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환생, 그리고 오크
61화.
자신은 또 죽었다. 영혼이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갈때 본 광경은 역시 넓은 골프장의 잔디였었다. 이번 생은 짧은 생이었다. 다음은 또 어떤 것으로 환생할지 불안과 기대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이번엔 좁은 공간안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아직 눈도 뜨여지지 않았다. 혹시나 이번에도 식물은 아닌가 했지만 흙내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비둘기였을때와 비슷했다. 알속에 들어 있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새나 파충류등의 동물이지만 부리와 발가락 세개가 감지되는게 새였다.
톡톡.
부리로 껍질을 톡톡 쪼아 깨뜨려야 했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고 본능이 자극하고 있었다. 껍질에 구멍이 뚫리자 밝은 빛이 쏟아졌지만 눈을 뜰수가 없었다.
부르르.
첫느낌은 추웠다. 따뜻한 알속에서 밖으로 나오자 몸이 젖어 있던 탓인지 오돌오돌 떨릴 정도로 추웠던것이다.
"끼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옆에서 들려 오는 소리라는걸 알수 있었다. 자신외에도 형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삐약'이 아니라 '끼아'였다. 병아리는 아니라 야생 조류라고 생각되었다.
서늘한 바람에 젖어 있던 몸이 완전히 마르자 이제야 좀 살것 같았다. 이곳이 새 둥지라면 함부로 돌아 다닐순 없다. 높은 나뭇가지위에 있는 둥지를 틀고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사뿐.
무언가 둥지옆에 내려선 느낌이었다. 눈이 띄이지 않아 무언지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목을 길게 내뻩고 입을 크게 열었다. 먹이를 달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쏙.
무언가가 입안으로 쏙 들어 왔다.
꿀꺽.
무언지도 모른채 그대로 삼킨후 또다시 입을 벌렸지만 퍼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모라고 짐작되는 새는 날아가 버렸다. 어떤 새인지 궁금했지만 눈이 뜨질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날이 며칠이나 지속된후 눈이 뜨질것 같으면서도 아직 뜨지지 않았다. 그럴때에 사건이 벌어졌다. 부모는 먹이를 찾으러 둥지를 비운 상태였다.
스르륵.
무언가가 둥지가 있는 나뭇가지를 타고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릿한 내음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절대 부모는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이 닥쳐 왔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접근하는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었다. 죽으면 환생을 한다는걸 알수 있어 미련은 없지만 형제 녀석은 그런걸 모른다.
뒤뚱뒤뚱.
뒤뚱거리며 형제 녀석 전면을 막아 섰다. 비릿한 내음으로 볼때 이미 코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덥석.
"컥!"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머리를 파고 들며 정신을 잃었다. 밝은 빛이 된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본 광경은 뱀 한마리가 자신을 머리부터 집어 삼키고 있었다.
'제기랄!'
뱀이 자신을 먹고 형제까지 잡아 먹을지 그냥 놔둘지는 모르지만 일단 자신이 할일은 다 했다고 자부할수 있었다.
***
'이번엔 또 뭘까?'
다시 환생했다. 아직 밖으로 나온건 아니다. 이번엔 부리나 투명한 막속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출렁거리는 물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즉시 손발을 움직여 몸 이곳저곳을 살펴 보았다. 이번엔 인간으로 짐작되었다. 손발과 얼굴이 제대로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생각되자 이번에도 이곳에서 마나 연공을 할지 그만 둘지 판단해야 했다. 만약 마나 연공을 한다면 중원에서처럼 어머니의 진원지기를 빼았아 어머니는 몸이 약해질것이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마나 연공을 하기보단 마나 연공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만하는게 좋다고 판단되었다.
'응? 이건...마기?'
왜 자신의 몸속에 마기가 들어 있는지 알수 없었다. 환생한 존재가 마기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마기를 제거할려고 마나 연공을 할수 밖에 없었다. 태아일땐 모든 혈맥이 열려 있다. 마기를 그런 혈맥을 통해 밖으로 배출할려고 노력했다.
'빌어먹을!'
태어난지 채 몇분도 되지 않아 자신은 인간이 아니란걸 알수 있었다. 눈은 아직 뜨지지 않았지만 말소리만으로 자신이 무엇으로 환생한것인지 확실히 알게된것이다. 지구는 아니었다.
대륙 공용어를 사용하는 이들로 볼때 캐논이나 제논으로 환생했을때의 세계에 태어 난것이지만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취이익'이라는 쇠를 긁는듯한 소리만으로 자신은 몬스터인 오크로 환생한것이란게 확실했다.
'후우~! 왜 하필 오크냐.'
