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또 다른 급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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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졌어. 과거제의 제약은 더 사라지지 않았나?”
정말로 과거제 대신 관료 고시와 이서 시험으로 대체가 되어서 공록을 받아먹기 쉬어진 상황이다. 그래도 아직 현실을 직시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돈 있는 이들은 여전히 권세가 있고 작위에 봉해지지 않나? 사실상 다시 나눈 일이야.”
귀족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왕족을 빼고 작위를 받은 권세가 집단, 세족이라는 이름의 집단이 사실상 등장한 사실을 보고 있는 한 상민이다. 가까이 지내는 중인은 그 말에 다른 화제를 꺼낸다.
“중인이라서 더는 차별 받지 않아서 난 좋네. 근데 요즘 노비는 둘째 치고 백정들이 설치고 있다네. 이게 몇 년이나 지속하는 일인가?”
“반가 중 세족이 된 일들이 설치는 일보다 백정들 설치는 모습이 더 꼴 보기 싫어!”
이미 조선 후기부터 상층지향으로 성리학의 내면화를 해서 양반들이랑 자신들이 맞먹는 일이 됨은 당연히 여긴다. 이미 자신들과 부대끼던 노비들은 몰라도 백정이 자신들과 같은 급이 되어버린 일은 매우 고깝게 여기고 있다.
참으로 모순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세상은 빨리 바뀌는데 사람의 생각은 쉬이 달라지지 못한다. 백정 중 부자는 판자(販資 : 주식)를 사서 상회사에 투자하고 나라의 방침에 따라서 큰 목장을 지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들에겐 지금이 가장 큰 기회이다.’
“백정 출신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우리는 돈도 많으니까 함부로 굴면 좋지 않다.”
“나라님이 신분제를 폐지해서 백정들이 기고만장해진 모습을 봐!”
“돈 있다고. 유세는!”
“우리 이러지 말고···.”
이전부터 근래에 생긴 나쁜 짓인, 백정 아녀자를 잡아서 일종의 몸값을 요구하는 짓이 일부 지역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얼떨결에 주는 일도 있지만, 이런 일이 보통 발생하면 지방 경찰들이 이를 제지해버린다. 그런데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고 있다.
또 신분제 폐지에도 이렇게 잔존한 의식으로 일어나는 일로 백정 출신들은 형평운동을 일으켰다. 자신들도 이제 평민을 주창하면서 거리로 나오고 지도층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런 형평운동에 구시대의 잔재를 혁파하자는 혁신 유림은 이에 동조했다. 이 운동으로 일부 양민들은 백정 출신들과 충돌했다.
물론 혁신 유림은 그 대의를 동조하기에 지지하는 편이었다. 세족이 된 이들은 반가와 유림을 존중하는 편이다. 사실 세족도 명예직을 받았지만, 특권이 드문 일종의 사회적 계급으로 기능하였다.
혁신 유림은 같은 양인이 된 이들끼리 싸워서는 아니 된다고 말리는 경향이다. 좀 보수적인, 어쩌면 귀족적인 경향의 유림 인사들은 천한 자들끼리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이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면 논란을 일으키니까 그렇다.
“교육에도 이런 일이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생 출신들도 이런저런 일에 운동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평운동의 여파인지, 천민들이란 존재가 있던 과거의 잔재인지 몰라도 이런 갈등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기존의 유배해 온 관리 혹은 이사 온 가난한 선비에게 교육받았다가 신식 학교, 그에 영향을 받은 학제의 신서당 등이 유행하면서 교사, 혹은 훈도의 채용이 늘었다.
그런데 훈도가 되려고 들어온 이들을 차별하는 일도 있다. 간신히 선생, 훈도가 되어도 백정 출신이라고 알려지면 수업을 거부하는 일도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우여곡절 끝에 조선의 사회는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인도 좀 더 생각이 깊은 조선인들은 생각한다.
그 이외에 기생 출신들도 백정 출신들의 투쟁에 가담했다기보다는 별개의 차별폐지 운동을 열어줄 정도였다. 매춘이 없을 수 없는 예인의 길에서 그런 성적 대상으로 노골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등을 주장한다. 기생 출신들도 천민 신분 등이 폐지가 되었지만, 남아 있는 차별 어린 시선은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목소리들이 빨리 퍼져나갔다고 볼 수가 있다. 물론 차별에 대항하기보다는 침묵하는 이들도 있다. 그 외에도 ‘그게 왜 차별이냐? 관습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에 갈등이 있다.
이런 민간의 갈등은 지난 군대의 변화 중에도 영향을 주었다. 큰 상관이 없어 보였지만, 그들의 가족은 민간에 활동하기에 영향을 안 줄 리가 없다. 어디 부대에 있는 군인들의 대화를 들어보자면···.
