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왕국들의 참전
세틴이 출정 준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며칠 지나지 않아 동부 왕국군이 국경을 넘어 들어왔다는 급보가 올라왔다.
실상 모그란데가 황도를 떠나기 전에 이미 동부 왕국군이 제국에 진입을 마쳤으나, 투앙 백작을 비롯한 동부의 몇몇 영주들이 이 사실을 조정에 통보하지 않고, 비밀리에 페링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부 왕국군은 5 만이 넘는다고 알려졌는데, 동부의 영지군들과 합류하여 실제 북부군에 합류한 병력은 8 만에 가깝다 했다.
세틴은 이 소식을 시오미로부터 전달받았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세틴은 이 사실을 조정에 즉시 알렸고, 오디어스는 다시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어전회의에서는 즉각 모그란데의 승상직과 공작위를 박탈하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최고 수준의 역적으로 규정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미 모그란데의 측근이라 할 만한 자들은 모두 빠져나간 상태였으므로 이런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모그란데가 동부 왕국을 끌어들여 제국에 대한 반역의 뜻을 분명히 했으니, 제국은 실로 차원이 다른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황도의 민심도 크게 흔들렸다.
오디어스는 황도에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세틴으로 하여금 페링으로 출전하여 모그란데와 우살리드에 대처할 것을 명했다.
한편, 모그란데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영주는 과거를 묻지 않고 최대한 관용을 베풀고, 충분한 보상까지 약속하겠다는 칙령을 내렸다.
그리고 제국의 모든 영주들에게 황도가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며, 제국군에 입대를 원하는 자는 개인 자격으로 황도에 달려 와서 절차를 밟으라는 소집령을 발동했다.
현재 제국군에서 모두 4 만 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샘프라와 함께 이미 출정한 2 만을 합하면 6 만의 전력인 셈이었다.
실제 제국군의 최정예는 이미 출정한 병력이고 4 만은 절반 가량이 신규로 모집한 병력이었다.
세틴은 시오미에게 즉시 모그란데에게서 빠져나오기보다는 모그란데를 역적으로 규정한 칙령이 전해지고 난 후, 북부군과 동부 왕국군에서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지켜보다 세틴이 페링 부근에 도착한 이후에 상황을 봐서 이탈하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12 일 후, 세틴이 제국군 전체를 이끌고 제이 병참 기지인 하라무스에 도착했다.
하라무스에는 샘프라가 이미 모든 병력을 이끌고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매일 밤, 시오미가 전해 오는 모그란데의 상황은 꽤나 복잡했다.
동부왕국이 참전한 이유가 밝혀졌는데, 모그란데가 제국 전역에 걸쳐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제국 동부의 일부 영토를 할양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문제는 동부왕국들이 모그란데가 제국의 승상이므로 우살리드 토벌에 협력하라는 제국 조정의 제안으로 받아들였고, 이제 모그란데가 제국의 역적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기존의 협력 방침을 유지할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었다.
모그란데는 자신을 역적으로 규정한 칙령이 내려진 사실을 쉬쉬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승상이고 그런 소문이 퍼진 이유는 조정에 자신에 대한 반대세력들이 있어서 그럴 뿐이라고 강변했다.
동부 왕국의 다섯 사령관들은 실로 난처한 상황에 빠진 셈이었다.
이제 와서 군을 되돌려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미 국경을 넘어 들어온 사실을 제국 조정에서 추궁한다면 변명을 하기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그란데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그란데가 조정에서 버림받은 상황이라는 판단은 하고 있었다.
모그란데가 어떻게든 동부 왕국군을 붙잡아 두고 있기는 했으나, 당장 연합으로 우살리드를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동부 왕국 사령관들은 각자 본국의 상황이 변했음을 알리고 새로운 지침이 내려올 때까지는 전투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태도였다.
그러다 보니 20 만에 가까운 대군을 모아 두고도 작전을 펼치지도 못하는 소강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우살리드에게도 동부 왕국군이 참전한 사실과 모그란데가 역적으로 규정된 칙령이 내려온 사실은 이미 알려졌겠지만, 그는 더더욱 방어 태세를 공고히 할 뿐, 출진을 하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거대한 위용을 갖춘 병참 기지 및 방어 진지가 구축된 하라무스에서 세틴이 처음으로 소집한 지휘관 회의에서 세틴은 시오미에게 전달 받은 모그란데와 우살리드의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하니 당분간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우살리드 토벌군을 이끌고 출전했던 샘프라 장군께서 그동안의 상황을 간략히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정하게 관리하기는 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빈약해 보이는 세 갈래 수염을 가볍게 한 번씩 어루만지고 샘프라가 일어섰다.
“매일 같이 일방적인 화살 공격을 퍼부은 것이 전부라 사실 전투다운 전투를 해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크게 탄복한 것은 우살리드의 인내심과 통솔력입니다.
