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추산, 옛인연을 만나다(4)
108화.
전대 가주는 홍위병들을 상대로 가문을 유지할수 없다는걸 알고는 그림자인 영(影)의 사부에게 비밀서고를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남궁세가의 무공이 직계가 아닌 방계손에 들어 가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된것이네. 사부에게 전해 들은 말로 더이상 자세한 사정은 모르네."
"그럼 당신 사부는 왜 남궁세가를 차지할려는 방계를 죽이지 않았지?"
"그림자의 임무는 가주를 보호하는게 아니라 남궁세가를 보호하는 것이네. 방계든 직계든 누가 남궁세가를 차지하더라도 남궁의 피가 이어진 가주로 세가를 유지한다면 권력다툼에는 끼어 들지 않는다네."
지금 현재 남궁의 피가 이어진 자는 세가내에 가주밖에 없다고 했다. 가주가 죽으면 남궁세가를 이어 받은 후손이 없어 남궁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습격한 것이라고 했다. 가주의 후손이 없다면 추방한 직계를 찾아 데려 오면 되겠지만 이미 원수나 마찮가지인 직계를 데려 올순 없다고 했다.
"직계손은 어디에 살고 있어?"
"음...황산에 살고 있네."
세가에서 쫒겨난 직계손들은 이곳 안휘성 합비에서 4시간거리에 있는 황산에 숨어 살았다. 기암절벽으로 둘러 쌓인 험한 황산 산속에 방계의 시선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건 어떻게 아는거냐?"
"사부님의 지시로 한번 가 본적이 있었네."
"그들에게 안내해."
"이 밤중에 말인가?"
하긴 깜깜한 밤이다. 황산까지 이동하기는 먼거리다. 숙소에 추현이를 내버려 두고 멀리까지 이동할수도 없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 그런데 네 실력이 왜 그렇게 형편없는거냐?"
"...음. 변명은 아니지만 시대는 점점 변하고 있네. 사부님의 가르침을 소화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내공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네."
이해가 되었다. 하루종일 가주를 암중으로 따라 다니며 그림자 역활을 하는 영(影)은 내공을 수련할 시간은 한정되어 있을것이다. 세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影)은 자신이 직접 안내는 못한다고 했다. 대신 제자를 보내겠다는 말에 숙소를 알려 주고 아침 일찍 찾아 오라고 말해 두었다.
똑똑.
아침 일찍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들어 오라고 했다.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사부님의 명으로 온 무명이라고 합니다."
차기 영(影)은 자신의 이름이 없는 무명(無名)이라고 소개했다. 평생을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만큼 사부의 지위를 물려 받으면 영(影)이라는 이름을 사용할것이다.
"형아, 누구야?"
추현이에게 어제밤 일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그럼 황산 구경도 할수 있는거야?"
딱.
"아얏."
"구경이 목적은 아냐."
매를 버는 동생이었다. 추현이를 집으로 혼자 돌려 보내야 했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할아버지와 추현이 다니는 학교에 전화해 결석한다고 알려 주고 황산으로 향했다. 황산은 입구부터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런 입구쪽인 아닌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무명을 따라가 길 없는 산을 타고 올라갔다. 일부러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쪽으로 올라 간다고 말한 무명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타고 있었다.
가끔씩 뒤를 힐끔거리며 잘 따라 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무명은 추산과 추현이 전혀 힘든 기색도 없이 바짝 뒤를 따라 오자 조금 놀란듯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무명이 자신들을 시험해 보고 있는듯했다. 사부인 영(影)에게 무슨 말을 들은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명의 실력으로는 제아무리 발버둥치도 추현이의 경지에도 한참이나 부족해 보였다.
황산은 오악(五嶽) 못지 않게 절경을 자랑했다. 태산에 오른적이 있는 추산은 태산보다 험한 황산의 기암절벽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근2시간여에 걸쳐 산을 올랐다. 절벽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점점 위쪽으로 올라 간 것이다. 정상쪽에는 소나무 숲이었다. 숲을 지나자 집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 왔다.
"저곳일것입니다."
"확실해?"
"예. 사부님이 말씀하신대로입니다."
무명은 사부의 설명만 듣고 안내를 한것이다. 이곳으로 온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넌 그만 내려 가라."
"알겠습니다."
무명이 빠르게 사라지자 추현이와 함께 남궁가 직계손들이 살고 있다는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앗!"
탁탁.
휘릭.
슈슈.
집 근처로 다가 갈수록 기합성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수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수 있었다.
"형아, 저곳으로 가 보자."
