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오크로써의 삶(3)
64화.
오크 마을 밖으로 나가 적당한 공터에 풀을 제거하고 땅을 뒤집어 엎어 놓고 밭을 만들어 놓았다. 캉킹 씨를 심을 밭이다. 오늘은 혼자서 사냥을 나가는 날이다. 어디를 가든 동생 녀석들이 졸래졸래 따라 다녔다.
"취익! 너희들은 기다려. 취익! 할일이 없으면 바구니를 만들어 놔."
바구니 만드는 일은 전번의 세녀석들이 알고 있었다. 도끼를 들고 바구니를 짊어지고 마을 밖으로 나가 사냥감을 찾으며 나뭇 가지들을 꺾어 일일히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번엔 사냥한 고기를 훈제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냄새가 좋은 나무는 씹어 먹어 보고 독이 없는지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몇종류의 나뭇가지를 꺾어 바구니에 넣으며 감지된 사냥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저건 멧돼지?'
황소만한 크기의 멧돼지였다. 뾰족한 어금니가 30센티는 되어 보였다. 그런 놈앞에 갑자기 해크가 등장하자 놈은 씩씩거리며 돌진해 왔다.
투투투투투.
도끼에 마나를 주입하고 돌진하는 놈의 옆으로 살짝 피한 해크는 놈의 머리통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퍽!
"꾸웨에에~엑!"
돼지 목 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머리통이 박살난 놈은 앞으로 곤두박질치며 쓰러져 더이상 움직이질 못했다. 놈을 짊어지고 이동하고 있을때였다.
사사삭.
수풀 사이로 무언가가 접근하고 있었다. 즉시 마나 서치를 펼쳐 살펴본 결과 몬스터 특유의 마기가 감지되었다. 그렇다고 대형 몬스터는 아니었다.
"끼이끼! 끽!"
키가 작은 코볼트 20마리가 해크를 포위한채 나무창을 내지르며 달려 들었다. 온몸이 털로 뒤덥혀 있는 코볼트는 작은 소동물을 주로 사냥하지만 멧돼지 피냄새를 맡고 달려 온것이다. 오크 한마리쯤은 자신들만으로 충분히 죽이거나 쫒아 낼수 있다고 판단한것이다.
평범한 오크라면 이런 상태에선 멧돼지를 버리고 도주한다. 마음만 먹으면 코볼트 20마리는 죽일수 있지만 부상을 입게되면 다른 몬스터에게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코볼트들은 해크를 만난게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취익! 매직 미사일! 취익! 매직 미사일!"
10발씩 총 20발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가 코볼트들의 이마를 꿰뚫었다. 마법을 처음 보는 놈들은 무엇에 당한것인지도 모른채 순식간에 황천길로 직행해야 했다. 죽은 코볼트 20마리의 다리를 덩쿨로 묶어 멧돼지위에 올려 놓고 짊어졌다.
또 다른 놈들이 달려 들기 전에 빠르게 이동했다. 마을 근처에선 해크가 지시한대로 애들이 열심히 바구니를 만들고 있었다.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 주지 않은 탓으로 계속 만들고 있었던것 같았다.
"취익! 바구니는 그만 만들고 이놈들 가죽을 벗겨."
"취이익! 와아~!"
동생들이 가죽을 쉽게 벗길수 있도록 멧돼지와 코볼트의 배쪽 가죽을 길게 잘라 주었다.
"취익! 시간이 걸려도 되니까 흠집 내지 말고 잘 벗겨."
동생들이 가죽을 벗기는 동안 해크는 바구니를 체크했다. 너무 엉성한 바구니는 제외시켰다. 그리고 적당한 굵기의 나무를 잘라 그릇을 만들었다.
"취이익! 해크, 다 벗겼어."
알몸이 되어 있는 멧돼지와 코볼트들을 모두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녀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코볼트를 등쪽이 바닥으로 가게 한후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드러 냈다. 그러자 코볼트 몸속에 있던 피가 고여 들었다. 지금까지는 모두가 달려 들어 뜯어 먹는 탓으로 피가 사방으로 튀었었다.
