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조선 만업 박람회
***
조선에 주재하는 유럽인 신문 기자들은 많다. 아주 많다.
그들 중에서 한 명이 보인다. 그는 프랑스 사람으로 이름이 자크 프랑수아 데클랭이라고 한다. 이름만 귀족 같지, 이미 대혁명으로 망한 귀족 방계 가문 후손이다.
자크 데클랭은 유럽에서 조선에 관련한 칼럼을 기고하려고 글들을 작성하는 편이었다. 대조선국에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한성부에 들어온 그는 며칠 동안 많은 이들을 지켜본 편이었다.
원래 기자는 인천부 제물포 개항장에 자주 기거했다. 다른 개항장들에도 가보는 편이었다. 그리고 대조선국은 개화, 다른 말로는 ‘서양식 근대화’ 과정이 꽤 궤도를 타니까, 외국인이 조선 내륙을 방문하는 일을 더욱더 허락하였다.
“내가 조선을 몇 년은 살아보니까 조선인들이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자크 데클랭이 지켜보기에는 조선인들은 세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복장을 매우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다. 일부 모습은 심하게 말하자면 수구적이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인정하고 양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지는 않다. 다만 좀 꺼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정중하다.
자신들이 가진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리고 그게 심해서 유럽을 낮게 보는데 기자인 자크 데클랭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유럽에도 있는 오만한 시골 신사들도 딱 저렇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하는 편이다.
다른 하나인 쪽은 서방, 서양을 매우 동경한다. 젊은 학자 귀족 계층과 중간 계층인 전문 기술직에 상인들이 그러하고 노학자라도 조선에는 꼭 필요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재미있게도 앞에 있는 사람들이 양물에 물든 이들은 사상도 자신을 버리고 그저 바꾸려고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과 달리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을 하나로 만들어보려는 이들이 꽤 있다.
“물론 지나칠 정도 서양 동경인 사람도 있더군. 내가 두 번째 부류로 분류한 이들에는.”
그렇다고 해서 탈아입유(脫亞入兪 : 현실에 실제로 있는 표현, 탈아입구와 비슷한 뜻으로 종종 등장할 예정.)라고, 새로운 중화인 유럽을 적극적으로 모방하자는 이들도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게 지나친 사람들은 같은 부류로 엮이는 이들에게도 좋은 말을 전혀 듣지 못한다.
‘생각보다 자기 이익에 앞서서 나라가 이익이 없어도 된다는 이들은 적어 보였지. 물론 유럽에 더욱더 그런 자들이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기자인 자크 데클랭이야 유럽이 자신들이 가진 우수성을 강조하려면 당연히 첫 번째 보다는 두 번째 부류를 강조해야 좋았다. 그중에서도 유럽 문명을 열렬하게 추종하는 자들이 있어야 좋았다.
그들은 조선에서 제일 서양 문물을 동경하고 그 유용성에 서양 물건을 즐겨 사용하고 서양식 옷을 입는다. 두 번째 부류는 군대에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군대는 서양 문물과 친숙해서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는 첫째와 둘째의 중간, 세 번째 부류가 있다. 이들은 첫 번째 보다는 세상의 변화 속에 인정하며 살지만 두 번째보다는 조금 더 신중하다.
그래도 유용한 문물은 쓰는 것이 망설임이 없다. 자크 데클랭은 제일 마음에 드는 이들은 가장 많고 평범하며 인간적인 세 번째 부류다. 두 번째 부류에서는 아시아인 멸시가 심해서 자신들이 유럽인인 것처럼 구는 이들이 있다.
“지난 전쟁 이후로 조선은 청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한다. 물론 그런 태도도 상황에 따라서는 다르다고 했지?”
자크 데클랭이야 자기가 취재했던 내용들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 쓴 글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조선이 유구를 제외하고, 같은 동양인을 깔보는 모습을 잘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분류가 유독 그렇고, 다른 분류들도 적대감과 경계심이 강하다고 알고 있다. 사실 다른 부류들은 이웃 국가를 향한 불신이지만, 두 번째 분류가 보이는 행태는 다르다고 여긴다.
기자는 그런 이들을 속으로 서양식 옷 입은 노란 원숭이들이 덜 개화된 원숭이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백인 우월주의적인 기조를 가진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우위성을 위하여, 서양식 옷 입은 원숭이들을 더 친하게 지내려고 하겠어. 적어도 말은 통하고, 중간 관리자를 보좌하는 자리 식으로 여기는 자들도 있는 법이고.’라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그런 말은 함부로 조선인들 앞에서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기자,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아무튼 같은 동양인이 동양인 차별하는 일도 종종 촌극이라고 생각해. 어떤 사람들이야 유럽인들이 같은 유럽인을 깔보면서도 다른 종족들에게 우월감을 드러낸다고 말하겠지만.”
