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어스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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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틴이 황도에 돌아온 마당에 대전회의가 열리면 가장 큰 의제가 반란군 진압에 대한 논공행상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오디어스가 노골적으로 물어왔다.
“그래서 너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느냐 ?
제국군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고, 군부대신은 제국군 사령관보다 나은 자리라고 할 수도 없으니, 비어 있는 승상 자리라도 내줘야 할까 ?”
‘네가 과연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할 수 있는 승상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느냐 ?’는 물음이었다.
세틴은 이미 이에 대해서 정해놓은 생각이 있었다.
“제국군에는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현재의 직위를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들이 많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별동대를 맡았던 저스틴, 상카, 토머스에 못지 않은 보상이 필요할 겁니다.
별동대의 공이 크기는 하지만, 다른 장수들이 그에 뒤처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제국군 내에서는 그런 사실들이 충분히 알려져 있습니다.
푸스킨 샘프라 대장을 북동부의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안은 이미 제가 상신을 해서 재가가 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각지의 총독에 부임하는 것이 현재 대다수 장군들이 희망사항이니, 샘프라 장군에 대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고진 장군은 모그란데의 방원진에 선두에 서서 뛰어들었습니다.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진 장군에게 대장군의 대장군의 칭호와 제국군 부사령관의 직위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하 공이 있는 장수들에 대한 포상안은 별도로 제가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문제는 저스틴과 상카, 토머스에게 작위를 내린 이상, 그에 비견할 만한 공을 세운 장수들 5, 6 명에게도 그에 걸맞는 작위를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내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아도 좋으니, 내 부하들을 섭섭하게 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한데 엉뚱하게도 오디어스는 세틴의 뒷말들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세틴이 제국군에 그대로 남아 있겠다는 말 하나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굳이 제국군에 남으려는 이유가 뭐지 ?
나는 네가 내 요구 하나만 들어준다면 승상 자리까지도 내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세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조정에 직접 참여해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승상이라는 자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제국군에 제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군의 장수들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전란이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볼 수도 없고, 동부왕국과의 문제도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남부의 갈리온 후작은 아직까지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는 황태자 전하께서 제위에 등극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디어스가 세틴의 말을 잘랐다.
“잠깐, 내가 확인할 것이 있어.
최근 갈리온 후작인 너를 황제로 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혹시 그와 무슨 얘기라도 오간 건 아니야 ?”
세틴의 표정에는 미세한 변화조차 없었다.
“그 비슷한 얘기를 저도 여러 군데에서 들었습니다.
그와는 서신 한 번 주고 받은 적도 없고, 최근 그에게서 어떤 연락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아마 갈리온 후작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제위에 뜻이 없기도 하고, 갈리온과 손을 잡고 전하를 괴롭히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디어스가 다그쳤다.
“파이란은 ?
파이란과도 따로 접촉한 적이 진실로 없어 ?”
세틴의 대답은 짧았다.
“전혀 없습니다.”
길게 언급하고 변명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뭐라 말을 덧붙여봐야 의심만 부추길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디어스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요망한 헛소리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아니라는데 자꾸 추궁하기도 민망했는지 말머리를 돌렸다.
“조만간 저스틴과 카스텔라를 결혼시킬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저스틴은 황실의 부마가 되어 신분상 네게 꿀릴 게 전혀 없는 셈이지.
그래서 말인데, 네가 승상직을 맡고 제국군은 저스틴에게 넘겨주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는 생각이야.
반란군들을 모두 토벌한 공을 인정받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르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해야 나도 제국의 큰 공신을 홀대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게 아니냐.
넌 괜찮으니 부하들이나 잘 챙겨달라는 말이 그럴 듯 하기는 하나, 그건 내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족한 생각이다.
그냥 내 말대로 하거라.”
여전히 세틴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전하, 한 가지 심각한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는 제국군 사령관이기도 하지만, 브라스트 대공가의 후계자인 소가주이기도 합니다.
브라스트 대공에게 승상이라는 자리가 영광스럽기 그지 없다고 보십니까 ?
이미 아버지께서는 승상에 부임하라는 ‘거짓 황명’을 단호하게 거부하신 적이 있지요.
제게는 승상이 아니라 황제의 자리라 해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할 뿐입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승상이 되고 저스틴 형이 제국군 사령관이 된다는 발상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습니다.
승상은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을 통솔하는 자리입니다.
조정에서 일한 경험도 전혀 없는 제가 승상이 된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
저스틴 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국군 사령관이 신분이나 지위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설사 제가 모든 장수들에게 이제부터 저스틴을 충심을 다해 모시라고 명을 내린다 해도, 제국군이 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세틴은 나름 성의를 다해 설명한다고 하는 말이었으나, 오디어스에게는 어떻게든 자신을 거스르려는 핑계로 들릴 뿐이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굳이 나를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 돌아온 장군을 홀대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어 ?
어떻게 된 게 넌 내게 고분고분하게 양보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어 ?”
