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청송, 강시를 만나다(2)
58화.
텅.터텅.
생강시는 끊임없이 돌을 던지고 있었지만 빗나가는게 더 많았다.
"파이어 블레이드!"
일단 생강시는 무시하고 홀드로 묶어 놓은 강시들을 모두 죽이기로 했다. 이미 한번 죽은 자들이지만 저 노파로 인해 두번 죽어야할 운명이었다. 수레바퀴처럼 큼직한 화염 원반 모양의 불덩어리가 독강시들을 직격했다.
화르르륵!
"않돼~~에에~!!!"
딸랑딸랑딸랑딸랑.
노파가 큰소리로 외치며 미친듯이 방울을 흔들어 대고 있었지만 사일런스 마법으로 인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생강시와는 달리 독강시들은 활활 타 올랐다. 그런 모습에 노파는 발악하듯 외쳐댔다.
"이이익! 죽여! 죽여 버려!"
딸랑따라라라랑.
텅텅.
생강시가 여전히 돌을 던지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저 금강불괴인 생강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때였다.
따라랑.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울 소리에 생강시는 노파에게로 달려 간후 노파가 건네준 둥근 검은 구슬을 잡고 청송에게로 던졌다.
"매직 핸드!"
덥석.
어떤 물건인지는 모른다. 일단 저 물건을 매직 핸드로 잡아 버렸다.
"할머니! 이게 뭐죠?"
"이이익!! 넌 누구냐?"
"청송이라고 해요."
"어느 문파 소속이냐?"
"소속 문파는 없어요. 이곳으로 달려온 중년인을 따라 왔을 뿐이에요."
청송의 대답에 뒤쪽을 힐끗 본 노파는 눈에 불길이 치솓아 오르는듯했다. 그만큼 화가 나 있는것 같았다.
"넌 정파냐 사파냐?"
"어느쪽도 아니에요. 정사지간(正邪之間)이랄까요."
비록 남궁 세가에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지만 아직 사파 소속 문파는 독문의 세명밖에 만나 보지 못했다. 사파라고 해도 무조건 나쁜건 아닐것이다. 정파든 사파든 사람 사는 세상은 똑 같다. 선한 자가 있으면 악한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자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정파, 사파로 갈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음. 더이상 공격하지 않을테니 내려 오너라."
바닥으로 내려 오자 노파는 검은 구슬은 위험하다며 돌려 달라고 했다. 독탄이었다. 구슬이 깨지면 강력한 독이 퍼진다고 했다.
"생강시를 죽여 주면 돌려 줄께요."
"이 애는 내 자식이나 마찮가지야. 그런 애를 어떻게 죽일수 있겠느냐?"
"이미 죽은 자에요. 사자(死者)를 모독하지 말고 풀어 주세요."
"죽었다니? 이 애는 멀쩡히 살아 있느리라."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고집불통인 노파를 더이상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왜 강시들을 제조하고 있는거에요?"
"...그건..."
노파는 독문 소속 장로라고 했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문은 이미 십여년전에 멸문된 상태다. 장로 자신은 이 동굴안에서 강시를 제조하고 있었기에 화를 면할수 있었다. 무당파 근처에서 설마 강시를 제조하고 있을거라곤 누구도 생각지도 못할것이다.
독문이 무너졌다는 말에 복수를 결심한 노파는 강시 제조에 밤낮으로 매달린 끝에 생강시와 독강시를 제조할수 있었다. 마침 무당파에서 용봉 대회가 열리는 최고의 기회가 다가왔다. 독강시를 풀기전에 당문 소속 인물들을 먼저 제거해야했다. 독문 멸문때 살아 남은 자들에게 지시를 한것이 오히려 화를 자초한 꼴이었다.
청송을 이곳으로 불러 들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독문을 습격해 멸문시켰는지는 모른다. 대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채 오로지 독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독문을 당문, 개방, 아미, 청성파의 합공으로 무너졌다.
네개의 문파에게 복수하기 위해 용봉 대회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테러를 자행할려는 노파의 의도는 받아 들일수 없었지만 반대로 자신이 속한 문파가 어떤 이들에게 멸문 당했다면 가만히 있진 않을것이다.
노파의 심정을 이해할것 같으면서도 독문을 멸문시킨 몇개의 문파에 한정했으면 하는 바램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강시를 데리고 그런 문파들로 이동하면 발각되는것은 물론 어떤 문파에 복수를 했다고 해도 다른 정파 소속 문파들이 떼거지로 몰려 들것이다. 청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이해를 했으면 그 독탄을 돌려다오."
