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과 카스텔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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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틴이 돌아가고 난 후, 오디어스는 내관들에게 이것으로 완전히 면죄부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부풀려 세틴의 방침을 받아 들일 것을 요구했다.
사실 내관들의 입장에서는 세 가지 중 어느 하나 달갑게 여길 수 없는 일이었으나, 당장 큰 소나기는 피해가게 되었다는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황비들이었다.
그녀들은 내관의 처소 출입을 완전히 금한 사실에 분을 참지 못했다.
모든 것을 떠나서 ‘부부 간의 생이별’을 당했다고 여겼으니, 그녀들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날뛰는 것이었다.
황비들은 당장 세틴을 잡아다 자기들 앞에 무릎 꿇리라고 소동을 벌였다.
내관들은 그래도 황비들보다는 세상 물정을 조금 아는지라 그랬다가는 당장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 생각하고 사력을 다해 황비들을 설득했다.
이번 조치가 영원히 계속될 것은 아니고 조만간에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갈 것이니 이번 만은 참고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오디어스로부터 그런 식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내무부 참사관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감찰을 얼렁뚱땅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감찰 보고서는 내야 했고, 공식적으로는 감찰 총책인 자신이 감찰의 결론을 내려야 했다.
세틴의 세 가지 방침을 이미 황궁에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니 그것을 감찰부의 안으로 제시하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방침의 근거가 되는 감찰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꿈만 같았다.
자기 생각대로 적당히 얼버무릴 방법이 없지는 않았으나, 엉망진창인 황궁의 현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해야 할지 선을 정할 수 없었기에 다시 호아니에게 구원을 청하게 되었다.
호아니는 너무도 태연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밝혀진 사실과 문제점을 모두 있는 그대로 보고서에 적시하시지요.
적당히 수준을 맞춰서 재구성을 하자면 그게 더 큰 일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한다 해도 내관들이 크게 반발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전에야 단 한 건을 갖고도 몇 사람의 목이 달아나도 모자랄 일이 많으니 어떻게든 감추고 줄이고 고치려고 온갖 수작을 벌였지만, 이제는 황궁의 문제점에 대한 처결이 정해졌으니 맘대로 하라고 할 겁니다.”
참사관은 여전히 난감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밝혀진 사실들을 모두 그대로 적시한다면, 원칙대로 처벌했을 때, 살아 남을 수 있는 내관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그런 사실들을 남김없이 보고서에 적시하고서 임시방편이나 다름없는 솜방망이 처분에 그친다면 명분이 너무 떨어지지 않을까요 ?
그래도 명색이 감찰 총책이 되어서 황태자와 제국군 사령관께서 그런 정도로 끝내라고 지시하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호아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참사관님, 이번 일은 불경스럽지만 황제 폐하께 죄를 뒤집어 씌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황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폐하께 있습니다.
폐하께서 미령하시고 사실상 궐위한 지가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황궁 전체가 이토록 엉망진창이 된 첫 번 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지금 상황에서 그 책임을 황태자 전하께서 부담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폐하의 죄를 운운할 수는 없으니, ‘내관들의 죄가 작다 할 수는 없으나, 폐하께서 그런 상태에 들어가신 지 너무 오래 되어 어쩔 수 없이 방치된 면이 있다’는 식으로 작성해 보시지요.
이제부터라도 황궁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세 가지 방침을 정하고, 황태자 전하께서 책임지고 궁내를 제대로 다스리겠다 다짐하신 것으로 매듭을 지으면 될 듯합니다.”
참사관도 아둔한 사람이 아닌지라 호아니가 그려주는 대강의 맥락만 듣고서도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윤곽이 그려졌다.
그는 호아니에게 수없이 감사의 말을 거듭하고서야 물러갔다.
그렇게 한 바탕 폭풍처럼 황궁을 휩쓸고 지나간 감찰이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워낙 황궁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나쁘게 된지 오래여서 여기 저기서 쑥덕거리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크게 들었다가 가볍게 내려 놓는 식으로 처리된 감찰 결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황궁 문제는 워낙 뜨거운 감자인지라 뒷감당을 어찌 할지 확실한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총대를 매려는 사람이 없는 탓이었다.
조정에서 내관들이 아무런 실권이 없다 하나, 음으로 양으로 내관이나 황비들과 얽혀있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자들은 행여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 하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세틴은 감찰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남음이 있었다.
현재 황궁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황비들과 내관들 각각에 대한 자료도 충분히 수집되었으며, 무엇보다 몇 명의 협력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 모그란데와 이런 저런 인연을 맺었던 자들 중에 황비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궁내에 이렇다 할 세력도 없이 밀려난 내관들이었다.
그들은 모그란데와의 인연으로 인해 일단 제국군에 목덜미를 잡힌 상태인 데다, 현재 궁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자들, 주로 황비들과 깊게 얽혀 있는 내관들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았기에 살 길을 열어주겠다는 간단한 신호 만으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
또한 내관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고, 감찰 보고서에 명명백백하게 명시된 그들의 죄상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궁지에 몰릴대로 몰린 내관들이 죽을 때 죽더라도 찍 소리라도 내려는 용기를 갖게 하려면 또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고 고심하고 있던 세틴에게 마침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울라프가 동부의 다섯 왕국에서 공통으로 임명한 전권 대사의 자격으로 세틴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제국의 황도까지 오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세벤 항구에 있는 제국군 군영에서 만났으면 한다는 전갈이었다.
