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란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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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롭에서 경계를 위해 파견 나와 있던 군인들은 다섯 명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술집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던 노스롭 군인들은 순식간에 제압되어 감금되었다.
100 여 호가 살고 있는 어촌은 제법 풍족해 보였다. 빠르게 촌락 전체를 돌아본 세틴이 느낀 감상은 큰 강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 확실히 산골 마을에 비해 윤기가 흐른다는 것이었다.
세틴이 촌장을 불렀다. 백발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촌장은 체격이 건장하여 여전히 힘깨나 쓰는 사람으로 보였다,
“우리는 노그롭의 반란을 토벌하러 온 사람들이고, 나는 토벌군을 지휘하고 있는 세틴이라는 사람이오.
노스롭군이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모르나, 나는 주민들에게 가급적 민폐가 가지 않도록 할 것이오.
우리가 당장 여기에 계속 주둔할 것은 아니고, 당장은 지나는 길에 잠시 머무는 상황이니 따로 요구하거나 할 것도 없소.
촌장은 주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잘 다독이고, 혹시라도 군인들과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만 시켜 주면 되겠소.”
촌장이 거듭 굽신거리며 사의를 표했다.
“노스롭 놈들이 그동안 행패가 심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습지요. 저같은 무지렁이야 아는 것이 없으니, 누가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모릅니다요.
장군께서 민폐가 없도록 해주시겠다니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래도 성의란 게 있으니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요.”
세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소. 내 말대로 주민들을 안정시키는 데만 신경을 써주면 되겠소.”
이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깃배들이 다섯 척에서 열 척까지 어촌으로 들어갔다. 두 시간 후 세틴군 정찰대 2 천명 전원이 도강을 완료했고, 그 후로는 점차 큰 배들이 들락거리며 본대의 도강이 진행되었다. 말과 마차, 3 개월 분의 식량, 기타 군영에 필요한 막사와 대형 무기들까지 한 나절 만에 도강이 완료되었다.
도강이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접하고 세틴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
“잡은 노스롭 병사들을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즉시 처형하여 돌을 매달아 수장하라. 적에게 우리에 관한 정보가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라. 처형되는 군인들이 제국에 반역을 저지른 죄과를 분명하게 밝히고 처형하도록.”
처형이 끝나자 세틴이 다음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즉시 제 2 작전지점으로 이동한다. 이동 완료 시까지 휴식, 식사는 일체 불허한다. 날이 어두워져도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도중에 예상치 않았던 전투 상황이 없다면 이동 완료시까지 다음 명령은 없다.
이동 시 편제는 평상 시 편제에 따른다. 정찰대는 선두에서 2천 보 이상의 상황을 장악하면서 이동하도록.”
세틴군의 평상 시 이동 편제는 정찰대-선봉대-기병대-친위대-보급대-보병대-궁병대-좌군-우군 순서였다. 전투 편제와 달리 이동 시에는 좌군과 우군이 후위를 맡는 체계였다.
세틴군의 목적지는 ‘바늘 요새’였다. 바늘 요새는 제국의 서부와 남서부를 가르는 경계 지점으로 남서부 방면에서 요새까지 이르는 길이 매우 좁고 반듯하여 바늘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바늘 요새는 천혜의 관문으로 서부와 남서부를 가로지르는 좁은 계곡의 절벽 위에 양쪽을 잇는 돌다리를 지키는 요새였다.
제 2 작전지점이란 바늘 요새 아래쪽에 있는 계곡이었다. 세틴군은 그곳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일거에 바늘 요새를 장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강을 건너 도착했던 어촌은 노스롭에서 에메랄드호 방면으로 이어진 가도에서 멀지 않았다. 이쪽 가도에는 주둔하고 있는 노스롭군이 없다는 사실을 사전에 정찰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세틴군은 가도를 따라 신속하게 이동했다. 중도에 발견되는 노스롭 군은 정찰대가 자체적으로 철저하게 제거하고 있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것도 참아가며 행군을 서둔 세틴군은 한밤중에야 제 2 작전지점에 도착했다.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행군은 한층 힘들었지만, 노스롭군에게 행적이 발각될 가능성도 낮은 이점도 있었다.
바늘 요새에 이르는 길이 보이지 않는 꽤 품이 넉넉한 계곡에서 세틴은 병사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푸짐하게 먹이도록 했고, 식사 후에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작전회의가 열렸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정찰대가 길을 개척하면서 주변 정리와 정찰까지 수행하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제국에도 이만큼 완벽하게 정찰 임무를 해낼 부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날이 밝는 대로 다음 작전에 돌입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바늘 요새에 노스롭이 어떤 병력을 얼마나 배치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요새 공략 작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세틴이 말을 마치자 정찰대장 고진이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찰 결과를 종합하면 노스롭이 이쪽 방면으로 크게 경계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됩니다. 애초에 우리가 도강을 감행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보입니다.
바늘 요새가 서부와 남서부를 잇는 관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비중을 두어 전력을 배치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노스롭이 서부로 진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지형 특성과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작전의 핵심은 속도입니다. 얼마나 빨리 요새에 그들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한 병력이 진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선봉대장 핸리 에쿠스가 손을 들었다.