"않돼요. 이건 너무 위험해요. 그리고 복수는 독문을 멸문시킨 문파에만 하세요. 그 네개의 문파에 소문을 흘릴테니까 이곳으로 쳐 들어 오면 복수하세요."
노파를 도와 주기로 했다. 당문, 개방, 아미, 청성파에 독문의 잔당이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이곳의 위치를 알려 줄 생각이다. 네 문파가 다시 합공하는 식으로 이곳으로 찾아 올지 아니면 모든 정파에게 알려 토벌대를 만들어 올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음. 그렇게 해 주겠느냐?"
"제가 도와 드릴수 있는건 그것 밖에 없어요. 그것으로 복수는 끝내세요."
"고맙구나."
독탄도 노파에게 돌려 주었다. 소문을 퍼뜨리고 네개의 문파가 이곳을 찾아오기까진 시간이 걸릴것이다. 그때까지 노파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전 갈께요."
동굴을 나선 청송은 개방에만 소문을 흘려도 개방이 알아서 다른 문파에 전할것이라고 예상했다.
'아!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진법(陣法)을 물어 보지 않았잖아.'
어떤 진법인지 알고 싶었지만 다시 되돌아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개방에 소문을 흘린후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를 알아 보기 위해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용봉 대회가 열리는 무당산으로는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급한게 자신의 잠재 의식을 파악하는 것이다.
무당산에서 조금 떨어진 호북성 균현으로 이동했다. 균현에서 무당산까지는 40킬로정도다. 경공을 발휘하는 무인에게 40킬로는 먼거리는 아니다. 무당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균현도 무당산 아래의 경태(琼台) 못지않게 번성한 도시다. 이곳에는 아직도 용봉 대회를 구경하거나 참가하기 위해 몰려드는 무인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도 모른채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작은 아이 한명이 접근했다.
"숙소를 찾으세요?"
"숙소?"
그러고보니 땡전 한푼도 없었다.
"난 의원이야. 지금 수중엔 한푼도 없어. 그래서 말인데 환자가 있는 부자집을 알고 있으면 안내해 줄래? 치료를 하고 치료비를 받으면 수고비는 준다고 약속할께."
청송의 말에 어린 남자 아이가 믿기지 않아했다. 의원이라면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의원이세요?"
"믿기지 않지? 너 어디 아픈곳이라도 있니?"
"여기요."
아이가 팔꿈치를 보여 주었다. 조금전에 어디서 넘어졌는지 팔꿈치가 까여 피가 굳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럼 치료해 줄테니까 가만히 있어."
치료가 되는 광경을 직접 보여 줄순 없어 팔꿈치를 손으로 감쌌다.
"아, 아파요."
"조금만 참아. 힐."
손으로 만진 상처가 쓰라린지 아파하는 아이에게 한마디하고는 치료 마법을 펼쳤다.
"자아, 이제 다 나았다."
"정말요? 앗? 와아~!"
말끔해진 팔꿈치를 보고는 놀라워하는 아이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제 내가 의원이라고 알았으면 안내를 해야지."
"어떤 병이라도 다 고칠수 있어요?"
"모든 병을 고칠수 있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단다."
"음..알겠어요. 따라 오세요."
아이는 안내를 하면서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었다. 균현에서 가장 큰 표국인 금성 표국 국주의 아들이 몇년째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로 수많은 의원들이 찾았지만 별 차도가 없는 실정이다. 만약 치료를 할수만 있다면 표국의 재산 절반을 떼준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저기에요!"
보기에도 엄청난 규모였다. 활짝 열려 있는 정문으로는 짐을 실은 마차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있었으며 정문옆의 담벼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넌 어쩔래?"
"전 들어 갈수 없어요. 치료가 끝나면 식천관(食千館)이라는 곳으로 오세요."
"알겠다. 찾아갈께. 네 이름이 뭐지?"
"왕청이에요."
나중에 식천관으로 찾아 간다고 하고 왕청과 헤어졌다. 금성 표국안으로 걸어 들어 가자 곧바로 표국 사람이라고 짐작되는 중년인이 달려왔다.
"어떤 일로 방문했는가?"
"의원인데요. 국주님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거에요."
의원이라고 말하자 중년인의 표정이 바뀌며 청송의 이곳저곳을 재빨리 살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정말 의원이냐? 침통은?"
"침통요? 그런건 사용하지 않는데요."
"너! 가짜 의원 행세를 하는거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너처럼 의원이라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은 돼. 일 없다. 꺼져!"
중년인은 호통을 치며 등을 돌리면서 짐수레를 끌고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불렀다.
