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추산, 비무 대회에 따라 가다(2)
102화.
말은 저렇게 번드르하게 하지만 혈기왕성한 추현이는 참을성이 부족해 걱정이었다. 전국 전통 무술 대회가 개최되는 태원에 당도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몰려 들어 있었다. 아직 일주일이나 시간이 있는데도 방이 없어 숙소는 먼곳에 잡을수 밖에 없었다.
중국 최대 고성이라는 평요 고성 밖 공원에서 개최되는 무술 대회는 전국에서 무술인들이 대거 몰려 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평요 고성은 영혼 일부분이 청송이었을때를 생각나게 하는 성이었다. 옛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마치 타임 슬립을 한듯한 느낌이었다.
고성안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가 무술 대회장인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는 수많은 무술인들이 무술을 연습하고 있었지만 내공을 가진 자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도 없었다. 형(形)만 그럴듯하게 펼치는 식이었다.
현대에서 무공은 무술로 변모해 심신을 단련하는 식으로 전락해 버렸다. 총기의 등장으로 전투에서 무공은 필요없는 세계가 된것이다. 이곳에서 개최되는 무술 대회와 유사한 대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지만 보여 주는식의 쇼다. 비무라고 해봤자 제약이 심할것이다.
"형아, 저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한곳에 사람들이 무언가를 빙 둘러 싸고 있었다.
탓.
슉슉.
그곳에서 태극권을 선보이는 자는 다른 무술인들이 펼치는 태극권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의 부드러움과 절도가 있어 보였지만 추산의 눈에는 그저 그랬다.
"역시 진태극권이다."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야."
"당연하지. 진씨 전통 태극권 후계자가 이 대회에 참가하는 이상 우승은 틀림없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20대로 보이는 저 자가 유명한것 같았다. 진태극권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저 자가 펼치는 태극권을 봐도 청송일때 시중에서 파는 태극권 서적과 별다른 점은 없었다. 무당파에서 수련하는 태극권과는 조금 화려하다는것 외엔 별 차이가 없었다.
"네가 본 소감은 어때?"
"형아, 저게 태극권이라고? 저런걸론 파리 한마리도 잡을수 없을꺼야. 근데 형아가 가르켜 준 태극권은 무슨 태극권이야?"
태극권은 태극권이지 무슨 태극권이냐는 말에 잠시 당황한 추산은 그럴듯한 말을 붙여 주었다.
"무당 태극권이다."
"옛날 무당파에서 수련하는 그 태극권이란 말이야?"
"그래. 아 ,그리고 너,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고 누가 질문하면 비밀이라고 해. 절대 내 이름을 말하면 않돼. 스승이 비밀로 하라고 했다고 말해."
이 녀석이 우승하면 인터뷰에서 혹시 자신의 이름을 말할수도 있었다. 그런점을 미리 일러 두었다.
"알았어. 걱정마. 나도 몸이 근질근질한데 여기서 태극권을 펼쳐도 돼?"
"않돼. 몸을 풀려면 육합권을 펼쳐. 태극권은 시합 당일날 펼쳐."
슈슈.
팡팡.
추현이가 적당한 공터에서 육합권을 시전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퍼져 나가며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도 울려 퍼졌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둘러 싸이자 신이 났는지 추현이는 내공까지 깃들이며 육합권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퍼퍼펑.
연달아 주먹을 내뻗자 공기가 터져 나갔다. 세번을 연달아 펼친후 이번엔 녀석이 천뢰삼장을 펼칠려고 했다.
"그만!!"
천뢰삼장은 함부로 시전해선 않되는 무공이다. 몸이 달아 오른 녀석은 지금 내공까지 주입하고 있는 상태로 혹시나 주변의 구경꾼들이 다칠 우려도 감안해야 했다. 즉시 녀석을 말렸다.
"형아, 왜?"
"육합권만으로도 충분해. 이제 그만해."
"이제야 몸이 좀 풀렸는데...그럼 형아, 우리 대련하자."
"대련을 해 보십시요, 구경하고 싶습니다."
주변의 구경꾼들이 부추켰지만 피에로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추현이 녀석이 구경꾼들에게 호응해 대련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검법 대련이라면 몰라도 권법 대련은 시시해서 않해. 검도 없는 상태잖아. 그러니 그만 가자."
"검이라면 여기 있습니다."
구경꾼중에 한명이 큰소리로 말하며 검을 내밀었다. 날이 뭉턱하고 끝도 뾰족하지 않은 가검이었다. 왜 가검을 들고 있는지 어리둥절한 추산을 대신해 추현이가 즉시 가검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가검은 한개밖에 없었다.
"또 가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가검은 아니지만 여기 있어요."
