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나라시덴 상단(3)
11화.
"드라이브 백작이라면 20여년전 프론티아 남부에 있었던 그 백작가를 말하는 건지요?"
"백작가를 알고 있나?"
"예전에 몇번 상행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드라이브 백작가를 알고 있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자신은 어릴적에 백작가를 떠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다.
"드라이브 백작가 영지는 지금도 마르티스 백작가가 차지하고 있나?"
"그런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르티스 백작가는 지금은 후작가 승작한 상태입니다."
"후작가로?"
귀족이 한단계 승작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특히 고위 귀족은 더욱 어려운게 승작하는 것이다. 혁혁한 전공을 세우거나 특별한 무엇이 없다면 절대로 승작할수 없음에도 후작가로 승작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왕비가 마르티스 백작 영애로 전임 국왕이 죽고 일왕자가 왕좌 자리를 이어 받아 자신의 지지 기반을 돈독히 하기 위해 마르티스 백작가를 포섭한 결과로 후작가가 된것입니다."
특별한 공을 세운게 아니라 정치적 계산에 의해 승작한것이다. 왕비를 배출한 가문은 당연히 그에 걸맞게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마르티스 백작가가 후작가로 승작했다는 말에 영지를 되찾는 일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뒤에 버티고 있는 왕비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프론티아 왕국으로 가는 길인지요?"
"그렇다."
"그럼 동행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나?"
나라시덴 상단주의 호의로 동행하게 되었다. 나라시덴 상단은 규모가 작았다. 상단이라기 보다는 상회에 가까웠지만 타국과의 무역에서는 규모가 적은 상회라고 해도 상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했다. 상인 5명, 짐꾼 8명, 호위 용병들이 10명으로 모두 23명이 수레 8대를 끌고 가는 것이다. 수레 두대에는 식량이 실려 있다고 했다. 용병들은 캐논을 무시하는 눈치였지만 나라시덴 상단주는 깎듯이 대접해 주었다. 상단주의 아들인 부상단주 아그렌은 그런 아버지의 태도에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코스피 백작령의 허들러 도시까지는 한달정도나 걸렸다. 이곳에서 물자를 보충하고 프론티아 왕국으로 넘어 간다는 말에 계속 동행하기로 했다.
허들러는 대도시라고 할만큼 굉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무역 중계지인 만큼 성장하지 않을수가 없는 입지였다. 캐논도 허들러 도시를 구경하며 필요한 물자를 구입했다. 5년전 자신과 동행했었던 상인들을 수소문해 보고 싶었지만 마차에 탄채로 이동하고 있었던 탓으로 어떤 상인들과 동행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알아 볼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어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 허들러에서 3일을 쉬고 몬스터 산맥을 가로 지르는 상행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도 큰상단이 앞장서고 중소 상단들이 뒤를 따라 가고 있는 구조였다. 케논은 몬스터 산맥으로 들어 선후 혹시나 토랑을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산맥을 주변을 계속 살피며 걸어 갔다.
별다른 일도 없이 10여일을 이동했을때였다. 하루에 이동할수 있는 거리는 얼마되지 않아 깊은 산속으로는 아직 들어 가지도 못한 상태다. 산속이지만 제법 넓은 공터에 야영을 준비했다. 이런 공터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상인들이 야영을 하는 곳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야영하기에 적당한 장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캐논은 더이상 야영을 할때 샤벨 타이거 가죽을 꺼내진 않았다. 너무 눈에 띄는 가죽이기 때문에 코반 자작령에서 구입한 모포를 깔고 모닥불 옆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끼루루. 끼루. 끼루룩룩."
낮이나 밤에는 항상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지만 특이한 울음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몬스터 산맥에서 5년이나 생활한 캐논이다. 저 울음 소리는 경고 소리였다. 주변에 무엇이 접근하고 있는지 귀를 귀울였지만 알수가 없었다. 상인과 용병들의 코 고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모닥불 옆에는 불침번을 서는 용병이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자신이외는 잠에서 깬 자는 찾아 볼수도 없었다.
흔들흔들.
"상단주, 일어 나라."
"음...무슨 일입니까?"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상단주는 즉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쭈그리고 앉아 자고 있던 불침번 용병놈도 잠에서 깬 상태다.
"저 새 울음 소리가 들리지?"
"들립니다."
"저 울음 소린 무언가 위험한 것이 접근한다는 경고다. 모두 깨워."
대화 내용을 들은 불침번 용병 놈은 즉시 모두를 깨웠다. 그러자 다른 상단 사람들도 하나둘씩 깨어 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접근하고 있다. 모닥불 크게 피우고 주변을 경계하도록 하게."