돼지 얼굴에 납짝코, 뾰족한 어금니, 울퉁불퉁한 근육, 거친 콧김으로 인한 특이한 말소리가 오크의 주된 특징이다. 오크의 성장은 엄청나게 빠르다. 불과 3년만에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 마을의 오크들은 모두 140마리정도였다. 성인 암컷이 57마리, 수컷이 38마리이며 나머지는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암컷은 한번에 서너마리씩 출산을 하며 외부 활동은 주로 수컷이 담당한다.
암컷들은 수컷이 잡아 오는 동물들을 최우선적으로 먹으며 새끼들을 성인으로 무사히 키우는게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수컷들은 외부 활동을 하며 다른 종족이나 상위 몬스터에게 당해 죽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그렇게 죽더라도 많은 출산과 성장이 빠른 덕으로 언제나 현상 유지를 할수 있다.
만약 수컷들이 외부에서 죽지 않는다면 오크들이 엄청나게 불어 날것이다. 이곳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도 무시할순 없다. 몬스터들의 횡포로 인해 인간들이 몬스터를 토벌하러 올지도 모른다. 깊은 산속이라면 토벌될 우려는 적지만 인간과 가까운 지역에 위치하는 마을이라면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 이대로 성장하면 다른 오크들처럼 근육질의 몸이 되겠지만 힘만 좋은 몬스터일뿐이다. 이곳은 역시 중원과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로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인간의 장기와 모든것이 비슷한 오크도 마나 연공은 문제없었다. 특이하게도 자신은 형제는 없었다. 가끔씩 암컷이 첫출산때 그런 오크들이 태어 난다고 했다.
"취이익! 해크,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아."
항상 방구석에 처 박혀있는 자신을 보고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내 이름은 해크다. 힘을 기르기 위해 거의 밖으로는 나가지도 않고 마나 연공만 하고 있었다. 모든 혈맥이 막히지 않은 관계로 엄청난 마나가 단전으로 수납되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마나를 대주천으로 상단전으로 보내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때쯤엔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집뒤로 가서 경혼 신법을 연습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다른 오크들과는 어울릴 시간도 없었다. 불과 3년만에 성인이 되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마을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해야 한다. 동료들과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지만 어떤 대형 몬스터들과 조우할지 모른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마나 연공 덕인지 다른 성인 오크들보다 머리통 한개는 더 큰 오크로 성장했다. 근육은 그렇게 많지 않아 다른 오크들에 비하면 호리호리하게 보일 정도였지만 인간에 비한다면 엄청난 근육질의 몸매다. 성인이 되기 전에 오크들은 성인식을 치른다. 이 성인식을 통과하지 못하면 성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며 모든 오크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심지어 마을에서 쫒겨나기도 한다.
성인식은 간단하다. 어떤 동물이든 한마리만 잡아 오면 된다. 그렇다고 작은 동물을 잡아 오면 모두가 무시한다. 크면 클수록 오크들에게 인정받는 세계다. 성인식을 치르는 오크는 모두 12마리로 수컷만이 이에 해당된다.
성인 오크들과 함께 마을을 나갔다. 외부 지리는 물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성인 오크들이 호위를 하면서 여러가지를 가르켜 주고 있었다. 이곳은 정글이나 마찮가지다. 높은 나무와 수풀로 우거져 길이 아닌 곳은 돌아 다니기도 힘들 지경이다.
"취이익! 네가 해크냐?"
"취익! 그렇다."
성인 오크 한마리가 내게 접근했다. 또래의 오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탓으로 외톨이나 마찮가지였다. 오크들은 대륙 공용어를 사용하지만 존대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존대말은 아예 모르는 것이다. 거친 콧소리가 가장 껄끄러웠다. 오크들은 말을 하기전에 숨을 크게 들이킨다. 그때에 '취이익'하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되도록 그렇게하지 않을려고 했지만 구강 구조상 어쩔수가 없었다.
"취이익! 넌 왜 저들과 어울리지 않는거냐?"
"취익! 귀찮아서 그래."
"취이익! 우리들은 혼자서는 살아 갈수 없어. 취이익! 서로 협력해야 살아 남는다."
"......"
다른 오크라면 그럴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취이익! 넌 왜 아무런 무기도 없는거냐? 취이익! 성인식에 실패하면 쫒겨 날텐데 괜찮겠냐?"
다른 오크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인간들이 만든 창이나 칼, 도끼를 든 오크들도 있었으며 묵직한 나무 뭉둥이를 들고 있는 오크들도 있었다. 자신만이 유일하게 맨손이었다.
"취익! 이게 무기야."
"취웃!"