게다가 같은 유럽인이라도 다른 나라 사람을 깔본 적이 많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냥 비웃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에도 이탈리아반도 남부와 아일랜드 출신들을 종종 하얀 흑인이라고 멸시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리고 기자인 자크 데클랭은 그런 소식을 들어도 백인 사이에도 격차는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딱히 모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에 입국한 프랑스인 중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봤다. 백인들 사이 모순을 조선인들에게도 알려주면서, 파리 코뮌 관련으로 망명한 이들은 종종 조선인들도 그런 모순적인 일을 행하면 문제가 생기리라고 말했다.
기자, 자크 데클랭은 그렇게 말하는 프랑스인 동포, 망명하여 오래도록 조선에 살 인사라고 볼 수 있는 자들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필요 이상으로 오지랖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 말에 조선인들도 반응이 저마다 달랐다는 점이 오히려 자크 데클랭에게서 흥미를 끌었다. 그런 반응을 자크 데클랭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들을 마냥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교화할 기회들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그렇게 구는 이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안 되지만, 우리는 아직 성현이 아니요. 우리도 그러한 상황인데, 쉽게 미워함을 버리지 못하오. 그대들이 하는 말은 옳소. 그런 말을 하는 자 중에도 정작 다른 상황에서는 달리 행동한다오.”
무작정 반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당히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자크 데클랭은 조선인들을 그래서 마냥 무시하지 못하였다.
물론 원래 자크 데클랭이라는 사람은 동양에 사는 이들을 첫 아편 전쟁 이후로 매우 깔보는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영향을 짙게 받은 편이었다. 그런 모습은 조선에 입국하면서 달라지는 일이 많았다.
조선인들과 충돌하게 되면서. 동료지만, 자존심 등으로 서로 야유하는 사이인, 연상인 어떤 영국인 기자는 그런 일을 더욱더 겪었는데도 영국인 자부심을 못 버렸다. 자크 데클랭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편이다.
그들이 오히려 조선에 장기적으로 고용된 유럽인과 미국인 고문들보다 더욱더 그런 변화 수용 등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은 보통의 조선에 주재하는 이들은 엄청나게 문제라고 보는 편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화하고 싶지. 그들을 교화하는 명분으로 무작정 지배할 생각이 없소,”
“우리보다 인구가 많습니다. 모략으로 분열하여 지배시켜도 문제는 생길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상대를 존중해야 내가 존중하지 않습니까?”
파리 코뮌을 지지했던 백인우월주의에 찌들지 않아 보이는 프랑스인들은 조선인들이 말하는 논리에 많은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은근히 그런 기조로 조선인들을 내려보는 편이 아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논리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자크 데클랭은 그런 것을 끼어들지 않고, 잠자코 지켜보게 되었다.
“상대가 존중하지 않는데, 왜 해주어야 합니까? 그러면 점잖게 경멸하면 되는 일입니다. 청나라와 왜국에 사는 족속 대부분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나, 당한 배신을 생각하면 그것이면 나은 편이라고 여기오.”
“그래도, 이웃한 나라끼리에 예의가 있지 않습니까? 이전과 다르게 열심히 교류하는데요.”
“우리는 예의를 차리는 편이요. 저들이 싫다고, 매우 때려죽이는 일을 합니까? 범죄를 저질렀다고 우기면서 막 대합니까?”
물론 그렇게 행동하는 조선인들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다. 적어도, 자크 데클랭이 알기로도 비교적 적다고 아는 편이었다. 논리 싸움은 재미있으면서도, 백인이 지는 일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나설 생각은 없다. 자크 데클랭이 나선다고, 저 논리적인 자들에게 쉽게 이기리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꽤 유창한 프랑스어로 말싸움하는 조선인들이다.
복장을 봐도 보통 조선인은 당연히 아니다. 데클랭이 이전에도 정의했던 조선인 대분류 세 부류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속한다고 짐작하였다.
사실 자크 데클랭은 어차피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듣는다. 그래도 불편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저 사회주의자들을 싫어해도, 같은 백인이라서 알게 모르게 편드는 감은 있을 테니까. 또한 같은 프랑스인이 논리에서 지는 모습이라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일은 더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대들, 법국에서 온 그대들은 과거 영국이 법국에 저지른 일들을 쉽게 용서할 수 있소? 우리는 청나라와 왜국이 저지른 일들에 최근에 당했던 일들이 과거에 있던 일들과 결부되어서 더 깔보고 싫어하는 일이요. 물론! 그런 일이 소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는 우리가 숭상하는 정학에도 나오는 법이요. 그렇기에 그런 말을 하는 일은 동의합니다.”
