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죽음, 새로운 환생(2)
36화.
비가 올 날씨가 아닌데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우비도 아니었다. 비가 오기 전에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공기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가지 밖에 없었다. 동물의 오줌은 아니었다. 오줌이라면 따뜻해야 한다. 인간이 물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잡초에게 물을 뿌린다는 점이 이상했다. 그런 물을 몸에 필요한 만큼 쪽 빨아 들였다.
'컥!'
하지만 갑자기 숨이 꽉 막혔다.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독약이다. 몸속으로 들어온 독약은 몸속의 모든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뱉어 낼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왔다. 몸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듯 했다.
'크아아아아아~!!!'
비명을 내지르며 울분을 토해냈다.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되어야 하는지 너무너무 억울했다. 하루종일 고통에 비명을 질러 대었지만 모든 기능이 서서히 정지되어 갔다. 불에 타 죽는 고통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죽일려면 순식간에 죽일 것이지 천천히 죽이고 있었다. 또다시 하얀 빛이 되어 공중으로 떠 올라 순식간에 소용돌이 앞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용돌이에서 튕겨져 나가며 정신을 잃었다.
***
몸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이 아직도 느껴지고 있었다. 잡초인 상태로 죽어 영혼만 분리되었는데도 영혼에 고통이 남겨져 있는것 같았다.
"...으으."
자신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지독한 고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눈을 떴다. 나무 천장이 보였지만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 흰수염이 성성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
"....."
노인이 한말에 한동안 멍해졌다. 대륙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환생한곳은 대륙이 틀림없었다.
"%@...이제 내말이 들리느냐?"
방금 전에 들은 말이 지금은 머리속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마법이었다.
"드, 들립니다."
"네 이름은 뭐냐?"
"이름? 이름?....모, 모르겠습니다."
캐논 드라이브라고 말할려다가 급히 그만 두었다. 아직 자신이 누구로 환생한것인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전전전생의 이름을 답할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환생을 하면 애기일텐데 지금은 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또 빙의를 한것이다. 급히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볼려고 했만 엄청난 고통이 밀려 들어 왔다.
"아악...으으...."
"그대로 누워 있거라. 넌 지금 큰부상을 입은 상태란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슴을 쿡쿡 찌르는 고통에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가슴은 붕대로 칭칭 감아 놓은것 같았다. 역시 빙의를 한것이다. 지금은 어린 아이였다. 손 크기로 볼때 아마 10살전후 일것으로 생각되었다. 지금은 몸전체를 살펴 볼수 없어 확실히는 알수 없었다. 왜 환생이 아니라 다른 자의 몸에 빙의(憑依)를 한것인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이곳이 어디이고 눈앞의 노인이 누군지 알아 보는게 우선이다.
"누, 누구십니까?"
"난 미르코 트루네드라고 한단다. 기억을 잃어 버린게냐?"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음. 그럴수도 있겠구나."
미르코는 이 애가 큰충격으로 인해 정신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은 가끔씩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충격을 받으면 그 일을 잊을려고 기억을 닫아 버린다. 이 애가 지금 그런 상태라고 생각되었다.
약초를 캐고 집으로 돌아 올때 일가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죽어 있었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볼때 귀족같았다. 그들 주변에 기사로 보이는 자들은 없었다. 일가족을 묻어 줄려고 했을때 아직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급히 치료를 했다. 부모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아이도 가슴에 큰상처가 있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죽었을것이다. 부모들의 신분을 알아볼 물건도 전혀 없었다. 이 애는 고아가 되어 버린것이다.
"넌 아마 한달정도가 지나면 치료가 될것이다. 내 마법 실력이 부족해 어쩔수 없단다."
"......."
미르코라는 노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법이라고 했다. 역시 마법이 존재하는 대륙에 온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구에서만 계속 환생과 빙의를 거듭하는줄 알았다. 그것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마, 마법이 정말로 있는 겁니까?"
"응? 마법을 모르느냐?"
"예."
일부러 아무것도 모른척했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자신의 지식을 꺼낼순 없었다.
"글은 읽을줄 아느냐?"
도리도리.
