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협상이 어려우면 중재국부터 공략한다.
***
“알아야 결정하는 것이지요.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신중함은 당연합니다. 어떤 손해를 볼 줄 알고 누군가의 부탁을 무턱대고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말하겠습니까?”
흥선백 이하응이 한 말에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도 속으로 동의하는 우문현답이리라.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말이다. 비유하자면 상대가 사기꾼인지도 모르고, 그동안에 맺은 애매한 관계에서 모든 것을 걸고 도와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가?
“좋습니다. 독일 제국은 알려드리지요.”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가 고민하는 사이에 청나라 주재 독일 공사는 중재하는 대가로 조선에 요구할 것을 공개하였다. 사실 원래는 빨리 공개할 생각은 없었지만, 본국 훈령을 고려해서 밝혀서 이익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
“알려주시지요.”
그런 것을 통역으로 들은 김병학과 흥선백 이하응은 담담한 표정으로 독일 제국의 이번 협상 대표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이며 말했다.
“우리 독일 제국은 조선이 개항장을 여는 것입니다. 청나라에 요구할 것은 톈진의 조계와 개항장과 같으면서 다릅니다.”
독일 제국이 밝힌 요구는 조선의 예상대로 조선 본토의 개항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일 제국만의 개항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것은 독일도 영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기었다.
이런 의도를 조선 측도 알아차렸다. 그 정도는 조선도 부담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그와는 별개로 청나라에 독일 제국이 중재해준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는 궁금하였다.
톈진 조계 지역은 가능성이 원래부터 있던 편이었다. 하지만 뒤에 한 말은 아리송했었다.
“다른 것이라?”
“조차지(租借地)입니까?”
흥선백 이하응은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가 말하는 것에서 눈치를 챘다. 그러므로 조차지라고 입에 담았다.
“예. 그렇습니다. 눈치가 빨라서 대화하기 더욱더 좋군요.”
조차지, 청나라에 조차지를 받겠다는 독일 제국의 의도는 확실하였다.
독일 제국 주재 조선 공사로도 있던 김병기는 프로이센에서 유학하기도 했고, 조선 내부의 대표적인 지독파이다. 그런 김병기와도 인연이 있는 흥선백 이하응은 이전에 역임한 공직이 독일 제국 주재 조선 공사이기 때문에 독일 제국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내부 민심을 달리기 위해서 식민지와 비슷하면서 다른 국외 조차지를 얻는 것인가?’
흥선백 이하응은 현재 독일 제국을 사실상 이끄는 지도자인 독일 제국 수상 겸 프로이센 수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식민지(植民地)를 늘리는 행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인, 그것도 민중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그런 열망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 조계 지역과 조차지, 그리고 개항장으로 내부 민심을 달래려고 요구했다는 생각이 생겼다. 이렇게라도 한다면 불만을 어느 정도는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흥선백 이하응의 친구이기도 한 도체찰사 김병학도 전직 총리대신이라는 자리를 괜히 지낸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빠르게 간파하였다. 김병학과 이하응은 눈으로 이것은 찬성해야 한다고 말없이 대화했다.
“좋습니다. 귀국이 그것을 원한다면 우리 조선도 협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뭘 아시는 쪽이라서 좋습니다.”
“귀국, 도이치도 우리 조선과는 잘 교류하는 나라가 아닙니까? 청나라와도 교류하는 것은 서방 열강이나 서방 국가들이라면 그 시장 관련으로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 사정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속으로 청나라 주재 독일 공사를 많이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봤다.
‘저들이 진짜 조선을 끌어들이려고 움직이는 것인가? 청나라와의 군사 고문단 관련은 진지하게 우방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군. 단순한 영향력 확장이었다고 봐야겠어. 러시아와 조선을 중재하려고 움직이겠지만, 쉽지 않을 텐데? 역시, 비스마르크 후작이 실각하고 독일을 대신할 새로운 동맹국을 물색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함이 마땅해.’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본국에 보고할 생각이었다.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전문 외교관인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도 모르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대화하는 속을 알아차린 편이다. 러시아가 어떤 손해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우려를 본국에 보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자, 러시아도 조선에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와 청나라에 무엇을 요구할지를 밝히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이런 상황을 완벽하게 회피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므로 사실을 말하되, 일부만 밝히는 식으로 움직였다. 조선에 할 요구는 러시아로서도 전혀 걸릴 것이 없다.
