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 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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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개선을 환영하는 자리임에도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들을 언급함으로써 아직 멀었다는 설교만 늘어놓은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열띤 환영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고, 개선을 축하하는 황태자의 환영 인사는 물을 뿌려 사그라진 불에서 불씨를 찾는 듯 맥빠진 소리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또 화가 잔뜩 난 오디어스는 대전회의가 열리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세틴을 미리 만나 조율을 해보려 했던 자신의 계획이 이미 물거품이 된 데 대한 화풀이이기도 했다.
“나는 말이오.
세틴 사령관이 제국을 위해 세운 공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오.
아직 젊다 못해 어린 나이이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승상 자리까지 내어줄 생각을 했지.
오늘 대전회의는 무사히 반란군을 토벌하는데 성공한 제국군을 치하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이니 나도 좋은 말만 하고 싶었어.
그런데 제국군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수많은 백성들이 보는 자리에서 꼭 그렇게 아프고 쓰린 얘기들을 구구절절이 했어야 했을까 ?
그게 다 지금 황태자로 국정을 이끌고 있는 나에게 들으라는 소리지 뭐야 ?
정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질타하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어 ?
도대체 세틴 사령관은 무슨 속셈인가 ?
어디 말이나 한 번 들어 보자고.”
세틴이 일어 서서 황태자에게 예를 보인 후 담담하게 말했다.
“황태자 전하를 비난하거나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제국군 병사들과 함께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들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환영을 받고 축하를 받기에는 아직도 우리 제국과 백성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는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물론 우리는 만만치 않은 반란군을 평정하는데 성공했고, 그를 위해 희생 당하고 피땀흘린 장수와 병사들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의 언사가 황태자 전하를 노엽게 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저의 잘못이고 미숙한 점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오늘 일로 벌을 내리신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세틴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계속 화를 내기도 뻘쭘한 일이라 오디어스의 표정이 어느 정도 풀렸다.
“자네가 사적으로는 내 조카이기도 하니 내가 제발 부탁 좀 하세.
앞으로는 말을 좀 가려서 하도록 하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른 사람의 체면도 생각을 해줘야지.
그럼 대전회의를 시작합시다.”
내무대신이 나와서 세틴이 사전에 건내준 포상안을 낭독했다.
대부분 세틴이 황태자에게 미리 언급한 내용 그대로였다.
낭독이 끝나자 오디어스가 말했다.
“이견이 있거나 추가할 내용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아무도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반대는 없는 것으로 알고 포상안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하겠소.
덧붙여 누가 뭐래도 이번 반란군 평정의 일등 공신은 세틴 사령관일 것이오.
그런데 세틴에게 아무런 포상도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오.
그래서 내가 고심 끝에 세틴에게 대공의 작위를 내리기로 했소.
세틴은 이미 브라스트 대공가의 소가주로 언젠가 대공이 될 사람이지만, 그와 별개로 세틴 자신에게 대공 작위를 내리는 것이오.
그러니 이제부터 세틴의 공식 호칭은 소가주가 아니라 대공이 되는 것이오.
세틴이 지금까지 제국에 유일한 대공이었던 브라스트 가의 사람이기에 실제로 대공이 둘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브라스트 대공가가 제국에서 동떨어진 위치에서 벗어나 제국의 기둥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뜻도 담겨 있소.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또 다른 경사를 하나 발표하겠소.
브라스트 대공가에서 나온 다른 공자인 저스틴 백작 역시 이번 전쟁에서 누구 못지 않은 큰 공을 세운 인물이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 카스텔라와 저스틴 백작을 맺어주기로 했소.
원래는 세틴을 승상으로, 저스틴을 제국군 사령관을 삼은 후에 결혼식을 거행하려 했으나, 두 사람이 모두 극구 사양을 하니 내가 억지로 떠먹일 수는 없는 일이었소.
따라서 저스틴 백작의 거취는 본인의 뜻에 따라 제국군에 복귀한 후, 제국군 자체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소.
결혼식은 저스틴의 거취가 확정된 직후 바로 거행할 생각이오.”
“경하드립니다, 전하.”
대전회의에 참석한 모든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축하의 말을 했다.
이로써 반란군 평정에 대한 논공행상은 모두 끝난 셈이었다.
원래 오디어스는 이 즈음해서 황국 증축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올릴 생각이었으나, 제국군에 대한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그 문제를 꺼내 봐야 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회의를 마치려 했다.
하지만 호아니가 제국군 군사부의 총책 자격으로 두 가지 안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총독회의 소집 건이고, 다른 하나는 황궁에 대한 감찰 건이었다.
이는 세틴이 이미 오디어스에게 언질을 준 사안이기도 했고, 오디어스도 나름 대비는 하고 있었기에 굳이 마다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호아니가 총독회의의 취지를 설명하고 총독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일정과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세부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최근 각지의 총독들에 대한 여러 소문이 돌고 있었기에 모든 대신과 관료들의 관심이 매우 컸다.
더구나 오디어스가 이 사안은 미리 세틴와 논의를 거쳤기 때문에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각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까지 당부하자 큰 어려움 없이 급물살을 타고 순조롭게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황궁 감찰 건은 뜨거운 감자였다.
