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회의의 주인공
그가 보기에 설파는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진실했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도 나름대로 정확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남부를 제외하거나 따돌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적당한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요.
설파 경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경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부탁드려야 할 사안입니다.
남부는 제국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 넓고 인구도 가장 많은 핵심 지역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제국을 지탱해온 든든한 대들보 같은 존재였지요.
이제 거창하게 들고 일어났던 반란군 세력들이 거의 소탕되었으니, 남부도 함께 화합하여 제국의 안정과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지역이 되어야 함은 지당합니다.
당장 내일부터 총독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참관이 아니라 갈리온 후작 각하를 대신하여 남부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당당히 참여할 수 있도록, 제가 직접 총독회의에 나가 조치를 해드리겠습니다.”
설파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목이 매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세틴은 설파가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 해가며 남부를 위해 노력해왔는지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설파 경, 내가 갈리온 후작의 신변을 위협하거나, 신분에 불이익을 주어서 그대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갈리온 후작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협력하지는 않았으나, 조정을 노골적으로 적대하거나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 적도 없습니다.
모그란데가 힘으로 황도를 장악했을 때, 남부에 갈리온 후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견제해주는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남부에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만한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고 들었습니다.
앞장 서서 그들을 이끌어 갈 사람으로 경만큼 적당한 사람도 없습니다.
총독회의에 참석하셔서 지금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잘 지켜보시고, 남부가 발걸음을 맞춰갈 방도를 충분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속개된 총독회의 3 일 째, 이 날의 주인공은 단연 완다였다.
군상 체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마친 놀란의 뒤를 이어 등장한 완다는 깔끔한 군복을 갖춰 입고 있었고, 절도있는 발걸음과 씩씩한 말투로 좌중을 사로 잡았다.
놀란이 군상 체계의 책임자였으나, 제국군에서의 경력이 없었기에 실질적으로 제국군과 총독들을 연결하면서 군상 체계를 정착시키는데 완다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완다가 매우 젊은 여성인 것을 보고 농담조로 실실 웃으며 질문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런 사람들을 그냥 봐주고 넘어갈 완다가 아니었다.
“나는 각지에서 반란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세운 공과 제국군의 행정 체계를 재정립한 공으로 정식으로 3급 장군에 임명된 완다입니다.
제국군 내에서는 제가 ‘욕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입이 험악합니다.
나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자는 제국군을 능멸한 거나 마찬가지로 간주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오늘은 가급적 입조심을 하려고 작심을 하기는 했지만, 도를 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꼭지가 돌면 나 자신도 통제가 어렵습니다.
부디 총독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똑부러지는 완다의 말에 더 이상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조정 관료들의 관심이 집중된 문제는 역시 군상 체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상업,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고 있지 않은지였다.
완다는 군상 체계가 상업, 무역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특산물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시골의 농가에 가내수공업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서, 대외 무역을 전담하는 대상인부터 중소 상인, 공인, 거간꾼, 생산 담당자, 생산물의 수집과 관리를 담당하는 자 등, 모든 참여자에게 이익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이 군상 체계의 임무였다.
수많은 사례를 들어 가며 이를 설명하는 완다에게 그래도 ‘떡고물을 챙기고 있지 않나’는 식의 막연한 질문은 무의미했다.
완다의 설명에는 빈틈이 없고 막힘이 없었으나, 말로 모두를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부 사항에 대한 질문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완다는 지치지도 않는지 손에 쥐어주듯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런 과정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되고 나자, 총독회의는 그야말로 완다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다.
완다는 특히 발달하는 상업, 무역에 적극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든 기득권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 만을 챙기려 하고, 훼방을 놓는 일부 귀족들의 행태에 실랄한 비판을 가했다.
군상 체계는 애초에 귀족들을 배제하지도 않았다는 사실과 실제 일부 지역에서 귀족들이 상업, 무역을 주도하고 있는 실태를 일일이 들어 설명하면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귀족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명확한 방침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군상 체계에 불만을 가진 귀족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조정 관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완다는 징세 문제, 장원 문제 등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수많은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을 지나 밤이 깊도록 이어진 총독회의는 결과적으로 조정 관료들이 완다에게 압도당한 과정이었고, 일부 총독과 그를 동행한 지방 관리들에게도 군상 체계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되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 날에도 완다가 꼭 참석하여 향후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해달라고 요구했다.