이번에도 모르는척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기억 상실자다. 이애의 기억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음, 그럼 글을 가르켜 주겠다. 통역 마법은 그만 해제해야겠다.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거라."
"......"
1서클 마법사인 미르코는 통역 마법을 계속 발휘하기에는 마나가 부족했다. 마법사는 마나 친화력을 타고 나야 될수있다. 마나 친화력이 없는 사람은 평생을 노력해도 1서클 마법사가 되기도 어렵다. 마르코가 그런 케이스였다. 백작가의 삼남으로 태어난 마르코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마나 친화력이 완전 꽝이었다. 그래도 포기할수 없었다.
삼남은 백작가를 이어 받을수도 없어 분담금을 조금 받아 출가를 했다. 보통 차남이나 삼남은 영주직을 물려 받을수가 없어 왕성으로 올라가 행정관으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미르코는 마법사의 꿈을 접을수가 없어 백작가에 있는 마법에 관련된 책을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 왔다.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마법에 몰두했다. 마나 친화력도 없는 자에게 스승이 있을리가 없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평생동안 연구한 끝에 겨우 1서클 마법사가 될수 있었다. 그런 1서클도 마나 부족으로 한가지 마법을 펼치면 금방 마나 부족으로 허덕인다. 마나 친화력이 없는 사람도 마법사가 될수 있게끔 평생을 연구했다.
마법은 3종류다.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이 사용하는 용언 마법, 고대 마도 시대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언령 마법, 그리고 현재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서클 마법으로 분류할수 있다. 엘프들이 사용하는 정령 마법과 신관들이 사용하는 신성 마법은 엄연히 말하면 마법이 아니다.
정령 마법은 정령들과 계약을 맺어 정령에게 부탁을 하는 방법으로 정령들이 마법과 비슷한 능력을 시전하는 탓으로 정령 마법이라고 명명되었을 뿐이다. 신성 마법은 자신이 신봉하는 신의 선택을 받아 신성력을 물려 받아야만 사용할수 있다. 그리고 용언 마법은 드래곤의 전유물이다. 인간은 용언 마법을 절대로 사용할수 없다. 드래곤 특유의 마나를 인간이 보유할수 없기 때문이다. 서클 마법은 마나 친화력을 타고 나야 한다. 하지만 고대 마도 시대 마법사들은 마나 친화력은 전혀 상관없이 누구나 마법사가 될수 있었다고 한다.
미르코는 고대 마도 시대 마법에 대해 미친듯이 파고 들었다. 현재의 마법사들도 고대 마도 시대 마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지만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게 현실이다. 그럴때에 우연히 마도 시대 서적을 손에 넣을수 있었다. 그 서적에는 마법사들은 머리에 정제된 마나를 저장해 마법을 발휘한다고 쓰여져 있었다. 현 마법사들은 심장에 서클을 만들어 마법을 발휘하지만 고대 마도 시대엔 어떻게 머리에 마나를 저장할수 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평생을 매달렸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이제 살 날도 머지 않았다. 무엇하나 이루지 못한 후회스런 삶이었다.
평생 소원이 마법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1서클은 마법사축에도 들지 못한다. 적어도 마법사 행세를 할려면 3서클은 되어야 마법사로 취급해 준다. 이때 주신의 배려인지 기억을 잃은 아이를 보내 왔다. 평생을 연구에 매달린 탓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다. 이 아이를 양자로 받아 들여 자신의 연구를 이어 가게 할 생각이다.
아이 혼자서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수 없다. 자신이 이제 얼마나 더 살수 있을지는 모른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장 대륙 공용어부터 가르키기 시작했다. 56개의 철자를 가르키며 이 아이의 재능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절대로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얼마나 빨리 습득하는지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천재였다. 단하루만에 56개의 철자를 모두 외워 버린것이다. 이 아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연구가 꽃을 피울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다음날 아이에게 힐 마법을 시전해 주고 통역 마법을 펼쳤다.
"네 이름부터 정하자꾸나. 제논...어떻냐?"
"제논! 좋습니다."
"앞으로 네 이름은 제논이다. 그리고 네 말투가 이상하구나. 아이답게 편하게 말하거라."
"......."
