게."
기분이 상했는지 뚱해진 국주가 다른 별채로 안내했다. 첩이 거주하는 별채로 무인 한명이 문쪽에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첩의 호위 무사인지 국주를 반겨 주었다.
"별일없나?"
"그렇습니다. 들어 가시지요."
방안에는 칠팔세 정도의 아들을 안고 있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부(美婦)가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 오셨네요."
"일 때문에 피곤해서 그렇네."
"차 한잔 하실래요?"
"아니야. 바로 가 봐야 해."
국주의 뒤에 있는 청송은 방안에 마나 서치를 펼쳐 독이 있는 물건이 있는지 살펴 보았지만 찾을수가 없었다.
"그럼 무슨 일로 오신거죠?"
"대위 때문이야. 대위가..."
"국주님! 그만 가시죠."
"크흠...그럼 나중에 찾아 오겠네."
국주가 등을 돌리자 미부는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 보고 있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는 청송은 어디에서도 독을 찾을수가 없자 난처해진 입장이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금대위의 방으로 걸어 가고 있을때 국주가 말을 걸어 왔다.
"찾았나?"
"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었어요. 어떤 독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아드님을 치료한후에 다시 찾아 보도록 하죠."
"어떤 독인지도 모르면서 해독을 할수 있다는 말인가?"
"해독이 아니라 몸밖으로 빼낼려고요."
방법은 있었다. 해독 마법을 펼치면 독은 해독이 되겠지만 막대한 양기가 문제였다.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두 기운중 한개의 기운이 사라지면 나머지 한개의 기운이 활개를 칠것이다.
독기가 사라지면 막대한 양기가 몸 전체로 질주해 혈맥이 찢어지며 몸이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양기를 제어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국주에게는 독기를 빼낸다고만 말해 주었다. 해독 마법을 설명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금대위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부터 치료를 시작할께요. 독기를 빼내고 태워 버릴테니까 놀라지 마세요."
국주에게 주의를 주고는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마법과 무공을 접목시켜 치료를 해야 하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큐어...뱀파이어릭 마나 터치!"
펑!
"허억! 뭐 뭔가?"
"놀라지 마시라니까요. 독기를 빼내 태워 버린것이에요."
해독 마법을 조절해 독기를 조금 해독시키자 의기양양해진 양기가 독기를 밀어 부칠려고 했다. 그런 양기를 강제로 빼았아 왼손으로 들어온 마나를 오른손으로 방출시키자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금대위의 몸속의 독기와 양기의 조화가 어느쪽으로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게끔 조절하는게 중요했다. 만약 청송이 금대위의 몸안의 마나를 빼았고 있는걸 안다면 무림 공적으로 몰려 버릴것이다. 뱀파이어릭 마나 터치는 무공의 흡성 대법과 똑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국주에게는 양기가 아니라 독기를 빼내 태우고 있다고 말해 놓은것이다. 빼낸 양기를 청송의 몸안에 있는 마나와 합치면 더욱 많은 마나가 불어 나겠지만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비록 영약이 녹은 마나라지만 금대위의 몸안에 녹아 있는 마나가 변질되어 있을수도 있다. 내공 심법으로 받아 들인 마나는 정제된 마나다. 그런 정제된 마나속으로 타인의 몸안에 있는 마나를 받아 들인다면 마나의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마나는 받아 들이지 않고 배출하는게 이롭다.
"이제부턴 말을 걸지 마세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니까요."
두 기운을 제어하면서 해독하는 작업은 시간이 걸렸다. 영약이 녹은 양기를 모두 빼낼 필요는 없었다. 금대위의 몸이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남겨 두어야 금대위는 병치레를 치루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것이다. 치료는 늦은 밤이 되어서 끝이 났다.
"후우~! 끝났어요."
털썩.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시름 놓은 청송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고생했네. 대위는 완치된것인가?"
"확실히 완치가 되었어요. 푹 자고 다음날쯤 일어 날꺼에요. 물이나 한잔 주세요."
급히 탁자위의 주전자에서 물한잔을 따라준 국주는 이 어린 의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공 또한 심상치않을 정도로 굉장했다. 어디서 이런 아이가 튀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소속이 없다면 자신의 표국에서 끌어 안고 싶었다.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네."
"안그래도 배가 고팠어요."
금대위가 누워있는 옆방에 준비해 놓은 식사는 화려했다. 식사를 하면서 국주에게 금대위가 평소에 자주 먹던 음식이나 우물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가져온 음식을 검사해 보아도 독은 찾을수 없었다. 어떻게 독이 주입되었는지 오리무중에 빠진 청송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표정을 읽었는지 국주가 조언을 해 주었다.
"독을 찾는건 천천히 하게."
식사를 마치자 차 한잔을 내왔다. 그런 차를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을 국주에게 말했다.
"아드님은 평소에 차를 자주 마시는 편인가요?"
"그렇다네. 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는 편이라네."
"그럼 아드님이 마시는 차를 모조리 내오라고 하세요."
잠시후 시녀가 차 두잔을 다시 가지고 왔다.
"이 차는 남만에서만 구할수 있는 녹서차(綠暑茶)라네. 그리고 이건 설해차(雪解茶)로 북방의 설원 지대에서만 채취되는 차라고 들었네."
차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청송은 연한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녹서차를 한모금 머금어 보았다. 독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이번엔 맹물처럼 보이는 설해차를 머금어 보았지만 역시 독기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후였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듯한 느낌이 들자 즉시 마나를 돌려 살펴 보았다. 독이었다.
"큐어!"
즉시 해독을 한후 다시 녹서차를 마시고 이번엔 잠시 기다려 봤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큐어 마법을 몸속에 시전한후 해설차를 마셨다. 이번에도 아무런 독은 감지되지 않았다. 단독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것이다.
"국주님! 빈그릇을 한개 가져다 주세요."
"무슨 일로 그러는가?"
"독을 찾았어요."
벌떡.
"정말인가?"
"독을 보여 줄테니까 그릇이나 가져 오세요."
"아, 알겠네."
당황한듯한 국주는 즉시 시녀에게 지시했다. 국주가 보는 앞에서 녹서차와 해설차를 그릇안에 쏟아 부어 서로 합쳤다.
"그건 왜 합치는건가? 혹시 그게 독인가?"
"그래요. 이 두개의 차를 합치면 독이 될꺼에요."
꿀꺽.
합친 차를 한모금 마셔 보았다. 이번엔 배속이 순식간에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즉시 해독 마법을 펼친후 이제야 어떻게 된것인지 알수 있었다.
"한번 마셔 보세요."
"뭐라고? 이거...독이 아닌가?"
"맞아요. 독이에요. 하지만 말만으로는 믿지 않을꺼잖아요."
독을 마시라는 말에 국주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녹서차와 해설차안에 독이 들어 있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시기전에 어떻게 된것인지 먼저 설명해 주게."
"제 예상으로는 이 두개의 차는 하나만 마셨을땐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하지만 두개의 차가 합쳐지면 독 성분이 생성된다고 짐작할뿐이에요. 정말 독인지 일단 마셔 보세요."
"자네, 날 죽일 생각인가?"
"걱정마세요. 순식간에 치료해 드릴테니까 믿고 마시세요."
국주는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독이 생성된것인지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만약을 생각해야했다. 치료를 해 준다지만 만약 해 주지 않는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것이다.
"음...동물들로 실험해 보면 않되겠나?"
"걱정마시고 마시라니까요. 마시면 뱃속이 부글부글 끓을꺼에요. 그러면 즉시 치료해 드린다고 약속할께요. 동물을 잡아와서 실험을 한다면 시간이 걸릴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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