이번엔 여자 한명이 목검을 내밀었다. 추현이는 신이 났는지 목검까지 받아 들었다. 그런 추현이를 째려 보며 정말 혼이 나봐야 제정신을 차릴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검을 이리줘. 넌 익숙한 목검을 잡아."
휙휙.
몇번 가검을 휘둘러 보았다. 너무 가벼운 탓으로 휘두르는 감각을 느끼기엔 시간이 필요할것 같았다. 대련을 하기위해 추현이와 대치하자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와랏!"
팟.
녀석이 내공까지 주입해 천풍신법을 펼치며 돌진해 오며 대연검법 1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연검법은 총11식으로 되어 있다. 전반 9식과 후반 2식으로 구분되어 있는 대연검법 후반 2식은 살벌한 살검이다. 대련은 항상 전반 9식만으로 대련한다.
캉!
카가캉!
목검과 가검이 서로 부딪히자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
둘 모두 기묘한 발놀림으로 검을 부딪히며 대연검법을 펼치며 점점 치열하게 대련이 이어지자 구경꾼들이 큰함성을 내지르며 환호하고 있었다. 이런 대련은 돈을 주고도 볼수 없을 것이다. 현대에 남아 있는 검법이라고 해도 조잡한 것들 뿐일것이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긴역사를 자랑하는 가문도 지금은 그 대가 끊기거나 검법이 이어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대연검법 모든 것을 보여 줄순 없었다. 대련이 치열해져 가자 스마트 폰으로 촬영하는 구경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휘익.
쩡.
"윽!"
목검이 박살나며 파편이 비산했다. 가검은 이미 추현이의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져, 졌어."
"다시 한번더 이런곳에서 대련하자고 떠들면 네 무공을 모두 폐쇄시켜 버릴테다."
"아, 않돼. 형아, 내가 잘못했어. 그것만은 않돼."
이미 무공이 삶의 일부분인 추현이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녀석에게 무공을 가르키는것 보다 정신머리부터 뜯어 고쳐야 할것 같았다. 아직 나이가 어린탓도 있지만 어릴적부터 확고한 신념을 불어 넣어 줘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목검이 박살났는데 어쩌죠?"
목검을 빌려준 여자에게 사과했다. 20대로 보이는 여자는 무복을 입고 있는게 이번 무술 대회에 참가하는것 같았다.
"괘, 괜찮아요. 그런데 어떻게 목검을 박살낼수 있는거죠?"
"제가 힘이 좀 세거든요."
마나를 사용했다고는 말할수 없었다. 가검을 빌려준 중년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다.
"가검은 전혀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돌려준 가검을 살펴본 중년인은 멍한 표정이었다. 목검을 박살낸 가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듯했다. 추현이를 데리고 공원을 빠져 나가 고성안으로 들어 갔다. 혼이 난 추현이는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소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고성은 굉장히 넓어 인적이 없는 곳이 많았다.
"마보를 시전해."
"혀, 형아!"
"않할꺼냐?"
"하, 할께."
추현이를 노려 보자 화들짝 놀란 녀석은 급히 마보를 시전했다. 공원에서 함부로 나댄 벌이었다. 굵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동안 마보를 하고 있을때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고 해도 마보는 멈추게 하지 않았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로 볼때 여자로 짐작되었다.
"아! 여기 있었네요. 한참을 찾아 다녔어요."
목검을 빌려 주었던 여자였다. 왜 찾아 왔는지는 모른다.
"무슨 일입니까?"
"대련을 지켜 보고 큰충격을 받았어요. 대체 어떤 검법이죠?"
"대연검법이요."
"추현이 너어..."
말해 줄수 없다고 말할려고 했는데 잽싸게 입이 싼 추현이 녀석이 말해 버렸다. 무공명은 함부로 말해선 않된다. 화난 얼굴로 추현이를 노려 보자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로 말하지 않을께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혹시 어느 도장에 다니신다면 저도 그 도장에 다닐수 있지 않을까해서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할려고 찾은거에요. 아, 전 초련이라고 해요."
"저희들은 도장에 다니지 않습니다. 사부님의 엄명으로 어디서 수련하는지도 알려 드릴수 없습니다."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한 초련은 이번에는 그 문파의 제자로 들어 갈수 없느냐며 졸라 대었다. 제자도 받지 않는다고 말해도 물러갈 생각이 없는듯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대체 마보를 몇시간이나 하는거에요?"
비오듯 땀을 흘리며 낑낑거리는 추현이를 보고 놀라는 초련이었다. 집으로 가라고 해도 갈 생각도 하지 않는 초련을 떼어내기 위해 추현이에게 마보를 중단시키고 숙소로 이동했다. 여전히 뒤를 졸래졸래 따라 오는 초련이었다.