실수였다. 미르코는 반말을 하며 응석도 부리는 그런 아이였으면 하는 바램같았다. 대륙 공용어는 이미 알고 있다. 너무 빨리 외워 버리면 이상하게 생각할것 같아 일부러 하루만에 외운 것으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미르코는 놀라고 있었다.
"제논! 내 양손자가 되지 않겠느냐?"
"양손자요?"
노인의 눈빛이 간절했다. 일부러 양손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척했다.
"내 손자가 되어 달라는 말이다."
"예엣? 아, 가, 감사합니다. 하, 할아버지..."
"고맙구나."
이제 자신의 정식 할아버지가 된 미르코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두손으로 내 손을 꽉 잡고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만큼 외로웠던것 같았다. 아직 이곳이 어느 왕국인지는 모른다. 지금은 가슴의 상처 치료가 우선이다. 전혀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어서 할아버지가 없을때 마나 연공을 할려고 해도 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2개월이 흐르자 가슴의 상처가 거의 다 나았다.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도 조금 욱씬거릴뿐이었다.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던 관계로 다리가 앙상했다. 후덜거리는 다리로 집밖으로 나갔다. 집앞 공터의 텃밭외에는 나무들로 빙 둘러 쌓여 있었다. 주변에는 인가라곤 전혀 없었다. 산속 외딴집같았다. 할아버지는 약초를 캐러 갔다. 집을 천천히 한바퀴 돈후 나뭇 가지를 주워 마나 연공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러자 엄청난 마나가 몰려 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나의 홍수에 흠뻑 빠져 들었다.
3개월이 흐르자 미르코 할아버지가 새로운 언어를 가르켜 주었다. 룬어라고 하는 언어로 마법을 배우기 위해선 반드시 룬어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룬어는 모두 365글자였다. 마치 상형 문자처럼 생긴 룬어는 직접 배운적은 없는 문자였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룬어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사이킥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그런 룬어를 바로 이해해 버리자 할아버지의 눈이 커지며 천재라며 칭찬해 주었다.
영어같은 대륙 공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자같은 룬어를 이해하는건 어렵다. 정수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제논도 한참을 헤매었을것이다. 먹고 자는 일외에는 룬어를 외우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 부었다. 일주일만에 룬어를 완전히 외우고 룬어를 이리저리 조합해 보았다. 할아버지에게는 아직 룬어를 조합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또다시 천재라고 호들갑을 떨것이 분명했다.
"할아버지! 마법을 가르켜 줘."
"룬어는 다 외운거냐?"
"......."
"음, 그럼 일단 이 책을 읽어 보도록 해라."
품속에서 작은 호주머니를 꺼내 그안에서 큼직하고 두터운 책 한권을 꺼냈다. 할아버지도 마법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껄껄껄...놀랐느냐? 마법 주머니라는거다."
마법사라면 마법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건 당연했다. 마도사가 되면 마법 주머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공간이라는 공간을 만들수도 있다. 마법 주머니가 탐이 났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마법 주머니는 수레 한대 분량의 짐을 넣을수 있는 주머니로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가격이다.
"마나의 이해?"
"그렇단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알아야 한단다.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더라도 열심히 노력하거라."
탁자위에 올려 놓은 책을 펼쳤다. 대륙 공용어로 쓰여진 첫장은 깨알같은 글자로 마나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 이미 예전에 읽어 본적이 있는 책이었지만 자신이 읽은 마나의 이해와 다른점이 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마나는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다. 공기나 흙, 나무, 돌, 풀, 동물들의 몸속이나 인간의 몸속등 어디에든 존재하는게 마나다.
숨을 쉬고 있는 지금도 본인은 모르지만 마나는 몸속으로 들어 오고 빠져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마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것부터가 마법사의 첫걸음이다. 마나의 존재를 믿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마법사가 될수 있는 길이 열린다. 마나 친화력에 따라 제각기 마나는 다르게 보인다. 어떤 이는 푸른색으로 보이고 어떤 이는 붉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친화력이 전혀 없는 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친화력이 강한 사람들은 타고난 성질에 따라 모두 다르게 보인다.
- 작가의말
즐거운 저녁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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