그렇지만 청나라에 할 요구는 조선 측도 이미 예측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일부만 밝혀서 혼선을 유도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문제는 조선의 우회적인 사실 토로 의도를 다 막아낼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이거 러시아도 말을 꺼낼 수 없겠군요.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이 러시아는 바라는 것이 크지 않습니다. 우선 조선에는 새로운 개항장을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군함을 입항시킬 수 있게 해주시지요. 아! 물론, 그 개항장에서 이 러시아만 그런 권한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공정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조선의 두 대표, 전권대표인 김병학과 전권 부대표인 흥선백 이하응은 예상대로 요구하자 티를 내지 않고 속으로 안도하였다. 그런 것은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우리 본국에 문의해서 결정해야겠지만, 그렇게 큰 요구는 아닙니다.”
“그러면 청나라에 할 요구는 무엇입니까? 귀국의 그것을 다 알 수 없어도 일부는 알 수 있게 말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도체찰사 김병학은 무심하게 답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 매우 분석하는 중이다.
그리고 도체찰사 김병학을 보좌하는 대조선국 종친 방계인 흥선백 이하응은 전문 외교관으로 살아오고, 본국에도 외교 관련으로 일하는 것으로 그 감은 절대 녹슬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선 측 협상단 전권대표를 겸하는 정청군 도체찰사 김병학이 나서지 않아도, 그가 나서서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를 은연중에 압박하였다.
‘흠. 이거 어떻게 잘 회피해야 좋을까? 골치가 약간 아프군. 그러면서도 당황한 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 와중에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는 러시아 공사를 도와주는 느낌은 아니다. 일단은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드러난다. 필요하면 개입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이 자리에 자기만 포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처음에 생각한 대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진실을 말하되, 일부만 말하는 것이다.
“청나라에 이 러시아가 요구하는 것이요? 그것도 그렇게 거창하지 않습니다. 톈진 조계 지역은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와 청나라는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변경의 군사력 대치를 종식하자는 제안입니다.”
이런 것은 예상외라고 생각한 쪽은 오직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러시아가 청나라에 부동항을 요구해서 조차지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청나라 주재 독일 공사는 조선은 이런 요구에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였다.
“변경 지대의 평화 말입니까? 의외로군요.”
“확실히 청나라 서북부는 귀국과도 접했다고 할 수 있고, 귀국이 현지에 있던 반란 분자들로 고통받던 현지 백성들을 도우려고 출병하여 반란 분자들을 제거한 다음에 주둔하는 일로 청나라와 많이 갈등하고 있지요?”
조선 측이 생각보다 담담하게 반응하였다. 이런 것에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는 조선 측도 속으로 많이 놀랐으리라고 지레짐작하려다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조선은 이 독일 제국과 러시아가 뭘 요구하는지 예측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저들에게 포섭된 이들이 있나?’
물론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는 그것을 진지하게 믿는 쪽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조선이 예측한 것 중 일부를 꺼내놓은 것이 나와서 저렇게 더욱더 담담하게 굴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이런 생각 중인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 속내가 어떻든지 간에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와 대조선국 정청군을 대표하는 두 사람, 그러면서 이번 협상의 조선 측 전권대표와 전권 부대표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예. 그렇습니다. 아무리 조약을 맺어도, 군사상의 대치가 쉬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군대가 대치하는 것도 다 돈이 들어갑니다. 귀국이나 청나라 모두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생각보다 소박해서 놀랐다가, 실익이 크니까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조선의 특명전권대사 각하.”
물론 흥선백 이하응이 나서자,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속으로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조선의 방계 왕족이자 유럽 대륙에도 전문 외교관으로 일한 흥선백 이하응을 절대 얕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였다면 다른 요구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전에도 평화로운 상태를 위해서 중재국으로 참여해서 그것만을 요구하기에는 수지타산(收支打算)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최소 두 가지 요구는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요구를 혹시 숨겼는지 돌려 말하는 것이 세 치 혀가 비수같이 서늘한 말이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의 마음을 헤집는다.
그는 긴장한 것을 숨기면서 이전과 같은 방침을 밀고 나간다.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맞습니다. 외교와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것은 당장 밝혀도, 안 밝혀도 그만입니다. 다른 요구는 협조하지 않아도 되니까, 청나라 서북 변경의 양국 사이 군사 대치 해소에는 협조를 요청합니다.”
“흠···.”
러시아 측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김병학과 이하응의 속에는 신중하지만, 청나라에 다른 요구를 하리라는 확신이 들게 해주었다.
물론 그것을 굳이 무리하게 이 자리에서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청나라에 흑룡강 장군부 근처에 러시아를 위하여 이권을 넘겨주는 것은 조선에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저들이 무리하게 남하하는 상황이군.’
‘영토가 아닌 상황에서 애매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인가? 우리도 원인이지만, 우리 조선 뒤에 있는 영국을 의식한 것이로군.’
