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군
다음 날, 모그란데가 시오미와 셔플린을 제국군으로 보내왔다.
우살리드 토벌을 협의하고 제국군으로부터 인계받을 것은 인계받기 위해서였다.
첫날이라 세틴이 회의를 주도하고 제국군에서 호아니와 토마스가 참여하여 5 명이 만나는 자리였다.
셔플린은 세틴의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던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으나 왠지 주눅이 든 듯한 모습은 여전했다.
세틴이 서두를 뗐다.
“제일 먼저 병력 규모부터 조율을 합시다.
북부군에서는 병력을 얼마나 파견할 예정이고 주장으로는 누가 나서게 되는지요 ?
그리고 제국군에서는 어느 정도 병력이 합류하기를 원하는지도 알려주시오.”
셔플린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북부군은 3 만을 황도에 남기고 7 만을 보낼 예정입니다.
보병 5 만, 궁병 1 만 5 천, 기병이 5 천입니다.
총사령관으로는 베그던 백작이 임명되었습니다.
백작은 북부 제일의 명장으로 북부군에서 유일한 마스터이기도 합니다.
전투 경험도 풍부하고 북부에서 따르는 장수들도 많아 지휘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제국군에서 2 만 정도를 차출해주시기 바라고 계십니다.
총지휘권을 북부군이 갖는다는 전제 하에 독자적인 작전권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국군은 누구를 주장으로 세우고 부대를 어떻게 구성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호아니가 말했다.
“2 만이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규모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제국군은 우살리드 군의 특성을 생각해서 주력을 궁병으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따라서 주장은 제국군 궁병대를 맡고 있는 푸스킨 셈프라 2 등 장군이 맡게 됩니다.
보병과 기병, 기타 병력은 5 천 한도 내에서 아직 조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궁병을 주력으로 삼은 이유는 우살리드의 주력인 레인저 부대에 맞서기에는 기병, 보병보다 궁병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레인저 부대의 기본 특성이 단거리 사격에 강한 석궁부대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석궁이 제법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거리에서 궁병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또한 일반 활은 곡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레인저 부대는 기동성에서 강점을 보이므로 보병과 기병을 위주로 근접 전투를 벌이면 뜻밖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셔플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레인저 부대의 주 무기가 석궁이라면 원래 상성상 보병에 취약하지 않겠습니까 ?
곡사조차 어렵다면 방패병을 앞세우고 숫자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보병이나 기병으로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군요.”
호아니가 말했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살리드의 레인저 부대가 가진 몇 가지 특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공격하는 입장이고 저쪽이 수비적인 입장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저들의 진지를 공략하자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공격하는 상황이 일반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석궁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진지전이 아니라 해도 레인저 부대는 전체적으로 전투 경험이 많고 기동성이 뛰어납니다.
북동부 영지에서 징발한 병력이 레인저 부대 외에도 5 만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로 방어진을 구축하고 레인저 부대가 치고 빠지는 식의 작전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우살리드 군에는 레인저 부대 외에 거인인 설인족, 길들인 설산표범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부릴 수 있는 설산표범의 수가 많지는 않으나, 설산표범에 탑승한 최정예 레인저 부대는 파괴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설인족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도 미지수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궁병을 위주로 원거리 전투에 집중하는 방법이 제일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북부군이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겠으나 참고는 하시기 바랍니다.”
시오미가 물었다.
“제국군이 단독으로 토벌에 나선다 해도 같은 전술로 하셨을 건가요 ?”
호아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지금의 제국군 만으로 나설 수는 없기에 추가되는 병사는 전부 궁병으로만 충당할 계획이었습니다.
실제로 지금 제국군 전체가 궁술 훈련에 집중하고 있고, 기병과 보병 역시 원거리 무기를 하나씩은 갖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활을 개량하는 일과 석궁의 파괴력에 대비할 수 있는 방호구 개발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가령 솜을 넣은 갬비슨 위에 가죽 갑옷을 걸치는 것이 일반적인 무장인데 석궁에 대한 대비로 솜을 더 두툼하게 넣은 갬비슨으로 교체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격시 치명적일 수 있는 가슴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호심경을 착용하는 것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오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 출정까지 남은 기간이 길어야 두 달 남짓입니다.
그 동안 보완을 하고 훈련에 매진한다 해도 대비가 만만치 않겠군요.
재정도 문제고, 제작을 한다 해도 기간이 부족하겠습니다.
승상께서는 제국군이 모든 전투에서 선봉역을 맡지는 않는다 해도 초기 전투에서는 먼저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북부군은 정보도 부족하고 토벌을 위한 준비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긍정적인 답변을 가져오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세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하오.
샘프라 장군에게 초기 전투에 앞장 서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 드리겠소.
