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그란데의 출전 선언
그로부터 6 일 후, 마침내 모그란데가 북부군 사령관을 교체한다고 선언했다.
북부군 사령관을 교체한다는 건 우살리드 토벌군의 사령관을 바꾼다는 말이고, 결국 모그란데가 직접 출전할 결심을 굳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모그란데가 모종의 결단을 내리고 무언가 획기적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그란데는 베그던 사령관이 계속 미적거리고 공격을 미루면서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며 사령관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토벌군 사령관 교체는 모그란데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베그던은 엄연히 황태자가 임명한 토벌군 사령관이었다.
이를 두고 또 다시 조정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오디어스가 모그란데를 노려 보며 말했다.
“아니, 이제 출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사령관을 교체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오 ?
제국군이 첫 교전 보고를 올린 게 불과 열흘 전이오.
일단 명을 받고 출전을 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움은 사령관이 알아서 하는 것이 법도요.
이렇게 한 번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교체하니 마니 말이 나오면 누가 조정을 믿고 나가 싸울 수 있단 말이오 ?”
모그란데는 이미 작심한 듯 처음부터 세게 나왔다.
“지금은 법도니 뭐니 따질 상황이 아니오.
우살리드가 잔머리를 굴리는 게 보통이 아니오.
진지를 단단히 구축하고 수비만 하고 있소.
이대로 시간을 끌면 결국 우살리드의 콧대를 세워주고 갈수록 우리가 불리할 뿐이라는 건 상식에 속하는 문제요.
애초에 베그던은 내가 추천해서 임명한 사령관이오.
내가 믿지 못해서 바꾸겠다는데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소.
내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북부의 영주들도 매일같이 사령관을 믿지 못하겠다며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상황이오.
영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사령관은 이미 지휘관 자격을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소.”
병부대신이 거들었다.
“지금 우살리드 토벌군이 사용하고 있는 전비가 하루 4 천 골드를 넘어갑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만 끌다가는 우살리드를 토벌하기도 전에 조정의 금고가 바닥날 지경입니다.
베그던 백작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계속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북부의 영주들은 대부분의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는데, 북부를 떠나온 지가 벌써 1 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영주들이 공격을 재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사정을 뻔히 아는 베그던 백작이 왜 그리 시간만 끌고 있는지 나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5 황자 트리엄 하만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 사령관 교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성급하오.
일단 빠른 시일 내에 공격을 감행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공격 계획을 올리라고 명하는 것이 순서요.
조정이 성급하게 지휘관을 교체하는 결정을 내리면 천하의 비웃음을 살 일입니다.”
모그란데가 트리엄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똑같은 얘기를 너무 반복하게 하지 마시오.
나는 이미 사령관을 교체하기로 마음을 정했소.
조정이랍시고 사정을 따져보지도 않고 뻔한 소리들만 늘어놓고 있으니 참 답답하구만.
베그던은 오랜 기간 동안 내게 충성을 다한 사람이오.
사령관을 교체한다고 해서 반발을 하거나 조정에 원한을 가질 사람도 아니지.
이렇게 한가한 소리나 듣고 있을 시간이 없소.
결정을 내립시다.”
막무가내로 나오는 모그란데를 보며 모두가 난감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세틴이 보다 못해 나섰다.
“우리 중에서 전장의 상황을 가장 소상히 알고 있고, 토벌군의 주력인 북부군의 주인이며,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승상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듣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나, 저는 일단 승상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사령관을 교체한다면 누가 나설지 생각해 두신 바가 있습니까 ?”
모그란데가 허리를 곧추세우며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참전할 것이오.
황도에 있는 북부군 3 만을 모두 이끌고 가서 우살리드를 단숨에 박살내 버리겠소.”
세틴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으나, 느닷없는 모그라데의 참전 선언에 놀라움의 탄성이 번져 나갔다.
골트릿이 물었다.
“승상이 직접 토벌군을 지휘하겠다는 말이오 ?”
모그란데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승상으로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생각이 컸으나, 막상 베그던을 보내 놓고 보니 영 미덥지가 않아요.
그나마 잘 하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대책없이 주질러 앉아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고, 휘하의 영주들과 병사들마저 사령관을 원망하는 소리가 드높다고 합니다.
지금 제국에, 우리 황실과 조정에 우살리드를 무찌르는 것보다 중한 일이 없지요.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만 하루 속히 결착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이오.”