프랑스인들은 그런 대의를 동의한다는 점은 찬성하는 편이라고 듣자, 기뻐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더욱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군자가 되려면 멀었소. 그렇기에 아직도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일이요. 그들, 청나라 사람들과 왜국 사람들을 연민하면서도 미워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를 누르면서도, 그들이 담담한 이유인 변화함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도 변화를 주고 싶소. 우리가 그들에게 그런 일을 알려준 일로 우대받는 일로 족하면 말이요. 단! 그들이 달라지는 일에 금수처럼 굴면 싸울 셈이요.”
“교화를 진정으로 원하는 일입니까?”
“유자라면 아무리 소인이라도 교화를 원하오. 교화되지 못한 자들은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오? 화(華)와 이(夷)가 종이 한 장 차이라도 그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를 교화가 없다면, 이과 짐승은 영원히 이(夷)와 짐승이요. 그걸 그대로 둔다는 일은 위선이요. 소인이 위 군자인 척하는 일이요. 누군가가 말하는 문명인이 짊어져야 하는 짐은 정말로 짐이요? 짐인척하면서 군림하기 위함이 아니고?”
유창한 프랑스어로 조선인 지식인은 종종 유럽 등이 보이는 백인우월주의, 아직은 백인의 짐이라는 개념이 없어도 선의에서 시작되던 문명 전파를 다른 세계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을 비꼬았다.
좌파,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프랑스 파리 코뮌 지지자에서 망명한 이들은 조선에 입국하고, 그들이 가지던 사상을 무조건 옳은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이런 도전은 다른 유럽인들과 미국인들도 받았다.
조선인들도 위선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조선인들이 보기에도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보이는 문명 전파를 명목으로 진출하는 일은 위 군자들보다 더 악질이라는 비판은 많은 생각을 할 여지를 제공했다.
이런 사상 충돌이 조선은 과도기라서 그러한 편인지, 동아시아에는 제일 치열한 편이었다. 또 사상 충돌은 정반합을 이끌기도 하였으며, 논리를 보강하는 식으로 진화하는 편이다.
조선이 숭상하는 정학, 성리학도 국외에서 들어온 여러 사상으로부터 받는 도전으로 맹렬하게 달라지는 편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기에 기본 정학과 보강된 정학은 그들이 한 도전에 더욱더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신문을 읽는 자 중에서 좋아할 사람들이 있을까?”
이런 사실을 알리는 기자들은 거의 없다. 자크 데클랭도 마찬가지이다. 자크 데클랭에게는 가까운 지인, 영국인 기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고문들과 일부 가톨릭 신부, 일부 선량한 선교사들이 그런 점을 깨닫는 편이다. 그들은 민간에서 순수한 선의로 선교를 위해서 왔다가, 과거 일이며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이런 위선을 위해서 온 일인지를 고심하게도 되었다.
일부 기자도 조선인들을 훨씬 많이 부대끼면서 그렇게 종종 생각하지만, 밝히지 않는 편들도 있다. 자크 데클랭은 그런 진실을 다 보여주지 않고, 신문을 읽는 이들에게 흥밋거리를 주기 위해서 과장한다. 그런 기자인데도, 불편한 감정에서 바른 생각이라고도 공감하게 되었다.
만약에 그가 여전히 똑같았다면, 그런 말을 듣기 싫어서 완전히 자리를 피했을 사람이다. 그런데도 피하지 않고 경청하고 보내지 않은 칼럼으로 그 관련 글을 쓸 정도가 되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내가 썼지.”
그런 생각을 이내에 지우고, 칼럼과 기사들을 쓰기 위해서 요즘 조선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일 조선 만업 박람회가 열리는 한성부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자크 데클랭은 조선인들이 많이 탄 기차 객실을 둘러봤다. 조선인들이 싸 온 도슬밥인지 하는 것들이 보였다. 아니면 엿이라는 조선에서 주로 만드는, 설탕을 쓰지 않는 사탕도 보였다.
그, 자크 데클랭이 알기로는 그걸 보면서 무언가를 떠올렸다. 조선인들은 대체로 많이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청나라 사람이나 보통 일본인에 유구라는 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키가 크다. 특히 북쪽 출신들은 유럽인에 버금가게 키가 크고 몸도 장대하다.
그런 기골이 장대한 이들을 조선군에서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몸이 커진 이유가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튼튼한지는 다 다른 편이다. 조선인들을 만나면 옛날에는 조선인들은 뼈가 약했다는 말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조선인들은 유달리 대식하던가?”
