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죽음, 새로운 환생(1)
35화.
자기 구역이라고 포효하는 놈의 울음 소리에 아버지가 다른 사자에게 당해 구역을 빼았겨 버린것이다. 사자의 숙명이지만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끄르르릉(모두 따라와.)"
형제들도 군말없이 모두 따라 왔다. 완충 지대를 지나 아버지 구역으로 들어갔다. 어제밤 아버지가 울부짖던 장소로 이동하자 그곳에는 수컷 두마리가 있었다. 원래는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는한 수컷 두마리를 상대로는 먼저 싸움을 걸진 않는다. 부상 당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킁(킹!)"
우리들을 보고 으르릉거리며 극도로 경계하는 수컷 두놈 뒤쪽에 있는 암컷중 성인이 된 사촌 여동생이 우리들을 알아 보고는 불렀다. 그런 동생 옆에는 바닥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끄르르르릉(이모가 자식들을 보호할려다 다쳤어.)"
"크엉(뭐라고?)"
사촌 동생의 말에 눈이 홱 돌아 갔다. 수컷들은 출가를 하면 원래의 가족들과는 완전히 남남이 된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킹은 그렇지 못했다.
탓!
으르릉거리는 두놈중 왼쪽에 있는 놈에게 달려 들었다.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두놈 모두 상처를 입고 있었다. 큰부상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놈들에게는 큰핸디캡이 분명했다. 킹이 먼저 달려 나가자 형제들도 일제히 으르릉거리며 달려 들었다. 한놈에 두마리씩 달려 든것이다.
"크와아앙!"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생사를 가르는 전투에서는 냉정해져야 한다. 포효를 하며 펄쩍 뛰어 놈의 얼굴을 발톱으로 찍을려고 했다.
타타닷.
그러자 놈은 상체를 일으켜 세운채 앞발로 공격하는 킹의 발을 후려 갈겼다. 첫공격은 실패다. 하지만 이쪽은 숫적 우세다.
"커앙!"
바닥으로 펄쩍 뛰어 내리자 마자 상체를 일으켜 세워 발톱과 발톱의 공방을 벌이고 있을때 바람 녀석이 놈의 뒤를 장악해 엉덩이를 물자 본능적으로 뒤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놈의 목을 덥썩 물고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굴을 찍어 버렸다.
"꾸와앙!"
비명을 지르는 놈의 얼굴을 향해 몇번이나 앞발톱으로 찍어 내리고 있을때 바람이 놈의 엉덩이를 물고 잡아 당겨 바닥으로 쓰러 뜨렸다. 쓰러진 놈의 등에 올라탄 바람이 놈의 쌍방울을 물어 뜯었다. 쌍방울이 터뜨린 바람은 급히 놈의 얼굴쪽으로 이동해 한쪽눈을 발톱으로 찍어 버렸다.
바람의 행동에 놈의 목에서 입을 떼고는 또라이 녀석들을 도우러 갔다. 이미 놈은 양쪽 눈이 터진 상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놈은 나중에 처리해도 된다. 또라이와 풀은 놈을 공격하는 시늉만 보이고 있었다. 그런곳으로 달려온 우리를 본 또라이와 풀이 본격적으로 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놈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적극적인 공격은 커녕 방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네마리를 상대로 이길수 없다는걸 알고 있는 것이다. 놈이 도주하지 못하게 사방을 포위해 공격했다.
"킁. 크르르릉(킹! 강해졌구나.)"
두놈을 완전히 죽인후 어머니에게 다가 갔다. 어머니는 괴로운 모습이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을려고 했다.
"끄르릉(상처는요?)"
"그르릉(괜찮다.)"
어머니의 앞다리쪽엔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의 중상을 입은 것이다. 이 상태로는 생존하기가 어려웠다. 언제 병균에 감염될지 모른다.
"끄르릉(이 구역은 이제 저희들것입니다.)"
"끄릉(인정하마.)"
다음날 아침 구역 순찰을 나갔다. 이제 광활한 구역을 차지한것이다. 순찰만으로도 반나절이나 걸렸다. 양쪽 구역의 완충 지대까지 모두 영역으로 삼았다. 양쪽으로 갈려져 있는 무리를 한곳으로 모았다. 처음 장악한 무리를 이끌고 어머니가 있는 구역으로 갔다.
"끄르릉(어머니는요?)"
"끄응(찾지 말거라.)"
이모의 말에 어떻게 된것인지 알수 있었다. 죽을 자리를 찾아 무리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다. 늙거나 병든 사자는 자신의 죽을 장소를 정한다. 그때는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가 먼곳으로 이동해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그런 어머니를 존중해 줘야 한다.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사자의 숙명이다.