벅벅벅.
만들어 놓은 그릇으로 코볼트 몸속을 벅벅 긁었다. 그러자 갈비뼈 안쪽에 달라 붙어 있던 살점이 배안쪽으로 뜯기며 피와 버무려졌다. 고여 있는 피와 살점을 한그릇 마셔 보았다. 달착지근한게 마치 수프를 마시는것 같았다.
"취익! 야크, 마셔 봐라."
해크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보던 야크는 한그릇을 떠서 마셔 보고는 신세계를 경험한듯 놀라워했다.
"취익! 어떻게 한것인지 봤으면 이것처럼 똑같이 만들어."
순식간에 코볼트 19마리의 배가 갈라졌다. 동생들이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해크는 녀석들에게 줄 그릇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맛만 봐야했던 피를 남김없이 마실수 있는 방법이 고안된것이다. 영양가가 가장 높은게 피다. 피만으로도 녀석들은 배가 불룩해졌다.
고기 몇점을 씹어 먹고 남은 고기는 마을에 주라고 했다. 해크는 멧돼지를 독차지했다. 엄청난 크기의 멧돼지를 마을안으로 들고가 배를 가르고 피를 모아 마을 오크들에게 한그릇씩 나누어 주었다. 사냥를 끝낸후 빠르게 이동한 탓으로 다행히 피는 굳지 않았다.
멧돼지 고기는 훈제를 만들 생각으로 나누어 주진 않았다. 멧돼지를 통채로 들고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가 통나무를 베어 마법으로 판자 형태로 만들었다. 아궁이를 만들어 판자로 아궁이 뒤쪽을 감싸 올린후 판자위쪽 옆에 다시 구멍을 뚫은 판자들을 올려 놓았다.
화르르.
오크 마을 외곽에 처음으로 불이 발생했다. 꺾어온 나뭇가지들을 건조 마법으로 말린후 불을 피운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말린건 아니다. 적당한 수분이 나뭇가지에 남아 있어야 연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판자 위쪽에는 나뭇가지에 꿰뚫린 멧돼지 고기가 늘려 있었으며 위쪽을 다른 판자로 막아 놓았다.
불이 판자에 붙거나 위쪽으로 올라가지 않게끔 세심한 주의를 하며 연기를 피워 훈제 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동생 녀석들은 뭘 하는지도 몰라했다. 처음 보는 불에 모두가 놀라 뒷걸음을 치며 겁을 먹은채 지켜 보고 있었다. 멧돼지 고기의 수분이 적당히 빠질때까지 훈제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살짝 건조 마법을 시전했다. 딱딱해진 고기를 조금 잘라 맛보았다. 소금기가 전혀 없어 밍밍한 맛이었다.
"취익! 먹어 봐라."
동생 녀석들에게 조금씩 잘라 주었다.
쩝쩝쩝.
생고기를 날것으로 먹을땐 피맛이 있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훈제 고기는 나무 내음이 나긴했지만 맛이 별로였는지 별반응이 없었다. 소금이 있으면 좋았을텐데 어쩔수 없었다. 소금 대용품으로 향신료라도 찾아야 한다.
"취익! 매운 맛이 나는 열매를 아냐?"
"취이익! 그거라면 뽀르라는 것이 있어."
자크가 어딘가로 달려가 한움큼 작은 붉은 열매를 가지고 왔다.
"취이익! 이건 먹지 못하는건데."
큼큼.
냄새만으로도 매콤한 내음이 풍겨왔다. 뽀르를 건조 마법으로 말린후 그릇안에 넣고는 빻았다. 빨간 가루를 멧돼지 고기에 칼질을 하고는 적당히 바른후 다시 훈제를 해 보았다.
"취익! 맛있다. 너희들도 먹어 봐."