우리가 불화살도 쏘아 보고 활로 오물을 투척해 보기도 했기에 그쪽의 피해가 상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살리드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우려면 진지를 한 번 공략해봐라 하는 태도였지요.
갑자기 모그란데가 직접 내려와서 북부군을 맡지 않았다면, 베그던 백작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진지전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끄는 제국군이 대부분 궁병으로 구성되어 있고, 애초에 진지 공략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저도 참지 못하고 한 번은 우살리드의 진지에 들이 박았을 것입니다.
내심 우살리드와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정말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군을 끌고 와서 이렇다 할 전과도 거두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세틴이 말했다.
“죄송하다니요.
애초에 제국군이 주력도 아니었고, 본진인 북부군은 여태 전투 한 번 벌이지 못했습니다.
우살리드와 본격적인 전투를 해보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나, 그건 샘프라 장군의 말씀대로 우살리드의 인내심과 통솔력이 훌륭한 까닭입니다.
장군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앞으로의 작전을 위해 조정에서 내린 방침을 일단 공유하겠습니다.
최악의 경우, 모그란데가 동부왕국에 우살리드까지 연합해서 공격을 해온다면, 우리는 이곳 하라무스에서 방어전을 펼칩니다.
저들의 병력이 총합 30 만에 육박한다 하더라도 제국군은 여기서 한 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살리드가 모그란데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칙령에도 명시되어 있다시피 모그란데는 최상위 역적이고, 애초에 우살리드가 거병한 명분이 모그란데가 힘으로 황도를 장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가능하면 우살리드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모그란데를 상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역시 칙령에서 언급된 ‘모그란데 토벌에 협력하는 영주는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최대한 보상을 내린다’는 항목을 근거로 삼아 우살리드와 접촉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동부 왕국들에 자유무역권과 동부 영토의 할양까지 약속한 모그란데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부왕국군을 붙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동부 왕국들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상의 지침에 따라 향후 작전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아니가 말했다.
“이곳의 방어 태세는 이미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난다 장군의 동부 가도 정비단이 일을 확실하게 해놓았습니다.
당장 급선무는 모그란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우살리드와 접촉하는 일입니다.
우살리드에 대한 정보전을 맡아오신 저스틴 경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저스틴이 일어섰다.
“우선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 듯하여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저스틴 브라스트. 세틴 사령관의 형이지만 신분은 낮습니다.
제국군에서 직위는 부장입니다.
그동안 대공령에서부터 함께 하고 있는 무인들을 이끌고 우살리드에 대한 정보 활동을 펼쳤습니다.
참고로 저의 부대에 속한 무인들은 전원 엑스퍼트 급 이상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살리드 군이나 페링 너머의 영지에 잠입해서 정보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간의 정보를 종합하면 우살리드는 성격이 다소 급하고 부하들에게 무척 엄격한 사람입니다.
사소한 실수도 가차없이 엄벌에 처하기로 유명합니다.
반면, 북동부의 영주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주들에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인 적도 없다고 합니다.
우살리드가 마스터에 오른지 2 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그는 20 대에 영주가 되고 나서 15 년을 레인저 부대와 함께 몬스터 토벌에 앞장 섰습니다.
그래서 주력인 레인저 부대에서 우살리드의 위상은 거의 신격화된 수준입니다.
그는 ’제국을 발 아래 두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습니다.
이것이 단지 개인적 야심에서 나온 말인지, 북동부인들의 설움을 풀어주겠다는 명분을 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그의 성격상 누군가의 발 아래 엎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합니다.
우살리드와의 접촉을 염두에 두고 일단 그에 대해 파악된 사실 위주로 말씀드렸습니다.”
고진이 저스틴을 칭찬하고 나섰다.
“뛰어난 무인이라 해도 몇 안 되는 사람으로 그 정도 정보를 얻어낸 것은 대단하오.
만나 봐야 알겠지만 그 정도면 우살리드에 대한 사전 정보로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요약 보고하는 요령도 칭찬할 만합니다.
역시 사령관님의 가형답다고나 할까요.”
저스틴이 가벼운 고갯짓으로만 고진에게 사의를 표했을 뿐, 더 이상 말은 없었다.
호아니가 물었다.
“저나 다른 사람이 먼저 우살리드를 만나보는 게 나을까요, 아님 사령관님께서 직접 보시겠습니까 ?”
세틴이 말했다.
“가능하면 제가 직접 만나 보고 싶습니다.
우살리드를 만나 나눌 이야기는 단지 이해득실을 따져서 우리에게 협조하라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단순한 화평이 아니라 제국의 앞날을 함께 논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북동부인들의 한은 어떻게 해야 풀어낼 수 있는지, 야심이나 이해관계보다 대의를 중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직접 만나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호아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령관님이라며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누구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시기는 언제가 좋겠습니까 ?”
세틴이 말했다.
“서둘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준비는 갖춰두고 우살리드와 연락선은 만들어 두어야겠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일이 있으니 시기가 되면 그때 말씀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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