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부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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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니가 작성한 세틴과 섭정 대리 셔플린의 합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합의문 -
1. 세틴군은 황명에 따른 노스롭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한 주력군임을 다시 확인한다.
1. 세틴군이 그동안에 거둔 전과를 인정하고, 전공자에 대해 세틴군이 상신하는 모든 포상을 수용하며, 세틴과 베르토프의 전공에 대한 황실 및 조정의 포상을 논의한다.
1. 세틴군에 대한 조정의 지속적이고 확고한 지원을 약속한다.
1. 세틴군의 수장 세틴 장군은 가능한 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백성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1. 노스롭이 항복할 경우 그에 대한 일차적인 처결권이 세틴 장군에게 있음을 재확인한다.
1. 세틴 장군은 노스롭이 항복해 올 경우 그것을 가급적 수용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1. 노스롭이 투항을 원할 경우 구체적인 조건과 절차에 대해서는 세틴군에 일임한다.
1. 노스롭의 항복에 관한 협상을 위해서는 노스롭군이 노스롭 반도로 철수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노스롭 토벌군 수장 2급장군, 백작 세틴
제국 섭정 모그란데 공작 대리인 셔플린
합의문에 서명까지 마치고 난 후 세틴이 셔플린에게 물었다.
“셔플린 자작, 이 합의문으로 섭정을 납득시킬 자신이 있습니까 ?”
셔플린은 세틴 앞에서 여전히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장군께서 너무 심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꼭 염두에 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아마도 브라스트 공국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것은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셔플린의 태도는 세틴에게 죄라도 지은 것처럼 안절부절이었다.
“알겠소. 원래 노스롭을 만나서 이번 일을 매듭짓는 것이 그대의 일이겠죠 ?”
“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합의문으로 노스롭을 반도로 후퇴시킬 수 있다고 보시나요 ?”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 이후의 협상에 대해서 저는 개입하지 않고 곧바로 황도로 귀환하겠습니다.”
세틴이 자리에 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애초에 누군가의 마음을 강제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대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오. 다만, 앞으로도 제국의 평화를 위해서 가능한 협력을 다하고 싶기는 합니다.
그대와 섭정은 원거리 통신으로 의사를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짐작하는데 곧바로 합의 내용을 전달하고 지시를 받을 수 있겠소 ?”
셔플린이 약간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바로 통신을 열 생각입니다.”
“내가 마법사들을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그대가 적어도 6 서클 이상의 경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전이 마법을 통한 장거리 이동도 가능하신가요 ?”
“맞습니다. 저는 6 서클 마법사입니다. 전이 마법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1만 미르 이내에서만 가능하고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양쪽에 마법진이 갖춰져야 하고 가동에 필요한 재료도 구하기가 어려워 일상적으로 사용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초 장거리 통신에는 특별한 마석이 장착된 마도구가 필요한지라 사용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셔플린이 묻지 않은 것까지 말하는 이유가 통신과 전이에 필요한 것들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파악한 세틴이 웃으며 말했다.
“그저 궁금해서 물었을 뿐입니다. 아무튼 다음에는 더 좋은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만 더 물읍시다. 놀란도 역시 마법사인 줄 알고 있는데 그쪽과도 장거리 통신이 열려 있나요 ?”
“통신망에 대해서는 옴비두스 승상이 총괄하고 있어서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놀란이나 브라스틴까지 상시적으로 통신이 개설되어 있지는 않다고 짐작합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임무를 나오면서 임시로 통신 마도구를 받아 왔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장거리 통신에 필요한 마석은 무척이나 희귀하다고 합니다.”
“알았소. 충실하게 답해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무사히 황도로 귀환하시기 바랍니다.”
바늘 요새에 주둔할 무렵에 세틴과 멀린 사이에는 정기 연락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존 연락망으로는 보름 이상 시간이 걸리므로 세틴은 밤낮없이 달려서 조만간 시작될 반란에 대비하라는 급보를 전하도록 했다.
셔플린이 떠난 지 엿새가 지난 후 전령을 통해 노스롭이 반도로 후퇴할 것이라는 통보가 전해졌다. 평화 협상, 혹은 항복 협상이 개시된 셈이었지만 세틴은 노스롭의 항복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사이에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베르토프군이 합류했고 베르토프 장군이 독자적인 작전권을 포기하고 세틴군에 편입하기로 결정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참장이었던 잘낫이 십 여 명의 기사 및 60 정예 군사를 데리고 세틴군에 합류한 일이었다.
베르토프는 세틴과 섭정 대리의 합의문을 보자마자 세틴을 단일화한 토벌군의 수장으로 받아들였다. 세틴은 베르토프에게 제국 남서부 영지들의 군사 전체를 총괄하는 총독으로 임명했다. 토벌군의 후위에서 징병, 훈련, 보급, 치안을 도맡도록 한 셈이었다.
잘낫은 세틴군이 도강작전과 바늘 요새 공략전에 성공한 이후 곧바로 합류하기를 원했으나, 혼자서 와 본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뜻이 맞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최대한 모아 오느라 늦게 왔다는 것이었다.
