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제논, 집을 나서다(2)
41화.
"마법을 펼칠줄 알지? 스스로 치료해."
혹시나 경계할지 몰라 뒤쪽으로 한발 물러나 주었다.
"델피티에! 치료해라."
엘프가 치료하는 광경을 지켜 보았다. 정령 마법은 어떤것인지 유심히 살펴 보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과 별반 다른게 없었다. 포션같은 물약을 마시고 힐링 마법을 펼쳐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정령 마법은 정령을 소환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저 엘프는 정령은 커녕 평범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엘프는 정령 마법을 사용하는게 아니었어?"
"엘프마다 다르다. 정령 마법을 사용하는 엘프와 인간처럼 마법을 사용하는 엘프들이 존재한다."
꽈꽝.
큰폭발음이 상단쪽에서 들려왔다. 어두운 밤인탓으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인간! 우리들은 저쪽으로 가 봐야겠다. 이걸 받아라. 그것에 마나를 주입하면 길을 알려 줄꺼다. 나중에 찾아오면 반드시 보답을 하겠다. 델피티에! 가자."
파팟.
얼떨결에 나뭇잎 한장을 받았다. 나뭇잎에 마나를 주입하라는 말에 당황했다. 이게 무슨 네비게이션이라도 되는지 속은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단은 나뭇잎을 마법 주머니에 소중히 넣어 두었다.
퍼퍼펑!
여전히 상단쪽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려 오며 간간히 붉은 화염이 폭발하기도 했다. 저곳으로 가면 쓸데없는 싸움이 휘말리게 될것이다. 자리에 앉아 엘프와의 전투를 되새겨봤다. 왜 마법이 아니라 본능이 먼저 움직이는지 알아내야 했다. 또한 왜 바람을 타고 느낌이 전해져 왔는지도 알아 봐야 했다. 자신에게는 심각한 일이다.
"본능과 바람! 본능과 바람!...."
두개의 단어를 되새기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나 하나씩 역추적했다.
'그럴수도 있겠어!'
한가지 예상되는 점이 있었다. 자신은 환생과 빙의를 거듭하고 있다. 이번이 네번째지만 아마 기억하지 못하는 환생도 있을지도 몰랐다. 기억하는 환생중에 정수와 사자와 잡초의 기억이다. 정수일때는 지구의 지식뿐이었지만 사자는 자신의 위협에 본능적으로 공격성을 발휘하며 잡초였을때는 바람을 타고 전해진 감각을 느끼며 주변 상황을 인지했다.
그것으로 볼때 자신은 사자의 본능과 힘, 잡초의 감각을 고스란히 사용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프의 가슴을 쳤을때 엘프의 가슴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주먹으로 친것도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후려치듯이 갈겨 버렸지만 엄청난 힘이 가해진것이다. 그것으로 사자의 파워를 사용할수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본능도 중요하지만 필요할땐 마법을 우선적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건 혼자서 할일이 아니다. 대련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훈련을 해야 한다. 본능은 자신이 위협당할때 갑작스럽게 발동된다. 신뢰할수 있는 대련 상대를 찾는건 쉽지 않는 일이다.
당분간 어떤 일에도 휘말리지 않고 트루네드 백작가에 빨리 도착해야 해 백작가의 기사에게 대련을 부탁할 생각이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때 이번엔 땅의 진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달려 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모두 9명이었다. 바람은 물론 땅의 진동으로도 알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대비를 했다. 이번에 또다시 공격 당한다면 마법을 사용한다는 생각하며 준비를 했다. 어두운 밤인 탓으로 누구인지는 모른다.
"라이트!"
빛의 광구를 하늘로 쏘아 올려 주변을 밝혔다. 엘프들이 달려 오고 있었다. 그런데 땅의 진동으로 9명이라는 느낌이 전해져 왔었는데 실제로는 12명이었다. 3명이 등에 업혀 있는 상태였다. 여기저기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는 엘프도 있었으며 다리를 절뚝거리는 엘프도 있었다. 그런 엘프들이 자신을 경계하며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공격한 두 엘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멀리 사라져 갔다. 라이트 마법을 해제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마나 연공을 하며 밤을 지새우고 새벽 일찍부터 길을 재촉했다.
백작가로 빨리 가기 위해서였다. 노예 상단이 있던 곳엔 전날밤의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늘부러져 죽어 있었다. 마차가 반쯤 파괴된것도 있었으며 전복된 마차도 있었다. 마차에 뒤집어 씌워져 있던 검은 치장은 모두 벗겨진 상태로 한개의 마차에 노예로 보이는 사람들 8명이 타고 있었다. 옹기종기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은 제논을 보자 몸을 움추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마차문은 굳게 잠겨져 있는 상태다. 이대로 이들을 내버려 둔다면 모두 굶어 죽을것이다.