용병들이 부산을 떨며 모닥불에 나무를 던져 넣고 무기를 잡고 경계하고 있을때 앞쪽의 큰상단들쪽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앞쪽 상단이 습격을 당한 것이다.
"모두 경계하라."
상단주의 외침에 용병들이 주변을 둘러 보며 습격에 대비했다. 어두운 밤인 탓으로 뭐가 습격했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앞쪽에서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앞쪽에 있던 상인들과 짐꾼들이 겁어 질린듯 이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헉헉헉! 트, 트롤이다."
트롤이라는 외침에 몬스터 산맥에서 구해준 용병인 다우트에게서 들은 트롤에 대한 설명이 생각났다. 거대한 몸에 재생력이 뛰어 나다는 트롤은 소드 익스퍼트 기사 5명이상이 공격해야 겨우 잡을수 있을 정도의 상급 몬스터로 트롤의 피는 마법사나 신관이 포션을 만드는 재료로 비싸게 팔린다고 했다. 머리나 심장을 박살내야 죽일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 트롤이 습격한것이다. 호위하는 용병들중에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든 용병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큰피해를 볼것이 뻔했다. 이미 후방으로 도주한 상인들로 볼때 용병들이 감당할수 없는것이란걸 알수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용병들도 모두 겁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습격한 트롤은 한마리 뿐이라고 했다.
"용병들은 모두 전면으로 가서 트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여러 상단이 모여있는 덕분으로 각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을 모두 모으면 제법 많은 인원이 되었다. 그런 용병들이 힘을 합쳐야 할때였다. 트롤이 앞쪽의 큰상단만 습격하고 숲으로 돌아 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만약 이곳으로 온다면 상단들은 더이상 상행을 할수도 없을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들중에는 전재산을 털어 상행을 준비한 상인들도 있을것이다. 몬스터 산맥을 넘는 상행은 도박이나 마찮가지다. 성공하면 막대한 이익을 남길수 있지만 몬스터나 산적을 만나 큰피해를 입으면 파산하게 될것이다. 파산한 상인의 가족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가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무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상행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피해를 입더라도 경미할 정도로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크와아앙앙!!"
트롤의 울부짖는 소리가 밤하늘을 찢어 발기고 있었다.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었다. 상인들과 짐꾼들은 덜덜 떨고 있었으며 용병들도 겁을 먹고 있는듯했다.
쿵쿵쿵.
땅을 진동시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 오며 앞쪽에서 용병들이 우르르 몰려 오고 있었다. 용병들을 따라 거대한 물체가 쿵쿵거리며 달려 오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부아아앙.
꽈직.
퍼퍽!
"크아악!"
"카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용병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 오고 있었다. 앞쪽에 몰려 있는 용병들은 주춤거리며 한발씩 뒤로 물러 나고 있었다. 앞쪽 상단쪽에서 물러 나고 있는 용병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것과 동시에 거대한 검은 물체가 눈에 들어 왔다. 트롤이라는 놈은 한번 본적이 있는 놈이었다. 토랑과 함께 이동하고 있을때 조금 먼거리에서 눈이 마주쳤지만 토랑을 보고는 도주한 놈과 모습이 똑 같았다. 3~4미터는 될법한 크기의 거대한 놈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는 나무를 통채로 뽑은 것인지 뿌리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몽둥이를 한번 휘두를때마다 용병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장면은 절로 눈쌀을 찌뿌리게 했다.
"상단주, 호위중에 마법사는 없는거냐?"
"그렇습니다. 마법사를 고용할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합니다."
"놈이 이곳으로 온다면 용병들이 막을수 없겠지?"
"후우...그렇습니다. 앞쪽의 상단 호위 용병들이 막지도 못하는 놈을 저희쪽 용병들이 절대로 막을순 없습니다."
큰상단들은 용병단을 통채로 고용한다고 들었다. 용병단을 꾸릴려면 반드시 익스퍼트급 용병이 있어야 한다. 중소 규모급 상단은 그런 용병단을 고용할수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관계로 용병 사무실에서 고용한 어중이 떠중이 용병들을 고용한 상태다. 그런 용병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도주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돈 보다 목숨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음..나서야 하나.'
나라시덴 상단주는 자신의 모든 편의를 봐 주며 귀족다운 대우도 해 주고 있었다. 점점 밀려 오는 앞쪽의 용병들을 보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초조해 하고 있었다. 용병들중에는 뒤쪽을 힐끔거리며 도주할 움직임도 보였다.
저벅저벅.
"어, 어딜 가시는 겁니까?"