먹어본 녀석들의 반응은 모두가 달랐다. 열매 가루가 많이 묻은 곳을 먹은 녀석은 입에 불이라도 난듯이 개울가로 뛰어 갔으며 조금만 묻은 곳을 먹은 녀석들은 맛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훈제를 하기 위해 녀석들에게 향기가 가장 좋았던 나무와 향신료 열매를 구해 오라고 했다.
해크는 큰 훈제 아궁이를 만들었다. 훈제 작업이 모두 끝난건 다음날 점심 무렵이 되어서였다. 한숨도 자지 않은채 꼬박 밤을 새우며 훈제에만 매달렸었다. 마을의 오크들이 찾아와 뭘 하는지 궁금해 했다. 빨간 불을 보고는 놀라워 하면서도 해크가 겁이 나는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훈제된 고기는 해크의 집안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훈제 고기에 벌레들이 꼬이지 않게끔 바구니를 촘촘하게 엮어 덮어 씌워 놓았다. 훈제가 끝나자 이번엔 캉킹 씨앗을 만들어 놓은 밭에 심었다. 전날 물에 불려놓은 씨앗을 심고 흙을 덮고는 물을 뿌려 놓았다. 오크 생활은 편했다. 배 불리 먹으면 만족하는게 몬스터의 삶이다.
남아 도는 시간은 마나 연공에 매달렸다. 요즈음은 한밤중이 되면 암컷 오크들이 자신의 집으로 몰래 찾아 온다. 자신의 새끼를 배고 싶은 것이다. 암컷 오크들은 모두 쫒아냈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암컷 때문에 마나 연공을 중단해야 하는 일이 몇번이나 벌어지자 화가 난 해크는 암컷들을 찾아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찾아 오지 말라고 했다. 해크가 암컷들을 차 버렸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수컷 성인들이 환호했다.
해크 혼자 암컷들을 독차지하는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수컷들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사냥을 하고 밭에 심은 캉킹을 살펴 보는 일외엔 마나 연공만 했다. 캉킹은 5일만에 싹을 내밀고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해크의 집앞에는 늘 동생 녀석들이 몰려와 대기하고 있었다.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녀석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탄력이 강한 나뭇가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저녁 무렵에 녀석들이 가져온 나뭇가지를 일일히 꺾어 보며 확인을 했다. 게중에 가장 강한 탄력이 있는 것을 골라 활을 만들었다. 무식한 오크들은 타고난 힘이 엄청나다.
오크들이 잡아 당겨도 꺾여지지 않을 정도의 탄력이 있어야 한다. 탄력이 없는 나무들뿐이라면 몇겹으로 나무를 묶어 만들어야한다. 다행히 어떤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한 탄력이었다. 나뭇가지 양끝에 미노타우르스 힘줄을 꼬아 만든 줄을 걸고 가는 나뭇가지로 화살을 만들었다. 화살촉은 물론 방향을 유지하는 깃털도 달지 않은 상태다.
"취익!"
완성된 활을 잡아 당길려면 힘이 필요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잡아 당기지도 못할것이다. 반달처럼 휘어진 활에 걸린 나무 화살을 쏘아 보았다.
핑.
흔들거리며 날아간 화살은 큰나무를 살짝 빗겨 나갔다.
"취이익! 와아아아~!!"
하지만 지켜 보던 동생 녀석들은 신기한지 함성을 내뿜었다. 녀석들에게 활을 만든 나뭇가지로 활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해크의 말은 동생 녀석들에게 지상 명령이나 마찮가지였다. 힘으로 마을을 장악한 해크를 동경하는 녀석들이었다.
"취익! 아저씨, 사냥하러 나가면 깃털을 찾아봐 줘."
"취이익! 깃털?"
"취익! 화살에 붙일꺼야."
마을 보스인 야시크 아저씨에게 활을 직접 쏘아 보여 주었다. 깜짝 놀라는 아저씨에게 화살에 깃털을 붙이면 똑바로 날아 간다고 설명해 주자 만사를 제쳐 놓고 찾겠다고 했다. 활을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 보기에 만드는 방법까지 말해 주었다. 탄력이 강한 나무가 없었다면 활을 만드는데 고생했을것이다.
