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천후, 충돌하다(4)
151화.
붕대는 검은피와 진물로 얼룩져 있었다. 시녀가 즉시 가위 한개를 조심스럽게 내밀고 소장주는 단검을 내밀었다. 엔다이론에게 붕대에 붙어 있는 곪은 살을 떼어내 달라고 한뒤 붕대를 가위로 잘랐다. 붕대를 제거한 누님의 가슴은 처참했다.
왼쪽 어깨에서 가슴 아래쪽까지 길게 베어진 상태로 누런 진물과 썩어 가는 살이 검게 변해 악취를 토해 내고 있었다. 즉시 가슴에 사이킥 마비를 걸고 단검에 마나를 주입해 소독한후 썩은 살을 도려냈다.
도려 낼 부분은 엔다이론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밀어 올려 주어 쉽게 제거할수 있었다. 진물까지 깨끗히 닦아 내고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부었다. 가슴안쪽에선 엔다이론이 치료를 했다.
부글부글.
"그런 뭔가?"
상처 부위의 가슴이 부글부글 거품을 뿜어내자 소장주가 궁금한듯 질문했다.
"특별한 금창약입니다. 이 금창약을 사용하면 상처 회복이 빠르거든요."
"그런 금창약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한겁니다. 몇종류의 영약을 섞어 만든것이니까요."
영약이라는 말에 소장주는 어느 정도 납득하는것 같았다. 엔다이론이 치료가 끝났다는 말에 시녀에게 누님 가슴을 닦아 주고 옷을 입히라고 했다.
"어머!"
"무슨 일이냐?"
누님의 가슴을 닦던 시녀가 놀라 탄성을 발하자 소장주가 즉시 반응했다.
"마, 마님 상처가 깜쪽같이 사라졌어요."
"정말이냐?"
"예. 몇번을 확인해도 아무런 상처가 없어요."
"허허, 검귀, 정말 고맙네. 앞으로 자넨 신의(神醫)라고 불러야겠구먼."
소장주는 장원의 다친 무인들도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님은 한숨 푹 자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 난다며 스스로 깨어 날때까지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해 주고는 소장주를 따라 방을 나섰다.
"넌 이곳을 지키도록 해라."
소장주가 동생에게 지시하고 장원 대문을 나서자 장원 무사들이 일제히 소장주에게 인사를 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며 장원을 지키지 못했다며 죽여 달라고 했다. 그런 무인들을 다독이며 다친 이들에게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장원 앞쪽의 큰건물로 이동하며 누님에게 상처를 낸 자가 누군지 물어 보았다. 이름은 모른다며 생김새를 설명해 주었다. 큰덩치에 험악한 인상으로 도(刀)를 들고 있는 자라고 했다. 장원 무사들은 죽은 자는 3명밖에 없었지만 부상 당한 자는 10명이나 되었다. 부상 당한 무인들도 빨리 치료를 했으면 살수 있었다며 분해했다. 천후가 다친 무인들에게 손만 대면 순식간에 치료가 되자 지켜 보는 소장주와 장원 무인들은 신의가 틀림없다며 탄성을 내뱉었다. 치료를 받아 완치된 무인들은 몇번이나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소장주님, 현무단주가 있는 곳으로 가 보죠."
현무단은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 넓은 연무장 외곽에 화 장주와 현무 단주, 분타주, 그리고 부단주에게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 놓은 키가 큰 현무단원이 따로 모여 있었다.
"자네가 부단주를 죽인 검귀라는 자냐?"
"그렇습니다. 은천 세가의 은천후라고 합니다."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나?"
"저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살기에 몸이 절로 반응을 해 버려 거든요."
현무 단주는 천후를 노려 보았지만 그렇다고 실력 행사로는 나오지 않았다. 전적으로 부단주 잘못이기 때문이다.
"장주님, 일을 잘 해결되었습니까?"
"공손세가에 책임을 물어라며 현무단은 잘못이 없다더군."
억울한듯한 표정의 장주는 무림맹의 현무단에게 책임을 물을수는 없었다. 중원 변방의 중소 문파가 무림맹에 항의를 하더라고 윗선으로 보고도 되지 않을것이다.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넘어 갈것 같은 분위기에 천후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럼 제가 현무단에 책임을 묻죠."
"......."
"검, 검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참게."
장주는 무슨 뜻인지 몰라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분타주는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기겁하며 천후를 말렸다.
"분타주님, 정파의 인물이 무림의 금기인 여자 가슴을 공격한 파렴치한 무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자는 무인으로써의 자격이 없네."
"책임을 물어야 겠죠?"
"...설마, 현무 단원중에 그런 자가 있었단 말이냐?"
분타주도 천후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한것인지 파악하고는 현무단주에게로 얼굴을 돌렸지만 무표정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현무 단주였다.