앞쪽으로 걸어 가는 캐논을 보고 놀란 상단주는 급히 제지를 했다. 그런 상단주가 마음에 들었다. 몰락 귀족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위해주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트롤을 피해 도주한다고 해도 모든 물건은 버리고 가야 한다. 트롤에게서 도주할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무사히 도주한다고 해도 산맥을 무사히 내려 갈때까지 먹을 식량도 없을 것이다.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저 놈을 잡으러 간다."
"예엣?"
깜짝 놀라는 상단주를 뒤로 하고 트롤을 향해 걸어 갔다. 뒤쪽에서 나라시덴 상단주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무시했다.
"비켜!"
주춤주춤 물러 나고 있는 용병들은 뒤를 돌아 보며 길을 열어 주었다. 나라시덴 상단 호위 용병들은 캐논을 알고 있다. 아마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앞쪽의 용병들은 거의 뒤쪽에 있는 용병들이 있는 곳까지 밀려온 상태다. 그런 용병들중에 단한명만이 익스퍼트인듯 롱소드에 넘실거리는 푸른 마나를 담고 트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한명만으로는 아무런 피해도 줄수 없었다. 상처 입은 트롤이 나무를 휘둘러 익스퍼트급 용병을 물러나게 하면 상처가 서서히 치료되기 때문이다. 캐논이 지켜 본 가장 큰문제는 익스퍼트급 용병이 단한명밖에 없어 고전하고 있는게 아니다. 깜깜한 밤인 탓으로 트롤이 휘두르는 나무 뭉치가 어디로 날아 오는지 보이지 않아 당하는 용병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둠을 몰아내야 트롤을 제대로 상대할수 있을 것이다. 또한 캐논이 트롤을 단번에 죽이기 위해 사이킥을 사용하려면 밝은곳이어야 한다.
"사이킥 라이트!"
번쩍.
화악!
"우왓!"
"마, 마법이다."
갑자기 터진 빛에 용병들이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고 있을때 트롤 놈도 눈을 감고 움찔하며 잠시 움직임이 멈춘 상태였다. 공중에는 밝은 빛을 발하는 구체가 둥둥 떠 있었다. 트롤에게 화염 공격을 해선 않된다. 가죽이 타 버리기 때문이다. 눈을 공격해 일격에 뇌까지 박살내 죽여 버리면 트롤 피는 물론 온전한 가죽까지 얻을수 있을 것이다. 트롤이 눈을 뜰때가 기회였다. 정신을 집중했다. 일격에 죽일려면 고도의 정신 집중이 필요했다.
"사이킥 붐!!"
오른손을 트롤을 향해 들며 손가락을 뻗었다. 트롤이 재생하지 못하게끔 일격에 성공해야 한다.
펑.
"쿠와앙아아아~!!"
쿠웅.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한쪽 눈을 가리면서 바닥에 쓰러져 발악하고 있었다. 눈알이 터져 괴로운 것이었다. 뇌까지는 터지지 않은것 같았다. 그런 트롤에게 익스퍼트급 용병이 기회다 싶어 달려 들고 있었다.
"멈춰!"
급히 달려가는 용병을 제지했다. 가죽에 상처를 내면 온전한 가죽을 얻을수 없어서였다. 달려 가든 용병이 급히 멈추며 케논을 돌아 보았다.
"뒤로 물러서! 저 놈은 내가 잡는다."
캐논의 말에 용병이 눈쌀을 찌뿌리며 뒤로 물러 났다. 바닥에서 괴로워 하는 트롤이 터진 눈알을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공격을 해야 한다. 놈의 커다란 엉덩이 사이로 똥꼬가 드러나 있었다.
"사이킥 드릴!"
꽈직.
"꾸오오오오오!!"
벌떡.
한손을 엉덩이 쪽으로 가져간 놈은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비명을 내질렀다. 둘도 없는 기회였다.
"터져라! 사이킥 붐!!"
이번에는 터지라는 외침까지 집어 넣고 크게 벌어져 있는 놈의 입을 향해 사이킥을 발휘했다.
퍼엉!
입 주변이 터져 나가며 머리가 들썩인 놈은 다시 서서히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쿠웅.
바닥에 쓰러진 놈은 몇번 몸이 들썩이다가 조용해졌다. 완전히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와아~! 죽였다."
지켜보던 용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럴때 익스퍼트급 용병이 다가왔다.
"마법사십니까?"
"저놈은 내것이다."
"물론입니다. 죽인 자가 몬스터 사체를 차지하는건 당연한겁니다."
동문서답이었지만 마법사라고 스스로 말하기가 꺼려져 말꼬리를 돌린 것이다. 익스퍼트급 용병이 허락한 이상 빠르게 놈의 피를 받아 내야 한다.
"나라시덴 상단주!"
상단주를 큰소리로 불렀다. 잠시후 다가온 상단주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캐논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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