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천후, 치료하다(2)
167화.
지켜 보던 의원이 기함하며 소리쳤다. 갑자기 나타난 젊은 무인은 영약이라는 것을 사용해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하고 있었다. 그런 영약이 있다는건 들어 보지도 못했다. 의술의 신이라는 화타가 와도 저런식으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치료할순 없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자인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아무리 말끔하게 치료를 했다지만 이어 붙이자마자 움직여 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한동안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해야 뼈가 붙을 것인데도 움직이라는 것은 이미 뼈까지 이어 붙였다는 뜻이다.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걱정마세요. 당장 검을 쥐고 움직여도 될 정도니까요."
치료를 받은 무인도 믿기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보았다.
"어어...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 나았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인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몇번이나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명의 치료가 끝나자 팔다리를 찾아 온 무인들이 속속 의방으로 들어왔다. 부상자들의 치료는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천후는 녹초가 된 상태다. 의원들이 천후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지만 소가주가 말린 덕으로 겨우 의방을 벗어 날수 있었다.
"소가주님, 무인들의 입단속을 시켜 주십시요. 제가 치료해 주었다는 소문이 돈다면 다시는 치료해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십시요."
"걱정마십시요, 세가 무인들을 대신해 검귀 소협에게 감사드립니다."
지친 표정으로 숙소로 돌아 오자 협도 대협이 대뜸 소리쳤다.
"어딜 다녀 오는게냐? 세가가 지금 큰일 치룬 상태다."
"죄송합니다. 지금 너무 피곤해 한숨 자야겠어요."
세가 손님 입장에선 세가안에서 벌어진 싸움이라고 해도 도와 달라는 요청이 없으면 함부로 나설수 없다. 무인들 입장에선 무엇이든 공짜는 없다. 도와 달라는 것은 그만큼 대가를 지불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번 습격에선 천후가 도와 주긴했지만 남궁세가 무인들만으로 해결한셈이다. 저녁 무렵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시녀가 깨어나면 즉시 가주님이 모셔 오라며 안내를 했다.
"검귀, 정말 고맙네. 자네의 신기한 의술로 무인들이 새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찮가지라네. 뭐든 말해 보게."
가주는 뭐든 말하면 들어줄 기세였다. 세가 무인들이 별손실없이 고스란히 복귀할수 있었던 모두 천후 덕분이다. 팔다리가 끊어진 중상자들은 모두 은퇴를 해야 하지만 완치된 덕으로 전력을 그대로 유지할수 있었다.
폐쇄된 세가에서 전력 누수는 쇄퇴의 길로 접어 드는 지름길이다. 고작 몇명이 은퇴를 한다고 해도 곧바로 무너지진 않겠지만 제대로 된 무인 한명을 양성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자금은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뭘 바라고 도와준건 아니에요. 남궁세가는 제 집이나 마찮가지잖아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고맙네."
가주는 환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며 주머니 한개를 내밀었다. 사양하는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품속에 집어 넣자 가주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개방에서 알려온 정보라네. 중원 도처에서 강시들이 등장해 여러 문파와 세가들을 습격했다더군. 어떤 세력인지 개방에서 뒤쫒고 있지만 아직 정체는 모르는 상태라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은천세가가 걱정이군요. 당장 세가로 가 봐야 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도와 줄일이 있으면 뭐든 말하게."
"감사합니다."
태상가주를 찾아 가 가주가 한말을 전해 주며 은천세가로 가 봐야 한다며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고했다. 영 아저씨에게도 전음으로 인사를 하고 급히 숙고로 돌아왔다.
"대협, 전 급히 은천세가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큰일이군.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많은 피가 흐르겠군. 무림맹에서 보세."
협도 대협도 이미 알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귀에 거슬렸다. 무림맹에서 보자는 말은 무림맹이 이미 세가나 문파에 소집령을 내린것이다. 은천세가를 비워두고 무림맹으로 갈순없었다.
세가를 방어할 정도의 무인들은 아직 은천세가엔 없었다. 세가 무인들이 수련을 하고 있다지만 절정 고수라곤 할아버님 혼자뿐으로 다른 무인들은 일류 고수들이다, 일류 고수만으로는 세가를 방어할순 없다. 적어도 고수 몇명은 필요했다.
작은 세가로 많은 적이 쳐 들어오진 않을것이다. 절정 고수는 할아버님이 상대한다 쳐도 습격한 놈들중에 고수가 있다면 일류 고수인 세가 무인들만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것이다. 협도 대협과 작별 인사를 하고 은영을 방으로 불러 남궁세가를 나섰다. 정문쪽으로 이동하자 자신이 치료해준 무인이 알아 본것인지 빠르게 달려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엔 다치지 마세요. 전 이제 집으로 가 볼겁니다."