4황자 파이란이 말했다.
“승상이 직접 나서겠다면 나는 찬성이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
차라리 처음부터 승상이 친정에 나섰다면 좋았을 거요.”
모그란데가 파이란을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내가 황도를 나간다 하니 너무 티나게 좋아하는 거 아니오 ?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우살리드를 보기 좋게 박살내고 개선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 되오. 하하하.”
이황자와 황태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들은 모그란데가 다른 속셈이 있다면 모를까 이렇게 쉽게 황도를 벗어나겠다는 결정을 할 인물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오디어스가 노골적으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나는 승상이 우살리드 토벌이 아니라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소.
기왕 이렇게 된 거 떠날 때 떠나더라도 속 시원히 다 털어놓는 게 어떻소 ?”
모그란데가 같잖다는 듯 말했다.
“꿍꿍이 같은 소리 하지 마시오.
내가 친히 전쟁을 지휘하겠다는 건 순전히 제국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오.
어쨌든 내가 토벌군 사령관의 자리를 대체하겠다는 데 대해서 더 이상 반대는 없는 걸로 알겠소.
원활한 지원을 위해서 병부대신도 나를 따라 함께 페링으로 향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세틴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승상과 나란히 마주 앉아 제국의 평화와 안정을 염려하는 마지막 자리가 될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듭니다.
토벌전에 지라고 저주하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우살리드에게 통쾌한 승리를 거두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마지막 자리가 될지 몰라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부디 제국의 백성들을 생각해서 재삼 재사 신중한 결정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승상의 한 마디 말, 하나의 결정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이 버려질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살리드를 절대로 가볍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직접 맞서 싸운 적은 없지만, 그는 제국 북동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낸 일대 영웅입니다.
훗날 좋은 낯으로 반갑게 만나뵐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모그란데가 세틴을 지긋히 노려보았다.
그는 세틴의 말에서 자신의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세틴의 말이 진심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틴에 대한 원망과 결코 꺾일 수 없는 야망이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세틴의 말을 그리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해서 모그란데가 남은 북부군과 자신의 측근인 조정 관료들 상당수까지 이끌고 페링을 향해 떠났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모그란데가 떠난 직후, 세틴은 황자들과 믿을 만한 대신들을 따로 불러 대책 회의를 열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모그란데는 단순히 우살리드 토벌전을 지휘하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일전에 이황자님이 우려하신 대로 그는 동부왕군과의 연합을 위해 황도를 버리고, 승상직도 내친 셈입니다.
황도에 남아 있으면서는 동부왕국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겠지요.
동부왕국에서 얼마 만큼의 군세가 참여할지, 모그란데가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동부왕국의 개입이 기정사실이 된다면 실로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급히 대책을 의논해 보자고 모셨습니다.”
오디어스가 말했다.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모그란데가 하다 하다 그런 일까지 벌일 줄은 몰랐네.
과연 우리가 모그란데와 동부왕국의 연합군에 맞서 싸워 승산은 있을까 ?”
골트릿이 말했다.
“승산은 둘째 치고 전화의 불길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게 문제입니다.
이럴 때, 갈리온 후작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굳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지 않더라도 잠자코 있어 주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의 속셈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골트릿이 말하면서 눈길이 자연스레 파이란으로 향했다.
파이란이 모르쇠로 일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형님의 우려는 잘 알겠습니다.
그가 사위인 내 말을 들을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힘을 보태도록 해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가 갈리온 후작의 힘을 빌어 제위를 노린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 황태자가 정해졌으니 저는 황실의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입니다.
갈리온 후작의 성격상 당장 군사를 크게 일으키지는 않고 관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당장 황실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한들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울지는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실 파이란이 정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갈리온이 대귀족이라 한들 황자인 파이란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파이란의 의중에 따라 갈리온의 행보가 달리질 수도 있음이었다.
그렇기에 현 시국에서 파이란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모두가 주시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중요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모그란데가 외세를 개입시켜서 자신이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보인 상황인 만큼 모두가 파이란이 확고한 태도를 보여주기 바랐다.
파이란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말로는 황태자에게 순종하고 갈리온이 조정에 협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면서도 한 발 뒤로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파이란은 특출한 능력을 내보이거나 누구나 주목할 만한 돌출행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파이란의 속마음을 더더욱 의심하는 면도 있었다.
그가 겉과 속이 다르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어도 숨기고 있는 꿍꿍이가 적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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