아울러 내가 한 가지만 더 제안을 하고 싶어요.
이번 토벌전을 위해 내가 개발한 ‘봉시진’이라는 진형이 있는데 가능하면 북부군에서도 활용하면 좋을 거요.
진지전에서는 활용이 어렵고 보병과 기병을 활용한 공격진이오.
전방에 삼각 쐐기형으로 방패병 위주의 보병을 배치하고, 그 뒤를 기병대가 긴 종대 대형으로 따르는 형태요.
궁병의 지원사격을 지속적으로 받는 가운데 이 봉시진으로 돌격을 감행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오.
자세한 건 훈련을 하면서 더 연구해보면 좋을 거요.”
호아니가 말했다.
“이 정도면 기본 사항들은 충분히 전달한 셈입니다.
남은 문제는 양군의 상호 연계를 어떻게 할지입니다.
이번 출정하는 제국군에는 저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토마스 경이 군사참모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원활한 연계를 위해서는 사실 주장들보다 참모들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게 중요합. 두 분이 토마스 경과 많은 얘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하고 인사를 하고 말했다.
“저는 토마스 브라스트라고 합니다.
브라스트 가문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대공 일가와는 아주 먼 친척이지요.
프라움에서부터 세틴 장군을 따랐고 브라스트 아카데미에서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프라움에서는 정보부대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경험이라고 해 봐야 6 백작령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전투가 전부입니다.
이번이 처녀 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틴이 덧붙였다.
“브라스트 가문에는 실로 많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만난 사람들만 해도 수십 명이지요.
그 중에서 제국군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딱 셋입니다.
토마스 경이 그 중 한 명이라오.
처음 보는 자리라 겸손한 척 하지만, 사실 토마스 경은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하하하.
반쯤은 농담이지만 앞으로 사귀어 보면 참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세틴이 브라스트에서 데려온 딱 세 명 중에 하나라는 말에서 셔플린과 시오미는 토마스가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고 짐작하고 남았다.
시오미는 6 백작령에서 이미 토마스를 자주 보았지만 따로 얘기를 나눠본 적은 별로 없었따.
하지만 세틴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사람을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 익히 알고 있었기에 토마스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었다.
셔플린이 눈을 가늘게 뜨고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앞으로 가장 자주 보게 될 사람일 터인데 만나게 되어 반갑소.
그런데 토마스 경은 작위와 직급은 어떻게 되시오 ?”
토마스가 힘주어 대답했다.
“작위는 없고 직급은 부장급입니다.”
다짜고짜 작위부터 따지는 셔플린의 태도가 아니꼬았기에 의도적인 단답형 대답이었다.
셔플린이 따지듯이 물었다.
“제국군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소 ?
어찌 이런 막중 대사에 작위도 없고 장군직도 갖지 못한 사람이 군사참모로 나선단 말이오.
나이도 이제 갓 스물이나 넘긴 듯한데 일을 제대로 해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럽소.”
세틴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셔플린 자작, 제국군에서는 임무를 맡길 때, 작위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오.
더구나 토벌군의 군사참모는 나와 호아니 군사를 대신하는 사람인데 토마스 경을 무시하는 것은 나와 호아니 군사를 무시하는 거나 다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오.
그대가 토마스와 협력을 거부한다면 그것도 아무래도 좋소.
우리 제국군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나름대로 최선의 전투를 하면 그만이오.
그런 태도로는 향후 제국군의 누구와 일을 하더라도 원활한 협력은 어려울 거요.
내가 제국군 사령관으로서 요구하오.
토마스 경에게 무례를 사과하고 향후 작위나 직급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으로 협력하겠다고 다짐하시오.”
셔플린의 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아니. 일을 같이 하려면 어느 정도 직급을 맞춰서 파트너를 정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
내가 무리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사령관께서 왜 그리 화를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세틴이 단호하게 말했다.
“토마스는 모든 것을 고려해서 이번 토벌전의 군사로 내가 선임한 사람이오.
더 이상 긴 말이 필요 없으니 사과를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
사실 제국 관계의 일반적인 관례에 따르면 셔플린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일을 하자면 신분과 직위가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하지만 세틴이 그런 관례를 무시하고 토마스를 강력하게 밀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거 모든 면에서 토마스를 깊이 신뢰하기도 했고, 토마스의 재능과 성품을 믿기도 했으며, 그런 토마스가 중책을 맡아 일하는데 신분상의 불리함이 작용하기를 원치 않았다.
시오미야 말할 것도 없고 셔플린이 그에게 갖고 있는 콤플렉스를 감안해서 이번 기회에 토마스가 확고하게 자리를 굳힐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그런 취지에서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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