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덤을 팔 것인가
원래 황궁 내의 관문들에는 바깥에 두 명의 문지기가 경비를 서고, 문 안쪽에 몇 명의 근위대가 상주하면서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상례였다.
안에 있는 책임자가 침입자라고 판단하면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위에 그 사실을 통보해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었다.
문 앞의 경비 둘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대표해서 비언차이가 외치는 소리를 판단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비언차이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누군가 문지기들을 문 안으로 끌어들이고 단단히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비언차이의 예상에 없던 일이 아니었다.
내관들에게는 이럴 경우에 대비한 작전이 있었다.
비언차이가 누군가를 향해 손짓을 하자, 크고 튼튼해 보이는 사다리를 하나에 십여 명이 달라붙어 들고 오더니 문 양쪽에 두 개씩 걸쳐놓았다.
비언차이는 안에서 무슨 대비를 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만약 담벼락 뒤편 위쪽에 궁병과 수비병들이 배치라도 되면 첫 관문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평생을 궁에서 살아온 내관들이 그런 방비 태세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는 내관들을 저지하는 근위대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큰 저항 없이 첫 번째 관문이 돌파되었다.
첫째 관문이 중요한 이유는 황제의 처소로 가는 관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튼튼하다는 점과 만약의 경우 궁 밖으로부터 어떤 세력이 개입하고자 할 때, 그들을 막는 관문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내관들의 무력 만으로 황궁 전체를 장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니 황제의 처소 만큼은 확실하게 장악한다는 계획이었으니, 첫째 관문을 접수하는 것으로 내관들의 계획은 절반 이상 성공한다는 속셈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관문을 지키던 근위대들은 겁이라도 먹은 것인지 이미 모두 철수한 상태로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비언차이가 거사 시간대를 이 시간으로 잡은 이유는 저녁식사를 마치는 시간은 근위대들이 임무 교대를 하거나 대다수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미처 대응할 방도를 갖추지 못한 첫 관문의 근무자들이 도망친 것으로 비언차이는 판단했다.
첫 관문 안쪽으로는 넓은 마당이 있고 둘째 관문 쪽으로는 근위대의 숙소와 사무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문 근무자들이 숙소로 도망쳤다면 언제라도 근위대의 주력과 맞부딪치게 될 상황이었다.
비언차이는 첫 관문을 담당할 수비 인원을 신속히 배치하고 근위대가 전투태세를 제대로 갖추기 전에 급습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내관들에게 신속한 공격을 다그쳤다.
근위대 숙소의 앞마당은 평소 그들이 훈련을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황제가 주관하는 연회가 열리기도 하는 장소여서 사람이 수 천 명까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장소였다.
그런데 비언차이가 살펴보니 텅 비어 있어야 할 마당에 무언가 가득 들어 차 있는 게 아닌가.
날이 어둡고 통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명조차 없는 밤이라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것들이 모두 근위대 병력일 가능성은 없었다.
비언차이가 이미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황제 처소 내의 근위대 상주 인원은 많아야 백 여 명이었다.
비언차이는 본격적인 공격에 앞서 눈이 밝은 내관 몇 명을 보내서 마당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 오게 했다.
그날 낮에 황제 처소를 출입한 내관들에게서도 이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었기에 더더욱 수상한 생각이 드는 비언차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내관들의 보고는 다소 황당했다.
마당 가득히 천막이 들어서 있는데, 연회용으로 쓰이는 트인 천막도 아니고 병사들의 야영 숙소로나 쓰일 법한 천막이라는 것이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만일 근위대가 내관들의 거사를 눈치채고 미리 대비를 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무엇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모르는 황궁 내의 무슨 행사나 일이 있어서 준비한 것일 수도 있었다.
비언차이는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렸다.
“그것이 무엇이든 크게 신경쓸 필요 없다.
만약에 저들이 우리 계획을 미리 알고 저만큼 대비를 했다면, 쓸 데 없는 천막이나 쳐놓지는 않았을 터이니 이대로 진격한다.
내가 앞장설 테니 모두 따르라.
선두에 선 내관들은 마당에 들어서면 즉시 천막 내부를 조사하여 무엇이 들어 있는지부터 파악하라.”
마당에 도착하여 천막을 조사한 내관들은 하나같이 천막 안에 사람은 없고, 온갖 물건들이 가득 차 있는데, 다름 아닌 장례에 쓸 물건들이라는 것이었다.
비언차이는 순간적으로 황제의 신변에 급격한 변화가 있음을 직감했다.
황제가 이미 죽었거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원래라면 장례의 준비를 도맡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근위대가 주도해서 장례 물품들을 그토록 많이 준비했다면, 이미 이변이 발생했고 내관들을 배제한 가운데 무언가 일을 처리하려는 세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마당에 있는 천막 모두에 장례 물품이 들어 있는지를 조사할 여유는 없었다.
