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추산, 조카를 만나다(1)
133화.
바닥에 누워 있는 중년인이 고통스럽다는듯 찡그린 얼굴을 돌리며 어디가 아픈지 신음을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
"청추산이다."
이름을 말해 주며 마나 스캔을 펼쳐 어디가 아픈지 살펴 보았다.
'음, 혈맥이 엉망이군.'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혈맥이 찢어졌는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고통스러울텐데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청...추사...안? 추현..할아버...님과는...어...떤 사이...요?"
"뭐라고? 추현이가 네 할아버지라고? 당장 치료를 할테니까 움직이지 말거라."
추현이 손자가 살아 있었다. 이 녀석을 치료하면 누님이나 추현이 소식도 알수 있을 것이다. 추현이가 살아 있다면 120세가 넘을 것이지만 아직도 생존하고 있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알수 있을 것이다.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먹이고 엔다이론을 불러 치료를 부탁했다. 찢어진 혈맥을 고치는 일은 어렵진 않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아무리 엔다이론이라고 해도 좁은 혈맥을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 마스터, 단전의 내공도 엉킨 상태에요.
- 풀수 있겠어?
- 시간이 많이 걸릴거에요.
- 그럼 일단 혈맥만 치료해.
모두가 추산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해 충기 가슴에 손을 대고 치료하는 척 했다. 비록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찢어진 혈맥은 무사히 복구할수 있었다. 아직 엉킨 내공은 풀어지지 않아 고통은 남아 있을것이지만 한결 나아졌을것이다.
"엉킨 내공은 나중에 치료해 주마."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추현 할아버님과는 어떤 사이..."
"추현이 형인 청추산이다. 들어 본적이 있느냐?"
"들어 본적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없는것 같기도 한게 가물가물합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추현이가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을것이다.
"추현이는 엄청난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지 않았냐? 너도 대연 심법을 배운게냐?"
"그, 그렇습니다."
"검법은 대연검법을 배웠고?"
"예."
틀림없이 추현이 손자였다. 직계가 아니라면 절대로 대연 심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것이다. 누님 가족들의 생사는 충기는 모른다고 했다. 추현이는 사이버 모스키토와 싸우다가 죽었으며 충기 아버지도 같이 죽었다고 했다. 일가족중 충기 혼자만 겨우 살아 남을수 있었다는 말에 사이버 모스키토 놈들을 모조리 박살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모두 놀라지 마라. 지금부터 이 좁은 동굴을 크게 넓힐 생각이다."
동굴안의 9명이 자리에 누우면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좁은 동굴이다. 이런 동굴을 크게 넓혀 생활하기 좋게끔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노에스를 불러 동굴을 넓히며 동굴 벽을 파 들어가 이층 침대 형식으로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어헉! 벼, 벽이..."
"모두 놀라지 말랬잖아. 조용히 지켜만 보도록 해."
저절로 벽이 사라지는 신기한 광경에 아무리 놀라지 말라고 해도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족히 5배는 더 넓어진 동굴은 이전과는 달리 쾌적해 보였다. 벽면에 만들어 놓은 침대로 인해 바닥에 누워 자지 않아도 되었다.
"저 침대를 한개씩 차지하도록."
"느, 능력자십니까?"
"그렇다."
동굴안 사람들 얼굴이 환해졌다. 능력자가 함께하는 이상 적이 쳐 들어와도 막을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뭘 먹고 사는거냐?"
"생감자를 씹어 먹습니다."
불을 피울수가 없다고 했다. 불을 피우면 연기가 퍼져 나가 적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적은 사이버 병기나 인간이다. 인간들중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약탈을 하고 돌아 다니는 자들이 있었다. 세곳의 동굴 모두 동굴앞 초원 바위옆에 감자를 심어 수확한 것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음, 잠시 밖으로 나갔다 돌아 오겠다."
왕천양이 따라 올려고 했지만 금방 돌아 온다며 제지했다. 통로 문쪽에서 블링크 마법으로 밖으로 나가 절벽위를 올려다 보며 적당한 동굴을 찾아 날아 올라 안으로 들어가 확인했다. 중앙의 동굴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동굴이었다.
동굴안에서 노에스를 소환해 동굴 개조를 끝내고 아공간을 열어 식량과 주방 도구를 꺼내고 파이어 마법진이 새겨진 철판을 꺼냈다. 모닥불 대신에 불을 피워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놓고 요리를 할수 있는 아티팩트다.
한아름 짐을 지고 아래쪽 동굴로 이동해 들어가자 모두가 추산이 짊어지고 있는 등쪽으로 시선이 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짐을 내려 놓고 다시 밖으로 나가 바위 한개를 들고 들어 왔다.