청나라와 러시아의 위구르 방면 군사적 대치가 해소되면, 이것은 영국도 심각하게 볼 수 있었다. 그쪽에 몰려 있던 군대가 그레이트 게임 중인 중앙아시아 일대에 더욱더 집중될 여지가 크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라고 안전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위구르 방면에 모여 있던 전력 중 일부가 시베리아 방면이나 흑룡강 장군부 근처의 러시아 군대가 있는 곳에 주둔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영국과 조선 모두를 압박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쪽에 분산 배치를 할 수 있다.
“도와줄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비롯한 각국에 위협이 되지 않았으면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도체찰사가 하는 우려는 이해하는 바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주변의 평화가 다른 평화를 불러오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흥선백 이하응이 하는 말은 아주 사탕발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런 요구를 청나라가 들어주었을 때 러시아가 조선과 그런 조선의 우호 관계인 영국에게 어떻게 손해를 줄 수 있을지 계산하는 편이었다.
“예. 주변의 평화가 다른 평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좋겠군요. 다른 요구는 말하지 않으니까, 도와드리기 애매하지만, 우리에게 밝힌 것은 최대한 협조는 해보겠습니다.”
일단은 전쟁을 끝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곳에 몰린 군대들이 재배치되어도 휴식 등으로 쉬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동에도 시간이 걸린다는 정청군 소속의 동행한 막료, 참모가 한 말을 김병학이며, 이하응도 모두 생각한 쪽이다.
“예. 감사합니다.”
적어도 청나라에 러시아가 관철해야 하는 요구 중 하나는 조선의 협조를 받아낸 것에서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안도하였다. 그렇지만 그도 당장 손해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조선이 협조하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나중의 손해가 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어차피 위구르에 러시아 제국 통치에 따르게 강제하는 것을 고려하면 재배치하는 군대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속을 짐작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손해를 안 보고, 이익을 늘리려는 외교와 정치 현장은 청나라가 톈진에 마련한 협상장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상황이다.
“조선은 이렇게 중재국들에도 사려가 깊으니까 다행입니다.”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외교란 앞일도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조선이 외교로도 청나라에 이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찬입니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하게 말을 이어가지만, 속으로는 타산을 따지면서 저녁 식사 자리를 빙자한 담판은 잘 해결되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이 되었다. 조선 측 협상단은 프랑스 측 협상단과 협력해서 배상금 문제를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갈 준비를 했다.
영토 문제도 독일 제국과 러시아가 요서 전체는 무리라도, 일부는 할양해도 문제가 있겠느냐는 말을 하면서 조선에 유리하게 기울었다.
“산해관을 국경으로 하는 것은 조금 부당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산해관 근처까지는 조금 무리하다고 여깁니다. 대신에 요서 회랑 대부분은 우리 조선이 할양을 받겠습니다.”
“조양과 영원성은 당연히 포함하도록 하지요.”
산해관을 포함한 전체는 반대하지만, 일부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로 바뀐 독일과 러시아를 보고 이홍장은 골치가 아팠다. 장지동도 마찬가지다.
어제 있었던 조선 측의 초청으로 시작한 독일 측과 러시아 측도 같이 앉은 저녁 식사가 변수라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으음···.”
중요 방어선으로는 산해관과 만리장성 일대를 두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나라 측은 요서 회랑을 장악당하면 공세와 수비에도 불리한 것은 잘 알았다.
그러므로 서태후 파벌과 수구 세력은 이번만큼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가 봐도, 조선도 제법 양보하는 쪽이지 않습니까?”
“배상금 부분도 현물로도 받겠다고 말하며, 배상금 납부 일자를 넉넉하게 보장하겠다고도 타협하지 않습니까?”
영국과 프랑스 쪽의 지원 사격을 받아서 청나라 측은 압박당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상을 파투 낸다면 청나라가 불리하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청나라 협상단은 많은 고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협상단과 연관이 없다는 듯이 구는 순친왕은 협상이 끝난 이후에 천진, 톈진 북양대신 집무실에서 이홍장과 장지동에게 협상 상황 보고를 듣는 쪽이었다.
그는 청나라 협상단의 고민을 듣고 두 사람도 난처하다고 이해하였다.
“큰일이군요.”
“타이완(대만)의 상실은 각오한 일이지만, 랴오쓰(요서)는 다릅니다.”
“예. 수락하지 않아도 문제이고, 수락하여도 문제입니다. 그와 별개로 배상금 쪽도 문제입니다.”
배상금 액수 자체를 더 늘리지 않는 선에서 현물 배상도 가능하다고 선회한 조선과 프랑스에 안도했지만, 그럼에도 그것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랑스와 전쟁 이전에 협상을 체결하고, 프랑스가 협상을 어기면 이를 빌미로 배상금 청부를 막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청나라 측은 인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늦었고, 배상금 지급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을 내놓아서, 배상금을 깎는 것도 있지만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없겠소?”
“우리한테 동정 여론이 흘러가는 것이 좋습니다만, 무리한 일입니다.”