세틴은 잘낫을 반갑게 맞이하여 곧바로 5 급 장군으로 임명하고 그의 부대를 친위대에 편입시켰다.
세틴군은 더그움을 지나 파리바로 진군했다. 군사적으로 남서부 3 개 영지를 점령했으나 실질적으로는 8 개 영지 모두를 접수한 셈이었다. 노스롭 반도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유일한 영지가 파리바였고, 두 영지를 가르는 바움강 하류를 제외하고는 높고 험악한 산악지대가 가로막고 있엇다.
세틴은 바움강 하류에 장기 주둔을 염두에 둔 군영을 구축하도록 했다. 목조로 거대한 사령부 건물을 짓고 군영 전체에 목책을 두른 제대로 갖춘 군영이었다.
보름 정도 서두른 덕에 사령부 건물이 윤곽을 드러낼 즈음, 세틴은 남서부 8 개 영지의 영주들을 소집했다. 정식으로 항복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죽은 스프링스와 더그움의 영주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6 영주들이 진작부터 찾아와 세틴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세틴은 그들의 접견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들은 파리바의 영주 저택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파리바 백작, 맨든 백작, 도요크 자작, 리코든 후작, 차리드 백작, 베우스 자작 6 영주들이 세틴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고. 노왁 스프링스와 세레스 더구움은 그 옆에 서 있었다.
세틴이 이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원칙대로라면 반란군에 가담한 그대들은 몸을 단단히 결박한 이후에나 투항의식을 치를 수 있소. 결박까지 하지 않은 것은 노스롭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정황을 감안한 내 성의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시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제시하는 조건을 영주들이 받아들인 이후에나 투항의식을 마칠 수 있습니다.
그대들이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그것 만으로 투항을 받아들인다면 제국에서 질서는 사라지고 제멋대로 날뛰는 영주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투항의 조건에는 지금까지 그대들이 행한 반란 참여와 협력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향후 노스롭 토벌에 있는 힘을 다해 협력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내가 정한 투항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노스롭을 제외한 제국 남서부 영주 모두의 작위 계승권을 박탈한다. 단, 스프링스 백작과 더그움 자작은 합당한 계승권자의 계승권을 인정한다.
둘째, 영주로서의 권한 중 군사권을 박탈한다. 각 영주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 이외에 사병을 거느릴 수 없다.
각 영지에는 임시로 노스롭 토벌군에서 군사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는 책임자를 파견한다. 영주는 군사부의 창설, 유지, 발전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셋째, 노스롭 토벌이 완료될 때까지 영주들은 인력와 물자의 징발을 포함하여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상.”
세틴의 말이 끝나자, 영주들은 섣불리 나서서 반발하지는 않았으나 눈치를 살피며 서로 몇 마디씩 주고받는 것이 억울하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베르토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는 세틴군 휘하에서 남서부 영지들의 군사를 총괄하는 총독직을 맡게 된 베르토프라 하오.
우리는 스프링스에서부터 숱한 교전을 치르면서 남서부 영주들의 깃발을 수없이 마주쳤소. 누구라도 나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노라고 자신있게 나설 사람이 있소 ?”
베르토프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주들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그대들은 알아야 할 것이오. 제국법에 따르자면 세틴 장군께서 그대들에게 죽음을 내리더라도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하오. 세 가지 조건이 뺐고 박탈하고 하는 내용이라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일단 영주 자리를 보전해주겠다는 것 아니오.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한 번 말해보시오.”
리코든 후작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잘못이 있으니 너무 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계승권까지 박탈하는 건 조금......”
베르토프가 다시 말했다.
“말 한 번 잘했소. 나도 후작이지만 계승권은커녕 영지도 없는 귀족이오. 내가 반란에 가담했다면 내놓을 것이 목숨밖에 없소.
영지도 있고 계승권도 있는 귀족은 좋겠소. 반란을 일으키고도 자자손손 잘살겠다고 우길 배짱이 있으니.”
베르토프의 추상같은 호통과 조롱에 리코든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베르토프에게서는 당장이라도 목을 칠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세틴 장군의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주들은 어쩔 수 없이 세틴의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고 제국에 대한 충성과 세틴에 대한 무제한 협력을 약속하면서 투항의식을 마쳤다.
의식이 끝나고 나서 세틴은 여섯 영주들을 일일이 위로하고 다독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노스롭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가 귀족의 목숨과도 같은 계승권까지 빼앗겼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특히 호아니의 부친인 맨든 백작에게는 최상의 예의를 갖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형제보다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친구를 낳고 길러준 은혜를 칭송해 마지 않았다.
세틴은 그들에게 계승권을 돌려준다는 약속 대신 함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일에 동참하기를 권했다. 또한 그 선봉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호아니 맨든이니, 호아니과 긴밀한 접촉을 통해서 남서부가 가장 먼저 변화를 일으킬 구심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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