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살리드 토벌군 출정
어전 회의에서 출군 일정을 일방적으로 앞당긴 데 대해 북부군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으나, 모그란데는 제국군이 준비가 덜 되었으면 나중에 따라오면 된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나왔다.
우살리드가 수비 태세를 굳히고 있어서 시간을 더 줄수록 불리하다는 핑계였다.
방어 진지를 강화할 시간을 주면 우살리드를 토벌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는 판단으로 출정을 앞당기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세틴은 모그란데에게 더 따져봐야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기에 긴말을 하지 않았다.
3 월 초하루는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조정의 각 부처에서 제대로 지원하기도 어렵다는 대신들의 하소연이 이어졌으나 모그란데는 요지부동이었다.
오디어스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모그란데에게 그러다가 패전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고 따졌지만, 모그란데는 필승의 전략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답할 뿐이었다.
보름 후, 마침내 출정의 날이 왔다.
우살리드를 역적으로 규정하고 그를 비롯한 북동부 영주들의 작위를 일률적으로 박탈한다는 선언과 베그던을 토벌군 총사령관을 임명하는 절차를 중심으로 출정식이 거행되었다.
장소는 황도 동문 밖 광장으로 제국군도 샘프라를 사령관으로 하는 파견군이 참여하고 있었다.
오디어스는 샘프라도 단상으로 불러 올려 북부군과는 별개로 작전권을 부여하였다.
이는 유사시 베그던의 명령에 샘프라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선언의 의미가 있었다.
모그란데와 세틴을 비롯해서 모든 대신들과 제국군 장수들도 모두 참석한 상황이었는데, 오디어스의 출정사 낭독이 끝나자마자 모그란데가 일어서서 돌아가버렸다.
그러다 보니 출정식은 예정보다 간소하게 끝나고 말았다.
토벌군은 곧바로 동부로 떠났는데 이동 시간과 현지에서의 준비 등을 감안하면 빨라도 7 일, 길면 15 일 정도 후에는 첫 전투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세틴은 약간 무리를 하면 샘프라와 장거리 교신을 할 수 있는 통신구를 마련할 수도 있었으나, 통상적인 보고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황도에서 일일이 간섭하는 모양새를 지양하고 독자적인 판단에 맡기려는 의도도 있고, 만약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시오미와의 교신으로 상황을 전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그란데가 황도에 남겨둔 3 만의 병력이 상대적으로 정예에 속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는 모그란데가 당장 출정하는 부대보다 황도에서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부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양군이 우살리드 토벌에 나선 틈을 타 모그란데가 황도에서 일을 벌이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세틴은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미 황궁을 세틴이 장악하고 있고, 병력이 절반이라고 해도 맞붙어서 질 제국군이 아니었다.
토벌군이 출정한 지 16 일이 지나서 첫 전투 보고가 올라왔다.
샘프라군의 교전 보고였다.
샘프라는 봉시진을 가동하여 진지에 돌격하기보다는 원거리에서 사격전을 전개했는데 우살리드 측에서 출진하는 기미가 없이 단단히 막고만 있다는 것이었다.
2 만에 불과한 제국군으로는 전면적인 진지 공격전을 감행할 수 없으므로 당분간 우살리드 측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 때까지 사격전을 하루 2, 3 차례 전개할 계획이라는 보고였다.
만 2 천에서 만 오천이라는 궁병들이 일시에 쏘아대는 화살 공격이 치명적이지는 않다 해도 피해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더구나 우박처럼 쏟아지는 화살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사기가 떨어지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샘프라는 우살리드가 참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출진하기를 기다리겠다는 속셈이었다.
어전 회의에서 샘프라의 교전 보고를 접한 모그란데는 노골적으로 제국군을 비웃었다.
“아니, 제국군은 모두 허수아비들만 보냈나 ?
어떻게 진지에 한 번 부딪쳐 보지도 않고 화살만 날리고 있단 말인가 ?
선봉을 맡으라고 했더니 이건 뭐 장난질이나 하고 있고만.”
제국군 최고참 장군으로 어전 회의에 참석한 코머스 한셈이 받아쳤다.
“승상께서는 체신을 좀 차리시지요.
겨우 첫 교전 보고 내용을 보고 그런 막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
아무리 승상이라도 이것은 제국군 전체를 욕보이고 우습게 여기는 말씀입니다.
애초에 샘프라 장군이 이끄는 제국군은 독자적으로 진지를 공격한다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무모한 작전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떻게든 우살리드 군을 진지 밖으로 끌어낸다는 샘프라 장군의 책략은 매우 훌륭합니다.”
모그란데가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눈빛으로 코머스를 째려보았다.
“허, 이제 1 등 장군이 되었다고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더니......
베그던도 문제고만.
제국군에게 선봉을 맡기라 했다고 그저 구경이나 하라는 말인 줄 알았나 ?
샘프라가 사격전입네 하면서 깨작거리고 있으면 북부군이 나서서 본때를 보여줄 생각을 해야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세틴이 나섰다.