“예.”
정말 극적인 일이 일어나면 모를까, 쉬운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세 사람도 잘 알고 있다.
“이런 협상 결과를 명목으로 황태후 전하, 그분을 믿고 경거망동하는 자들이 움직이겠군.”
“이미 각오했던 일이지만, 쉽지 않군요.”
“여차하면 저희는 물러났다가 복귀하겠습니다.”
그리고 협상 결과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움직이리라는 것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일어난 상황에서 숙청을 운운한, 서태후를 믿고 나서는 자들을 역으로 숙청하는 것이 목적에 속했다.
사실 그런 것이 원래 목적이었어도, 협상 결과가 이렇다면 공친왕 파벌과 순친왕 파벌을 향한 반발이 전혀 없으리라는 보장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해야 합니다.”
“예. 이를 피하려다가 더욱더 심각한 굴욕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홍장과 장지동이 하는 말이 옳았다. 순친왕 애신각라 혁현이 생각하여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이런 굴욕이 가득한 협상을 했고 동의해야만 하는 이유를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며 그런 자들을 숙청해야 한다.”
서태후를 반드시 뒷방 늙은이로 만들어 몰아내면 청나라 종실 양대 권력자 자리에 유력한 순친왕이 결의를 다지고 하는 말이다. 그런 말에 이홍장과 장지동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순친왕 전하.”
“쉽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현물 배상도 된다는 것으로 실제로 낼 돈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청나라 협상단이 보였다.
청나라는 이번 전쟁에서 쓴 전비가 적게 잡아도 20억 냥이 넘었다. 여기에 청나라 조정이 빌린 돈은 수억 냥이 넘는다. 아무리 못해도 3억 냥은 전비로 쓰려고 빌렸다는 말이 있다.
“현물 배상도 받는다면 무엇이라도 받을 생각입니까?”
“글쎄요. 물론 우리가 정합니다. 우리가 생각해놓은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맞습니다. 귀국이 현물 가치와 대상을 정할 수 없습니다. 승전국인 프랑스와 조선이 정합니다.”
조선과 프랑스는 현물 배상을 인정했어도, 청나라가 현물 배상 대상과 가치를 임의로 정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런 모습에 청나라 협상단은 불쾌하지만, 두 나라가 보이는 행동을 승자의 권리라는 선에서 일단은 알고 싶었다.
“무엇입니까?”
물론 조선 측은 그것을 쉽게 말해주지 않았다. 청나라가 알면 반발할 요구도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었다.
“알면 수용하겠습니까?”
“들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그러면 이야기하겠습니다. 귀국이 덕의지, 도이치에 주문했다는 전함, 장갑 순양함 두 척을 우리가 현물 배상으로 가치를 환산해서 받겠습니다.”
북양 수사 혹은 남양 수사에 배치할 예정이던, 전쟁 터져서 독일이 인도를 중지하거나 아직도 독일에서 건조 중인 정원급 장갑 순양함인 정원과 진원을 조선 측이 요구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굳이 군함을 요구하지 않았다. 현물이나 그에 상응하는 이권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조선은 프랑스보다 더욱더 많은 배상금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최대 2억 냥 중에 현물로 1억 냥까지 낼 수 있게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런 것도 목적이었다.
“예?”
“우리가 잘못 들은 것입니까?”
청나라 협상단은 당연히 당혹스럽다. 청나라 협상단만 당혹스러운 것은 아니다.
바로 지금 협상장에 같이 있는 청나라 주재 독일 제국 공사는 속으로 이걸 목적으로 노린 것이냐고 놀란 편이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편이다.
사실 청나라가 거부할 수 있지만, 두 척의 군함과 그들이 쓸 포탄 등을 합치면 1,000만 냥 이상 가치는 충분하였다. 현물 배상으로는 충분할 수 있다.
조선은 이번 전쟁에서 전비를 제법 많이 낸 편이지만, 청나라에 요구한 배상금 2억 냥이면 벌충하고도 남았다.
그것도 현물 배상도 허락해서 이권이나 청나라가 가진 현물로도 된다고 타협한 것도 청나라가 가지는 중요 군사적 현물이나 통치에 필요한 자료들을 정당하게 압수하여 습득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아니요. 제대로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이요?”
청나라 협상단은 할 말을 잃었다. 특히 청나라 협상단의 전권대관인 이홍장은 얼굴에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조선이 나중의 손해를 고려하고도, 일부는 들어주는 식으로 이 협상에는 러시아 제국도 끌어들였습니다. 청나라만 제일 손해보는 구도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독일이 청나라에 아직 인도하지 않은 정원급 장갑 순양함 2척을 현물 배상 목록에 올리려고 합니다. 청나라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요?
다음 편에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