"이곳 화가장의 제 외사촌 누님이 소장주님의 부인이십니다. 무이촌 장가장의 장연 누님이 알고 보니 이곳으로 시집을 왔더라고요. 누님은 가슴을 크게 베인채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로 누워 있습니다. 분타주님도 알다시피 누님은 이류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 누님의 가슴을 벤 현무 단원에게 책임을 물어도 되는거죠?"
"......"
곤혹스러운 표정인 분타주는 대답도 없이 다시 현무 단장인 멸마창에게로 얼굴을 돌리자 멸마창이 입을 열었다.
"그건 사고였네. 아무리 현무단이라고 해도 불의의 사고는 어쩔수 없는 일이네. 막무가내로 달려 든 탓으로 제압중에 사고를 당한 것이네."
"단주님,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단주님의 말이 옳다면 이류에 불과한 무인도 제대로 제압하지도 못하는게 현무단이란 말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말이 심하다."
현무단을 깎아 내리자 단주가 버럭 소리를 질러 화를 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을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분타주가 또다시 급히 끼어 들었다.
"검귀, 이런 일은 무림맹에서 판단하고 잘못이 있으면 합당한 보상을 해 줄것이네."
"분타주님, 같은 편인 무림맹이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당연히 현무단의 말을 믿을게 뻔하지 않습니까? 또한 가장 큰문제는 살점이 썩어 들어 갈 정도로 아무런 치료가 없었다는 겁니다. 정파를 자청하는 현무단이 의원조차 부르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는건 정파로써의 자격이 없는것이나 마찮가지요. 그래서 직접 책임을 물을려고 합니다."
"현무단 전체에게 말이냐?"
"당연하죠."
천후의 말에 모두가 경악하며 말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무림맹 군사부 직속인 현무단은 몇년전 무림 대회를 거쳐 선발된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청룡단, 백호단, 현무단, 주작단의 네개 조직중 세번째로 강한 현무단은 주로 중소문파 후기지수들로 구성되어있다.
"자네, 현무단을 물로 보는건가? 자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고작 귀검시랑 한명을 처리했다고 현무단을 무시하는거냐?"
현무 단주가 천후를 죽일듯이 노려 보았지만 심드렁한 표정의 천후는 단주에게 청천벽력같은 제안을 했다.
"현무단이 그렇게 강하다고 자신한다면 저와 생사결을 하죠."
"놈! 감히 현무단을 무시하다니...절대로 용서할수 없다. 귀검이라는 허명만 믿고 설치는 애송이 놈에게 현무단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다."
"단주, 검귀! 그만 하게. 생가결이라니 말도 되지 않네. 같은 정파인들끼리 생사결은 절대로 인정할수 없네."
분타주가 급히 말리고 있었지만 이미 현무단과 골이 깊어진 천후는 현무단을 박살낼 생각이다.
"분타주님, 여인의 가슴을 노리는 조직이 정파라면 그런 조직은 사라져야 합니다."
"후우, 네가 현무단을 이길수 있을것 같냐? 만약 이긴다고 해도 큰문제다. 현무단에 후기지수들을 보낸 문파에서 가만히 있을것 같냐?"
"정식 제안을 해서 현무 단주도 수락한것입니다. 서로가 약속한 이상 누가 죽더라도 이견을 제시하진 못할겁니다. 생사결이라고 해도 죽이진 않겠습니다. 대신 몇달은 고생을 해야 할겁니다."
자신만만하게 발언하는 천후를 죽일듯이 노려 보던 단주가 현무단을 불러 어떤 일이 벌어 졌는지 설명을 하자 현무단 전체가 천후를 노려 보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현무단은 모두 27명으로 부단주가 죽어 지금은 26명이다.
"꼭 이런식으로 생사결을 해야 하나?"
"분타주님, 외사촌 누님이 크게 다쳤습니다. 저들에게 책임을 묻는건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현무 단주님! 생사결이 끝난후 현무단원 가문이나 무림맹에서 절 핍박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누님에게 수치스러운 짓을 현무단은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금 삼천냥이 적당할것 같습니다."
천후의 말에 모두가 입이 쩍 벌어졌다. 금 삼천냥이라면 엄청난 금액이다. 은 백냥이 금 한냥이다. 모두가 굳어져 있을때 천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단주님, 자신 있으면 수락하시죠."
"좋다. 약속하마. 그런데 현무단이 이기면 넌 어떤 대가를 지불할테냐?"
"대가라니요? 이번 일은 현무단이 누님 가슴을 노린 탓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가를 바라신다면 제 가문에서 금 삼천냥을 지불할겁니다."
모든 책임은 현무단으로 돌리고 너희들 잘못인데도 대가를 원하는 현무단이라고 비하했다. 현무단은 자신을 이기거나 지더라도 소문이 퍼져 쪼잔한 집단이라고 명예에 큰흠집이 생길것이다. 그런 사실을 파악한것인지 단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단원들에게 지시를 하자 일제히 연무장 중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네 정말 현무단 전체를 상대할수 있겠나?"