“승상께서는 지금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
그러시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
지금이라도 내가 제국군 전체를 이끌도 출전하면 북부군의 도움이 없더라도 우살리드의 진지를 깨부술 자신이 있습니다.
아니면 승상께서 직접 참전해서 지휘를 하시던가요.
일단 부하들에게 일을 맡겼으면 좀 기다려 보시지요.
승상께서는 매일 통신구를 통해 보고를 받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첫 교전 보고가 올라온 상황에서 이렇게 소란을 떨 일은 아닙니다.”
얘기를 하며 모그란데의 기색을 살피니 대충 속셈이 드러났다.
세틴이 직접 출전한다는 대목에서 놀라는 눈치더니, 본인이 직접 참전하라는 대목에서 ‘뜨끔’해 하는 기색이었다.
모그란데가 처음부터 이렇게 야단을 떠는 목적이 바로 본인이 참전할 명분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었다.
“그래, 좀더 두고 봅시다.
베그던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전투를 계속 미루는 상황이라 내가 신경이 좀 예민했나 보오.”
모그란데가 황급히 황도를 떠나 북부군에 합류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짐작되었다.
만약 북부군이 동부왕군군을 끌어들인 사실이 알려지면 모그란데 자신이 황도에서 역적으로 몰리는 상황에 될 수 있기에 사전에 몸을 빼려는 의도였다.
관저에 돌아온 세틴이 호아니와 마주 앉았다.
“모그란데를 우살리드와의 전쟁에 내몰려던 계획이 일을 더 키운 듯합니다.
이제 동부왕국이 개입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보여요.
솔직히 요즘은 밤에 잠을 못 이룹니다.
우살리드에 북부군에 동부왕국군까지 더해지면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걱정입니다.”
호아니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북부군 10만을 황도에 두고서는 어차피 황실과 정국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북부군의 참전을 적극적으로 찬성했지요.
어찌 사람의 속마음까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군들 모그란데가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까요.
만에 하나 우살리드까지 모그란데에게 합류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겠지요.
하지만 우살리드가 적어도 모그란데의 밑으로 기어 들어갈 인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장군께서 예상하는 일이 그대로 벌어진다면 미리 방침을 확고하게 정해두어야 합니다.
동부왕국의 개입이 밝혀지면 모그란데는 우살리드 못지 않은 역적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군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해야지요.
제 생각은 일단 제국군은 뒤로 빠져서 두 호랑이들의 싸움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관망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방침을 확고히 하지 않으면 자칫 큰 혼선이 빚어집니다.”
세틴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낯빛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미 벌어졌지만 우리가 모르는 일이라 해도 그것을 전제로 방침을 전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시오미와는 매일 짧게라도 교신을 하고 있고, 미리 얘기를 나누더라도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제국군에게 공식적으로 그런 방침을 전하기는 무리가 있겠지요.
샘프라 장군이 신중하니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 믿습니다.
전장에 있지 않고 후방에서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이제야 알겠습니다.”
호아니가 말했다.
“모그란데가 황도를 떠나는 즉시, 시건에서 보충병을 보내도록 조처를 해야겠습니다.
현재 2 만 5 천까지 증병을 했다 하는데 가능하면 숫자도 빨리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세틴이 또 다른 화두를 꺼냈다.
“모그란데와 내가 모두 황도를 비우면 그 틈을 노릴 세력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갈리온에게 그런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들지요.
우리가 대책을 세운다 하더라도 갈리온까지 숟가락을 들고 나서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겠어요.
온 세상과 홀로 맞서 싸우는 기분마저 듭니다.”
호아니가 말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장군 곁에는 훌륭한 장수들과 병사들이 많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은 접어 두시지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가 장군과 제국군 만을 상대로 덤비는 게 아닙니다.
서로 견제하고 격렬하게 다투는 사이지요.
어쩌면 그들 모두가 다른 세력을 이기기 위해 장군과는 최대한 척을 지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점들을 잘 활용하여 돌아가는 상황에 맞게 하나씩 정리를 해나가면 우리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세틴이 웃었다.
“그렇네요.
군사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합니다.
언제부턴가 세상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같습니다.
우살리드도 막상 싸워 보면 그렇게까지 강력하지 않을 수 있고, 동부왕국들이 모그란데에게 힘을 보탠다 해도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갈리온은 무력보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요.
하나 하나 해 봅시다.
무엇보다 제국군은 어떤 군대와 싸워도 지지 않을 위력을 갖추고 있고, 사기와 자부심이 넘칩니다.
군기와 단합은 말할 것도 없지요.”
호아니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장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천년 제국의 앞날을 결정할 결전의 날이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제국군이 정예라고는 하나 수많은 변수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연달아서 벌어지고 있었다.
모그란데의 속셈이 무엇인지 여전히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황도에서 점점 수세에 몰리던 그가 무엇인가 커다란 결단을 내리고, 나름의 타개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컸고,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형세가 급변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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