"언락!"
철컥.
자물쇠를 풀고 마차문은 열어 주었다. 노예 상인이나 용병들은 모두 죽은 상태다.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엘프들도 화가 나면 죽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들은 자유입니다. 가고 싶은곳으로 가십시요. 갈때는 죽어 있는 사람들 품속을 뒤져 돈이나 무기를 가져 가십시요."
"이, 이것도 풀어야 나갈수 있습니다."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마차의 철창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발목의 사슬을 일일이 마법으로 풀어 주었다. 마법사를 처음 보는지 모두들 잔뜩 겁에 질려 있는 표정들이었다.
"자아. 모두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갈만큼 가져 가세요."
그제야 조심스럽게 마차를 나온 이들이 용병들이나 상인들의 품속을 뒤지거나 옷을 벗기는 한편 무기도 주워 들고 있었다. 두대의 마차는 식량을 실은 마차였다. 그런 마차에서 식량을 짊어지고 허겁지겁 달아 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원래 노예였는지 아니면 엘프들처럼 납치된 사람들인지는 모른다. 죽어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노예 상인들과 용병들을 묻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넌 안 가냐?"
"가, 갈곳이 없어요."
15,6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 한명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자초지정을 묻자 자신의 부모들은 모두 살해되고 자신은 노예로 잡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알려 주었다.
"이름이 뭐냐?"
"테인입니다."
"음..그럼 날 따라 다녀라."
"가, 감사합니다."
테인은 몆겹이나 기운 허름한 옷을 입은채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땟국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일단 죽은 사람들 옷을 벗겨 갈아 입어라. 무기도 하나 챙겨."
테인이 죽은자들을 물색하고 있을때 제논은 식량 마차로 가서 남아 있는 식량을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입이 하나 더 불어난 만큼 식량도 많이 필요했다. 남아 있는 용병들의 무기도 모두 회수했다. 나중에 대장간에 팔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저어, 주인님! 저 상인 품속에서 이런게 나왔어요."
"주인님? 넌 내 노예가 아냐. 제논이라고 불러."
"가, 감사합니다."
테인이 내민 것은 작은 주머니였다. 그 주머니안에는 보석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른 자들 품속도 모두 뒤져봐."
앞서 다른 사람들이 미처 뒤지지 못한 사람들 품속에서 나온 물건은 돈주머니 3개와 책 두권이었다. 돈주머니 한개는 테인에게 건네 주었다. 책 한권은 약초의 종류를 적어 놓은 책이었으며 다른 한권은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법이었다.
"클린!"
꾀죄죄한 몰골의 테인의 몸을 씻겨 주자 테인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난 마법사다."
"아, 감사합니다."
테인과 길을 나섰다. 마차를 끌고 있던 말들은 모두 도주를 했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이 있으면 마차를 타고 가면 되었지만 아쉬웠다. 테인이 있는 덕분에 야영 준비는 모두 테인이 도맡아 했다. 식량도 충분해 먹고 싶은만큼 먹으라고 했다.
다음 목적지로 걸어 가면서 테인에게 글을 가르켰다. 글을 알면 테인에게 큰도움이 될것이다. 캐논 드라이브 백작이었을때의 품위나 행동, 언행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여러 가지 기억이 산재되어 있는 탓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민인 테인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것이다. 저녁에 야영할땐 테인에게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을 가르켰다.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법은 몸 전체로 마나를 퍼뜨려 축척시킨후 무기를 든 손으로 마나를 끌어 모아 무기에 담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런 설명을 해 주며 기사들이 사용하는 마나 연공법이라고 하자 테인은 놀라면서 몇번이나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야영 장소엔 두명이 자리에 앉아 마나 연공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마나 연공에 익숙하지 않은 테인은 얼마 가지 못해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했다. 그런 테인에게 슬립 마법을 걸어 주고는 자리에 눕히는 나날이 이어졌다. 테인은 익숙해질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것이다. 트루네드 백작가까지는 3개월이 넘게 걸렸다. 초행길인 탓으로 길을 잘못 들어 빙 돌아 갔기 때문이다. 외성으로 보이는 높은 성벽아래 출입문쪽에는 긴줄이 늘어서 있었다. 한시간정도후에 겨우 경비병과 대면할수 있었다.
"마, 마법사십니까?"