무거운 바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오자 모두가 놀란 표정들이다. 내려 놓은 짐을 풀고 바닥 중앙에 놓아둔 평평한 바위위에 파이어 아티팩트 철판을 깔고 큰냄비를 올려 놓았다.
"물이 있나?"
"이, 있습니다."
물통을 가져온 왕천양은 냄비안에 수북히 쌓여 있는 달걀을 보고는 눈이 커지며 얼른 물을 부었다.
"그런데 불을 피울수 없는데 어쩝니까?"
"걱정마라. 저 철판이 불을 피울수 있는 도구다. 연기도 일체 나지 않으니까 걱정할건 없어. 불을 피울려면 철판 가까이 다가가서 '파이어'라고 외치면 된다. 네가 해 봐라."
"아, 알겠습니다. 파이어!"
화르륵.
"헉!"
"부, 불이다."
동굴안이 떠들썩해졌다. 동굴안은 겨울철이 가장 곤란했다. 이불을 둘둘 말고 옹기종기 앉아 추위를 견디는 나날이었다. 이제 겨울철이 되어도 따뜻하게 잠을 잘수 있게 되었으며 따뜻한 음식도 먹을수 있게 되자 모두의 얼굴이 행복으로 물들고 있었다.
"느, 능력자는 이런것도 할수 있군요."
왕천양이 신기한듯 활활 타오르고 있는 철판을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었다.
"달걀이 익으면 기다리지 말고 소금을 찍어 먹어라. 그리고 식량은 아껴 먹고. 난 충기를 데리고 이 위에 있는 동굴로 가겠다. 충기를 완전히 치료하기 위해선 누구의 방해도 없어야 한다. 불을 끌땐 '해제'라고 외치면 불이 절로 꺼진다."
충기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텔레포트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모습에 동굴안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경악으로 물들었다. 동굴위쪽으로 충기를 데리고 이동하자 충기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곳에서 널 치료할꺼다."
"큰할아버님, 치료가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뒤엉킨 내공을 모두 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네 내공을 밖으로 꺼집어 낸후 다시 채워 넣으면 비록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네 고통도 전혀 없을 것이다."
충기는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한뒤 엔다이론을 불러 추산의 몸속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단전에 손을 대로 뱀파이어릭 마나 터치를 시전해 충기의 내공을 빨아 들여 엔다이론이 밖으로 배출하는 방식이다. 늦은 밤이 되어 겨우 충기의 내공을 모두 꺼낼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조금씩 꺼낸 탓으로 시간은 걸렸지만 안전을 고려해야했다.
"이걸 절반만 마시고 가부좌를 튼채 대연 심법을 운용하거라."
마나 포션을 한병 건네 주었다. 작은 병에 들어 있는 물체가 뭔지도 모른채 충기는 지시에 따랐다. 소주천을 7번이나 하고 눈을 뜬 충기는 놀라워했다.
"큰할아버님. 이게 뭔데 순식간에 내공이 들어 차는 겁니까?"
"내공을 응집한 영약같은 것이다. 나머지를 마저 마시고 다시 심법을 운용하거라."
충기는 임독맥이 막혀 있는 상태다. 심법 운용이 끝나자 다시 마나 포션을 한병 꺼내 주며 이번엔 임독맥을 뚫어 준다고 하자 눈을 껌뻑이며 믿지 않아 했다.
"고통이 심할지도 몰라. 절대 입을 열지 말고 이를 악물고 심법을 운용하거라."
엔다이론은 충기의 임독맥을 쉽게 뚫었다. 큰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임독맥이 뻥 뚫린 상태로 심법을 운용하는 충기에게 대주천을 가르켜 주었다. 소주천과 대주천은 천양지차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의 기(氣)가 쏟아져 들어 올것이다. 밤새도록 내공 연마에 심취한 충기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감사합니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군요."
"그럴꺼다."
빵과 과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동굴 바닥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새겼다. 옆에서 지켜 보는 충기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점점 새겨져 나가자 신기해 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뭔지요?"
"내공을 모으는 진법같은것이다."
"예엣? 그런 진법이 있는 겁니까?"
"그래. 완성되면 알수 있을께다."
심혈을 기울려 마법진을 완성하고 활성화시켰다.
화악.
"우웃!"
갑자기 빛이 터져 나오자 깜짝 놀란듯 충기는 한발 뒤로 물러 나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앉아 내공 심법을 운용해 보거라. 엄청난 내공이 빨려 들어 와도 절대 당황하지 말거라."
충기는 생전 느껴보지도 못한 엄청난 양의 기가 빨려 들어 오자 당황하지 않을수가 없었지만 정신을 다잡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내공 연마에 푹 빠진 충기는 깨어 날줄은 몰랐다. 저녁 무렵이 되어 눈을 뜬 충기에게 쉬라고 한뒤 절벽 정상으로 올라 갔다.