다른 사람의 수련을 훔쳐 보는건 대단한 실례다. 옛날이라면 목이 달아나도 할말이 없을 정도다. 그 정도로 무공 수련을 훔쳐 보는건 금기로 여겨졌지만 현대에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실례가 되는건 마찮가지다.
"나중에 가자. 지금은 이 마을 촌장을 만나 보는게 순서야."
"저곳으로 가서 물어 보면 되잖아."
"무공 수련을 훔쳐 보는건 실례다."
"칫."
추현이도 알고 있음에도 어떤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지 보고 싶은것이다. 마을은 듬성듬성 집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집들도 있겠지만 얼추 눈에 들어 오는건 다섯채였다.
"계십니까?"
추현이가 큰소리로 처음 보이는 집 마당앞에서 크게 소리쳐 불렀다.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다시 추현이가 소리쳤다. 그러자 집 뒷쪽에서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걸어오는 노파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신가?"
굉장히 나이들어 보이는 노파는 겉모습과는 달리 말투는 정정했다.
"이곳이 남궁세가 사람들이 피난해 살고 있는 곳인가?"
"...자네들은 누군데 이곳으로 찾아 온건가?"
"남궁세가와 인연이 있어 찾아 온거다. 가주를 만나 보고 싶다."
"이곳은 남궁세가 사람들은 없네. 그만 가 보게."
몸을 돌려 집뒤로 걸어 가는 노파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노파의 뒤를 따라 갔다.
"왜 따라 오는겐가. 그만 가 보래도."
"남궁세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려고 찾아 온게 아냐. 오히려 도움을 줄 생각으로 겨우 찾아 온거다."
"합비로 가 보게. 그곳에 남궁세가가 있다네."
"그곳은 이미 가 봤어. 방계였던 가주가 홍위병을 이끌고 직계를 모두 내쫒아 이곳에 정착했다는 말을 가주 호위인 영(影)에게 듣고 찾아 온거다."
노파는 추산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 보고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파악할려는것 같았다.
"...음, 잠시만 기다려 보게."
딸랑딸랑.
노파가 지팡이에 달려 있는 방울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몇명이 달려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달려 온것인지 숨을 헐떡이는 중년인 한명과 20대로 보이는 청년 두명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주를 찾아 온 이들이야."
"자네들은 누구지?"
"추산과 추현이라고 한다."
젊은 추산이 반말을 하자 중년인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당신이 남궁세가 가주냐?"
"...그렇다네."
중년인이 노파의 얼굴을 힐끗 바라 보자 노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가주가 인정했다.
"단둘이서 이야기를 할수 있나?"
"둘이서? 음, 따라 오게."
가주를 따라 가며 같이 발을 옮길려는 추현이를 제지했다.
"추현이 넌 저들하고 놀고 있어."
"대련을 해도 돼?"
"심하겐 하지마."
"헤헤, 알았어."
가주는 다른 집으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자 차를 한잔 내 왔다.
"젊은 사람 입에 맞는지는 모르지만 마셔 보게. 황산 모봉차(黃山毛峰茶)라고 불리우는 차일세."
황산 모봉차는 모봉차 또는 황산차라고 불리우며 중국 10대 명차에 속해 있으며 기문홍차(祁門紅茶)와 더불어 안휘성에서 가장 유명한 차(茶)로 등소평이 즐겨 마셨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차다. 조금 떫은 맛이 감돌았지만 깊은 향과 달콤함의 여운에 젖어 들었다. 청송일때 태상가주와 자주 마신 그 맛이 재현된 느낌이었다.
"좋군. 바로 그 맛이야."
찻잔을 내려 놓고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말해 주었다.
"어제밤에 합비에 있는 남궁세가를 들렀어. 그곳에서..."
"그, 그게 정말인가?"
어제밤에 있었던 일을 들은 가주는 믿기지 않아했다. 처음 보는 사람 말을 덥석 믿는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것이다. 의심하는게 당연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남궁세가 직계가 맞아?"
"음...그렇네."
"내가 믿을수 있게끔 증거를 보여줘. 가령 족보라든가 아니면 남궁세가 가주를 상징하는 창천패를 보여줘."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창천패는 손바닥안에 들어 갈 정도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앞면에는 창천(蒼天)이라는 글자와 뒷면에는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모양이 음각되어 있다. 오로지 가주만이 소지하고 있는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패다.
"음, 창천패를 어떻게 알고 있는건가?"
"묻지 말고 일단 보여줘."
"미안하지만 창천패는 없네. 빼았긴 상태지."