"달귀! 저 애새끼를 끌어내."
"알겠습니다."
짐수레를 멈춘 건장한 체격의 달귀라는 자가 험악한 인상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주먹을 움켜 쥐었다.
"야~! 다치기전에 꺼져."
"아저씨! 후회할텐데요?"
"후회?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새끼가 말빨하고는...꺼져. 새꺄~!"
막무가내였다. 그렇지만 이해는 되었다. 반대의 입장이라고 해도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이 의원 행세를 한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다.
"아저씨! 후회한다고 했죠?"
꽝.
오른발로 마나를 보내 땅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바닥이 푹 꺼지며 발이 쑥 들어가 버렸다.
"무, 무림인?"
"그 주먹을 사용해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사용해 보세요."
"...아, 아닙니다."
급히 주먹을 뒤로 감춘 달귀는 두려움에 다리가 절로 떨려왔다. 무림인들중에 아이와 노인을 가장 조심해야 된다는건 중원에서는 상식이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이다. 무림인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자가 수두룩하다. 괜히 대들다가는 자신만 다친다. 몸이 상하면 보상은 커녕 표국도 잘리게 될것이다.
"국주에게 안내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앞장서서 안내할려는 달귀라는 자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저 수레를 먼저 처리하고 오세요. 전 여기서 기다릴테니까요. 제가 무림인이라고는 말하지 마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빠른 속도로 수레를 끌고 간 달귀는 창고앞에 멈추자마자 동료를 불러 짐을 부탁했다.
다다다닥.
"헉헉! 가시지요."
얼마나 빨리 일처리를 하고 달려 왔는지 땀이 흥근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아저씨! 놀라지마세요. 클린!"
"응?"
몸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신의 몸을 살펴보든 달귀 아저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청송을 바라 보았다.
"이제 깨끗해졌죠?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마세요. 그럼 갈까요."
"허억! 이, 이럴수가..."
상황 파악을 한 달귀는 기겁했다. 땀범벅이었던 몸은 물론 흥근하게 젖어있던 옷까지 깨끗하게 변해 버린것이다. 그것이 모두 이 어린 무림인이 한것이었다. 하늘을 날고 산을 무너 뜨린다는 무림인이라지만 이런것까지 할수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안내해 주세요."
"아, 예."
달귀 아저씨를 따라 큰건물앞까지 걸어 갔다.
"이곳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전 이곳까지 밖에 갈수 없습니다."
"수고했어요."
문이 열려 있는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탁자앞에 앉아 무언가를 상담하거나 거래하고 있었다.
"응? 네가 왜 여기에 있는거냐?"
처음 청송을 맞이한 중년인이 다시 청송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아저씨! 국주님에게 안내해 주세요. 만약 아저씨가 날 내쫒으면 아저씨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꺼에요."
"이놈이 감히! 뭐? 후회? 어린 자식이 이곳이 어딘줄 알고 그런 막말이냐? 당장 꺼지거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중년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공산경! 무슨 일인가?"
"산초해님! 이 녀석이 의원이라며 국주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조르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어린 놈이 어떻게 의원일수가 있는 겁니까? 당장 내쫒겠습니다."
"어허! 자네, 국주님의 엄명을 잊어 버린겐가? 비록 가짜 의원이라고 해도 의원이라면 무조건 데려 오라고 했네. 가짜라면 나중에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 내면 되는것이라네. 자넨 날 따라 오게."
"공산경이라고 했죠? 후회하게 될꺼에요."
가짜라고 우기는 공산경에게 한마디해 주고는 산초해라는 중년인을 따라 갔다.
"자네 정말 의원인가?"
"그럼 가짜로 보이세요?"
"겉모습만으로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아저씨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진 마세요. 그러다가 큰코 다치는 수가 있어요."
빨리 어른이 되어야 이런 오해도 사라질것이다. 무림인이라고 말하고 무공을 보여 주면 어리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접은 해 줄것이다.
"그래서 널 국주님에게로 데려 가는게 아니냐? 중원에서는 뭐든 조심해야 오래 살수 있는 비결이란다."
"그건 동감이에요."
산초해 아저씨가 안내한곳도 큰건물로 방금전의 건물 뒷편에 있었다.
"국주님! 초해입니다."
"들어 오도록."
집무실로 보이는 곳에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장부를 들춰보고 있었다. 산초해 아저씨가 들어 왔는데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국주님! 의원을 데리고 왔습니다."
"오오! 그래. 어떤 자인가?"
이제야 얼굴을 든 국주는 산초해 아저씨의 뒤에 있는 청송을 한번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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