왜 이리 많이 먹는가를 지켜보니까 더위가 비슷한 위도에 있는 유럽 국가들보다 덥다. 자크 데클랭은 그래서 피부가 붉게 잘 익었다. 더위가 프랑스 남부보다 압도적으로 더운 곳은 처음이다.
말로만 들은 북아프리카 아래 더위도 이 정도일지에 대해서 생각했을 정도였다. 추위? 유럽보다 더욱더 추운 곳이 조선이다.
러시아에 사는 이와 만나서 취재했던 일에 조선에서 지내면서 추위가 어땠냐는 질문에 러시아인이 진절머리를 칠 정도였다. 그가 한 말이 자크 데클랭이라는 기자에게는 매우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던 표현이었다.
“내가 살면서 내가 살던 고향 추위 이상인 곳은 시베리아를 말고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시베리아를 넘었던 용감한 러시아 모피 상인도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자크 데클랭은 이런 기후에서 사람이 산다는 점은 놀랍다고 여긴다.
정리하자면 덥고 추움이 극단이라서 피곤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피곤함을 풀려고 이곳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 이런 생각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또 아직 농민이 많아서 농부들의 경우 정말 많이 먹는다고 한다. 자크 데클랭은 농부들이 일 때문에 많이 먹는다는 잘 알았다. 전에도 그는 조선 농부들이 많이 먹는 그런 광경들을 글로 써서 기사에 담았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조선 만업 박람회에도 조선인들은 괜히 농업에 더욱더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업 박람회 말고도, 사실 유럽은 품종 시연회 같은 일을 하는 편이라서, 굳이 따로 하면 된다고도 생각했었다.
어떻게 산업 박람회와 이걸 합쳐서 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였다. 돈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뭐. 농사를 잘 지어야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면 좋지. 그래야 다른 여유도 생기고. 그런데 조선인들은 농산물을 수입하던가?”
물론 그는 좋게, 좋게 생각한다. 조선인들이 뭔 생각하는지 대충 알아도, 그런 사실을 자기가 쓰는 기사에 많이 반영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가 다른 점이 궁금해진다.
조선인들도 농산물과 축산물을 수입하는지는 긴가민가했다. 사실 자크 데클랭이 나중에 이 관련으로 취재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 생겼다.
아무튼 자크 데클랭은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 모습을 다른 이들이 자주 목격한다. 그래도 작게 말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그가 하는 버릇에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기도 하는 편이었다. 보통 조선인들은 자크 데클랭이 하는 말, 프랑스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냥 저 서양인은 ‘왜 저렇게 주절거리지?’, 같은 궁금증이 생겨서 보는 편이다.
“조선 만업 박람회인지 취재하고 관련 기사들을 연속으로 써내게 생각하면 나한테 돈이 되겠지. 뭐. 그럼 누구를 만나야 할까?”
그리고 자크 데클랭은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 여전히 혼잣말하는 편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꼭 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매우 집중하면 이렇게 행동하는 편이다.
조선에 주재하는 유럽인 학자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조선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을 만나볼 생각도 있었다.
기왕이면 오페르트라는 상인보다는 하인츠 세데르베리를 만나고 싶었다. 사실 이건 오페르트가 유대인이라서 그렇게 보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작 오페르트는 종교적으로 유대인이 아니게 된 지는 제법 오래된 편이다. 이런 사실은 오페르트를 자주 만나는 이들만 아는 사실이다. 하인츠 세데르베리와 오페르트가 꽤 자주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점을 생각하면, 둘 중 하나만 만나도 상관은 없다.
오히려 공적으로 전업 학자이자 대조선국 고등 교육기관에 일하는 하인츠 세데르베리가 더 바쁘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 보면 하인츠 세데르베리한테 무례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사람이라는데, 어떻게 취재해서 내가 궁금한 점을 얻어낼 수 있을까? 오페르트라는 상인을 굳이 만날 필요도 없고.”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가 가진 인류학 소양이 겸직 인류학자라고 고려해도 조선인들과 교류하고 하인츠 세데르베리를 비롯한, 일부 유능한 인류학자들과 학문적 교류하는 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크 데클랭은 모른다. 여기에, 그가 생각하는 의문을 풀 수 있는 연구는 이미 하인츠 세데르베리가 쓴 책 몇 권만 봐도 해결될 일이다. 여기에 조선인들 취재만 잘 섞으면 되는데, 무리하게 하인츠 세데르베리를 만나려고 함은 어떻게 본다면 참 촌극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조선 만업 박람회를 취재하는 기자도 빠져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등장시켰습니다.
매우 차별적이고, 당대에 있을 법한 기자로요. 당연하게도, 가상 인물입니다.
이 사람 행보는 앞으로도 더 나올 부분입니다. 다음편에 만나요. 다만, 토요일은 휴재할 수 있습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