"그럼 족보는?"
잠시 망설이든 가주는 방을 나서 족보로 짐작되는 책 몇권을 들고 왔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봐. 남궁천목(南宮千目), 남궁목(南宮睦), 남궁성휘(南宮聖輝). 이 세사람이 있는지 살펴봐. 아마 600여년 전의 가주들이야."
족보를 찾아 살피던 가주는 한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자넨 어떻게 전대 가주님들을 알고 있는건가?"
"적혀 있는 곳을 보여줘. 확인후에 설명해 줄께."
건네 주는 족보를 살펴 본 추산은 자신이 말한 태상가주와 가주, 소가주 이름이 적혀 있자 이 족보가 남궁세가의 족보가 틀림없다고 판단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엔다이론을 불러 감정을 해 보라고 했다.
- 틀림없어요. 600년전의 먹물이에요.
물의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은 먹물로 어느 시대의 것인지 알아 냈다.
"틀림없군. 좋아, 그럼 나에 대해 설명해 줄께. 대신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로 말하면 않돼. 난 예전에 남궁천목 태상가주와 남궁목 가주, 남궁성휘 소가주가 살았던 시대에 살고 있었어. 그때는 청송이라는 이름이었지. 남궁천목 태상가주에게 귀여움을 받아 같이 생활했었어. 믿기지 않겠지만 지금은 예전 기억을 가진채 환생한 상태야. 그래서 당시의 남궁세가 인물들을 잘 알고 있는거지."
"...음. 믿기지 않는군."
추산의 설명이 끝나자 가주는 당황해 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환생을 했다는 말은 솔직히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추산이 환생했다는 증거를 보여 줄 차례였다.
"당연히 그럴꺼야. 난 태상가주와 같이 생활한 까닦으로 남궁세가의 무공은 모두 다 알고 있어. 만약 그 시절에 내가 살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로 남궁세가의 무공은 몰랐을꺼야. 그건 가주도 인정하지?"
"그, 그렇네. 현대에선 남궁세가의 무공이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게 당연하네."
"그렇지? 가주에게 한가지 사과할게 있어. 남궁가의 허락없이 내 동생에게 무공을 가르킨 상태야.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로 남궁세가를 찾아 무공을 전수해 줄려고 찾아 온거야."
"그, 그게 정말인가?"
이번엔 가주가 깜짝 놀란듯 크게 소리쳤다. 남궁세가의 무공을 알고 있다는건 어떤 무공인지 무공명만 알고 있다고 짐작한 가주는 눈앞의 추산이라는 젊은이가 무공을 직접 시전할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자의 말대로 환생했다는것을 믿지 않을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선대 태상 가주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도 남궁가의 무공을 알고 있다는건 이상했다. 본가 소속이 아닌 이상 무공을 함부로 전수하지 않는다. 어떤 경로로 무공을 입수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럼 당시에 자네는 남궁세가 소속이었나?"
"원래는 소속이었지만 자유를 얻었지. 자세한 건 더 이상 말해 줄수 없어. 그래도 의심된다면 산동성에 있는 황보세가를 찾아가 황보 가주를 만나 봐. 추산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 만나 줄꺼야. 황보세가도 본가를 홍위병들에게 빼았겨 쫒겨난 상태지만 지금은 본가를 되찾은 상태야. 황보 가주에게 직접 나에 대해서 물어 보면 확인할수 있을꺼야. 황보세가에는 나에 대한 그 당시의 일기가 남아 있거든."
"음, 알겠네. 그런데 본가의 어떤 무공을 알고 있는건가?"
"모두 다 알고 있어. 태상가주가 말해 주고 가르켜 주었거든."
남궁청전 가주는 입을 쩍 벌리며 믿기지 않아 했다. 선대 태상 가주가 본가 소속도 아닌 자에게 본가 무공을 모두 알려 주었다는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네 혹시 본가의 무학자(武學者)였나?"
"아니야. 태상가주가 제왕검형을 펼칠수 있도록 도움을 준 보답으로 가르켜 준거야."
쩌억.
다시 입을 쩍 벌리는 가주는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꿈에서 빨리 깨어나길 바랬다. 본가 최고 최강 무공인 제왕검형을 펼칠수 있는 선조는 몇명 없었다고 들었다. 너무 난해해 이해도 하지 못하는 무공을 이 환생했다고 주장하는 이 자가 도움을 주었다는건 허황된 말로 들렸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자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모든 기억을 가진채 환생을 한 상태라면 무공을 수련했을것이 틀림없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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