비언차이는 자신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에 공격을 서둘렀다.
“이것은 우리를 대비한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거사에 명분을 줄 만한 일이 폐하의 주변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쓸 데 없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으니 모두 이대로 진격하라.
잊지 말라,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우리 모두가 희생을 당하고 단 한 명이 남는다 해도 반드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와 우리 식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알겠는가 ?”
“네.”
내관들이 이구동성으로 힘차게 대답을 함과 동시에 완전 무장한 3 백 여 내관들이 일제히 둘째 관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이 천막들은 내관들과 근위대가 정면으로 맞붙는 상황을 최대한 배제하고, 내관들이 전열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전투에 돌입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대비였음을......
천막들을 일일이 조사하거나 철거해가면서 가기에는 시간이 급한 내관들은 천막 사이사이로 길을 찾으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막들을 오와 열을 맞추어 쳐 놓은 것도 아니고, 크기도 제각각이라 내관들은 자신들이 미로를 헤매는 듯한 상황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내관들 대부분이 천막이 쳐진 마당으로 진입했을 즈음에 시작된 전투는 일방적일 정도로 내관들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물품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천막 중에는 내관들을 기습하기 위해 배치된 근위대들이 있는 곳도 있었고, 미로 같은 천막 사이사이에서 중요한 길목에는 이미 정예 근위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천막 안과 밖이 서로 호응하면서 내관들을 주살해대니 전체 병력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은 싸움이 되고 있었다.
내관들이 군과 같은 집단전투에 능하지 않다 해도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황궁에서만 비전으로 내려오는 합격술을 충실하게 익혀온 무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내관들이 합격술을 펼치기에도 제일 힘든 여건을 만들고 있었다.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 비명 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내관들이 쉽사리 전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비언차이는 그들의 거사가 이미 들통났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친 걸음이었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고, 자신들은 황제 처소의 관문을 강제로 점거한 상황이니 이제 와서 무슨 핑계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비언차이는 내관들 중에서 고르고 또 고른 정예 무인 12 명을 결사대로 구성해 놓고 있었는데, 그들을 불러 자신의 곁에 세우면서 다른 지휘자급 내관들에게 말했다.
“보아 하니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닐 듯 하구나.
하지만 우리에게 물러설 길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이제 12 명의 결사대와 함께 어떻게든 길을 뚫고 안으로 진입할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유리한 싸움은 아니지만, 너희들은 이곳에서 끝까지 싸워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한다.
또한, 첫째 관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수해서, 내가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럼 다들 살아서 다시 만나자꾸나.
내가 성공만 하면 곧바로 황태자 전하께서 나서서 상황을 수습할 것이야.
누가 되었든 감히 전하의 명까지 어기지는 못할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도록 해라.
나는 먼저 간다.”
비언차이가 결사대를 이끌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앞마당을 돌파하고 있을 무렵, 세틴은 이미 황궁에 들어와 있었다.
세틴이 황궁 정문 앞에서 몇몇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황궁은 제국군 사령관인 내가 직접 통제한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황궁에서 쥐새끼 한 마리 빠져 나가서도 안 되고, 황궁 안으로 진입하는 자도 일체 없어야 한다.
나가는 것은 예외가 없고, 들어오려는 자 중에 내게 용무가 있는 자라면 내게 직접 허락을 받고서야 출입을 허가한다.
수없이 사선을 넘어온 제국군 정예 1 만 명을 가지고도 황궁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겠지.
미리 예정된 3 천 병력은 나를 따라 황궁 안으로 진입한다.
황궁 밖은 호아니 군사께서 직접 총지휘를 맡을 것이며, 궁내로 진입하는 병력은 가우디, 배커, 울브린 세 장군이 지휘한다.
궁 내에서 할 일이 적지 않으므로 각기 1 천 병력을 통솔하여 하명하는 임무를 수행토록 한다.”
상세한 설명도 없고 일체의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 명료한 명령이었다.
황궁 밖이 완벽하게 장악되고 포위됨은 물론 모든 출입문까지 통제되고 있음을 확인한 세틴이 황궁 안으로 들어가 황태자의 처소로 향했다.
오디어스는 세틴을 보자마자 길길이 날뛰었다.
“아니, 어떻게 내게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제국군이 황궁을 장악할 수 있지 ?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 ?
황제 자리가 그렇게 욕심이 나던가 ?
내가 살면서 수시로 안면을 바꾸는 자들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너처럼 응큼하고 뻔뻔한 자는 처음 보는구나.
말로는 그렇게 명분과 대의를 찾고, 혼자서 잘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한다는 짓이 군대를 동원해서 판을 뒤집는 거야 ?”
세틴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하, 설마 내관들이 폐하를 시해하려는 거사를 일으킬 거라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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