"감사했습니다."
남궁세가를 나가 빠르게 이동했다.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 천후는 은영에게 손을 내밀어 잡으라고 한후 눈을 감으라고 했다.
"사이킥 워프!"
은천세가 공중으로 이동해 지붕위에 살짝 내려 온후 은영에게 눈을 뜨라고 했다.
비틀.
"우욱!"
"내공을 돌리면 안정될꺼다."
처음 경험하는 공간 이동에 은영의 얼굴이 창백했다. 세가 지붕위에서 둘러 본 은천세가는 변함없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감에 젖어 있을때 은영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가주님, 여긴 어딘지요?"
"복건성 하문의 은천세가다."
"예엣?"
서둘러 주변을 다시 둘러 보는 은영이었지만 이곳이 정말 복건성인지 어딘지는 아래로 내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봐야 알수 있을것이다. 은영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말한뒤 아버님을 찾아 갔다.
"이제야 돌아 온거냐?"
"예. 세가에 아무 일도 없었죠?"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게냐?"
아버님에게 중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 드리며 하문에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자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세가 무인들을 모두 합쳐봐야 채50명도 되지 않았다. 세가에서 관리하는 가게에 무인들을 파견해 보호하는것도 벅찬 상태다. 순찰 형식으로 교대로 하문을 돌아 다니고 있지만 정보를 수집한다든가 누구를 감시한다는건 꿈도 꿀수 없었다.
세가 무인들을 양성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다. 하문의 여러 가게에서 받는 자금만으로 지금도 빠듯하게 세가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많은 자금은 필요없었다. 자금이 많을수록 무인들 수가 늘어 나면 다른 문파에서 경계할것이 틀림없었다. 지금도 변방의 작은 세가이기에 습격당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다. 세가가 커지면 시기하는 자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지금 상태가 가장 좋지만 세가 무인들의 전력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세가를 나가기 전에 무인들을 가르키긴 했지만 그때와는 달리 단시간에 전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혹독하게 수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버님에게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았다. 하문 정보는 무이촌 분타주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동생과 걸오가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캉캉!
둘은 대련중이었다. 막상막하의 실력으로 어느쪽이 우세하다고는 말할수 없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대련이었기 때문이다. 내공면에서는 천추가 걸오보다 월등히 많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근데 갑자기 왜 형님으로 부르는거냐?"
"헤헤, 저도 이제 다 컸잖아요."
쑥쓰러운듯 얼굴을 살짝 붉힌 천추였다. 무이촌 분타주는 아직 내려 오지 않았다고 했다. 무림맹에 볼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것 같았다. 둘의 서로 대련을 하거나 마나 집적진에 교대로 들어가 내공을 연마하는 나날이었다. 둘이 계속 수련을 하라고 하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하문을 순찰하거나 세가 경비를 서는 무인들을 제외하곤 모두 연무장에 모여 수련을 하고 있었다.
"소가주님! 오셨습니까?"
"예. 대주님,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세가 무인 은천대(珢玔隊) 총50명중 35명이 나란히 정렬했다. 모두를 둘러 보며 중원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강시라는 말에 모두가 경악하며 불안해했다.
"그래서 전력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신법을 가르켜 드리고 내공을 상승시켜 드리겠습니다. 일단 잘 보세요. 여러분들이 배울 신법이에요."
즉시 경혼신법을 시전했다. 처음엔 천천히 시전하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급기야 신형이 흐릿할 정도가 되자 은천 대원들은 경탄스런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채 다물어질줄을 몰랐다.
"보셨죠? 경혼신법이라는 무공으로 경공과 보법 모두 사용할수 있어요. 일단 구결을 불러 줄테니까 모두 기억하세요."
모두가 기억할때까지 몇번이나 불러 주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동료들에게 물어 보라고 했다. 연무장 한쪽 구석 바닥에 경혼신법을 연습할수 있게끔 발자국을 몇군데 찍어 주었다. 한개만으로는 부족할것 같아 열개를 찍어 주고 임독맥도 뚫어 준다며 은천 대주부터 오라고 했다.
"소가주님, 정말 임독맥을 뚫을수 있는 겁니까?"
"문제없어요. 그냥 편하게 앉아 있으면 되요. 심법은 돌리지 말고 다 뚫은 뒤에 돌리라고 할때 돌리세요."