단 하루의 회의를 통해 완다가 일약 정국의 핵심 인사로 부각되는 날이었다.
남부를 대표하여 참석한 설파는 남부에도 하루빨리 군상 체계가 정립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고,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부에도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총독도 없고 이제까지 중앙 조정과는 거의 교류조차 없었던 남부에서 참석한 설파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조정 관료들은 상업, 무역의 발달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삶이 개선되고 풍요로워지고 있으며, 각 지방마다 활력이 넘치는 변화에 대해 언제까지 일부 귀족들의 이익 만을 내세우며 반대만 늘어놓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확실하게 형성되고 있었다.
놀란과 완다가 총독회의 셋째 날에 완전히 기선을 제압해 놓은 덕분에 4 일, 5 일 째에는 상당히 건설적인 논의가 이어질 수 있었다.
호아니가 긴 설명과 함께 제시한 방안은 사실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조정에서 각 지방에 각각 행정, 군사, 교육을 담당할 관리를 파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존 귀족 중심의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셈이었다.
제국을 지금 총독이 부임해 있는 지역들 정도로 나누면 10 여 지역으로 나울 수 있는데, 이 지역들을 주라는 행정 단위로 재편하고, 각 지역에 행정, 군사(기존의 총독), 교육을 담당할 관리를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호아니는 굳이 세 영역을 나누어 별개의 권한을 가진 관리를 파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만일 각 주의 모든 분야 통솔할 관리를 한 명만 파견할 경우, 그의 독단에 따라 지방이 그의 세력권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새로운 분란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배타적인 권한을 가진 세 관리를 파견함으로써 서로를 견제하게 하고, 그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을 장려한다는 내용이었다.
호아니가 굳이 언급하지 않은 내용은 바로 기존 귀족들의 권한을 대폭 위축시킬 수밖에 없는 제도라는 점이었다.
각 지역을 다스려왔던 영주들의 머리 위에 지방의 제반 문제를 처리할 관리를 올려 놓는 셈이었기에 상당 기간 영주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을 터였다.
호아니는 제국 백성들을 위해 중앙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는 자체의 의미를 부각시켰을 뿐이었다.
중앙에서 파견되는 관리와 각 지역의 영주 귀족들 간에 일어날 분쟁에 대해서는 차후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조정 관료들 상당수가 귀족 영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는 해도, 조정에서 지방에 관리를 파견한다면, 자신들의 입지가 커지고 일자리가 대폭 늘어날 것이며, 조정에서 이런 저런 눈치를 살피며 입씨름만 하기보다는 지방에 나가서 ‘왕노릇’을 해볼 기회가 생기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의외로 새로운 행정 체계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적극적인 반대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단지 기존 영주 귀족들과의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각 주에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부사, 군사를 담당하는 총독, 교육과 여론을 담당하는 학정이라는 세 분야의 관리를 파견한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세 관리의 직급은 상호 견제를 위해 동급으로 하고 조정 대신과 같은 급으로 하며, 중앙에서 그를 보좌하기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구성과 그 숫자, 재정에 관한 문제까지 세부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원래 세틴과 호아니가 이번 총독회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이 행정 체계의 도입이었다.
원래는 수많은 난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 논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기존 영주들이 반란을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하거나, 적어도 소극적으로나마 동참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발할 영주가 별로 없다는 정황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 기회에 조정에서 각 지방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통제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조정 관료들에게 비교적 쉽게 형성된 편이었다.
그렇게 총독회의가 마무리되고 마침내 총독들까지 참여하는 대전회의가 열렸다.
대전회의에서는 내무대신이 총독회의의 결과 보고를 맡았다.
그가 비록 오디어스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총독회의에서 조정 대신들과 관료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진 논의를 왜곡하거나, 뒤집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오디어스가 총독회의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일은 총독들이 저지른 오류와 비리에 대해 집중 공격을 퍼부어 향후 총독 임명에 관한 논의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몇몇 총독들을 경질하고 자신의 사람을 심는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었다.
총독회의의 결과에 대해 미리 충분한 보고를 받고 매일같이 점검해왔던 오디어스였으나, 막상 내무대신의 공식 보고를 접하고는 기가 막혔다.
그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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