무리는 이제 30마리이상으로 불어난 상태다. 거대한 무리였다. 이 정도로 큰무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수가 많아진 만큼 사냥도 자주 해야 했다. 한마리만으로는 서로 배를 채울려고 싸움이 치열했다. 이래서는 않되었다. 배를 채운 암컷은 새끼들을 돌보게 하고 굶주린 암컷들은 사냥을 나가게 했다. 머리수가 많아 매일 사냥을 해야 했다.
수컷들인 우리 형제들은 되도록 암컷이 사냥한 동물은 빼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보스 자리를 차지한 수컷은 암컷이 사냥한 것을 빼았아 먹지만 우리들은 스스로 사냥을 했다. 포식하고 남은 찌꺼기는 암컷을 불러 나누어 주었다.
우리 영역으로 들어온 수컷은 어느 놈을 막론하고 공격했다. 거대한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선 당연한 일이다. 다른 경쟁 상대인 육식 동물을 발견하면 모두를 이끌고 적극적으로 공격해 죽이거나 영역 밖으로 몰아 냈지만 치타만은 남겨 두었다. 가끔씩 치타가 사냥한 것을 빼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어 났다. 다른 육식 동물의 위험이 사라지자 병에 걸리지 않는한 새끼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쫒겨난 수컷 자식들이 영역안에 들어 와 사냥하고 있었지만 눈을 감아 주었다. 그 녀석들이 성인이 되면 이 무리를 차지할려고 도전을 해 올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우리 수컷 형제들도 많이 늙은 상태일것이다. 보통 수컷은 한무리의 리더로는 3~4년이 한계지만 똘똘 뭉친 우리들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리더로 살아 갈수 있을 것이다.
"끄르릉(이제 슬슬 죽을 자리를 찾아야 겠다.)"
형제들도 많이 늙었다. 요즈음은 기력도 많이 없는 상태로 다른 수컷에게 영역을 빼았기기전에 스스로 영역을 떠날 생각이다.
"끄릉(너희들은 어쩔래?)"
"크응(난 안가.)"
또라이 녀석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 또라이에 동조해 다른 녀석들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인것이다. 하지만 기력이 딸리는 상태로 혈기왕성한 수컷을 상대로 이길수는 없다. 한놈이라면 어떻게든 해 볼수 있겠지만 두마리 이상이면 모두 당한다. 그런것을 알면서도 버티는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을 내버려 둔채 한밤중에 무리를 조용히 빠져 나갔다.
"킁(킹!)"
바람 녀석이 알아 챘는지 따라 와 몸을 부비며 마음이 바뀌었는지 같이 가자고 했다. 초원 저멀리 높은 산으로 가기로 했다. 중간에 다른 사자 영역을 지날때 수컷 두놈과 조우를 했지만 싸울 의사는 없었다. 그들도 이미 늙은 우리들을 보고 영역을 탈취하러 온것이 아니란걸 알아 채고는 길을 비켜 주었다. 네마리가 사냥할때와 두마리가 사냥할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되도록 체력을 아끼기 위해 직접 사냥하진 않고 치타가 보이면 치타를 몰래 따라 다니며 사냥한 동물을 뺐어 먹었다.
"하악~하악~!!"
산중턱까지 오르자 부쩍 숨이 가빠졌다. 이제 기력도 거의 다한것이다. 다른 놈에게 살해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었다. 천수를 누리고 죽는 것이다. 큰바위 아래에 바람과 같이 누웠다. 바람 녀석도 많이 늙었다.
"킁! 크르릉(킹! 자나?)"
"크릉! 끄르릉(바람! 졸음을 참을수가 없어.)"
쏟아지는 잠을 참을수가 없었다. 배도 고팠지만 먹이가 눈앞에 있더라도 뜯어 먹을 기력도 없는 상태였다. 용케 이런 산중턱까지 올라 온것이다. 하얀 빛무리가 공중으로 떠 올랐다. 아래에는 바닥에 누운채로 눈을 감고 있는 사자 두마리가 보였다. 한마리는 자신의 모습같았다. 하얀 빛에 둘러 쌓인 채로 순식간에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곳은 거대한 환한 빛무리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수많은 빛들이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영혼이 이동하는 장소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저 빛으로 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거부할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 소용돌이쪽으로 빨려 들어 갈려는 순간 어떻게 된것인지 내 영혼만 거대한 힘에 밀려 튕겨져 버리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
깜깜했다. 눈을 뜰려고 했지만 전혀 뜨지지도 않았다. 소용돌이에서 튕겨진 기억은 있었다. 그런후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에 갇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시 환생한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팔다리를 버둥거려 봤지만 전혀 팔다리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볼려고 했지만 손이 아예 없는 것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곳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영혼 깊숙한 곳에서 외쳐 대었다. 그런 본능에 따라 위쪽으로 뚫고 나갈려고 안간힘을 썼다.