“이번 작전은 저희 선봉대에 맡겨주십시오. 바늘 요새가 얼마나 튼튼한지는 몰라도 선봉대가 왜 선봉대인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호아니가 나섰다.
“우리가 저쪽을 상황을 모르지만, 바늘 요새 쪽에서도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챘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노스롭에서 지금쯤 우리가 어촌을 통해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겠지만, 바늘 요새까지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노스롭이 바늘 요새를 장악한 주된 목적은 서부 진출입니다. 지형적으로도 그렇고 병력 대부분이 관문 건너편 북쪽 방면에 배치되었을 것입니다.
장군 열 분을 포함해서 최정예 병력 백 명을 추려서 요새를 기습할 것을 제안합니다. 마침 비가 오고 있고 비가 그친다 해도 내일 아침에는 안개가 짙게 낄 것입니다. 우리 군의 최정예 백 명이면 요새를 장악하는데 충분할 것입니다.
남측 요새를 장악하는 즉시 전투를 후속 병력에 인계하고 백인 부대는 곧바로 북측 요새에 진입하여 교두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후 남측 요새를 완전히 장악하고 나서 순차적으로 병력을 이동시키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좌군 대장 커티스 돈프로스트가 호아니에 동조하고 나섰다.
“군사참모님 작전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정찰대장님 말씀대로 속도이고, 은밀한 기습입니다. 병력의 양은 중요하지 않지요. 이런 위험한 작전에 모든 장군들이 앞장선다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치를 겁니다.”
모처럼 나섰다가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핸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세틴이 그에게 물었다.
“선봉대장께서는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
핸리가 우물쭈물 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공을 탐하여 무모하게 나선다고 생각들을 하실까 그것이 조금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솔직히 저도 군사참모님의 판단과 작전에 빈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욕이 앞서서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섣불리 나선 자신을 책망할 뿐입니다.”
세틴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선봉장님에 대해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넉넉한 군세에 넉넉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오로지 승리 만을 생각하며 각자 최선을 다하면 그 뿐입니다. 그리고 자책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고 잘 못하는 것이 있지요.
에쿠스 경의 용기가 가장 큰 빛을 발휘할 상황이 앞으로 얼마든지 있습니다. 군사참모는 닭 한 마리 죽일 힘도 용기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대화가 반목과 질시를 키우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야 할 때입니다.”
핸리가 말했다.
“장군님의 말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내일 작전에서 가장 선두에 서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것으로 제 심정을 대신하겠습니다. 하하하.”
세틴이 매듭을 지었다.
“모든 대장님들은 각기 열 명의 정예를 뽑아 주시되, 대장을 대신하여 병력을 이끌 후속 인선을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기습조 백 인은 날이 밝기 전에 미리 요기를 마치고 제가 소집을 명하는 즉시 집결하여야 합니다.
보급대장님은 기습조에서 빠져 군 전체에 대한 임시 지휘권을 행사해 주십시오.”
문제는 바늘 요새에 주둔하고 있는 노스롭군의 전력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바늘 요새의 주둔군이 꽤 강력하고 지휘관이 유능하며, 경계 태세를 잘 갖추고 있다면, 세틴군이 아무리 정예부대라 하더라도 고전을 피하기 어려웠다.
토벌군을 맡고 나서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벌이는 전투나 다름없는 바늘 요새 공략을 앞두고 세틴은 긴장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요새 내부까지 충실한 정착을 하기도 어려웠고, 주둔군의 전력을 파악하기란 더욱 불가능했다. 적들이 요새의 견고함을 믿고 방심할 가능성이 있다는 바람에 기댄 작전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큰맘 먹고 엄청난 살육을 저질러야 할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세틴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아니었다.
작전회의를 마치고 모두가 돌아가자, 세틴은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관자놀이에 지압을 하고 있었다. 바네사가 김이 솔솔 나는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소가주님 너무 피곤하시죠 ? 잠이 잘 오게 하는 차를 준비했습니다. 쭉 들이키고 한 잠 주무세요.”
세틴이 차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역시 바네사는 빈틈이 없군. 내가 잠을 못 이룰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
“어촌에서 단호하게 노스롭 군인들을 처형하라 하실 때,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바로 깨달았죠. 소가주님 손에 2만 명이 넘는 병사들의 생사가 달려 있다. 앞으로는 끝도 없이 전투를 해야 할지도 모르니 수없이 많은 죽음을 감당하셔야 한다는 현실을 말이죠.
아무리 그렇다 한들 내일 또 피바다에 몸을 담그셔야 하니 잠이 올 리가 없죠. 하지만 억지로라도 주무셔야 합니다. 불면은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깨워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주무세요. 그 차를 마시면 잠에 드실 겁니다.”
“고마워.”
세틴은 짧은 대답과 함께 바네사가 준비한 차를 한 모금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세상에 바네사보다 좋은 시녀장은 없을 거라는 생각과 그런 바네사를 보내준 엄마 조스핀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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