절벽 정상은 뾰족한 바위로 되어 있진 않았다. 정상이 깎여져 나간듯 비스듬한 경사지로 풀들로 뒤덮혀 있었다. 바람에 날려온 먼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고 싸여 그 위에 풀씨가 날아와 풀들이 돋아 난것이다.
풀위에 앉아 마나 연공을 하고 아침이 되어 동굴로 돌아 갔다. 충기는 대연 검법은 4성 경지였으며 창궁무애검법은 형만 기억하고 있었다. 천풍 신법은 2성에 불과해 신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켰다.
"네게 섬전십삼뢰(閃電十三雷)라는 검법을 가르켜 주겠다."
뇌기를 뻗어 낼수 있는 섬전십삼뢰는 사이버 모스키토를 처리할때 유용할것이다. 뇌기를 몸속에 저장해야만 뇌기를 발산할수 있지만 큰문제는 아니었다. 중앙 동굴의 사람들은 물론 다른 두곳의 사람들에게도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추산은 매일밤 마나 집적진을 활성화시켜 주고 충기에게 내공 심법을 운용하라고 한뒤 절벽 정상으로 올라가 마나 연공을 하거나 명상을 했다. 동생 추현이는 가족들과 함께 황산 절벽 아래 동굴에서 생활했었다.
그런 동굴을 어떻게 알았는지 총을 든 놈들이 습격해 왔다. 그때 추현이는 충기를 데리고 산속으로 식량을 구하러 간 상태로 총소리를 듣고 동굴로 돌아 왔을땐 동굴안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살해 되었다. 습격한 놈들을 추격해 하나둘씩 모조리 죽여 버리고 서위촌으로 이동해 충기를 가르키며 숨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사이버 모스키토 놈들이 몰려와 유인해 갔지만 두번 다시 돌아 오지 않았다. 아마 놈들에게 당한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충기는 서위촌을 버릴수 밖에 없었다. 사이버 모스키토 놈들이 언제 또다시 찾아 올지 몰라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것이다.
이곳에서 수련을 하며 대연 심법을 연공하고 있을때 할아버지의 생각이 끊이질 않아 심마에 사로 잡혀 내공이 역류해 비록 폭주는 하지 않았지만 혈맥을 다쳐 누워 지내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것이다. 그런 충기를 마을 사람들이 돌봐 주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동생인 추현이가 사이버 모스키토 놈들을 유인해 가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었거나 좀비가 되어 버렸을것이다. 충기에게 무공을 가르키며 두달이 지난 어느날 밤 알람 마법이 울려 퍼졌다. 즉시 동굴안으로 들어가 충기에게 내공 연마를 중단시키고 동굴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지시했다.
"인비저빌리티!"
충기 바로 앞에서 스르륵 모습이 사라지자 놀란 충기는 눈이 동그래졌다.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을 날아 알람 마법이 울린 곳으로 이동했다. 권총과 QBZ-95 소총을 든 열명이 조심스럽게 절벽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QBZ-95 소총은 특이하게도 손잡이 뒤쪽에 탄창 주입구가 있는 소총이다.
"그레이트 홀드! 사일런스!!"
열명을 한꺼번에 구속한뒤 실라이온을 불러 비어 있는 동굴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은 놈들은 손가락 한개도 움직이지 못한채 하늘을 둥둥 떠서 이동하는 모습은 괴기스러워 보였다. 빈동굴에 놈들을 내동댕이치고 충기를 불러 총기를 회수한후 구속을 풀어 준뒤 심문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느, 능력자십니까?"
꽈직.
"크아악!!"
오히려 반문하는 놈의 팔을 밟아 버리자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차없는 추산의 행동에 충기가 움찔거렸다.
"네가 심문해 봐라."
충기에게 경험을 주기 위해 심문을 미루었다. 충기가 놈들이 누군지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한놈을 죽여라."
"예엣?"
"이놈들이 이곳으로 왜 온것같냐? 약탈하러 온거다. 마을 사람들은 모조리 죽이고 모든걸 빼았아 갈것이다. 죽여?"
망설이는 충기는 한번도 살인을 해 보지 않은것 같았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독해져야 한다.
스릉.
마음을 다잡았는지 충기는 롱소드를 빼어 들고 눈을 질끈 감고는 팔이 박살난 놈의 가슴에 롱소드를 찔러 넣었다.
"사, 살려주십시요."
푹!
"컥!"
한놈이 죽자 다른 놈들은 벌벌 떨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요."
"떠드는 놈은 곧바로 죽여라."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