“우리 조선군은 양인 징병제가 되었어도 사실상 지원병에 가깝지 않나?”
“그렇지요.”
“그래도 많은 물자가 잘 지원되니까 좋습니다.”
일졸, 개칭해서 일병이 된 그들은 나이가 달라도 친근하게 감밀 탄산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다. 군수물자는 꽤 잘 지급되는 편이며 병영도 매우 좋다. 선임들에게 말을 들으면 꽤 더욱 개선되는 중이라고 들었다.
물론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는 이들 외에도 3년의 의무복무를 하는 쪽은 각자의 고향 근처에 입대해서 근무했다. 직업군인으로 지원한 이들과 의무복무를 생각하고 입대한 이들의 봉급 차이는 있어도, 같이 고생하는 점에서 유대감이 있다.
“근데 그거 들었습니까?”
“뭘?”
“군법에 규정하던 벌 중에 체벌이 좀 달라질 예정이랍니다.”
“어떻게?”
“체벌이 있잖습니까? 그거 체력단련이니 하는 거로 대체한답니다.”
“뭐? 체벌하는데 그러면 군기가 세워질까? 편하기는 하겠는데 말이여.”
또한 체벌은 공식적인 징계로만 남겼다가 체력단련으로 대체가 될 예정이었다. 또 공직 징계 외의 사사로운 체벌은 금지가 되었다. 아직 암암리에 남아있어도, 공식 징계를 대체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어떤 미군 출신 고문의 덕으로 바뀌었다고 소문이 들리지만, 자세한 일은 몰랐다.
아무튼 사실이라면 미군 출신 고문인지, 다른 유럽 국가 출신 고문 덕일 수는 몰라도 편해졌다. 정확히는 편해진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체벌도 쉽게 되면 대신에 작업과 훈련에 더욱 전념시키게 되고 있다.
그 외에도 부대의 보급이나 사식을 챙기는 일은 상상보다 더욱더 훌륭하다. 특히나 현 근위 교도 사단, 옛 명칭으로나, 부대 명칭으로는 ‘훈련도감’은 사단장과 사단 중군장이 부하들의 보급에 신경을 써서 받는 부식비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많이 먹게 해준다.
그 외에도 병참으로 지급되는 식량의 경우도 꽤 좋은 편이다. 남는 식량은 허락받아서 출퇴근하는 병사들이 가족과 나눌 정도이다. 당연히 먹고 살려고 군대에 들어온 빈민들은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밥을 잘 주니까 정말 좋아요.”
“자네는 가난한 빈민이라고 그랬던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어.”
“예, 그렇지요. 형님은 어떻게 들어 왔었지요?”
“나? 우리 선임처럼 일자무식은 아니었지만, 관리시험 준비하기에는 가난해서 이렇게 군대에 왔다.”
“선임께서는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동기지만, 가장 어린 쪽이 물었다. 어떤 소문인지를 다른 일병이 알아차린다.
지금 조선군에는 문맹이라면 정훈 종사관, 다른 말로는 정훈 무관의 도움으로 글을 뗄 수도 있게 하였다. 정확히는 국문으로 부르는 정음이다. 또한, 많은 사람을 만나서 견문을 넓힐 수가 있다.
특히 어느 문맹 병졸은 정훈 무관 아래에서 국문은 기본으로 떼고, 한자도 떼서 결국 상병까지 무사히 진급시험에 통과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 문맹이던 상병은 괄목상대한 삼국지의 ‘여몽’에서 따서 김여몽 상병으로 불리고 있다. 김여몽 상병이 저 일병 3인방의 선임이다.
“군대가 이런 계몽이랄지, 교화의 선봉이 되는 듯합니다.”
“그런가? 나도 몰라. 그래도 문맹들이 줄어드는 일은 맞아.
군대 내에서 말이야.”
군대가 근대화, 혹은 새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선두주자로 기능하고 있던 셈이다. 그래서 서방식 교육을 받은 교사, 훈도가 부족한 지방, 도서 등의 지역에서는 군부대 무관과 교관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적어도 그게 아니라도, 군대 내에 입대한 이들에 대해서 문맹인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은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다.
“군대 안 가도 된다지만, 적어도 난 와서 잘 되었다고 봐.”
“나도, 군대에 없었으면 그냥 농사나 짓던 둘째인데 여기선 잘 지내니. 나는 교관이 될까 생각 중인데 넌?”
그 물음에 질문을 받은 병사도 생각한다. 동기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뺀, 거의 동년배끼리는 더욱더 편하게 말하는 편이다. 물어본 쪽은 이미 교관, 하사관이 될 생각으로 보인다.