투툭.
그러자 뭔가 부서지는 감각과 함께 조금 밝아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대낮처럼 완전히 밝아진건 아니다. 본능은 계속 위로 올라 가라고 종용했다. 위로 올라 갈수록 점점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따스함과 추위도 느껴졌다. 아마 따스함은 빛이고 추위는 빛이 사라져 어둠이 몰려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어둠속에 눅눅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몇시간이나 지속되었다.
탁.
'으윽!'
갑자기 몸을 강타한 무언가에 절로 몸이 휘청거렸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윽지로 버티며 무엇인지 알아 보기 위해 눈을 뜰려고 했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후두둑.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몸을 간간히 강타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럴때마다 계속 몸이 휘청거리며 더이상 버틸수도 없을 지경에 처했다. 휘청거리며 계속 얻어 맞으며 시간이 흘러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기가 느껴졌다. 그런 물기를 본능적으로 빨아 들였다. 그러자 힘이 넘치는것 같았다. 어느새 몸을 강타하던 무언가가 멈추어지고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넘치는 힘으로 위쪽으로 쑥쑥 올라 갔다.
휘이잉.
이번엔 몸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바람이었다. 대체 얼마나 세찬 바람이기에 몸이 이렇게 흔들리는지 날려 가지 않게끔 버틸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몸은 제대로 버틸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버틸 힘도 더이상 없어 몸에 힘을 뺐다. 그러자 바람에 따라 흔들거리기는 했지만 몸이 날아 가지는 않았다. 괜히 힘만 뺀꼴이었다.
사사삭.
바람에 몸이 서로 부딪히는 감각이었다. 그런 감각을 느끼며 대체 무엇으로 환생한것인지 생각에 잠겼다. 머리는 있고 팔다리는 없었다. 머리 아래쪽엔 여러 갈래로 갈라진 다리라고 추정되는 것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으며 머리위쪽에 팔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 갈라져 있는 상태다. 그런 갈라진 팔들 사이로 새로운 팔들이 돋아 날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눈만 뜰수 있다면 바로 알아 볼수 있을것이지만 완전히 장님 신세였다. 지금은 자신이 무엇인지 알아 보는게 최우선 과제였다. 모든건 감각으로 느껴야 했다.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몸 전체를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풀이었다. 식물로도 환생할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자신이 풀이라면 어떤 곳에 있는 풀인지 알아야 했다. 자라난 장소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꽃인지 잡초인지 채소인지도 알아야 했다.
주변의 있는 풀들을 바람에 흔들리는 잎으로 부딪혀 어떤 모양인지 느껴야 했다. 잎의 모양에 따라 어떤 풀인지 예상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이 불자 흔들리는 잎과는 아무것도 부딪히지 않았다. 근처에는 아무런 풀이나 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채소로 길러지고 있진 않는것 같았다.
채소라면 빼곡히 심어져 어느 정도 자라면 속아 주는 작업을 한다. 모든 채소가 그렇진 않지만 일단은 채소는 제외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건 잡초다. 이곳이 만약 잡초들만 있는 언덕이나 산, 버려진 땅이라면 안심할수 있다. 하지만 인간들이 개간한 밭이나 논이라면 자신의 운명은 한치 앞도 바라 볼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언제 잡초를 제거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 발생했다. 땅이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쿵.
무언가가 땅을 밟고 접근하고 있었다. 후각이나 시각이 없는 잡초로써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쿵.
'으아아악~!!'
그놈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잎 일부분을 밟아 버렸다. 그러자 잎이 땅속으로 푹 찌그러지며 찢어졌다.
쿵쿵쿵.
자신을 밟아 찢어 발긴놈은 그대로 멀어지고 있었다.
'으으...빌어먹을...'
반쯤 찢어져 덜렁거리는 잎에 사정없이 햇빛이 파고 들었다. 따끔거리는 햇빛에서 잎을 보호하기 위해 찢어진 잎 부분으로 보내던 수분 공급을 급히 멈추었다. 그러자 며칠에 걸쳐 찢어진 부분이 말라갔다. 자기 방어였다. 자신이 왜 이런 잡초로 환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찢어진 잎을 대신해 새로운 잎을 뻗어내며 찢어진 잎 전체를 마르게 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을때 무언가가 접근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쿵쿵쿵쿵.
쓔욱쓔욱.
쏴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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