야시크 아저씨는 나무를 구하러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마을 오크들이 활을 만드는 일에 빠져 들자 활줄이 많이 필요했다. 몬스터의 힘줄은 탄력은 물론 엄청난 강도를 자랑한다. 대형 몬스터일수록 더욱 강한 탄성을 지니고 있다. 어쩔수 없이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러 가야 했다. 도끼를 들고 마을을 나서자 동생 녀석들이 쫄래쫄래 따라 왔다.
"취익! 큰놈을 사냥하러 갈꺼다. 너희들은 마을에서 기다려."
팟.
경혼 신법을 사용해 바람처럼 사라지자 따라온 오크들이 놀라고 있는줄도 모르는 해크는 정글안을 질주하며 대형 몬스터의 마나를 찾아 다녔다. 점점 깊은 정글속으로 들어 가야했다. 미지의 정글안은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여러 동물과 중소형 몬스터들을 많이 발견했지만 무시했다.
'저기다.'
겨우 찾은것 같았다. 계곡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낮은 언덕아래에 바위 동굴이 있었다. 그 안에 대형 몬스터의 마나가 감지되었다.
저벅저벅.
동굴안으로 들어 갔다. 대형 몬스터인만큼 동굴안에서 싸우는게 유리하다. 덩치가 큰놈은 동굴안에서는 행동 범위가 한정된다. 안쪽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지만 유리한 장소에서 싸우는게 싸움의 필승 전략이다.
"취익! 라이트!"
어두운 동굴에 빛이 뿌려졌다. 동굴안으로 해크가 들어온걸 이미 감지했는지 안쪽 깊은곳에서 검은 물체가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온몸이 털로 뒤덮힌 놈은 거대했다. 자신의 두배 크기는 될것 같았다.
동굴 천장이 그렇게 높지 않아 놈은 허리를 숙인 상태였다. 제논으로 환생했을때 몬스터 도감에서 본 트롤이었다. 해크를 발견한 트롤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 왔다.
"취익! 그리스!"
"쿠앗?"
쿵.
앞으로 꼬꾸라진 놈은 얼굴을 동굴 바닥에 박은 상태였다. 기회였다.
탓.
꽝.
큰 놈의 뒷통수를 도끼로 찍어 버리고 전격 마법을 쏟아 부었다.
파치칙.
"쿠아~앙!"
트롤은 머리통이나 심장을 박살내지 않는한 끊임없이 재생한다. 엄청난 포효 소리와 함께 놈이 일어 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깨진 머리와 전격에 의해 부르르 몸을 떨며 축 늘어져 버렸다. 아마 뇌가 곤죽이 되었을것이다. 간단하게 대형 몬스터를 잡은 해크는 동굴안쪽을 살펴 보았다.
혹시나 이놈이 모아 놓은 물건이 있을지도 몰랐다. 안쪽에는 놈이 잡아 먹은듯한 뼈들이 수북히 널려 있었다. 그런 뼈들 사이로 인간의 물건으로 보이는 배낭같은것을 발견했다. 역시 인간이 사는 세계였다. 뼈들을 마법으로 모두 치우고 다른 물건들이 있는지도 찾아 보았다.
그러자 롱소드는 물론 기사들이 입는 풀 플레이트 메일까지 있었다. 보물 창고를 찾은듯한 기분이었다. 창고에서 보물을 찾듯 구석구석을 뒤진 끝에 몇가지 물건을 확보할수 있었다.
배낭 한개와 롱소드 한자루, 찢어진 풀 플레이트 메일, 단검 두자루, 갈갈히 찢겨진 옷, 그리고 실버와 금화 몇개였다. 배낭에는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지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열어 보고는 환호를 했다. 무려 마법 배낭이었다. 전격 마법이 걸려 있는 배낭인지 반드시 확인한후에 손을 집어 넣어야 한다.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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