"장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벅저벅.
천후도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갔다. 현무단과의 싸움은 피할수가 없었다. 이미 살기를 내비치는 현무단원들이다. 현무 단주는 자신이 가담할 필요도 없다는듯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방관하고 있었다.
"무기를 뽑아라!"
"네놈이 누님의 가슴을 벤놈이구나."
듣든데로 얼굴이 개판인 놈은 덩치가 컸으며 큼직한 도를 들고 있었다. 혼자서 상대할려는지 전면에 나선 상태였다.
"후회하지 않을려면 모두 한꺼번에 달려 드는게 좋을꺼다. 그럼 시작할까?"
검은 뽑지 않았다. 절정에도 들지 못한 현무단원들을 상대로 무량 검형을 선보일 필요도 없었다. 양손을 가볍게 앞으로 내밀자 오른손에는 파란 청염(靑炎)이 생성되었고 왼손에는 새하얀 백염(白染)이 뭉쳐졌다.
"허억! 가, 강기(罡氣)!!"
"저, 저럴수가...양손에 서로 다른 강기라니...있을수 없어!! 사술이 틀림없어."
"음양(陰陽)의 강기라니..."
현무단원들이 기겁하며 절로 한발씩 뒤로 물러 나며 경악하고 있었다. 불과 이십대의 나이로 강기를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도 서로 다른 강기를 순식간에 시전하는 천후에 주눅이 든것이다.
"부, 분타주는 알고 있었나?"
"...음, 벌써 저런 경지라니...도저히 믿지 못하겠군."
화 장주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분타주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감을 뱉어낼 뿐이었다.
"각오해라! 특히, 파렴치한 짓을 한 네놈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감히 누님 가슴을 베어?"
팟!
"피, 피해!!"
현무 단주가 급히 소리치자 전면에 등장한 큰덩치 놈이 신법을 발휘해 오른쪽 옆으로 이동할려고 했지만 어느새 접근했는지 천후의 오른손이 놈의 오른쪽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크아아~!"
쨍그랑.
오른쪽 어깨가 뭉텅 뜯겨 나간 놈은 오른팔이 덜렁거리며 도(刀)를 놓쳐 버렸다.
퍽!
"컥!"
무방비 상태가 된 놈의 턱을 가볍게 걷어차자 턱이 박살나며 뒤쪽으로 붕 날아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확인도 하지 않고 현무단원들에게 달려 들고 있을때 현무 단주가 급히 접근하며 창을 내지르고 있었다.
쩡!
"크윽!"
주르르.
연무장 바닥이 깊게 파이며 현무 단주인 멸마창 악대종이 뒤로 밀려 나며 따라 붙는 천후를 피하며 신법을 발휘하며 다시 창을 내질렀다. 창끝은 하얀 빛으로 번쩍거리는게 강기를 주입한것 같았다.
쩌정!
"으윽!"
천후의 주먹과 창끝이 부딪히자 멸마창은 다시 뒤로 밀려나며 신음을 흘릴새도 없이 접근하는 천후에게 창을 빠르게 내질렀다.
슈슈슈슈.
쩌정쩡쩡!!
"크윽!"
한번씩 부딪힐때마다 신음을 흘리는 멸마창은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검귀가 설마 강기를 자유자재로 시전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리 음양의 강기를 시전할수 있더라도 고작 한두번이 한계라고 생각했다.
저 나이에 내공이 있어봐야 한두번의 강기를 시전하면 내공이 바닥날것이라는 생각이 처참하게 깨져 버린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내공이 먼저 바닥날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살을 주고 뼈를 베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창을 고쳐 잡고 순식간에 접근하며 주먹을 내지르는 귀검을 향해 왼손을 들어 올리며 주먹을 막으며 창을 내뻗었다. 왼손은 이미 박살이 났는지 감각이 없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다. 이번 한번으로 반드시 승부를 봐야한다.
모든 내공을 쥐어짜 주입시킨 창이 검귀의 가슴에 박힐려는 순간 검귀의 신형이 눈앞에서 깜쪽같이 사라졌다. 즉시 몸을 돌리며 창을 뒤로 휘둘려고 했지만 왼팔의 감각이 사라진 탓인지 몸이 비틀거릴때 오른쪽 어깨가 화끈거리며 오른쪽 다리 관절이 급격히 앞으로 꺾이며 무릎이 굽혀질때 뒷통수가 번쩍하며 정신을 잃었다.
현무 단원들은 단주와 검귀의 싸움에 끼어 들수가 없었다. 너무 빠른 움직임과 서로 강기를 시전하고 있는 탓으로 자신들이 끼어들면 단주에게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단주가 별 힘도 발휘하지 못한채 허무하게 쓰러지자 즉시 포위를 한채 사방에서 달려 들었다. 그러자 검귀가 양손의 강기를 서로 부딪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쩌정!
파치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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