은천 대원 모두의 임독맥은 3일에 걸쳐 뚫어 주고 마나 포션도 한병씩 먹였다. 마나 포션을 영약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귀한 영약을 내려 주는 세가에 충성심이 하늘을 찔렀다. 귀한 영약은 어느 문파라고 해도 핵심 인물이 아니면 절대로 꿈꿀수도 없다. 그런 영약을 모두에게 선사하고 임독맥까지 뚫어준 덕으로 은천 대원들의 무공은 나날이 상승하고 있었다.
경혼신법을 수련하는 대원들과 자신과 대련하는 대원들로 나누어 연무장은 하루종일 신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대련으로 나가 떨어진 대원들이 부상을 입어 고통에 겨워했지만 대원들의 얼굴을 밝았다. 아무리 큰 부상을 입더라도 순식간에 치료해 주는 소가주 덕으로 부상 걱정없이 실전이나 다름없는 대련을 할수 있었다.
"소가주님은 어느 정도 경지입니까?"
"저도 잘 몰라요. 아마 초절정은 될것 같은데요."
소강춘 대주가 대원들이 무더기로 덤벼도 상대도 되지 않아 자신의 경지가 궁금한듯 물어왔다. 자신이 사이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초절정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이킥을 사용하면 화경에서 현경 사이일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대원들은 한달이 지나자 거의 모두가 고수 경지가 되었다. 특히 대주는 깨달음만 있으면 곧바로 절정으로 올라 갈수 있을 것이다.
쩡!
"컥!"
주르르.
대주와 대련을 하고 있을때 무이촌 분타주가 연무장으로 들어 서자 즉시 대련을 멈추고 분타주에게로 달려 갔다.
"많이 늦었네요."
"후우, 그렇게 됐네. 근데 자네 남궁세가에서 무슨 짓을 한건가? 검귀가 신의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네."
아무리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해도 언젠가는 알려 질것이다. 어쩔수가 없지만 나중에 남궁세가를 방문했을때 한소리 할 생각이다.
"그리고 말일세. 지금 중원은 난리가 났네."
"복면인들과 강시들이 문파를 습격한걸 말하는 거죠?"
"물론 그것도 있지만 무황총 지도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무인들이 태산(泰山)으로 몰려 가고 있다네."
"무황총 지도라니요?"
분타주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 보며 설명해 주었다. 300년전 천하 제일인으로 추앙받던 무황이 묻힌 곳이 무황총이다. '무황총에 든 자 천하를 움켜 쥐리라.'라는 소문이 옛부터 돌고 있었다고 알려 주었지만 금시초문이었다. 무림맹에서도 청룡단이 태산으로 가고 있으며 내노라 하는 무인들이 태산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 지도가 진짜라고 믿는 겁니까?"
"진짜든 가짜든 무인이라면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갈수 밖에 없다네."
"강시를 조종하는 복면인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진짜일리가 없죠. 오히려 함정이 아니면 다행일겁니다."
십중팔구 함정일것이다. 무황총 지도를 입수한 자가 미쳤다고 소문을 낼리가 없었다. 무황이라는 이름에 속아 몰려든 무인들은 큰 곤역을 치룰것이다.
"검귀, 가 보지 않겠나?"
"제가 왜요? 함정임이 뻔한데 괜히 가서 생고생하고 싶진 않습니다."
분타주는 은근히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분타주님도 행여 그런 욕심 부리지 말고 수련이나 하십시요. 아, 그리고 하문에 혹시 수상한 자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자들을 발견하면 알려 주십시요. 강시들이 언제 세가를 습격할지 모르거든요. 큰마차나 가마, 짐을 한가득 실은 수레등등 강시관을 실을 만한 물건을 발견하면 즉시 알려 주시고요."
"개방이 네 정보꾼 노릇이나 하라고?"
"거래에요. 거래! 분타주님의 임독맥을 뚫어 줄테니까 정보를 달라는 거에요. 걸오는 임독맥이 뚫려 앞으로 내공을 빵빵하게 모을텐데 사부되는 자가 골골대 봐요. 방주나 장로들에게 아마 걸오를 빼았길걸요."
무림에서는 인재라면 다른 자의 제자라고 해도 자신의 제자로 삼는 일이 허다하다. 만약 걸오가 임독맥이 뚫린 상태란걸 알면 제자를 찾고 있는 명망있는 무림인들은 걸오에게 눈독을 들일것이다. 특히 개방 방주의 눈에 띈다면 바로 빼았길것이다. 제자를 빼았기지 않을려면 사부의 실력도 무시하지 못할만큼 갖추어야 한다.
"크흠, 정말 임독맥을 뚫어 줄꺼냐?"
"물론이죠."
"좋아. 거래 성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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