호아니가 세간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과 수 년 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원래 매년 제도적으로 실시되었던 감찰이 없었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또한 최근에 공개하기조차 민망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도저히 황궁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제국법에 따라 조정의 감찰부에서 황궁에 대한 긴급 감찰을 실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공교롭게도 감찰부가 속한 내부 대신은 오디어스의 측근 중 측근이라 할 만한 자였다.
모그란데가 사실상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반란을 일으킨 만큼 예전의 조정은 현재 크게 달라져 있었다.
모그란데 당시에는 황태자가 그를 크게 견제하는 바람에 비교적 중립적인 자들이 대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나, 지금 조정의 구성은 오디어스의 측근들이 대부분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무대신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자로 오디어스의 처남 차미언이었다.
문제가 제기된 이상 감찰부를 관할하고 있는 내무대신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제구군의 군사부에서 황궁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것을 떠나서 그것은 황태자 전하에 대한 불신이자 불경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소.
황궁 내부를 다스리는 권한이 황태자 전하께 있는 마당에 외부에서 감찰까지 요구를 하려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오.
제국법에 조정의 감찰부에서 황궁을 정기적으로 감찰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감찰부에서 알아서 판단할 문제요.
굳이 거창하게 감찰이라는 이름으로 황궁을 들쑤실 필요가 없다면 얼마든지 자체적인 판단으로 간략하게 점검만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나는 굳이 이 문제를 조정의 대전회의에서 왈가왈부 하는 자체가 심히 불쾌하오.
굳이 감찰을 해야 한다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오.”
이런 일에 대한 준비를 허술하게 할 호아니가 아니었다.
또한 그는 젊은 나이에 조정에 들어가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차미언이 요구하는대로 감찰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려고 서류를 추리고 있는데, 6 황자 맬덤이 먼저 치고 나왔다.
“와, 우리 내무대신께서 자신감이 넘치는구려.
황궁 감찰에 문제가 없었는데 웬 시비냐, 그런 말이지요 ?
내가 하나만 물읍시다.
시종장 비언차이는 왜 황태자가 가는 자리마다 밥맛없는 얼굴을 내미는 거요 ?
일개 시종이 황태자가 행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그렇게 나서도 되는지 묻고 싶군.
감찰부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판단으로 간단하게 점검을 했는지도 말이오.”
차미언은 여전히 당당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누구를 대동할지에 대해 감히 누가 시비를 걸 수 있단 말입니까 ?
전하께서 시종장이 아니라 일개 시비를 데리고 다니신다 한들 아랫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을 지어내서는 안됩니다.
나는 내무대신으로서 그런 일은 절대 감찰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이번에는 4 황자 파이란이었다.
“쯧쯧, 저런 자가 내무대신이라고 자리를 차고 앉아 있으니 조정의 꼴이 이토록 말이 아니지.
제국법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럽구만.
지금부터 내 말을 똑바로 들으시오.
조정에 감찰부가 있는 이유가 황태자 아니라 황제 폐하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게 행사하는 일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함이오.
이는 내 말이 아니라 제국법에 감찰부의 설치 이유 첫 조항에 나오는 말 그대로요.
황태자의 체면이나 지켜주라고 있는 감찰부가 아니라는 말이지.
아직도 못 알아 듣겠소 ?”
차미언이 뭐라 반박하려는 걸 오디어스가 막고 나섰다.
“이건 뭐, 나를 몰아붙이자고 서로 작당이라도 한 건가 ?
입 달린 자들은 하나같이 벌떼처럼 나서니 말이야.
내가 반박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대들은 어디 법도에 어긋난 일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그러면 또 조정이 쑥대밭이 되겠지.
그래서 대승적으로 황궁 감찰을 수용하도록 하겠소.
대신 감찰부에서 감찰을 해서 그 결과가 나오면 모두들 깨끗하게 승복해야 할 것이오.
내무대신은 불만이 있더라도 감찰부에 명을 내려 조속한 시일 내에 황궁에 대한 감찰을 철저하게 시행하도록 하시오.
이 일은 여기서 계속 떠들어 봐야 분란만 키울 뿐이니 이만 마무리 하도록 합시다.”
사실, 세틴으로부터 황궁 감찰에 대한 통보를 받은 이후, 오디어스는 비언차이와 함께 이미 대책을 의논한 상황이었다.
당장은 세틴의 기세를 막을 수 없으니,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결론이었다.
어차피 감찰부가 내무부의 소관이고 내무대신이 더없이 가까운 황태자의 사람이니 자기들끼리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는 판단이었다.
세틴과 호아니가 그런 오디어스와 비언차이의 얕은 수를 예견하지 못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호아니가 다시 일어섰다.
“사실 제국군에서 황궁 감찰이라는 안건을 들고 나온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모그란데를 격파한 후 그의 군영을 수색한 결과, 모그란데가 황궁에 있는 모종의 세력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황궁 감찰에는 제국군 군사부에서 같이 참여해서 상당수의 내관들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합니다.
부디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이 벌집 쑤신 듯이 시끄러워졌다.
모그란데와의 내통이라면 보통 큰 사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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