‘나도 군문에 뼈를 묻을까?’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들었을 때, 그 ‘이전’이던 시기보다 군대에 대한 취급은 매우 좋아졌다. 그래서 진지하게 남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노비 출신, 혹은 백정 출신 등이 다양하게 섞여서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물론 저기 요동 일대는 더한 편이라는 사실은 그들은 잘 모른다. 군대 내에서 노비 출신이니, 백정 출신이라고 싸우면서도, 보조 기병대로도 쓰이는 만주족, 몽골족하고도 싸우다가 훈련 등으로 격렬하게 굴려서 강제로 친해지게 만든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지만, 진실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3년 이상 복무해도, 참교 등의 하사관으로 지원하면 되니까.”
“무관은 힘들겠어. 하사관 지원이 더 낫다고 하던가?”
“위관 같은 무반으로 본격 시작하기는 그렇잖아? 물론 하사관 중에 능력을 인정받으면 사관후보생이라고 그런 일을 거치고 무관이 된다니까.”
신 향반 제도 같이 예비역 위관, 즉 예비역 참위로 머물지 않고, 무관 후보생이라는 기회가 병사 사이에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아직 바로 무관 후보생으로 지원하기에는 부담감이 컸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무관 후보생을 적게 뽑기도 하고, 무관 후보생은 높은 확률로 현역 무관으로 복무해야 했다. 과거의 무과처럼 명목상 무반을 원하는 이들은 그래서 신 향반에 지원하지, 현역 무관으로 복무하기는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래도 우리 선임께서는 도전할 듯합니다.”
“그거? 모르겠네.”
그래도 도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자세히 누구인지는 몰라도, 잘 해내리라고 믿을 수가 있다. 그들은 그냥 하사관을 생각할 뿐이다.
그들 사이에 말이 없는 나이 많은 동기는 하사관이 될 생각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말이 없다. 오직 그만이 알 일이다.
‘백정 출신으로서 나는 꼭 성공하겠어.’
아니다. 그는 군대에서 하사관 등으로 입신양명을 할 생각이라고 드러난다. 그저 자신의 출신이 안 알려지게 노력할 뿐이다.
***
“조선으로 가게 되었고 머문 지도 2년 정도 되었군.”
그의 이름은, 애런 피터 다이다. 전 미합중국 육군 중령으로 남북전쟁에서 북군 소속으로 싸웠다. 조선에서 온 관전 무관단과 우연히 생긴 안면 등의 인연으로 그가 그 동방 나라, 조선에 보인 관심으로 지금 그 나라에 파견되는 미합중국 군사고문의 일원으로 가게 된 상황이다.
애런 피터 다이는 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 종식 이후인 1866년에 바로 조선으로 고용되어 가지 않았다. 좀 더 나중에 갔다. 그 시기는 1868년 이후였다.
친척 형님인 빌, 윌리엄 다이한테 인사하고 왔다. 듣기로는 그의 친척 형님은 아직 미군에 복무하기로 했다. 물론 그에게 이집트군 고문 등의 자리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일은 들었다. 애런은 조선으로 가는 배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조선은 어떤 나라일까?’ ‘책으로 보는 조선보다 내 눈으로 조선을 보고 느끼고 싶다.’ 등의 생각을 가진다.
이들은 영국군 고문 영향으로 영국군 방식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능력은 상관없지만, 체벌 위주의 징계가 이루어진다.
오히려 이런 식이면 조선군의 사관과 하사관, 병 사이의 관계가 매우 틀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부에 체벌 문제에 대해 건의했고 대신에 체력단련 방식의 처벌이란 대안을 제시했다.
또 장교 말고도 하사관들의 질도 중요하기에 더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애런 다이의 의견은 관철됐지만, 이전부터 영국군 고문관에게 교육받은 일부 장교들의 반대는 심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내 편이 있으니까. 다행이었어.’
영국군 소속인 고문관 고든 중령과 프랑스군 출신 고문관들이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에 대해서 애런 다이는 자신 담당의 병들, 하사관 후보생들과 사관 후보생들을 다독이고 훈련을 지도했으며 성과를 증명하려고 했다. 기존 방식인, 체벌 위주 중심으로 군기를 다지고 훈련하는 집단을 그가 제시한 대안으로 나온 군기 다지기로 훈련한 집단이 이기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60명의 사관 후보생도 다 무사히 임관했고 하사관 후보생도 160명 중 150명이 하사관으로 인정받고 조선군의 허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더 높은 임관 및 수료 결과에 미군 출신이라고 애런 피터 다이를 무시하던 어떤 영국군 고문관과 그런 사람에게 배운 조선군 장교들이 사과했다.
그는 그런 사과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 외에도 고문관으로 성실히 일하며 군사적 이유로 철도의 중요성을 애런, 그 자신이 겪었던 경험, 남북전쟁의 사례로 설명했다.