주먹을 쥐어 보여 주었다. 그러자 성인 오크가 코웃음을 쳤다. 당연했다. 아직 성인으로 인정받지도 않은 상태다. 성인이라고 해도 맨주먹으로 사냥을 나가진 않는다. 반드시 무기를 들고 나간다. 이곳에서 맨손은 자신 혼자 뿐이다.
"취익! 그런데 모두 같이 행동해야 되는거야?"
"취이익! 지리도 모르는데 너 혼자 돌아 다니면 길을 잃는것은 물론 다른 놈들에게 당할지도 몰라."
"취익! 그럼 혼자 돌아 다녀도 된다는 거지?"
"취웃! 취이익! 자신있으면 그렇게해도 돼."
허락을 받아 냈다. 사실 허락을 받아 낼 필요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성인 오크들이 따라 온것에 불과하다. 사냥할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럴바에는 혼자서 돌아 다니는게 더 편하다.
"취익! 그럼 난 혼자 사냥할께."
"취이익! 살아 남을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해."
저벅저벅.
일행들과 따로 떨어져 나갔다. 모든 오크들이 그런 해크를 비웃고 있었다. 십중팔구 마을로 돌아 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광활한 정글이다. 끝도없이 펼쳐진 정글은 지구의 아마존보다 넓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높은 산이라곤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오크들이 대륙 공용어를 사용하는것으로 볼때 어딘가에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들을 찾으면 이곳이 어딘지 알수 있을 것이지만 오크의 모습으로 인간을 찾아 갈순 없었다. 전번에 억울하게 죽은 탓으로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복수는 꿈도 꿀수 없었다. 기회는 또 있을것이다. 언젠가는 이 세계에 인간으로 환생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복수는 그때까지 미루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자신을 죽인 코린경이 살아 있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번 생은 중원에서처럼 내면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알아 보기 위해 평생에 걸쳐 빗장을 풀려고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조그마한 단서라도 잡았다면 매달렸겠지만 식물이 아닌 이상 생을 즐길 생각이다.
중원보다 몇배는 풍부한 마나로 꽉 찬 대륙이지만 아직 중원에서의 실력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과 3년만에 모은 마나만으로도 이 정도의 마나를 모은것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정도지만 이미 절대의 경지를 경험한 해크로써는 만족스러울수가 없었다. 적어도 5~6년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무언가 한마리를 잡아 가자.'
어떤 동물이든 상관없지만 큰놈 한마리를 잡아 갈 생각이다. 빼곡히 들어찬 수목으로 인해 바람이 전해 주는 감각만으로는 동물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근처에 있다면 바로 알수 있겠지만 먼곳에 있는 동물은 수목에 바람이 막힌탓으로 알지 못했다.
"취익! 마나서치!"
하지만 자신에게는 마법이 있다. 서클 마법이었다면 곤란했을것이다. 오크의 특성상 마법 주문이 도중에 끊겨 버릴 가능성이 다분했다. 언령 마법은 시동어만으로 마법이 발휘되기 때문에 오크의 몸으로도 충분히 사용할수 있었다. 마법이 없더라도 중원에서 배운 경혼 신법과 타고난 신력(神力)으로도 이곳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수 있지만 마법만큼 편리하진 않았다.
마나 부족으로 아직 강기는 생성시킬순 없다. 깨달음이 동반되지 않은 강기라고 해도 강기는 강기다. 열심히 마나를 모아 강기만 생성시킬수 있다면 마법을 펼치지 않고서도 오크 마을을 장악할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작은 마을쯤은 순식간에 손에 넣을수 있다. 귀찮아서 그런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저기다.'
조금 먼곳에서 한놈이 감지되었다. 몬스터 특유의 마기(魔氣)가 감지된것이다. 먼옛날 중간계에 천족과 마족들이 공존하고 있을때 두개의 세력이 전쟁을 벌였다. 두 세력의 치열한 전쟁이 이어질수록 점점 그들의 숫자는 줄어 들어 위기감이 조성되어 갔다.
그럴때 생각해 낸것이 대리 전쟁이었다. 천족은 인간을 마족은 동물들을 이용했다. 천족은 인간들에게 마나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며 마족은 직접 동물들의 몸속에 마기를 불어 넣어 몸을 개조시켜 버렸다.
하지만 그런 대리 전쟁도 오래 가진 못했다. 천족과 마족의 전쟁에 이 세계를 창조한 주신(主神) 아레나가 끼어 든것이다. 아레나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천족과 마족을 이 세계에서 추방시켰다.
천족은 천계로 마족은 마계로 추방시키자 인간과 몬스터들이 남은 이곳을 중간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중간계는 큰 하나의 대륙으로 아레나 대륙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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