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훈련
완다가 상카와 임무 교대를 위해 떠났다.
세틴은 완다에게 꽤 많은 임무를 주었다.
놀란에게 동부왕국과의 교역을 시작하도록 하는 한편 수군의 양성에 속도를 붙일 것을 요구했다.
현재 세틴의 영향력 하에 있는 모든 지역에서 궁수 모집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고, 조세 공납을 수운을 통해 일괄적으로 처리하도록 운송 체계를 구축하도록 했다.
완다가 떠나고 며칠 후, 시건에서 모우징과 푸시니아가 강화되고 개량된 활을 비롯한 원거리 무기와 갑옷, 호심경 등의 무구를 잔뜩 싣고 제국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마중을 나간 세틴에게 모우징이 거하게 유세를 떨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많은 무구를 이렇게 빨리 만드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몇 달 사이에 수십 년은 늙은 거 같아.
그나마 노스롭에서부터 준비를 했고, 재료와 자금 조달이 순조로워서 주문대로 모두 준비할 수 있었지.
인간들도 열심히 구르다 보니 이제 제법 손이 돌아가는 자들도 생기고 있네.”
세틴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장로님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구를 실은 마차가 끝이 안보이는군요.
이제 병사들이 활용만 잘 한다면 우살리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꽤 많이 올라갈 겁니다.”
푸시니아가 말했다.
“어이, 세틴. 나는 보이지도 않는 거야 ?
인간들이 쓰는 활을 개량한 건 대부분 내 공이라구.
다른 원거리 무기들도 내 손을 안 거친 게 거의 없단 말야.”
세틴이 웃었다.
“하하하, 공주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별 다른 소식이 없길래 나바니아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황도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푸시니아가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엘프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한 번 돕기로 했으면 끝을 봐야지.
세틴이 황제가 될 때까지 어떻게든 도울 거니까 이상한 말은 하지 말자고.”
세틴이 다시 웃었다.
“언제부터 제국의 황제를 엘프들이 마음대로 정하게 되었습니까 ?
나는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푸시니아는 여전했다.
“푸흐...... 그 욕망으로 더럽혀진 영혼으로 내 앞에서 거짓말도 안되고 속일 수도 없지.
본인이 아니라는데 부득부득 우실 생각은 없지만, 언제까지 내숭을 떠는지 두고 보자고.”
모우징이 가져온 활은 확실히 성능이 좋았다.
크기는 오히려 좀 작아졌는데 사거리와 관통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심지어 시위를 당기는 데 드는 힘이 적어서 일반 궁병들도 쓰기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호심경은 앞가슴 전체와 뒷가슴 일부를 가리는 일체형으로 탈착이 쉬우면서도 착용감이 좋았다.
역으로 접힌 가슴 중간 부분을 펴면 가슴에 장착되는 형태로, 활용성이 무척 좋아 보이는 갑옷이었다.
대형 원거리 무기인 발리스타는 오우거의 힘줄을 특수 가공하여 탄력을 극대화한 게 특징이었다.
꽤 복잡한 기계 장치로 두 명만 있으면 장전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좋았다.
제국에서는 공성전을 필칠 일이 많지는 않으나, 목책 중심의 진지전을 비롯해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세틴은 연일 병사들과 함께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훈련이 활과 원거리 무기의 활용 및 봉시진을 익히는 데 집중되었다.
병과에 관계없이 활이나 일회용 석궁, 슬링, 등 원거리 무기를 익히는데 모든 훈련이 집중되었다.
특히 기병에서는 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기마 이동 시 사격이 가능한 궁기병을 키우고 있었고, 기타 기병들도 모두 일회용이라도 원거리 무기를 활용하도록 했다..
봉시진의 기본 대형은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키우는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세틴은 우살리드의 주력인 레인저 부대는 궁병의 수와 활용을 늘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레인저 부대가 유격 전술에 특화된 군대인 만큼 특히 기병 레인저와 설산표범대에 얼마자 잘 대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리라고 보았기에, 예상되는 그들의 전술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하였다.
새로 입수한 무기와 갑옷 등이 병사들에게 바로 지급되지는 않았다.
이는 훈련에 대한 참여도와 열정을 드높이는데 활용되어야 했다.
매일같이 사거리와 정확도, 관통력을 겨루는 대회가 개최되었다.
여러 단계로 구분된 표적의 거리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고, 과녁을 맞추어 획득한 점수에 따라 또 보상이 올라가는 식이었다.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원하는 원거리 무기를 지급 받을 수 있고, 또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하면 호심경 등의 갑옷을 지급 받을 수 있으니,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훈련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대별 대항전은 주로 봉시진 훈련으로 치렀다.
보병, 기병, 궁병이 모두 참여해서 진을 짜고, 모든 무기에 피격된 자국과 승패를 가를 깃발 뺐기를 종합해서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여기서도 개인 점수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었다.