물론 그의 부임 이전부터 중요한 군사 거점과 수도를 연결하기 위해서 철도의 건설을 노력 중이라고 들었다. 평안도와 요동으로 빠른 이동을 위해서 철도와 기범선, 증기선을 다 사용해서 수송하는 계획을 들었다. 그런저런 말을 들으면서 철도의 중요성을 조선도 모르지 않음에 안도했다.
“다이 씨가 지적한 대로 작금의 시대에 전쟁은 앞으로 수송을 돕는 기물들을 얼마나 가지고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지요.”
“그렇습니다. 유럽에서 프로이센이 보여준 기동력은 철도에서 나왔다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조선에는 철도와 배를 활용해서 지난 전쟁에 승리한 일과 비슷합니다.”
한성근 부령이 지난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익힌 안면을 인연으로 애런 피터 다이와 대화를 하고 있다. 그들은 친숙한 분위기에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조선 조정도 유럽과 미국의 투자에 힘입어서 철도 부설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이 전 중령께서 만족할 수준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한성근 부령은 말을 다시 이었다. 애런이 알지 않아도 될 기밀일 수 있는 정보를 말해주었다.
“남부의 중요 거점들을 수도와 연결하는 철도를 조정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게요.”
“그렇습니까?”
그 외에도 동래라는 남부 항구 도시와 수도를 연결하려고 훌륭한 계획을 상정해서 잘 깔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다. 사실 넓은 강 위에 올릴 철교를 만들 기술력이 부족하던가, 비용이 들어가는 한계가 있지만, 여러모로 철도 부설의 의지가 강하다고 애런은 조선군 관계자, 한성근 참령에게 말을 들었다.
“그런데 다른 용건도 있습니다. 다이 전 중령.”
“무엇입니까?”
“당신의 원래 고문관 자리인 사관후보생, 하사관 후보생 훈련 담당에서 육예 당의 교수로 옮겨줄 수가 있다고 합니다. 병부와 육군을 관장하는 병무국 혹은 군무국은 이런 제의를 드립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여러 일이 있고 난 뒤인 지금에서 하는, 다른 대화에서 당시 조선 병부와 병무국은 한성근 부령을 통해서 애런 다이는 지금의 육군무관학교, 당시로는 육예당의 교수로 고문관 자리를 이적하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애런은 정중하게 사양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조선 육군의 하사관학교란 곳에서 하사관 육성훈련을 담당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다른 장교, 사관 후보생은 다른 고문들이 맡아도 되지만, 애런 그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사관 육성에 더 도움을 주고 싶었다.
또 그의 훈련법과 군기 다지기를 표준으로 정한다고 했던가? 물론 당장 바로 표준을 정하지는 않아도, 그의 방식이 꽤 훌륭한 참고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가 있었다. 한성근 부령은 그런 이유가 담긴 사양에 더욱 감동했다.
‘이런 좋은 사람하고는 오래, 좋게 이어나가야 좋다.’
양헌수 장군과 인연이 깊은 고든 중령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서 조선 주재 서양인 고문 모임 등에서도 미국과 영국의 국적, 나이를 초월해서 애런 피터 다이와 찰스 고든은 꽤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고문들끼리의 사교 모임에서 두 사람은 대화한 적이 있다. 애런 피터 다이는 조선군이 점점 기술이 필요한 이들에 유능한 인재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알았는데, 그런 노력이 좋은 방식이라고 여기었다. 공병과 포병에 머리를 잘 쓰는 인재들이 많이 있어야 나라의 발전과 군대의 발전에 좋았다.
이는 고든 중령도 동의하는 일이다. 물론 조선군의 포병과 공병 장교의 양성과정은 현재 사관학교의 포공재, 조선 이공 학교의 의무기한을 기재한 장교 과정, 한성대학교 이공계와 이공 중학교의 신한량제도, 한성대학교의 기술 계열에 지원받은 학사 장교 등 무관 후보생으로 구성되었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수급처가 있는 상황이고, 나쁘게 말하면 잡다하다.
한동안은 양이 확 많아야 하기에 질은 일부 쪽에서 챙기면 되었다. 이런 일에도 조선군의 가능성을 좋게 보는 이들은 다이와 고든 말고도 많았다. 그들도 관심이 생기는 일이 있는데 바로! 이웃 나라의 일이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조선 내부에도 급류 혹은 다른 흐름이 있습니다. 민간과 군대를 가리지 않고요.
애런 다이는 가상인물입니다. 실존 인물인 윌리엄 다이의 친척 동생으로 설정해서 등장했지요. 남북전쟁 이후로 조선 조정이 고용한 미국인 고문도 꽤 늘어난 편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그리고 앞의 대화에 나오는 구 신분에 따른 갈등은 실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도 있던 일인데 이를 더 빨리 겪는 일 뿐입니다. 백정 출신 등 신량역척, 혹은 천민 출신들은 상민 출신들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 이게 해결이 될 지는 알 수 없네요.
다음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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