"그렇다."
"실례지만 어느 마탑 소속이신지 알려 주실순 없는지요?"
"......"
할아버지에게 듣기로는 성문 경비들은 마법사라면 아무 말도 없이 통과시켜 준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경비병은 꼬치꼬치 캐 묻고 있었다.
"토, 통과하십시요."
뭐가 어떻게 된것인지 경비병이 갑자기 주눅이 든채 통과시켜 주었다. 아마 절로 인상을 찡그린 탓일 것이다. 마법사가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경비병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테인! 가자."
트루네드 백작령 경비병인 체르미얀은 경비 대장의 지시로 평소와는 달리 검문을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벌써 일주일간 이어지는 검문으로 볼때 백작령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알수 있었다. 방금 통과시켜 준 마법사도 원래는 소속 마탑을 묻고 무슨 일로 찾아 왔는지 물어 봤어야 했다. 하지만 3일전의 일로 인해 꼼꼼히 묻지도 않은채 통과시켜 주었다. 3일전에도 로브를 입은 마법사 한명이 방문했다. 원리 원칙대로 철저한 검문에 화가 난 마법사가 마법으로 동료 한명의 팔다리를 비틀어 버렸다.
경비 대장이 달려 오고 난리가 났지만 영주님이 초대한 마법사라고 판명이 되자 애꿎은 동료만 불구가 된것이다. 좀전의 젊은 마법사도 인상이 구겨졌다. 덜컥 겁이 났다. 동료처럼 팔병신이 된다면 경비병도 잘리게 된다. 자신에게는 먹고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경비병을 잘려서는 않된다.
성문을 무시히 통과한 제논은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 다니고 있는 외성안을 보며 살짝 놀랐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성이었다. 두개의 영지를 지나쳐 왔지만 백작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저어...여관을 찾으시면 안내할께요."
10살 남짓한 아이가 접근했다. 성문 근처에는 다른 아이들도 많았다. 로브를 입고 있는 탓인지 겁 먹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한 아이다.
"미안하지만 여관에는 볼일이 없단다. 내성문쪽으로 안내해 줄래?"
"따, 따라 오세요."
환한 얼굴로 안내하는 아이를 따라 내성으로 향했다. 내성으로 향하면서 거리는 물론 주변 건물을 구경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입고 있는 옷에 따라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저곳이에요."
내성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도착한 아이가 손으로 가르켰다. 문옆에 경비병 두명이 서 있었다.
"고맙다."
품속에서 1실버를 꺼내 주자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실버를 받아 들고 후다닥 뛰어 갔다.
"어떤 일로 방문하셨는지요?"
"제논 트루네드라고 한다. 미르코 할아버지 일로 찾아 왔다."
"......"
고개를 갸웃둥한 경비병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뒤 급히 내성 안쪽으로 뛰어 들어 갔다. 30분정도 기다렸을때 안쪽에서 달려오는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시종장인 매지슨입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겉늙어 보이는 노인 한명이 나와 스스로 안내를 자청했다. 시종장이 직접 안내를 한다는건 트루네드라는 가문 이름을 들먹여서였다. 제논은 미르코 할아버지의 말대로 했을 뿐이었다. 내성에 있는 집들은 외성의 집들에 비하면 크기는 물론 층수도 달랐다. 길도 깨끗했고 돌아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시종장이 안내한 거대한 성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 갔다.
똑똑.
"소영주님! 매지슨입니다."
"들어 오게."
집무실로 보이는 방에는 큰테이블 앞에 노인 한명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시종장은 영주가 아니라 소영주에게 안내를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또한 소영주라는 사람이 설마 노인일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영주는 60대쯤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소영주라고 불리우고 있다는 것은 영주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누가 트루네드라는 성을 사용하는가?"
"접니다. 제논 트루네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테인은 친한 동생입니다."
"테, 테인이라고 합니다."
테인은 주눅이 든것인지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평민인 테인이 귀족앞에 당당히 서 있는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었다.
"저 애는 방으로 안내해 주게."
시종장이 테인을 데리고 나가자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며 소영주도 소파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르코 트루네드님은 내 작은 할아버지시네. 건강하신가?"
"...마나의 품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그렇군."
"할아버지의 지시로 백작령을 방문했습니다. 영주님을 만나 이 편지를 건네 주라고 했습니다."
마법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건네 주었다. 편지를 받아든 소영주는 잠시 머뭇거린후 개봉해 읽고 있었다.
"따라 오게."
편지를 읽은후 어디론가 안내를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소영주를 따라 갈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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