백 인, 3 백 인, 6 백 인, 천 2 백 인, 3 천 6 백 인, 등 5 개 단위로 봉시진을 짜서 겨루는 대항전의 열기는 뜨겁다 못해 과열을 걱정할 정도였다.
백인진 셋이 모여 3 백인진을 이루는 식으로 최종 10 개의 대형 봉시진이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었다.
제국군이 훈련에 열중하는 가운데 한 달 남짓이 지나 2월 중순 경에 모그란데로부터 출정 일정에 대한 통보가 왔다.
3월 초 하루에 베그던 백작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우살리드 토벌군이 황도에서 출정할 예정이니 제국군에서도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셔플린과 토마스 사이에서 오간 얘기로는 북부군이 준비할 것이 많으므로 4월이나 되어야 출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그란데의 심경이나 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음을 직감한 세틴이 즉각 제국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세틴이 서두를 뗐다.
“오늘 북부군에서 3월 초 하루에 출정을 한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그간 북부군에서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4 월에 출정할 것을 주장해왔는데 무언가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봅니다.
우살리드는 황도에서 북부군이 출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것임에도 진격을 하기보다는 더욱 단단하게 지키는 모양새입니다.
현재의 진지를 더욱 강화하는 데에만 힘을 쏟고 있다 합니다.
이번에 제국군의 지휘를 맡으신 샘프라 장군께서 이에 대해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면 먼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2 등 장군이 된 푸스킨 샘프라는 가늘게 자란 코밑 수염과 턱 수염을 세 갈래로 짧게 기른 50대 중반이었다.
다소 샌님처럼 생긴 겉모습처럼 목소리도 가는 편이었다.
“대비야 많이 할수록 좋다고는 하지만, 제국군은 지금 당장 출정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병사들의 사기와 훈련 열기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우리가 굳이 반대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랬다 저랬다 말을 갑작스레 바꾸는 행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어찌 북부군을 믿고 등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
토마스가 모두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 말했다.
“북부군과의 연락을 맡은 참모로서 출발도 하기 전에 이런 일이 생겨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문제는 샘프라 장군님의 말씀처럼 항의를 한다 하더라도 저들의 태도가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제가 대놓고 제국군을 화살받이나 희생양으로 쓸 속셈이냐고 묻기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저쪽의 태도는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맞게 행동 방침을 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국군에서 유일한 1 등 장군으로 최고참이 된 코머스 한셈이 말했다.
“승상의 행태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는 듯하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모그란데 승상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뭐라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소만, 동부왕국들과의 연계 문제로 승상 휘하의 영주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다고 들었소.
만에 하나라도 승상이 불측한 마음을 품는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더 이상은 봐줄 수 없을 듯하오.
모든 것을 떠나 같이 출정을 하는 제국군을 저리 우습게 여기는 처사는 지켜보기가 힘드오.
샘프라 장군이 힘들겠지만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하겠소.”
호아니가 말했다.
“우리가 나름대로 대비는 하더라도 이번 일을 조정에서 공론화하는 과정은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샘프라 장군께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명분이 설 수 있습니다.
북부의 영주들도 요즘 승상을 의심하는 자들이 많아지기는 했으나, 이미 모그란데에게 모든 것을 걸고 떠나온 이상 끝까지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합니다.
일정을 앞당긴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바가 없지 않으나 입으로 떠들 내용은 아닙니다.”
세틴이 좌중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 사안에 대해 특별히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
별다른 얘기가 없자 세틴이 말했다.
“우살리드가 수비 태세를 굳히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급하게 황도로 진격해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는 느긋하게 앉아서 지키다 유리한 위치에서 일전을 벌이고, 거기서 승기를 잡고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내가 보기에 우살리드는 대단한 전략가입니다.
북동부가 가진 장점과 힘의 한계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지키는 입장에서 진지전을 쉽게 패하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북부군이 승리한다면 다행이겠으나, 가능하면 저는 북부군이 크게 패하기 전에 제국군 전체가 참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정에서의 공론화는 군사께서 말씀하신대로 진행해주시고, 샘프라 장군을 비롯해서 몇몇 분은 향후 대처를 위해서 별도 회의를 갖도록 합시다.”
세틴은 샘프라, 토마스, 울브린, 고진, 호아니를 별도로 불러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호아니를 제외한 넷은 이번에 출전할 제국군의 핵심 장수들이었다.
바야흐로 노스롭에 이은 대규모 전쟁, 우살리드 토벌전의 서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여기서는 궁병 위주로 편성된 부대를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평생 궁병대를 이끌어온 푸스킨 샘프라는 확실히 궁병대의 운용에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전문가였다.
그는 소심할 정도로 신중한 성격답게 미리 준비했던 수십 가지 상황에서 변화될 전술에 대해 설명했고, 대부분은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켰다.
세틴은 새삼 샘프라 장군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우살리드와의 전쟁에서 실질적으로 선봉에 서게 되었지만, 샘프라가 큰 실수를 하지는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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