"형아, 저 누나 이쁜데 받아주자."
탁!
"아얏."
"죽을래?"
"아, 아냐. 잘못했어."
숙소에서 밖으로 나갈수가 없었다. 초련이는 숙소를 이곳으로 옮겨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안것인지 따라 붙어 사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대체 뭐하는 여자이길래 이렇게 끈질긴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자꾸 따라 다니는겁니까?"
"사부님을 소개시켜 줄때까지요."
"후우, 제자는 더이상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졸라도 소용없어요."
"그러지 말고 사부님께 말이나 한번 해 보세요."
초련에게는 두손두발 다 들었지만 있지도 않는 사부를 어떻게 소개시키란 말인가. 난감한 상황이었다. 비무 대회에 나가지 않고 몰래 집으로 돌아 가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추현이가 굉장히 실망할것이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건데요?"
"비무 대회를 구경하고 문파 제자로 들어 가기 위해서요."
이십대의 나이로 왜 그런 길을 걸을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련이는 취미가 아니라 정식으로 배울려고 하는것 같았다.
"검이든 권법이든 어릴적부터 배워야 하잖아요."
"후우, 가전 무공을 배우긴 했지만 아무리 수련해도 늘지가 않아 다른것을 배울려고요."
"어떤 무공인지 펼쳐 보일수 있습니까?"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자세를 잡은 초련은 가전 무공이란걸 시전하기 시작했다.
"형아, 저게 무슨 무공이야?"
"여러가질 짜집기한 체조같다."
무공이라고 보기엔 너무 허술했다. 공원에서 펼치던 진태극권이란 무술과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 허접했다.
"그만하십시요. 그게 무슨 무공입니까?"
"천왕삼권(天王三拳)이라는 무공이에요."
"천왕삼권?"
어디서 들어본 무공이름이었다. 일부 영혼이었던 청송때의 시절을 곰곰히 되새겨 보았다. 그러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설마...아니겠지.'
그럴리가 없었다. 천왕삼권이라면 황보세가의 가전 무공이다. 한자까지 똑 같은 무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진짜 천왕삼권이라면 저렇게 허접할리가 없었다. 청송일때 황보세가 소가주와 몇번이나 대련을 한 경험이 있어 천왕삼권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정말 천왕삼권입니까?"
"천왕삼권을 알고 있는 거에요?"
"...음."
황보세가 소가주가 펼친 천왕삼권을 흉내낼순 있었다. 내공을 어디로 보내 시전하는지는 모르지만 형(形)만이라면 대충 펼칠수 있을것 같았다.
"완벽하겐 모르지만 대충 펼칠수 있을것 같습니다."
"펼쳐 보세요."
"지금은 아닙니다. 기억을 되살려야 하거든요. 무술 대회가 끝난후에 펼쳐 보이죠."
드디어 전국 전통 무술 대회가 개최되었다. 추현이 녀석이 자신에게 한가지 말하지 않은게 있었다. 무술 대회 종목은 모두 세가지 종목이었다. 권각형법과 무기형법, 그리고 비무다. 남자부와 여성부로 나누어 개최되며 이틀에 걸쳐 예선과 본선이 진행된다.
추현이는 무기형법이 있다는 걸 말하지 않고 무기형법에도 출전 등록을 해 놓은 상태다. 괘씸한 녀석이었다. 혼자서 모두 우승을 독차지 할려고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권각형법은 손발로 펼치는 무술 형(形)을 겨루고 무기형법은 각종 무기를 다루는 무술, 비무는 말 그대로 일대 일 대결이다.
내공을 일체사용하지 않는 무술은 내공을 사용하는 무공에 비하면 겉모습만 그럴듯했지 추산에게는 보잘것없이 보였다. 먼저 가장 많은 인원이 출전한 권각형법을 대회가 시작되었다. 총300명이 출전한 권각형법은 대부분 태극권을 선보이고 있었다. 게중에는 형의권. 팔괘장, 팔극권. 영춘권, 당랑권등도 시전해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각법을 시전하는 자는 찾아 볼수도 없었다. 시전해 보이는 자들은 모두 화려함을 중시하고 있어 무공 본래의 본질은 하나도 찾아 볼수 없었다. 보여 주기위한 쇼에 불과해 하품만 나올정도였다.
"굉장하죠?"
"저게요? 허점투성이로 단한방이면 죽일수 있을 정도로 보잘것 없는 실력들이죠."
"옛?"
죽일수 있다는 말에 초련은 놀라고 있었다.
"추현이가 등장하면 잘 보십시요."
지루한 시간이 흘러 드디어 추현이가 등장해 무당 태극권을 시전해 보인다는 장내 아나운서가 들려왔다.
팡!
파파팡!!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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