사실 여러 정황상 세틴이 또다시 황도를 비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법 했으나, 세틴은 과감하게 그 만남에 응하기로 했다.
울라프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크기도 했고, 자신이 황도를 비우는 걸 좋은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디어스는 감찰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신하고 황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저스틴과 카스텔라의 결혼을 서둘렀다.
황궁을 증축한다는 계획은 사실상 없던 일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계획 자체가 황비들과 내관들에게서 나온 것이어서 사실 오디어스 자신에게 득이 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증축 문제로 조정 내에서 반대 세력만 잔뜩 늘려 놓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오디어스는 차제에 증축 문제를 아예 없던 일로 해버리고 말았다.
세틴은 결혼식이 끝난 후, 세벤 항구로 가서 울라프를 만나고, 다시 돌아와서 총독회의를 주관한다는 일정을 짰다.
저스틴은 제국군에 복귀하여 3 등 장군의 자격으로 보병대를 이끌게 되었다.
원래 제국군에서 보병대는 최 정예이자 가장 다수로 구성된 핵심 전력이었으니, 장군 중에서도 고참 장군들이 주로 보직을 맡는 것이 관례였다.
새롭게 부사령관에 부임한 고진 장군은 원래 기병이 주 병과였고, 반란군의 토벌 과정에서는 줄곧 정찰대장의 역할을 수행한 바 있었다.
세틴이 제국군의 세부적인 운영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서고 실질적으로 고진이 대부분의 일을 총괄할 예정이었다.
오디어스는 저스틴을 부사령관으로 밀어 보려 했으나, 고진은 이제 대장군인 데다 제국군 경력에서 저스틴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며, 반란군 토벌 과정에서 세운 공을 보더라도 저스틴이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다.
이제 막 3 등 장군이 된 저스틴이 대장군인 고진과 동급의 직위에 오른다는 것은 군의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황태자의 체면을 생각해서 제국군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보병대장이라는 자리를 준다는 절충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최대한 성대하게 결혼식을 열려는 오디어스를 세틴은 굳이 견제하지 않았다.
세틴은 조정에서 최대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줌은 물론이고,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서 막대한 금액을 지원해 주었다.
이 결혼은 황가와 브라스트 가문의 결합이라는 의미도 있었기에 세틴은 브라스트를 대표해서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디어스는 저스틴과 카스텔라가 황궁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랐으나, 세틴은 법도에 없는 일이라며 극력 반대했으며, 황도에 커다란 저택을 마련해주고, 그곳에서 일할 하인들까지 준비해주었다.
공식적으로 브라스트 가문에서 저스틴의 지위는 보잘 것 없었다.
멀린 대공의 공식적인 아들인 ‘공자’라는 칭호조차 받지 못한 저스틴이었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대공의 지위에 오른 세틴이 후견인의 역할을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돕는 것으로 사실상 저스틴의 신분적인 약점을 모두 덮어지고 남음이 있었다.
세틴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스틴을 늘 ‘형’으로 칭하며, 때로 자신의 어릴적 검술 스승이었다며 떠받드는 모습 자체가 저스틴의 신분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황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저스틴과 카스텔라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거행된 다음 날, 세틴은 동부의 세벤 항구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원래 세벤 항구까지는 빠른 말로 달려도 열흘이 걸리는 도정이었다.
하지만 세틴은 최소한의 일행을 미리 파견해놓고 자신은 단신으로 테오를 타고 세벤 항구로 향했다.
나는 듯이 달리는 테오의 걸음으로 세벤까지 5 일에 주파할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황궁 마법사들을 총 동원해서라도 세벤으로 텔레포트 하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현재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일 뿐, 잘못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지 못하는 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세틴은 테오의 휴식을 위해 하루 몇 시간 잠깐씩 길가에서 눈을 붙여가며 강행군을 했다.
황도에서 진행될 중요한 일정들을 생각하면 세벤에 다녀온다는 것이 애초에 말이 안되는 무리였는지라, 세틴이 스스로 무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세틴이 황도를 비운 동안 총독회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들은 호아니에게 맡겨도 충분했고, 제국군의 본진도 황도가 아닌 세벤에 머물고 있었기에 제국군 자체의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세틴이 유일하게 세심하게 대비를 하고자 한 일은 바로 황궁에 관한 일이었다.
먼저, 근위대장인 오클린에게는 황제 처소를 비롯한 주요 경비를 강화하되 황궁 내의 사람들이 전혀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일을 처리하도록 주문했다.
또한 저스틴의 휘하에 있던 브라스트 출신 무인들로 기존의 근위대원을 대폭 교체하도록 했다.
한편 오골보르와 토머스에게는 원래 오골보르와 가까웠던 내관들과 이번에 확보한 협력자들을 통해 황궁 내에서 벌일 공작을 세밀하게 지시했다.
초점은 비언차이를 비롯한 핵심 내관들의 움직임을 하루 열 차례 이상 점검하도록 했다.
사실상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수준의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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