세틴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선 저스틴 형과 카스텔라 황녀가 맺어진다는 소식에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어머니에 이어 황가와 브라스타 가문이 다시 맺어지는 일이니 크게 기뻐해 마땅한 일입니다.
전승에 대한 논공행상은 이렇게 하시지요.
대전회의에 제가 안을 만들어서 올리겠습니다.
저 스스로가 제국군에 유임하여 남은 일들을 마무리 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습니까 ?
또한 제가 그 어떤 직위를 바라지도 않는데, 전하께서 저를 홀대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
대전회의에서 그에 대한 저의 솔직한 생각을 충분히 설명하면 될 일이니 너무 신경쓰실 일이 아닙니다.”
오디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무지 그 고집은......
나도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다.
내가 황명으로 세틴의 공을 높이 사 승상으로 임명한다고 공표해버리면 될 일.
어디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세틴이 짧게 말했다.
“자신이 있으시면 그렇게 하시지요.”
세틴이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오디어스가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세틴의 판단이었다.
세틴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파국으로 몰고 가서야 불안정한 황태자 자신의 위치만 더 흔들릴 뿐이라는 점을 비언차이가 모를 리 없었다.
황태자가 이제 막 개선하여 기세가 최고조에 오른 세틴과 대책없이 대립각을 세워봤자 누가 손해일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판단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디어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스스로도 그럴 자신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할 말이 더 없으시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 사람들을 너무 무시해버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
오디어스의 입에서 거대하게 부풀었던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 그래 내가 졌다.
이거 너무 잘난 조카를 둔 것도 큰 죄로구나.
승상을 받으라는 소리는 더 이상 꺼내지 않으마.
지금 감히 너에게 맞서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현실이지.
내가 널 어떻게 이겨 먹겠니.
그 문제는 내가 네 뜻을 모두 수용할 테니 다른 부탁 하나만 하자.
황궁 증축 문제에 대해서는 내 편을 좀 들어주면 안 될까 ?”
세틴의 담담한 표정이 이제는 오디어스에게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어제 잠깐 말씀드렸다시피 네가 관여할 사안이 아닙니다.
다른 황자들이 한결같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제가 누구의 편을 든다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저 역시 현재 상황에서 황궁을 증축하는 일에는 반대입니다.
황실의 권위가 황궁을 증축한다고 해서 세워진다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고 무지합니다.
역사적인 사례를 보더라도 황궁을 증축하려다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경우가 숱하게 많았고, 백성의 원성을 살 뿐이었습니다.
지금 황궁의 증축을 논할 만큼 제국이 안정되지도 않았고, 황실과 조정의 재정이 풍족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단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여전히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차분하고 잔잔한 말투였으나, 내용도 무난하지는 않았다.
오디어스의 안색이 다시 검붉게 달아 올라 한참을 혼자 씩씩거렸다.
평소의 성격 같아서는 세틴에게 전쟁을 선포하고도 남았을 오디어스였으나, 최소한도 이성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너는 정말 나랑 맞는 구석이 손톱만큼도 없구나.
벽하고 얘기하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해.
더 이상 얘기할 기력도 없으니 그만 물러가도록 해.”
하지만 세틴은 그쯤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미령한 상태에 빠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황명을 위조하는 일이 숱하게 벌어지고, 오늘 한낱 내관이 전하와 제가 독대하는 자리에 끼어들려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이는 황궁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다 보니 복마전이 되어버렸다는 세간의 인식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전회의에서 이 일을 정식으로 제기하여 황궁 내의 질서를 바로 잡고, 필요하다면 물갈이를 하기 위한 외부 감찰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디어스가 다시 발끈했다.
“네가 이제 황궁 내의 일까지 끼어들어서 간섭을 하겠다고 ?”
세틴이 말했다.
“저는 직접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조정의 감찰 부서에서 법도와 절차에 따라 진행하면 될 일입니다.
제국법에는 황궁의 내관들도 정기적으로 감찰부의 감찰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오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을 뿐입니다.
별 문제가 없다면 감찰을 한다 해서 큰 일이 일어날 것도 없습니다.”
오디어스가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너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것이냐 ?
정녕 나를 몰아낼 셈이야 ?
그렇게까지 해야 속이 시원하겠어 ?”
오디어스가 진저리를 칠 만큼 세틴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제가 전하를 몰아붙인다고 느끼셨다면 그것은 저의 큰 잘못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도 생각을 달리 한 번 해보시지요.
무엇이 진정으로 황실을 바로 세우고 황태자의 권위를 되찾는 길인지 말입니다.
황궁의 내관들을 감찰하는 일은 황제와 황태자를 돕고자 하는 일이지 절대로 몰아붙이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대대적으로 감찰을 벌여야 할 만큼 황궁 내 질서가 무너졌다는 저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감찰 결과가 그렇게 나온다면 제가 전하께 무릎 꿇고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오디어스는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는지 어어 거리면서 손짓으로 세틴에게 물러가라는 뜻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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